거센 폭풍우는 계속되었고, 끝없이 쏟아지는 빗물에 가시범위가 극도로 좁아졌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합생명체의 수가 마치 그 빗물처럼 무한정 쏟아졌고, 똑같이 차갑고 매몰차다는 것이다.



퍼펫베어

아무리 제거해도 다음 이합생명체들이 곧바로 상륙할 겁니다...이 녀석들은 정말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걸까요.


지휘관

방어선의 상태는 어때?


퍼펫베어

이전과 비슷합니다. 방어전선은 고사하고 강수와 거센 파도를 따라…. 적조는 해안선으로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고, 양 날개쪽 진지는 200m 가까이 후퇴했습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서면 유지는 불가능에 가까우며 부랴부랴 급조한 허약한 방어선이 뚫리는 일도 한순간이다.


지휘관

크롬, 그쪽은?



크롬

현재 전선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저와 카무이, 그리고 정화부대원들이 있지만, 오메가 무기 방어선의 틈새를 뚫은 이합생명체들을 처리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카무이

오메가 무기 하나가 또 작동하지 않아...대장! 도와줘!


크롬은 방어선에 가까운 여러 이합생명체들을 얼려 단단한 얼음으로 만든 뒤 곧바로 카무이의 손에 든 대검에 의해 얼음덩어리가 찍혔다.


하지만 유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합생명체들이 그 틈을 통해 붉은 조수를 모래사장으로 몰아넣었다.


한 정화부대 병사는 고농도 퍼니싱 바이러스의 침식을 견디며 간신히 옮긴 오메가 무기를 붕괴 직전의 방어선에 올려놓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반즈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끌려가 간단한 점검 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즈

안 돼...침식도가 임계치에 다다랐어. 후방으로 이송한 다음 응급처치를 실시해 침식률을 안정시켜야 돼.


정화부대 병사들은 침식의 고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크롬

그래, 가자...카무이, 잠시 반즈를 도와줘.


카무이

알았어!


반즈

내 저격총 조준경 파라미터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니까...


크롬은 빗속에서 흐트러져 시야를 가리던 머리카락을 다시 손으로 쓸어올려 다시 단말기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롬

죄송합니다 지휘관님...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메가 무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소진되어 방어에 필요한 인력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지휘관

알았어...


퍼펫베어는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고 변동된 수치를 살피며 카레니나의 단말기와 연결했다.


퍼펫베어

여보세요, 카레니나! 오메가 무기의 재고는 아직 충분하지...수송 속도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카레니나

불가능해, 빌어먹을 날씨 때문에...모래땅에 차가 지나갈 수 없어 손수 무기를 전선으로 보내야 되서 인력이 완전 부족해!


카레니나는 몸 주변의 중력파를 조종하며 10여 개의 오메가 무기 운반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신속하게 전선으로 달려가 지원했지만 보급은 소모를 따라가지 못했다.


적조의 침입으로 방어선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곳의 전력도 적조와 이합생명체에 의해 계속 소모되었고…. 인력의 공백은 계속 커져만 갔다.



리브

지휘관님, 조금만 더 버팁시다…. 그리고 1개 소대의 증원이 오고 있어요.


1개 소대만으로는 부족하지만 부상자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니 나쁠 건 없다.


지휘관

응, 좋은 소식이네...어느 소대가 왔지?


시몬 지휘관이 이끄는 한양소대입니다. 물론 이제 막 재편성 되었지만 말입니다.


지휘관

그들이라면 확실히 기대되는 전력이야.


지휘관

다만, 니콜라 사령관이 그들의 참전을 허락할 줄은 몰랐는데...


니콜라 사령관이 아직 한양소대에 휴식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노안이 이상해서 그런 겁니까?




[1]

지휘관

(1)(전부) ← 선택

(2)(시몬도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래)


자신의 비장의 카드를 던진 겁니다.


지휘관

또 감시를 위해?


내려온 이상, 협조겠죠.


[2]

지휘관

(1)(전부)

(2)(시몬도 몸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래) ← 선택


이제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시몬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죠.




루시아

지휘관님, 이합생명체가 또 다시 급습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어서 지시를 내려주세요. 이번에는…. 이전보다 규모가 더 클 겁니다.


지휘관

전원, 오메가 무기를 보호하라. 30초 후 공격에 대비해!


루시아는 맨 중앙에 동료들과 나란히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적을 마주하고 태도를 뽑았다.


앞에는 밀려오는 절망의 적조, 모든 이의 뒤에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여전히 희망을 품은 지구가 있어 한 발짝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을 탈출한 사람들은 자리를 비운 뒤 캠프에 돌아왔다.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라는 조직에서 십여 명만이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살아 있는 것도 이들에게 불행일지 모른다.



릴리안

으아아...움직이지 마세요...


노인이 한바탕 경련을 일으켜 하마터면 릴리안의 손에 든 혈청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난민 노인

죄송합니다...신님...


이미 심한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노인은 퍼니싱 침식으로 몸 여기저기 짓무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쪽 여성 구조체는 벽에 기대어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양소대의 최우선 임무는 해안선 지원인데 시몬 지휘관이 잠시 기다리라고 한 것에 대해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팔루마

이런 침식도로는 구조한들 팔다리를 절단해야 해. 혈청을 낭비하지 마.


팔루마는 남은 혈청을 릴리안에게서 가져왔다.


팔루마

가, 지금 더 급한 임무가 있다고.


릴리안

하지만...너무 아파보이는데...


팔루마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수는 있어.


팔루마는 팔을 들어 칼을 휘두르려다가 갑자기 팔루마의 등 뒤에서 비수가 날아왔다.


하지만 이내 반응해 피격을 앞둔 순간 몸을 돌려 피했다.


???

반응 속도가 좋군.



팔루마는 방어적인 자세로 고개를 들었고, 그 대담한 놈이 그 망각자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안

와타나베, 무슨 일이야?


이 소동을 듣고 한양소대의 노안과 시몬 지휘관이 캠프 밖에서 총총히 다가오자 두 사람이 칼을 빼들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팔루마

망각자...노안? 너희들은 대체 뭘 할 셈이지?


노안

한양소대의 대장 팔루마야, 와타나베.


와타나베

난민을 죽이려는 자가 대장?


시몬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팔루마

혹시 오해가 있다면 그쪽이 먼저 설명해 볼까? 왜 너는 망각자와 함께 있지?


노안

우연이라고 말하면 믿겠어?


팔루마

일부러 우리더러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한 후에 나가서 우연히 만났다?


노안

사실 이건 리의 제안이었어. 물론 니콜라 총사령관은 이 문제에 대해 묵인했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은 망각자가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합류하도록 둔 거야.


팔루마

뭐? 리가? 망각자와 합류?


노안

맞아. 나는 구조체가 되기 이전에 와타나베와 알던 사이였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 사람들도 알고 있던 사실이야.


팔루마

...망각자와...?


노안

여전히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잖아. 입장이 달라도 우리의 목적은 같아.


팔루마

...쳇.


노안

혈청을 나에게 줄래? 팔루마 대장.


노안에게 혈청을 던지기 싫었던 팔루마는 와타나베와 함께 떨고 있는 노인을 누르고 혈청을 주사했다.


이를 본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 조직의 수장인 그레이스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스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저는 그를 대표하여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신의 축복으로 그대들이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주기를.


와타나베

신...


와타나베는 손에 든 구르카 칼을 바라보았다. 그는 브루스라는 막역한 친구가 설원의 교회에 영원히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지만, 또한 퍼니싱을 창조했다. 경건한 자의 의지를 왜곡하고, 용감한 자의 각오를 짓밟았고, 마침내 선량한 자의 신념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끝없는 고난만을 남겼다.


와타나베

'신'의 말을 믿느니… 같은 '사람'으로서의 의지를 믿기를 바란다.


그레이스

물론입니다. 이건 언제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버릇이니까요.


릴리안

버릇...? 당신은 정말로 그 신을 믿는 건가요?


그레이스

저는 모든 것이 기탁과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그것이 신이 되었든, 점괘가 되었든, 적조가 되었든 말이죠.


그레이스

...희망이 될 수 있는 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팔루마

하, 이 사람들이 무슨 '붉은 목소리의 신의 계시'라더니 광신도가 아니라 '아무나 살려줘'교를 믿고 있었군.


팔루마

구원을 원한다면 왜 진작에 항쟁하지 않은 거지?


그레이스

항쟁? 당연히 항쟁하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우리의 무력한 손과 구조체가 될 수 없는 피와 살의 몸을 보세요. 우리는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그 괴물들 앞에서 흙덩어리처럼 부서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레이스

우리는 끊임없이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망칠 때의 두려움에 진저리가 나버렸고,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증오했습니다!


그레이스

이 진저리는 발산할 곳 없는 분노로 변해버려 결국 신앙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레이스

하지만...


그레이스

바다의 오염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 공간이 다시 줄어들게 된다면...


그레이스

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을 걸고 두려움으로 인한 분노를 하늘과 땅으로 날려보내고 싶습니다.


팔루마

...신도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레이스

아니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그건 신의 시련이라고 말했습니다.


팔루마

...


그레이스

하물며 그는 이 전투가 성공하면 우리도 새로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팔루마

그? 아...노안 말인가. 그런 희망찬 동료는 항상 남을 설득하는 걸 좋아했었지.


노안

아니, 내가 아니라 와타나베야.


노안

나는 결정권이 없는 구조체일 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겠어.


팔루마

마음대로 해. 하지만...


팔루마

시몬 지휘관, 노안, 다음에는 일부러 나를 피하려고 굳이 우회해서 지원군을 찾지 않아도 돼. 내가 정화부대 출신이라도 이럴 때는…. 망각자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으니까.


그녀는 무기를 접고 돌아서서 떠났다.



와타나베

...노안.


노안

무슨 일이야?


와타나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 이 이름에 익숙하지 않아. 네가 자기소개를 할 때 '슈렉'이 설마 가명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지.


그는 근처의 청년 구조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와타나베

그날 열차 안에서 너와 작별할 때….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었고, 또 한 명의 잊은 자의 동료를 잃는 줄 알았었다.


와타나베

...


와타나베

아무튼, 살아남아서 다행이군. 공중정원에 머무를 수 없다면 망각자는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시몬

와타나베 씨, 이 말 만큼은 차마 못 들은 척 할 수 없습니다.



노안

괜찮아, 시몬 지휘관. 나는 망각자에게 가지 않아. 나는 승격자와 너무 많은 관련이 있어 지나가는 것만으로 와타나베에게 위험만 안겨줄 거야.


시몬

...


와타나베

너의 미래는 네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해리조

...


해리조

팔지 양, 우리는 뒤따라 가면 되는 건가?



팔지

아니, 내가 받은 명령은 한양 소대를 관찰하고 망각자와의 접촉을 주의하라는 것이었어.


해리조

관찰...? 감시가 아니라?


팔지

감시만 필요하다면 굳이 지상으로 내려올 필요도 없었지.


팔지

별 다른 이상이 없는 한 전투에 참가하고 협력하는 것이 주 목적이야.


해리조의 통신단말기에 최신 전보가 전해지자 재빨리 정보를 읽었고, 이윽고 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팔지

무슨 일이지?


해리조

그레이 레이븐 소대 쪽에서 이합생명체가 대량으로 방어선을 공격하고 있어 시간이 촉박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해.


팔지

시몬도 이 소식을 받았겠네.


해리조

모든 지휘관들도 마찬가지겠지, 봐봐, 그들이 벌써 집결해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어.



팔지

...좋아, 가자.


물방울이 팔지 가면 위에 떨어지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점점 혼탁해지는 하늘을 보았다.


팔지

...폭우가 쏟아질 것 같네.



난민 청년

우리는 정말 그들의 수송차를 따라 그 수많은 괴물과 싸우러 가는 겁니까…계시자님!



그레이스

물론입니다. 이것은 신의 계시입니다.


그레이스

제가 여러분에게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난민 청년

이것은...시련이다...


그레이스

맞습니다. 저의 점괘 역시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난민 여성

정말입니까? 계시자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난민 청년

다 같이 갑시다!


그레이스

네!


점괘, 신의 계시가 허황된 거짓말일지라도, 이 순간 뭇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는 나팔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약하고 민감해서 '완벽함'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레이스

우리에겐 서로가 더욱 필요하고, 신앙이 필요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밝은 미래가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는...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합니다.



이합생명체의 가장 거센 공세 이후 해안 방어선은 다시 줄다리기의 늪으로 들어갔지만, 유일한 차이점은 이합생명체가 갈기갈기 찢어질 때마다 인간 전선을 확실히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부전선은 그나마 부대원들의 지원을 받아 오메가 무기의 방어선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지만, 병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부전선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본래 소규모의 방어전이었으나 어느새 제법 큰 규모의 진지 방어선이 호각을 이루었고,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 백사장에서 유일하게 장벽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앞에 놓인 오메가 무기뿐이었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 또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크롬

지휘관님…동쪽 전선의 오메가 무기 방어선이 3%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 차징팔콘 소대는 정화부대의 부상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자들과 함께 돌격할 것입니다. 방어선을 탈환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지휘관

아니...동쪽 전선을 버리고 철수해.


카무이

어째서야 지휘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옆에 있던 크롬은 카무이의 등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고, 상처투성이의 정화부대 병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크롬

우리가 방어선을 탈환해도…. 온전히 후퇴하지 못할 거고 오메가 무기를 새로 설치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아.


지휘관

맞아. 어쩌면 그것이 지상에 퍼지게 놔둘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


진지를 지키고자 대부분의 전사들을 희생시킬 바엔... 차라리 힘을 비축하고 반격의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또 한 소대 단위의 병력만 더 배치할 수 있다면 이합생명체가 돌파구에서 해안선 협곡까지 밀집해 전진할 때 측면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

...


그 순간, 단말기에 약간의 잡음이 들렸고, 그 발신처는 차징팔콘이 있는 동부 방어선 부근이었다.



해리조

...좋아, 교란 해결, 통신이 정상화되었어!


지휘관

해리조!?


해리조

헤헤, 수석과 옛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보고는 한양소대에게 맡길게. 그들이 최전방에서 선봉으로 가장 빨리 움직이고 있어. 이미 너희 근처에 거의 다 와 있을 거야.


지휘관

(1)노안?

(2)...한양소대?



노안

안녕, 지휘관. 우선 서둘러 왔어.


노안

시몬 지휘관이 설명해야 하지만 멀미가 나는 바람에 릴리안이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해줬지.


지휘관

정말 고생 많았어...


노안

한양소대 4명 외에 성갑충 소대 팔지 씨, 도요새 소대 지휘관 해리조 씨...그리고 망각자 조직의 와타나베를 포함한 37명, 총 43명이 적조가 도사리는 해안 방어선으로 이동 중이야.


지휘관

망각자...와타나베도 역시 왔구나!


지휘관

긴급지원을 부탁해!


고개를 끄덕이는 표시를 보내자 퍼펫베어는 전술지도를 열었고 그 위에서 동부 전선 방어의 빈틈 좌표를 찾아냈다.


지휘관

MN-6과 MN-8 사이의 영역으로 가서 이합생물의 측면을 격퇴해.


노안

좋아.


지휘관

가능하다면 차징팔콘의 반격에도 협조해 줘.


노안

문제 없어.


퍼펫베어

프로그램 추산에 따라 수십 명이 있어도 오메가 무기 구축 방어선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하세요.


노안

기꺼이 나서려는 사람들은 우리 수십 명만이 아니야.


지휘관

다른 조력자가 또 있어?


노안

맞아.


노안은 기대를 안고 먹구름이 번지는 곳, 그러나 동시에 태양이 떠오르는 뒤끝을 바라보았다.


노안

그들도 왔어.


노안을 따라 뒤돌아보니 해안선으로 향하는 협곡 끝에서 어둑어둑하지만 여전히 햇살을 찌르는 가장자리에서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우두머리는 손에 비뚤어진 쇠몽둥이를 높이 들고 해안 방어선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레이스

신의 뜻이 우리를 인도하였습니다. 과거에 우리에게 시련을 주셨으며...구원을 내려주셨고, 살아남게 하여 우리가 시련을 이겨내고 우리가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레이스는 철 지팡이로 해안가의 끝없는 이합생명체들을 가리켰다.


그레이스

지금, 적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몸소 끝내야만 하는 전투입니다. 손에 든 무기와 함께 저를 따라오십시오!


해일 같은 환호가 그녀에게 화답했고, 시야의 끝에서 더 많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망각자로부터 다양한 무기를 손에 들고 난민들은 해안선을 향해 돌진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겁쟁이'들의 분노, 두려움으로 인한 분노, 분노로 인해 단결한 용기이다. 그들의 빛은 약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늘과 바다를 뒤흔들 것이다!


퍼펫베어

난민들의 전투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엄청난 수의 이들이 합류하면 오메가 무기 수송의 어려움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휘관

...반격의 때가 왔다!



노안

맞아, 이 전투의 승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숨과 미래도...당신에게 맡길게, 지휘관.


지휘관

그래, 더 신중하게 결정할게.


노안

나는 믿어. 결국...'그 수석이라면 해결 못 할 문제는 없으니까'


지휘관

...시몬이 또 뭘 가르쳐 준거야.


노안

각양각색의...영웅전설이라고나 할까?


노안은 그 말에 눈앞의 사람들을 격려하듯 미소를 지었다.


지휘관

동부 전선 방어 진지에서 저쪽은 지금 이합생명체에 의해 뚫렸어.


지휘관

한양 소대와 망각자가 참전한다고 해도 한동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지휘관

이 난민들을 지상에서 강제로 지원하게 만들어 버리면….


지휘관

아마 매우 큰 피해를 초래할 거야.


노안

음, 다른 방법이 있어?


지휘관

시도해 볼게.


지휘관

로제타, 들려?



로제타

들려, 지휘관.


지휘관

북극 항로에서 배 한 척을 옮겨줄 수 있겠어?


로제타

응, 폭풍이 잦아들어서 현재 해상의 방어선 압박이 예전만큼 크지 않아.


퍼펫베어

잠깐, 그 난민들이 바다를 통해 동부 전선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건가요? 그게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퍼펫베어는 갑자기 멈춰 서서 다시 곰곰이 생각했다.


퍼펫베어

아니네요. 해상은 이합생명체의 근원이지만 기본적으로 해저에서 해안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수면에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지휘관

맞아. 위험해 보이는 곳일수록 오히려 가장 안전한 법이지.


로제타

북극항로는 가장 빠른 배를 띄워 난민을 수송한다.


지휘관

하지만 난민들이 부두로 이동할 때 호위가 필요해.



리브

지휘관님, 제가 가겠습니다.


대화를 들은 리브는 임시지휘센터로 들어갔다. 그녀는 부상당한 정화부대원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리브

소수의 이합생명체라면 제가 직접 처리할 수 있고... 도중에 누군가 부상을 입더라도 제때 치료할 수 있습니다.


리브는 가슴을 쓰다듬었고 눈은 확고했다... 예전에 다소 완고했던 느낌과 달리 지금의 리브의 판단은 그녀가 경험한 수많은 전투를 통해 그 판단을 무조건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자신감에 근거했다.


지휘관

좋아, 리브에게 맡길게...그리고, 힘내.


리브

네, 리브, 힘 낼게요.


리브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간단한 경례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지휘센터를 빠져나갔다.

 

지휘관

그러면 이제 가장 큰 문제는 '그녀'인가...


그 거대한 형상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인간 여성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이합생명체의 특징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방어선을 유지하고 오메가 무기가 가능한 한 그녀를 차단하는 효과를 내기를 기대해야 한다.



전투 개시




리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브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동부 전선 진지로 모시겠습니다.


난민 남자

고마워 아가씨, 우리도 짐짝이 되어선 안 돼!


리브

이번 경로에서 전투가 일어날 겁니다. 저는 반드시 여러분들을 지키겠습니다!


난민 남자

안심해, 두 손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신조거든.


난민 소년

나도 싸울 수 있어! 누나!


리브

네, 하지만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다치면 꼭 알려주세요.





리브

안개? 여러분, 제 옆으로 오세요!


리브

...여러분!? 다들 어디 있나요!


리브

(이 환각들은...이합생명체가 퍼니싱으로 생체 인식에 영향을 미친 건가?)


리브

하지만 이곳의 모든 이합생명체를 전부 물리치면 풀릴지도 몰라.




난민 소년

누나! 으아아앙!


리브

여러분 괜찮아요?


난민 남자

앞에 부두가 있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로제타

리브, 모두를 데리고 탑승을 준비해. 우리는 곧 출발할 거야.


리브

네, 알겠습니다...다들 조심하세요!!



계속 전진한다!



전투 종료




폭풍이 끝날 무렵,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해변 위로 가늘고 질질 끄는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울려 퍼졌다.



바네사

역시 싸우고 있었구나...꽤 큰 규모의 전투인걸.


먼 곳을 바라보던 그녀는 눈에 상처가 난 듯했고, 동틀 무렵의 햇빛에 따끔거리며 실눈을 떴다.


수많은 이합생명체들이 바다에서 기어 나와 해안선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지만, 그것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힌 듯했다.


바네사

이게 바로 오메가 무기인가...여태 본 적은 없었지만 그때 그 녀석의 얘기대로라면 맞겠지.


그녀는 손가락을 뻗어 전선 중앙의 임시 지휘센터를 가리켰다.


바네사

저 마크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것이지.


바네사

그레이 레이븐 소대뿐 아니라 차징팔콘 소대, 케르베로스 소대, 엔지니어 부대…. 한양 소대까지 왔네.


바네사

공중정원에서 이렇게 많은 병력을 투입하다니, 그 '수석'의 겉치레는 여전히 장난 아니군.


그러나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에 의해 소집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 곁으로 모여들어 함께 싸운다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바네사

가서 그들과 합류해, 밤비나타.



밤비나타는 거동이 불편한 몸을 온몸으로 부축하기 위해 재빠르게 그녀의 곁을 찾아왔다.


바로 이때 밤비나타의 시선에서 어울리지 않는 선홍색 모습이 포착됐다.


밤비나타

주인님!


밤비나타는 여성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겨 이합생명체의 공격을 몸으로 막았다.



테시우

이런 조무래기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사용해야 하는 건가?


청년의 목소리에 작고 가냘픈 밤비나타는 이합생명체를 걷어차고 그 추격을 피한 뒤 다시 그 여성으로 돌아와 경계를 했다.


이합생명체가 다시 달려들기 위해 포효소리를 내기도 전에 날카로운 화살이 목구멍과 굵은 나무줄기에 박히자 움직일 수 없는 선홍빛 액체로 변해버렸다.


밤비나타

...감사합니다.


밤비나타는 청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라 뒤에 있는 주인을 구해준 덕분이 틀림없다.


바네사

허...테시우...


테시우는 곁눈으로 바네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놀라운 상처는 단지 그녀가 자업자득한 결과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테시우

너를 여기까지 보내준 것이 나의 마지막 자비다, 바네사.


바네사

알아. 이미 수없이 말했잖아.


바네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악의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잔잔한 슬픔만 느껴졌다.


테시우

그럼 이만 가보지.


바네사

잠깐, 마지막으로 해야할 게 있어.


테시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