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때 치코의 자살을 막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치코가 해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혹사가 바다 위로 떨어지자 갑자기 대량의 침식체가 나타나 혹사를 회수하려는 비앙카를 막아섰다.


한편, 오메가 무기는 전체 교전 중 최고출력 정점에 도달했고, 해상에 만연한 적조가 제대로 억제되었다.


바다 위의 거대한 인간형 이합생명체도 인간에 둘러싸여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레니나

곧 있으면 오메가 무기가 바닥날 거야, 가능한 한 빨리 그 녀석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 해!


카레니나가 크게 외쳤다.



비앙카

저한테 맡기세요, 카레니나.


바다 위의 전투 이후 진영으로 돌아온 비앙카가 대답했다.


카레니나

비앙카...! 다친 데는 없어? 해저에서 며칠 동안 실종되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비와 순환액에 흠뻑 젖은 소년은 남은 대원들을 이끌고 나와 비앙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살레스

대장...역시 무사했군. 대장은 정말 강해.


비앙카

걱정 마세요, 저는 무사합니다.


비앙카는 남은 정화부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수일 동안 이합생명체와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수의 인원을 상실했고, 그다지 경력이 많지 않은 소년마저 현장 임시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앙카는 검장을 움켜쥐고 전방을 응시했다. 거대한 인간 형상의 그 기형적인 몸이 한 건물에 가까워질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지휘관

그 거대한 인간형 이합생명체는 도대체 뭐지?


비앙카

승격자가 치코의 의식을 인간형 이합생명체의 몸체와 융합시킨 것입니다...그 괴물 속에 치코 또한 포함되어있습니다.


지휘관

치코...


바로 해저에서 실종된 정화부대를 이끄는 부대장이었다.


비앙카

네. 코퍼필드 해양박물관이 무너진 후, 치코가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카레니나

바다 위에 있는 그 괴상한…인간형 이합생명체가?!


비앙카

치코와 승격자는 최후의 순간까지 사투를 벌이다 순직했습니다.


비앙카가 주변을 둘러보자 서서히 모여든 정화부대원들이 침묵에 빠졌다. 전례없던 위엄과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대장을 마주하며, 여지껏 느끼지 못했던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경외심이 들었다.


비앙카

본 네거트가 인간형 이합생명체 융합 실험의 일환으로 치코를 사용했지만, 치코가 완전히 괴물의 자양분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의식은 여전히 그 안에 남아있습니다...



혹사

치코를 죽이고 싶어?


혹사

안 돼, 친구에게 손을 댈 수 없어...


혹사

그녀의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비앙카

그녀의 의식은 무너졌습니다. 단지 모종의 미약한 방법으로 그녀의 소원을 표현할 수 있을 뿐입니다.


비앙카

ㅡㅡ하지만 그럼에도, 치코의 잔존 의식은 저희를 지켜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살레스

팽창하고 있는 그 괴물이 치코 부대장이라고...?


지휘관

그녀는 해저에서 퍼져나오는 이합생명체를 끊임없이 삼키고 있어...


지휘관

사실 인류가 시간을 끌 수 있도록 돕는 거였나?


비앙카

...모르겠어요. 인간형 이합생명체의 진화 본능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라고...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비앙카

그녀의 무너진 의식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비앙카

지금은 마치...자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리조

그 괴물이 사실 우리를 돕고 있었다고?


지휘관

의도했든 아니든


지휘관

그녀가 퍼니싱과 이합생명체를 삼키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확실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이때 비앙카의 단말기에 통신요청이 접수됐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공중정원으로부터 온 메모로 발신인의 이름을 보며 비앙카는 눈살을 찌푸렸다.



베살리

심흔...결국 마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가?


비앙카

어쩌면 정말 당신이 말한대로 '마녀'는 저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제 삶의 일부일 수도 있겠죠.


비앙카

하지만 그것이 제가 그 신분에 얽매여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이 검은 바로 저의 각오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베살리

허...그럼 가자고. 실험체 자체의 영향에 대해서도 꽤나 흥미가 가는걸.


베살리

이 선물은 내가 너를 위해 과학이사회에 연구 개발을 의뢰했던 거야. 계속 널 지켜보겠어.


그리고 베살리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중단했고, 이때 퍼펫베어는 뭔가 떠올린 듯 캠프 내 장비 파일을 뒤졌다.



퍼펫베어

참...비앙카, 우리 엔지니어 부대는 지상으로 오기 전에 과학이사회로부터 당신을 위한 장비를 가져오라는 위탁을 받았어요. 그 여자는 당신이 반드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죠.


카레니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왜 나는 모르는 거지...?


퍼펫베어

헤에...정밀 장비라 그런가, 니가 폭력을 휘두르다가 부서지면 큰일이잖아.


퍼펫베어는 당시 운송을 맡겼던 화물 상자를 발견했지만, 열어보니 상자 속에 있던 것은 웅크리고 있던 흰 옷을 입은 남자였다.


???

으아아아아아아!!


카레니나

으아아아아아아!!


화물칸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화물칸을 열어준 카레니나도 깜짝 놀랐다.


퍼펫베어

아합 아저씨...당신이 왜...?


그 남자는 엔지니어 부대의 두 사람과 한동안 어울렸었고, 월면 기지에서 그들을 도운 쿠로노 측 과학자였다.



아합

깜짝이야...침식체가 화물칸을 비집고 들어온 줄 알았잖아.


퍼펫베어는 잠깐 놀란 기색을 보인 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퍼펫베어

헤헤...뭔지 알겠네요. 그 여자가 당신의 상사겠죠. 이전에 월면 기지에서 우리를 도와준 것에 대해 벌을 내린 것 같네요.


아합

하하...'영점 에너지 엔진을 망가뜨렸으니 이번엔 충전재가 되어서 이 선물을 지켜내라'고 말했어. 그래서...


보아하니, 확실히 아합이 손에 쥐고 있는 영점 에너지 엔진 자료 때문에 그가 목숨을 부지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쿠로노의 작태로 보아, 이 세상에 '아합'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퍼펫베어

그럼 그 여자가 말한 '선물'은 어디에 있나요?


아합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안고 있던 기계를 꺼냈다.


카레니나

이건...보조기? 내부 적응 솔루션은...비앙카의 심흔 기체라고 적혀있어.


아합

맞아. 이 보조기의 전개 형태는 심흔 기체를 탑승시켜 수면과 낮은 고도에서 빠른 기동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



비앙카

이걸로...치코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앙카

지휘관님....저와 딥링크를 형성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앙카

치코의 마지막 소원이자 저의 소원입니다...제 손으로 그녀를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비앙카

...이것은 저와 그녀와의 약속입니다.


비앙카의 눈빛은 진지했고, 그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의 다른 대원들을 돌아보던 리브는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고, 리도 입을 오므리고 있었는데,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지만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비친 것을 이해했다. 루시아는 자신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회가 모체 파편을 결합해 만든 장치가 있어 비앙카의 현 기체 전력은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구조체보다 훨씬 강합니다.


루시아

엄호는 저와 모두에게 맡기세요!


리브

걱정 마세요, 비앙카 씨, 지휘관님. 지휘관의 연결 상태를 항상 주의하여… 딥링크의 안정성을 확보하겠습니다.


이살레스

대장은 우리 중에서 부대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당신도 조심해야 해.


카레니나

젠장...또 비앙카 혼자 싸우게 할 수밖에 없는 건가...


비앙카

저 혼자만의 작전이 아닙니다.


비앙카

해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팔지

너희들끼리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한 것 같은데 어서 명령을 하달해줘!



노안

응, 모두 준비는 끝났어.



팔루마

행운을 빌어, 대.장



비앙카는 팔루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미소는 예전과 똑같다. 이 기체 형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비앙카가 비앙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지금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확고하다.


지휘관

전투 개시, 모두 원위치에서 비앙카를 엄호하라!


카레니나

좋았어...퍼펫! 가자!


카레니나는 단말기를 향해 소리쳤다.


카레니나

비앙카,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야 돼. 난 아직 너의 새 기체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비앙카

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ㅡㅡ그녀는 한때 치코의 자살을 막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치코가 해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전투 개시



유튜브 자막 설정 → 한국어



전투 종료




'비앙카'라고 외치는 소리가 떨어지자, 치코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무수한 퍼니싱으로 변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비앙카는 손을 뻗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비린내 나는 바닷바람이 치코의 못다 한 말을 몰고 오는 듯했다.


'살려줘'


'죽여줘'


'가지 마'


'안녕'


이것이 바로 치코의 미련일까?


치코 역시 삶의 마지막 순간, 생명의 소멸을 두려워 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풍요롭고 벅찬 감정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하고, 살아가는 용기란 버림과 부정이 아니라 약점을 직시하는 것이다.


치코의 말처럼 이 구원이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앙카는 직접 베어내었고, 비앙카는 이 죄악을 품고 계속 나아갔다.


비앙카

내가...너의 몫까지 함께 계속 나아갈게, 치코.


마치 비앙카의 응답을 들은 듯 치코의 남은 몸에서 이름 모를 코어 파편이 떨어져 나와 비앙카가 들고 있던 랜턴에 스스로 삼켜졌다. 그 사이에 어떤 감응이 있는 듯했다.



해안가 방어선에서 달려온 카레니나는 비앙카의 안전을 확인한 뒤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녹티

이게 설마 승격자의 비밀병기는 아니겠지...


카무이

꼭 boss를 처치하고 드랍된 장비같네...


반즈

카무이...후....이런 순간에 너가 한 게임 생각 좀 하지 마. 전장은 아직 완전히 처리되지 않았어.


해안으로 올라가려는 이합생명체를 사살하며 반즈가 따라왔다.


이합생명체의 광풍은 대부분 가라앉았고, 인간형 이합생명체가 패배한 뒤 오메가 무기의 억제력이 발휘되면서 모두 해안가에 모여 신기루 같은 광경을 지켜봤다.



리브

마침내 다 끝났어요...비앙카 씨, 치코 씨...


리브

지휘관님, 치코 씨가 결국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지휘관

전장에선 결코 사람의 마음까지 구할 수는 없어.


리브

...그것도 그렇네요...전쟁에서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구할 수 없는 것이죠.


지휘관

하지만 치코의 영혼은 괴로움을 겪은 후,


지휘관

비앙카에게 구원을 받았어.


리브

네...?


지휘관

해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휘관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어.


지휘관

마치 너처럼.


리브

...


리브

그렇네요. 저도 비앙카 씨가 분명 치코 씨와의 약속을 지켰을 거라 믿어요. 


루시아

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저희만의 약속을 매번 완수하듯 말이죠.


지휘관

그건 당연하지.



...


지휘관

리, 그 눈빛은 뭐야?


리는 고개를 돌렸다. 마치 다른 사람에게 그의 표정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또 지휘관의 오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말입니다.


지휘관

(1)....

(2)어디가 오글거려?


뭔가 리가 이상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요즘 그는 이사회에서 신기체 적응에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그레이 레이븐의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부쩍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다.


지휘관

그러고 보니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


아직 임무 중인 것을 기억하세요. 우선 전장을 깨끗이 청소합시다.


리브는 자신과 리를 오가며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했다.


루시아

네. 지휘관과 리의 말이 맞아요. 다시 한 번 함께 싸워 이길 수 있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서쪽 전선의 남은 이합생명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도록 하죠.


그리고 루시아는 여전히 '솔직'하다.


리브

피식...


루시아

왜?


리브

별거 아니에요. 지휘관님, 여러분, 계속 함께 싸워나갑시다.


루시아

방금 누가 내가 알아듣지 못한 농담을 한 거야?


리브

진짜 아니에요...오랜만에 이렇게 모이게 돼서 너무 기뻐요, 루시아!


루시아

응!



이 거대한 전쟁은 저물어가는 해질녘과 함께 막을 내렸고, 리는 포연이 자욱한 해안가에서 인간형 이합생명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