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물은 분명 미래의 열쇠가 될 것이다.



나머지 소탕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각 부대의 협조로 서쪽 구역의 이합생명체들이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다.


통신으로 공중정원에 인명피해와 무기손실 현황을 보고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송기가 이미 출발했다는 답변을 받았다.


리브는 서쪽 구역에 머물며 부상자들을 응급 치료하고 리와 루시아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해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으며, 자신은 지휘센터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구조체의 의식 안정을 돕고 있었다.


정화부대 병사

고맙군...덕분에 꽤 나았다.


지휘관

비앙카는 어디에 있는지 봤어?


정화부대 병사

대장이라면 아까 전에 저쪽으로 갔다.


정화부대 병사가 방파제 쪽 방향을 가리켰다.



해안가에서 비앙카의 모습을 찾았다.


마치 전투의 종전을 알리는 듯 짙은 먹구름이 연기가 걷히면서 서서히 물러가는 듯했고, 노을빛이 해수면 위 머나먼 하늘에 따스하게 물들었다.



여성은 방파제 가장자리에 앉아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곁으로 가서 그녀와 함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앙카

...


비앙카

지휘관님...


지휘관

이제 끝났어.


비앙카

네, 전부 끝났습니다.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비앙카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이별을 수없이 겪게 될 겁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복잡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지만, 거기에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지휘관

맞아,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의지와 함께 계속 나아갈 거야.


비앙카

...지휘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금발의 여인이 바람에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오래전 거대한 이합체에 맞서 활을 당기는 모습과 겹쳐졌다.


진리와 심흔, 겉으로는 매우 판이하게 달라 보인다.


지휘관

비앙카...


지휘관

그녀와 자신을 찾았니?


놀란 표정을 짓던 비앙카는 그 뜻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닷바람에 흩날리던 귓머리를 손으로 살짝 눌러주었고, 치코의 귀걸이가 그녀 손끝의 잔가시를 굴절시켰다.


지휘관

너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확고해 보여.


비앙카

...네.


그렇게 말하며 비앙카는 함께 임무를 수행한 이후 처음으로 순수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자신도 미소로 화답했고,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해질녘에 고요한 바다를 나란히 바라봤다.



갈매기가 울면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한참 뒤 멀리서 서너 차례 외치는 소리가 들려 그 쪽을 바라보니 정화부대 대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와 함께 단말기에서도 수송기의 도착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었다.


지휘관

회항할 시간이야.


비앙카

네.


비앙카는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가슴 앞에 검을 들고 인간형 이합생명체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그녀는 기도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소리없는 작별인사나 경건한 맹세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연결고리가 감지된 듯 비앙카의 허리 추적장치에서 짧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고, 어떤 파편 같은 것이 랜턴 한복판에서 깜박였다.


지휘관

이건?


비앙카

그녀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추적장치에 흡수되었습니다.


비앙카

아무래도...뭔가 중요한 게 있을 것 같아서 공중정원으로 돌아가면 임무보고서와 함께 제출하려고 합니다.


비앙카

다음 해석은 과학이사회에 맡기겠습니다.



공중정원, 과학이사회



비앙카

기체 조정을 완료하였고, 각종 수치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비앙카는 훈련실을 빠져나와 공중정원으로 돌아온 뒤 진리 기체로 복귀했다.


지휘관

이 기체에 의한 의식의 바다 불안정성 문제는 이제 없는 겁니까?



아시모프

문제없어.


아시모프

조정과 업그레이드를 거쳐 진리 기체는 이미 파손된 영도 기체를 대체하기에 충분해졌어.


아시모프

심흔 기체...그것의 기능은 이미 전투에서 충분히 체현되었고, 기체 자체에 남아있는 퍼니싱 정보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교체를 한 거야. 무리하게 사용하면 의식의 바다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아시모프

철저한 조정을 거쳐야 나중에도 사용할 수 있어.


아시모프

비앙카가 가져온 추적장치에 대해서는...


아시모프가 광학 스크린을 툭 치자 퍼니싱 이중합체와 유사한 코어 파편이 화면 중앙에 나타났다.


지휘관

(1)치코와 관련이 있습니까?

(2)승격자와 관련이 있습니까?


아시모프

아니, 이 파편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운반체로 보여.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정보지.


아시모프

마치 퍼니싱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한 것 같기도 하고…. 그뿐 아니라 내가 간과했었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


아시모프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이 암호화 방식은 내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거야.


아시모프는 눈썹을 찡그리며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이마에 비볐다.


지휘관

정보라면...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시모프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정확한 출처를 밝혀내지 못했어. 우선 '메모'부분은 해석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시모프는 화면에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코드 몇 페이지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유일하게 풀린 것은 애매모호한 의미의 메모였다.



지휘관

'이것은...미래라는 이름의 선물이야.'


아시모프

그것의 진의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분명 알 수 없는 몇 마디 말뿐이지만, 머리 속에서 그 익숙한 회색 머리의 소녀가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더니, 돌아서서 깡충깡충 뛰어올라 눈부신 빛 속으로 사라졌다.


지휘관

(그러고보니...못 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아.)


아시모프

어쨌든 이 파편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많아 해석을 계속 이어가야 해.



하산

그뿐만 아니라 오메가 무기 생산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결국 이번 전투는 우리의 기존 재고를 거의 다 소모하게 만들었네.


지휘관

(1)...죄송합니다.

(2)...



하산

하지만 우리는 승리를 거두었네.


하산의 미간이 조금은 풀린 듯 보였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스크린에 나타난 사상자 비율을 가리키자 게슈탈트가 예측한 것보다 낮은 수치가 나타났다.


하산

자네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지.


하산

예상대로 이번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생환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승리는 없을 거라고 보네.


아시모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혹사의 기체를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비앙카

저는 원래 혹사가 추락한 위치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바닷물에서 대량의 이합생명체들이 출현하였고, 전부 처리한 이후 다시 찾아보려 했지만 그의 기체는 이미 사라져버렸습니다.


비앙카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이합생명체들은...


지휘관

너보다 앞서 혹사의 기체를 회수하기 위해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거였어.


비앙카

맞습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지휘관

(1)...대행자.

(2)...또 다른 승격자.



그런 방대한 양의 이합생명체들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승격자나 대행자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비로운 그림자는 다시 한 번 짙은 구름 뒤에 숨어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조작하고 수확하였다.


바다에 빠진 승격자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휘관

(1)...

(2)이번에도...



비앙카

유일하게 찾아낸 것은 혹사의 머리 장식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시모프

...


지휘관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요?


착각일지 몰라도 머리장식을 운운할 때 아시모프의 반응은 뭔가 특이해 보였다.


아시모프

그 머리장식은 얼마전에 검수와 소독을 거쳐서 이미 도착했어. 저쪽에 있는 케이스에...


아시모프는 뒤돌아 책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멈췄다.


아시모프 쪽을 바라보니 정말로 책상 위에 상자가 놓여 있었지만 뚜껑이 열려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아시모프

아까 여기에 있었는데...


지휘관

저희 말고 다른 사람이 온 적 있습니까?


아시모프

너희들을 제외하면 실험실에 계속 있는 로사 밖에 없어...잠깐만...


아시모프

로사?


아시모프는 목소리를 높이며 소녀의 이름을 외쳤지만, 여느 때처럼 겁에 질려 어느 구석 자료더미에서 빠져나와 대답을 하는 보라색의 어린 소녀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펼쳐진 빈 상자를 보며 아시모프는 얼마 전 로사와 노안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로사가 항상 뭔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노안

휴우...


노안은 실험실 문을 나서 텅 빈 복도에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하루 테스트에 따르는 부담은 작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호흡을 맞춰왔다.


그는 떠나기 전 코너의 벽 뒤편에서 보라색 땋은 머리가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노안

...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그가 발을 들어 사람이 북적거리는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과연 뒤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만요!


???

저...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노안

...로사?


로사

네, 방해해서 죄송해요..


노안

괜찮아. 무슨 일이야?


노안은 고개를 돌려 어린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로사

실은 저번에...


로사는 노안이 처음 과학이사회에 왔을 때 자신을 혹사로 여겼던 일을 떠올렸다.


노안

미안...그때 내가 잘못 알아봤어.


로사

아니에요...사실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여자는 우물쭈물하며 손바닥을 벌리고 아까 가슴에 꼭 감췄던 머리장식을 노안에게 보여줬다.


로사

이것에 대해서...알고 있는 게 있나요?


로사

이건...


노안은 몸서리쳤다. 소녀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친숙한 물건은 바로 혹사의 머리 장식품이었다.


그 의미는...



'그러니까...다음에 나를 만났을 때, 나에게 다시 자기소개 하는 거 잊지 마...그때의 나는 분명...너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ㅡㅡ혹사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노안은 침묵에 잠긴 로사를 바라봤고, 로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표정을 보고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로사

기밀 유지 협의때문에 저는 혹사라는 승격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외에 그에 대한 모든 자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요...아시모프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로사

혹사의 모습조차...그런데 그날 절 보고 그 이름을 외치셨죠...


노안이 정신을 차리자 그의 첫 반응은 바로 거절이었다.


노안

미안, 기밀 유지 협의가 있으면 내가 알려줄 방법이 없어.


로사

그치만...


소녀의 뺨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하며 간절히 애원했다.


로사

제발...부탁이에요...당신밖에 없어요...


노안

잠깐잠깐...울지 마!


노안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듯 로사는 오히려 더 크게 울었다.


로사

엉엉엉엉엉....


노안

으으...


노안은 고민 끝에 머리를 긁적이며 흐느끼는 여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노안

로사...내가 더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그는 들고 다니는 배낭에서 공책과 펜을 꺼내 그 위에 혹사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노안

...하지만 그의 모습을 그려줄 수 있어. 어때?


로사

...네, 고맙습니다...


소녀는 손을 들어 시야를 흐리게 하는 눈물을 닦고 눈을 뜨고 펜끝을 따라 창백한 종이에 혹사의 얼굴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노안

채색은 안 했지만...혹사의 머리카락과 눈 색깔은 너와 닮은 보라색이었어.


그는 그 그림을 노트에서 뜯어내어 로사에게 건네주었다.


노안

내가 물어봐도 될까...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로사

저희 집에도...훨씬 더 낡았지만 똑같은 머리 장식이 하나 있는데 그게 엄마의 물건인지 엄마가 가져온 '재료' 중 하나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어지러운 기억을 잠시나마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저으며 받은 초상화를 머리 장식과 함께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로사

그럼 이제...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가도 될까요? 남,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겨둘게요...


노안

물론이야.


로사

감사합니다. 제가 물어본 걸 남한테 말하지 말아주세요.


노안

그래, 그럼 너도 내가 비밀을 털어놓은 걸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안 돼.


노안은 손을 들어 입을 다물고 있는 손짓을 했고, 로사는 턱에 묻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로사

그럼 아무한테 얘기하지 않기로 약속한 거예요.


노안

응, 약속할게.


로사

이건 우리 사이의 비밀이에요.



생명의 별, 지휘관 병동


바네사는 병상에 조용히 앉아 손을 들어 왼쪽 눈에 보이는 끔찍한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는 파손된 소형 단말기를 들고 지휘관의 최고 기밀 권한으로 숨겨둔 이미지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몇 개의 사진만 있었고, 바네사는 최신 사진 파일에 손을 놓았다.


바네사

허...비밀이라...


그녀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번졌고, 입꼬리가 얼굴의 흉터에 닿아 어렴풋한 간지럼을 일으켰다.


ㅡㅡ공중정원으로 돌아가기 전



테시우

그럼 이만 가보지.


바네사

...잠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테시우

...?


바네사는 손에 든 기록 단말기를 들어올렸다.


바네사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이렇게 사진을 찍었으니까 우리도 마지막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자고.


멀리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 사방에 이합생명체의 위협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테시우

...사진?


테시우

마지막이니 마음대로 해.


과거의 지휘관이 왜 반역자의 사진을 남기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테시우는 바네사가 이런 변화를 겪은 이유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바네사

밤비나타, 테시우 옆으로 가.



밤비나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네사의 지시에 따라 테시우 옆에 서서 '사진 찍기' 포즈를 취했다.


테시우는 팔짱을 낀 채 덤덤하게 몸을 옆으로 돌렸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바네사는 단말기를 들고 앞에 있던 두 사람을 뷰파인더 안에 넣은 뒤 단말기에 담긴 화면을 보며 다시 담담한 미소를 지었지만 한참 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테시우가 의아해하며 쳐다봤고, 밤비나타는 당황한 듯 손을 번쩍 들다 이내 얌전히 포즈를 취했다.


바네사는 테시우의 의문에 찬 시선을 무시하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득한 해안가에서 시야의 끝에 분홍색 형체가 등장했다.


부상당한 구조체를 향해 달려가는 그녀를 바네사는 멀찌감찌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더라도 지금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장가 폐허에서 긴 머리를 자를 때나, 죽음에 쫓기는 구급차 안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할 때처럼, 그녀가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단호하고 진지했을 것이다.


그 구급차에 타고 있던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바네사가 실종된 테시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미 그녀에게서 죽거나 도망치는 '인형'들을 많이 봤지만, 누군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달라진 것들도 있다.


리브가 뷰파인더로 들어가는 순간, 바네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버튼을 눌렀고, 눈앞의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여전히 순종적인 밤비나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테시우, 여전히 얼굴을 내밀지 않는 바네사, 멀리서 바라본 리브... 영광스러웠던 화이트 스완 소대. 이런 식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 촬영을 마쳤다.


그 후, 그들은 각자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바네사

자, 끝났어.


테시우는 시선을 거두며 곧장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디뎠고 바네사와 스치는 순간 입을 열었다.



테시우

다음에 만날 때 우리는 적이다.


바네사

...허, 다시는 내 밑에서 도망친 자를 보고 싶지 않거든. 하물며 내게 버림받은 '인형'은 내 눈에선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지.


테시우

...


점점 무거워지는 자신의 몸을 일으켰고, 바네사는 테시우를 바라보지 않고 임시지휘센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바네사에게 다가온 밤비나타는 주인을 몸으로 받쳐준 뒤 테시우를 돌아봤다.


바네사

그럼, 우리가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지.



바네사

...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바네사는 화면을 닫고 단말기를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생명의 별 의사가 검사보고서를 들고 들어오자 과일바구니를 든 세리카가 뒤를 따랐다.


의사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회복이 잘 되었네요.


의사

다만 얼굴의 상처는 어느 정도 지나야 회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

당신의 왼쪽 눈에 관해서는...안타깝게도 상처가 너무 심각하고 제때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각 기능이 이미 완전히 상실되어 회복 가능성이 없습니다.


의사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처치였습니다.


의사

바이러스성 결막염을 피하기 위해 안구 적출 수술을 최대한 빨리 받은 뒤 의안으로 교체하는 것을 고려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리카는 바네사가 화를 낼 줄 알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사래를 쳤다.


바네사

상관없어.


바네사

흉터든 의안이든 그때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석의 버러지들을 구했다는 증거로 여기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귀밑머리를 감으며 까칠한 미소를 지었다.


바네사

그 수석이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석 달 동안 퍼질러 누워있던 무능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네.


세리카

그...지휘관도 마침 생명의 별에서 리브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는데 병문안을 오라고 할까요?


바네사는 냉소를 터뜨렸다.


바네사

그 수석이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과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면 그럭저럭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어.


바네사

하지만 그 녀석이 진정성을 잘 보여주길 바라. 적어도 내 방 입구에서 한 시간 동안 벌서 있다가 들어오라고 해.



세리카

...


세리카

그렇게 말했어요.


지휘관

(1)(...뭔 생각인지)

(2)(저 녀석...)


리브

지휘관님...


리브

043번 도시 철수 과정에서 바네사는 모두를 구해주었어요.


리브

만약 그녀와 밤비나타가 피난을 엄호하지 않았다면 보육구역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1]

지휘관

(1)다 알고 있어. ← 선택

(2)(한숨)


당시 구조를 맡은 구조체에 따르면 오랫동안 실종된 바네사는 해안가의 임시 지휘센터에 상처투성이로 나타나 생명의 별로 돌려보낸 뒤 감염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한다.


바네사는 자신의 부상과 수개월간의 실종 경력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나타나자마자 밤비나타를 데리고 포위에 빠진 병사들의 전술지휘를 도와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부대와 합류해 생명의 별로 송환된 뒤 감염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었다.


지휘관

너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곧 갈게.


[2]

지휘관

(1)다 알고 있어. 

(2)(한숨) ← 선택


043번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리브와 루시아가 자신에게도 이야기한 바 있다.


30분만 있다가 가자.


.


리브

네, 좋아요.


지휘관

리브도 갈 거야?


리브

저는...


리브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리브

지휘관님 먼저 가세요. 저는 나중에 따로 보러 갈게요.


리브

테시우가 도망갔다는데...그녀가 지금 저희가 같이 온 모습을 보면 걱정이 들어서...


지휘관

...알았어.


세리카

그럼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잠시 후에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치료를 마친 지 30분이나 흘렀다.


세리카를 따라 바네사가 있는 병실 앞에 도착했다.


지휘관

(1)(자신이 노크한다)

(2)(세리카가 노크한다)


바네사

누구세요?


방에서 들려오는 바네사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소적인 인상과 달리 쉬었고 쓸쓸하게 들렸다.


지휘관

(1)나야.

(2)나야, 【지휘관 이름】


바네사

너라고?!


방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이내 톤이 바뀌었다. 마치 방금 전 목소리의 고독감은 단지 자신의 환각인 것 같았다.


지휘관

(1)응, 찾아왔어.

(2)사과와 감사인사를 하러 왔어.


바네사

...


지휘관

(1)(손잡이를 잡다)

(2)들어가도 돼?


바네사

잠깐만! 버릇이 없잖아.


바네사

성의를 제대로 보일 거면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내 방 입구에서 벌로 서 있다가 들어오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바네사

성의껏 벌서긴 커녕 34분이나 늦었잖아.


바네사

늠름한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 이런 식으로 생명의 은인을 대하나?




[1]

지휘관

(1)(곧바로 문을 민다) ← 선택

(2)(기다리자.)


세리카

잠깐...


세리카는 자신의 동작을 멈추고 몸을 기울여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세리카

바네사는 심하게 다쳐서 왼쪽 눈을 잃은데다...얼굴이 망가졌어요.


세리카

분명 지금 괴로울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2]

지휘관

(1)(곧바로 문을 밀다) 

(2)(기다리자.) ← 선택


지휘관

심하게 다쳤다고 들었어요.


세리카

네...제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그녀는...얼굴이 망가졌어요.



그동안 바네사를 보았을 때마다 그녀는 섬세하고 아름다웠고, 그녀가 지상에서 싸우러 갈 때에도 그녀는 평소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도도했던 사람이…


지휘관

먼저 그녀를 진정시켜야겠어요.


지휘관

여기서 잠깐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30분이 흘렀다.


지휘관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강한 거절을 듣지 못했다.


바네사

...들어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손을 들어 문을 열었다.


우선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고 침대 끝에 앉아 있는 바네사가 보였다.



바네사

...


지휘관

...


바네사는 여전히 기억 속의 바네사지만 약간 달라보였다. 완벽에 가까운 화장과 섬세한 속눈썹, 그리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레이스 눈가리개로 왼쪽 눈을 가린 그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대에 가려진 아찔한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바네사

뭘 봐? 너도 자신의 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 그래?


익숙한 비꼬는 목소리였다.


[1]

지휘관

(1)매우...건강해 보이네. ← 선택

(2)왜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는지 어째 알 것 같다?


바네사

네가 온 덕분에 다시 안 좋아졌어.


[2]

지휘관

(1)매우...건강해 보이네. 

(2)왜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는지 어째 알 것 같다?  ← 선택 


바네사

어차피 너랑 관계없어.



바네사는 무자비하게 반박했다.


지휘관

...


바네사

자신을 지키지도 못하는 바보, 그 밑에 있는 명을 재촉하는 구조체, 나 덕분에 네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던 거야.


바네사

너는 지하실의 낡은 침대에 누워서 쭈뼛쭈뼛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보기 흉한지 알고 싶니? 얼마나 폐를 끼쳤는지 알기나 해?


뭔가 이상한 스위치가 켜진 듯 그녀의 조롱은 여느 때보다 공격적이었다.


지휘관

(전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바네사

아까도 막무가내로 들어올 생각 아니었어? 지금은 왜 말 한마디도 없을까?


바네사는 기분이 좋아진 듯 우아하게 손을 들어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들어 올렸다.


ㅡㅡ하지만 차마 하얀 도자기 컵을 들지 못했고 붕대를 감은 손이 곧장 물컵 옆에 튀었다.


와르르ㅡㅡ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든 손이 컵에 닿았고, 튀긴 물보라가 붕대를 적셨다.


지휘관

너...


바네사

...됐어, 다 식었어.


그녀가 재빨리 숨기려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연약함을 보았다.


일어나서 물잔을 들고 다시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그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지휘관

뜨거우니까 조심해.


바네사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안으며 여느 때처럼 거절하지 않았다.


바네사

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내 앞에서 기꺼이 굽실거리는 모습은 정말 신선하네. 뭔가 좀 낯선걸.


그녀는 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몰두하여 바라보다가 침묵에 잠겼다.


한참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만연한 정적을 깨뜨렸다.



시몬이 큰 짐을 들고 문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들어오자 쬐끄만 밤비나타가 뒤를 따랐다.


밤비나타

주인님, 밤비나타는 오는 길에 시몬 지휘관을 만났습니다. 주인님을 보러 왔다고 합니다.


시몬

바네사, 몸은 어떤가요ㅡㅡ아, 수석도 왔군요!


지휘관

시몬.


손을 들어 시몬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병상에 있는 바네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몬

어...당신ㅡㅡ


바네사

오늘 웬일로 한자리에 다 모였네.


시몬이 그의 말을 다 하기 전에 바네사는 말을 끊었다.


시몬은 바네사의 말에서 돋아나오는 날카로운 가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상 옆 작은 궤짝에 가방을 부드럽게 올려놓았다.


시몬

비타민을 좀 보충해야겠어요. 큰 부상을 회복하는 시기가 제일 힘들거든요. 제가 그때만 해도...


바네사

필요없...


밤비나타

밤비나타가 주인님 대신 시몬 지휘관님에게 감사인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옆에 묵묵히 서 있던 밤비나타가 갑자기 자진해서 다가와 시몬이 들고 있던 가방을 순순히 받았다.


밤비나타

의사 선생님도 주인님에게 이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네사

너희들...


옆에서 시몬은 가방 안을 뒤져 하나하나 바네사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영양 보충식, 요양 중 소일거리 책, 대피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대신 전달한 위문품, 기타 등등.


바네사는 여전히 무관심하고 때로는 냉소적이었지만 여전히 "마지못해" 시몬이 보낸 것을 밤비나타가 거두도록 내버려 두었다.


잠시 후, 방에 새로운 멤버가 하나 더 나타났다.



해리조

와, 시끌벅적하네. 다들 여기 있었구나.


바네사

너희들...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아?


해리조

하고 있잖아. 영웅 선배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해리조의 표정은 진지했고, 도리어 바네사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바네사

...마음대로 해.


그녀는 줄곧 손에 안고 있던 컵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셔 컵으로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


이후 모처럼 네 사람은 평화롭게 앉아 파오스에서의 약간의 과거 이야기를 나눴다. 졸업 후 학교 행사에도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던 여유로운 시간은 좀처럼 없었다.


다만 다음 동창 모임에서는 생명의 별 이외의 장소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의 별을 떠날 때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비앙카를 만났다.


지휘관

비앙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대답했다.


비앙카

지휘관님.


이어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던 몇몇 구조체가 자신의 앞으로 뛰어가며 비앙카의 이름을 불렀다.



정화부대 병사 일동

비앙카 대장!


우아하고 단호한 발걸음이 멈추고, 비앙카는 동료를 기다리듯 앞에 멈췄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마침 비앙카가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옆모습이 보였다.


인상 속 정화부대는 늘 엄숙하고 외로웠으며 그들은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 언젠가는 옛 동료에게 칼날을 겨눠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비앙카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이별을 수없이 겪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지금처럼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작지만 확고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조용히 무언가가 변해가고 있다.


언젠가는 모든 만남과 이별이 끝없이 이어지는 별빛으로 변해 고요한 불바다를 밝히고 희망의 귀로를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