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로 고정돼 있던 좌석에서 다시 약간의 요동감이 들려왔다.


수송기가 대기권을 돌파할 때의 굉음이 귀벌레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내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감소하고 있는 마하 수 외에도 레이더의 좌표 숫자도 광점 스팟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도가 분 단위로 계속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집행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백전노장까지는 아닐지언정, 지구 곳곳에 발자취를 남겨왔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착할 곳은 공중정원 최고참 장성조차 낯선 장소일 것이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지구를 위해 그은 선을 수송기가 넘었을 때, 그것은 인류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이 지역에 스스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남극 대륙.


인류가 발견한 마지막 대륙, 얼음과 눈으로 덮인 순백의 정토.


인류 문명의 정점을 상징하는 황금시대가 끝날 때까지 남극의 비밀은 탐구되지 않았다. 퍼니싱의 폭발 이후 세계 극점에 자리 잡은 이 대륙도 인류의 인식에서 가장 먼 곳으로 밀려났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남극을 직접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비앙카

지휘관님, 무슨 일 있습니까?


옆에 있던 금발 구조체는 자신의 이상함을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몸을 옆으로 돌려 자신의 상태를 물었다.


수송기 객실에 거울이 없어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정의 여부와 상관없이 평소보다 심경의 변화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비앙카와 함께 작전에 나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무에 따른 불안이나 조바심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 갈 곳에 대한 막연한 기대마저 갖고 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고개를 돌려 비앙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평소처럼 늠름한 표정이었지만 눈에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 묻어났다.


지휘관

괜찮아, 비앙카.


비앙카

생리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지금 수송기에 있는 동안 당신을 위해 약간의 응급처치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

아니, 임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지휘관

비앙카, 이번 임무의 개요를 다시 설명해줄 수 있겠어?


비앙카

물론입니다 지휘관님.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용 프로젝터 단말기의 홀로그램 화면을 꺼내기 시작했다.


비앙카

7일 전 공중정원 예술협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지상통신을 수신하였습니다.


비앙카

비슷한 시기, 협회 소속 고고학 원정대 중 남극에서 탐험하는 특수 임무를 수행중인 극지탐사대가 공중정원과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비앙카

통신이 두절된 주요 원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주파 교란으로 잠정 판단되었습니다.


비앙카

해당 통신에서 나온 정보를 종합한 결과, 의회는 그 메시지를 보낸 극지 탐사대가 도주하거나 실종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비앙카

공중정원은 남극에 정규 부대를 주둔시키지 않고 있으므로,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화부대에게 조사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비앙카

대략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지휘센터에서 극지탐사대의 구체적인 인원 명부와 프로파일도 제공했는데 읽어드릴까요, 지휘관님?


지휘관

괜찮아, 내가 직접 확인할게.


비앙카의 침착하고 차가우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를 들으니 어지러운 감정도 스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비앙카로부터 단말기를 넘겨받아 상세한 임무 정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화면에 뜬 리스트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름과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 임무를 부여받기 전에는 공중정원에 남극 대륙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는 이런 부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인류 문명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기 때문에 퍼니싱의 침식은 남극의 대부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남극 대륙 자체에 저장된 자원은 단조로운 모습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 석유와 광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매년 수확되는 크릴과 담수 또한 공중정원의 생물자원을 상당수 보충시켜준다.


인류가 지구에서 기후 요인에 관계없는 퍼니싱 반격 전선을 구축하는데 있어 남극 대륙은 아주 훌륭한 후보이다.


이 때문에 의회가 정화부대장인 비앙카를 보내 조사를 명령할 정도로 극지탐사대의 연락두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겐 여전히 한 가지 작은 의문점이 있다...



지휘관

그런데 왜 내가 이 임무에 참여하게 된 거야?



비앙카

일반적으로 정화부대가 출동할 경우 지휘관이 동행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비앙카

그러나 이번 극지탐사대가 '정화' 대상으로 판명되지 않아 실태조사를 1차 목적으로 하는 만큼 지휘관님의 현장 판단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앙카

또한 탐사대의 구조체는 대부분 작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작전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이 새로운 기체의 우수한 성능으로 지휘관님을 보호할 자신이 있습니다.


비앙카

게다가 지휘관님께서는 북극항로연합 사건에서 또한 극지 상황에서의 행동 경험을 많이 쌓으셨기 때문에 남들보다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비앙카는 말을 멈추다가 마침내 한 문장을 덧붙였다.



비앙카

ㅡㅡ그런 이유라면 지휘센터에서 저의 협조 요청을 승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휘관

...?


지휘관

(1)마치 이게 모두 진짜 이유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네.

(2)어째 지휘센터 얘기를 억지로 갖다붙이는 듯한 느낌이...


비앙카

...


자신의 반문에 비앙카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에 빠졌다.


비앙카

네...제가 지휘관님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머지 이유는 어쩌면...보다 더 개인적인 고려라고 할 수 있겠죠.


지휘관

개인적인 고려?


비앙카

...


몇 초 간격으로 미묘한 침묵이 반복되었다.


비앙카

…지휘관님께서 그것을 보류하는 것이 임무 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고려 사항을 최대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투는 임무 상황을 설명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비앙카의 말에 담긴 함축은 여전히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1]

지휘관

(1)괜찮아,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도 늦지 않아. ← 선택

(2)가능하다면 듣고 싶어.


호기심과의 치열한 결투 끝에 비앙카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결심했다.


본인이 지금 설명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강요해서는 안 된다.



[2]

지휘관

(1)괜찮아,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도 늦지 않아. 

(2)가능하다면 듣고 싶어. ← 선택


비앙카의 태도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자신은 결코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해야 할 임무가 남아 있기 때문에 비앙카의 생각을 알고 싶어 했다.


비앙카

음...


비앙카

말을 정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비앙카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눈을 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지금 정말 설명하기 어렵다면 나중에 얘기하자.


계속 추궁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고, 자신도 비앙카에게 충분한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결국 비앙카는 정체불명의 구조체가 아니라 자신과 여러 차례 험난한 상황을 경험했기에 조건 없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앙카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비앙카

적절한 시기를 찾도록 하겠습니다...지휘관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지휘관

그럼 일단 기대하고 있을게.


그녀의 개운한 미소를 본 후, 마음속으로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앙카

후훗, 아무래도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비앙카

이번 임무는 지휘관님의 조력이 있기에 반드시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을 것입니다ㅡㅡ


비앙카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좌석 건너편의 두꺼운 창문을 바라보았다.


밖은 어두운 하늘이었고, 수많은 눈송이가 마치 쓰나미에 휩쓸린 하얀 물보라를 방불케 하며 강화유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폭풍의 충격이 한바탕 무거운 울림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전에 때때로 느꼈던 요동감도 바로 이 악천후 때문이다.


비앙카

지면에 접근하자마자 바로 사나운 눈보라를 마주했군요...


자신이 파오스에서 군사지리를 공부할 때 쓰던 교재에는 남극의 변덕스러운 험악한 기후가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 자신은 왜 퍼니싱 농도가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의 장소를 소개하기 위해 공간을 할애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너무 치기어린 생각이었다.


지휘관

이제 와서 우리가 임시 퇴각할 수 없지 않아?


비앙카

맞습니다.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정화부대의 임무는 결코 철회될 수 없습니다.


비앙카

그러나 이런 날씨에 수송기가 예정대로 착륙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휘관

이 부근에 불시착할 수밖에 없겠네.


지휘관

나머지 여정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어.


수송기에 장착된 극지 탐사 차량을 가리키자 비앙카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앙카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가장 가까운 과학 연구소로 우선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수송기는 약간 흔들리며 평탄한 빙원에 천천히 착륙했다.


안전고리가 자동으로 열렸고, 일어나서 오래 앉아 있어 뻣뻣해진 몸을 움직였다.


비앙카는 기체의 모든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허리에 장착된 장검을 움켜쥐고 자신의 곁에 섰다.


비앙카

땅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이 이렇게 악화될 줄은 몰랐습니다….


비앙카

만약 지휘관님께서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신다면, 저는 지금 당신을 수송기와 함께 공중정원으로 돌아가도록 신청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

너는 내가 너의 보조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어?


비앙카

아닙니다, 다만...


지휘관

나는 너가 스스로 '선택'한 지휘관이잖아.


자신의 말을 듣자 비앙카는 멍해졌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신을 쳐다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앙카

물론입니다, 지휘관님. 방금 실례를 범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비앙카

이 정도의 방해는 당신과 제가 겪은 것에 비하면 길가의 걸림돌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앙카

출발합시다, 지휘관님.



그녀의 선언과 함께 해치가 열렸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작은 얼음 찌꺼기와 함께 밀려오면서 형체가 보이지 않는 칼날이 얼굴을 헤엄치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자신은 고통도,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가느다랗고 늠름한 그림자를 따라 얼음바람에 휘날리는 금발머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구의 종착지 중 하나, 영원한 동토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또 데이트하러 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