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구조체

끄어억ㅡㅡ



베라

그러니까 네 말은ㅡㅡ인형이 딥링크를 끊고 너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단 말이지?


붉은 머리의 구조체는 나타난 적을 끈질기게 갈라놓는 뜨거운 칼날과도 같았다. 전투의 틈바구니에서 바네사와 밤비나타가 흩어지는 과정을 물어볼 여유까지 생겼다.



바네사

밤비나타의 의식에 간섭이 들어왔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명령을 받지 않고 행동할 리 없어. 그녀를 빨리 찾아야 해.


베라

난 지금 적을 청소중인데 네가 가서 보면 안 될까?


바네사는 베라를 노려보며 통제실에 복원된 건물 지도를 펼쳐놓고 진행 경로를 계산했다.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전체 층 아래에는 구역 용도도, 어떻게 들어가는지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흐릿한 회색 구역이 보였다.


이 건물이 원래 정상적인 복지시설로 운영되었다고 가정하면 쿠로노가 이곳의 통제권을 넘겨받아 실험이 추진될 수 있도록 실험 관련 시설을 증설해야 한다.


오는 도중에는 관련 실험 장비가 발견되지 않아 이 회색 영역에 집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밤비나타가 어떻게 간섭을 받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녀의 데이터가 이 건물의 과거와 연관돼 있어 밤비나타도 그곳으로 내몰린 것으로 보인다.


수색과 더불어 회색 구역을 어떻게 가는지 조사하는 것도 밤비나타를 찾는 것과 회수 임무를 완수하는 데 중요한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베라

CCTV는? 확인해 봤어?


바네사

물론. 이미 상대방이 처리해버렸어.


베라

이렇게 번거로운 때에 너희들은 통신 이외에 연락 수단은 없는 거야? 암호, 목소리, 혹은 남길 수 있는 마크 같은 거는?


바네사

역시 케르베로스야, 너희는 정말로 원시적인 방식을 선호하는구나.


베라

정말 미안하게 됐네. 귀한 집 아가씨, 첨단 기술이라는 것은 때로는 원시적인 것보다 믿을 수 없을 때가 많은 법이거든. 예컨대...지금처럼?


베라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는데 말야, 인형이 나한테 말하길 만약 그녀에게 무슨 사고가 생기면 내가 그녀를 구할 거란 보장은 못한다고 했었지.


바네사

감히 명령을 거역하려는 거야? 네가 징계를 받아들인다면 너희 소대에 남은 두 녀석들을 돌보는 것 정도는 고려해 보지.


베라

언제 널 데리고 철수한대? 너희들의 임무가 날 감시하는 것인 이상, 임무 목표를 구명보트로 여기는 거야말로 순진한 발상 아닐까?


바네사

감시라고?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베라는 한 발로 앞에 있던 적을 걷어차 버네사의 뒤로 재빨리 몸을 돌려 적의 습격을 막아냈다.


특이 구조체

ㅡㅡ


베라

그물에 새어나간 물고기가 여기까지 오다니, 너무 소홀했잖아.


베라

방금 한 말은 잊어버려. 내가 너에 대해 조금 오해하고 있던 것 같아.


베라

잡담은 여기까지야. 이제 열심히 해야겠어. 내 발목을 너무 잡지 않길 바랄게.



전투 개시




베라

응? 이 정도 수준의 "환영인사"를 해주다니...


베라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건가?



바네사

도망가는 구조체가 있다, 저걸 따라가!


베라

알고 있어ㅡㅡ



베라

...내분인가?



바네사

쉿! 일단 저 녀석들을 놀라게 하지 마.


바네사

그 도망친 구조체가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베라

탈영해서 그런가?


베라

생존 욕구가 이렇게 강하다면 어느 정도는 제정신이 남아있겠지.


바네사

무슨 의미지?



베라

만약 저 녀석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인형이 어디있는지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어.


바네사

너의 작전계획은 정말이지 나를...


베라

가볼게, 당분간 저 녀석을 죽게 둘 순 없어.


바네사

야! 도대체 누가 지휘관인지 똑바로 명심하라고!




베라

좋아. 간단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면 곤란하지 않게 해줄게.


베라

남백색의 인형은 어디에 있지?


나쁜 아이

...낄낄...그건...


나쁜 아이

...단체...놀이...시간...



베라

거기 서!


바네사

잠깐, 두 군데로 나눠서 가자.


바네사

네가 그 녀석을 따라가고 나는 다시 통제실에 가서 이 구조체들의 동선에 남아 있는 단서가 있는지 확인하지.


베라

만약 네가 만일의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자신이 있다면 딱히 신경 안 쓸게.


바네사

하, 너 자신이나 걱정 해.


베라

감당이 안 된다면 구조요청을 외쳐도 괜찮아. 그런 편이 꽤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베라

꼬마야, 마지막 기회를 줄게.



게임 규칙

①파란 벌레 바로 앞의 왼쪽 상단 격자에 있는 벌레를 밟으면 Boom

②빨간 벌레 바로 앞의 오른쪽 상단 격자에 있는 벌레를 밟으면 Boom

③검은 벌레 바로 뒤 두 개의 격자에 있는 벌레를 밟으면 Boom

착한 아이가 감독을 맡아요. 세 번 실패한 나쁜 아이는 오늘 밤 엄마에게 벌을 받을 거예요!



베라

게임 규칙? 그건 내가 묻는 질문과는 상관이 없어.


베라

불행히도 너에겐 다른 기회가 없겠네.



베라

용서를 비는 거야? 아니면...?



베라

안내하는 거야? 따라가야겠군.



베라

아까 그 설명에서 나온 게임인가? 저 구조체들에게 이런 행위가 프로그래밍된 건가?


(실패)



베라

발자국 소리가 나...역시 시간 끌기 용인가.


베라

귀찮아. 마음을 바꿨어. 이제 나의 게임을 즐길 차례네. 칼로 찍히는 쪽이 지는 거야ㅡㅡ




베라

너도 이미 자신의 결말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보네.



베라

뭐 좀 찾았어?


바네사

거의 모든 카메라가 작동을 멈췄어.


바네사

불과 15분 전에 그물에서 놓친 물고기가 있었지. 너의 단말기에 영상을 동기화하는 중이야.


베라

동기화가 완료되었어.



CCTV 화면 재생 중




CCTV 화면 재생 종료




바네사

이 구조체들이 자취를 완전히 감추기 이전에 한 방향으로 모여들었어.


베라

그래, 거실 끝자락이야.



베라

바로 여기, 그들이 사라진 곳이지.


바네사

카펫 아래에 비밀 문이 있을 거야.


베라

내가 할게.




바네사

만약 방금 너의 칼이 좀 더 오른쪽으로 돌았다면, 넌 군사 법정에 가게 됐을 거야.


베라

이변이 없는 한 그런 뜻밖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베라

가자.


바네사

잠깐만, 내려가기 전에 아직 수색하지 않은 몇 개의 방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바네사

밤비나타가 지금까지의 추측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이 없어.


바네사

CCTV에서 본대로 그 구조체들이 아래에 모여 고전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바네사

만약 밤비나타가 아래에 없다면, 우리는 전력 하나를 상실하게 되고, 동시에 그녀를 찾아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돼.


베라

그럼 빨리 확인하고 돌아오는걸로 하지.



전투 종료




베라

늦기 전에 왼쪽 방부터 확인하자.


바네사

...가자.


바네사는 방 한 귀퉁이에서 시선을 거두었고, 베라가 힐끗 쳐다보았을 때, 바네사는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낡은 토슈즈에 여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 이야기를 꺼려했고, 베라는 바네사의 감정을 풀어주는 데 힘을 쏟지 않기 위해 아예 못 본 척했다.


바네사

...



바네사

네가 오늘 아빠 실험을 도와준다고 하니까, 내가 잠시 네가 놓친 내용을 너에게 보여줄게...미리 얘기할게, 춤 별로 못춰도 웃지 마!


밤비나타

네! 바네사 언니, 고마워요.


밤비나타는 말 잘 듣는 학생마냥 종이펜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네사

네가 다음에 우스꽝스럽게 행동해서 네가 난처해질까봐 그러는 것뿐이야.


밤비나타가 중간에 이야기에 끼어들 틈도 없이 바네사는 재빨리 단말기를 클릭해 오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동기화시킨 연습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선율을 따라 발끝을 웅크리고, 팔의 움직임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창틀을 흔들었고, 햇빛은 바네사의 몸에 따뜻하고 부드럽게 적셨다.


밤비나타의 의식의 바다에는 까닭없이 유리 새장에 갇힌 백로 한 마리가 나타났고, 뚫을 수 없는 난국에 허덕여도 그녀의 고귀한 머리와 날개를 거두지 못했다.


회전, 다리접기, 인사. 이 침실에 녹아들지 않는 아름다움은 바네사가 음악을 끄면서 멈췄다.


바네사

아마 이랬을 거야. 첫 수업이라서 너무 복잡한 내용은 가르쳐주지 않았어. 다 외웠지?


바네사가 다가와 밤비나타의 메모를 확인했지만 종이에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바네사

밤비나타! 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밤비나타

바네사 언니가 방금 전 춤을 추던 모습이 밤비나타의 의식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바네사

어서 적어. 너가 언제 잊을지 모르니까 공책에다 쓰라고 한 거잖아.


바네사

난 먼저 옷 갈아입을 테니까, 넌 동작 요령을 빨리 정리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침실로 돌아오자 밤비나타는 막 춤을 추던 자신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햇빛이 비치는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과 어린아이의 뺨과의 조합은 바네사로 하여금 약간 미소짓게 만들었다.


밤비나타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보니, 그녀의 품에 든 종이에는 넓고 밝은 방에서 혼자 춤을 추는 바네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 소녀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이 고요한 광경에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이 밤비나타는 머뭇거리며 바네사 옆에 있는 더 작은 인물을 스케치했다.


그 다음 펜의 움직임이 멈추자, 몇 개의 타원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비어있는 인간 모습의 몸에 의미 없는 검은 점이 더 많이 생겨났다.



바네사

동작을 정리하라고 했는데 뭘 그린 거야!


바네사

이제 됐어, 요건 또 뭐야?


밤비나타

이 사람은...아직 생각을 못했어요.


밤비나타

바네사 언니 옆에 서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요.


자기 옆에 서 있는 사람? 밤비나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어설픈 모습에 그녀 혼자 망신을 당할 수가 없었다.


바네사

내가 졌어...너 나랑 같이 기본기 연습하자. 기초를 다지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 이리 와, 매트 좀 펴줘.


밤비나타는 고분고분 종이와 펜을 내려놓았다.


바네사는 몰랐었다. 그 비어있는 인간의 모습을 밤비나타는 이미 마음 속에 묵묵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