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각축의 이면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두 녀석이 있을 것이다.



카무이, 녹티

...


녹티와 카무이가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문제의 홀 안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 모두 약간 풀이 죽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반즈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지금 녹티를 호송하고 온 거야?


녹티

그럴 리가. 최종 기록은 내가 8cm 더 앞서서 들어왔다고.


카무이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걸 말해도 소용없어. 결국 나도 녹티도 기권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녹티

그 꼬맹이가 그레이 레이븐을 태우고 먼저 도착한 이상, 계속 따라가봤자 아무 의미도 없겠지. 하, 그냥 헛걸음만 쳤잖아.


반즈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헛걸음을 한 것을 축하해. 그 연하장은 여기 예술협회 본부 쪽에 없어.


녹티

알아. 임무는 완수해야 하니까 그냥 얼굴 한 번 비추러 온 거야.


반즈

...


녹티

...


반즈는 대문 옆에 있는 녹티를 바라보았고, 녹티도 맞은편의 반즈를 바라보았다. 좌우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즈

그러니까,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야?


녹티

누군가가 귀찮게 구는 바람에 계속 너희를 따라가게 되었거든.



프런트 데스크 예술협회원

...


예술협회원

엔지니어링 부대에서 오신 두 분이 서버를 조정해놨어...어, 저건 케르베로스 소대와 차징팔콘 소대원인가? 출입문의 보안을 어떻게 뚫은 거지?


프런트 데스크 예술협회원

그들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의 축하 카드 때문에 왔어.


예술협회원

아, 그렇다면 너가 그들에게 스캔 문제와 관련해서...


프런트 데스크 예술협회원은 벌떡 일어나 동료의 입을 꼭 다물게 했다.


그러나 그의 동작은 조금 느렸다.


녹티

스캔?



대형 기계 한 대가 마치 강 하류에 위치한 카이먼 악어처럼 입을 벌린 채 컨베이어 벨트가 종이 더미를 입구로 밀어넣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술협회원들은 옆에 서서 연하장을 위에서 계속 잡아냈지만, 그의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수의 그물을 빠져나온 물고기들이 기계에 의해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이라

미안, 사전에 점검한 후에 카드를 가져갔어야 했는데...


그것은 사람보다 더 큰 대형 스캐너로, 전문적으로 대량의 문서를 스캔하는 데 사용되며, 예술협회 고고학 소대가 자랑하는 최고의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다.


평화로웠던 황금시대에서 비롯된 문서의 상당 부분은 언제까지나 종이로 되어 있어서, 회수 임무를 맡은 고고학 소대는 언제나 문서처리에 시달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그리고 지금, 이미 시동이 걸려버린 그것은 연하장들을 넙죽 집어삼키고 있었고, 마치 만족을 모르는 식객처럼 한없이 종이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 영원히 멈추지 않는 기계, 마치 그 뒤에 어렴풋이 서 있는 설계자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종이 서류에 직면했을 때의 광란을 표출하는 듯했다.


지금은 추석 카드와 관련해 돌발 상황에 따른 일손이 부족하여 예술협회에서 백업 방안을 가동하고 있다.


이 매우 효율이 높은 스캐너 괴물을 통해 우선 축하 카드를 전자 버전으로 변환하여 발송을 기다렸다가, 시간이 비는 틈에 예술 협회는 다시 사람의 손으로 골라내 종이 축하 카드와 함께 수신자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루시아

이것은 아이라 양의 잘못이 아니라 제가 지휘관님이 시킨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거예요. 사문서를 책상 위에 그대로 두는 바람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지휘관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에게 직접 맡겼다면 이 사달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상자 안의 연하장을 하나하나 살펴본 후, 나나미는 파워를 조작해 상자를 다시 개어놓았다.


나나미

보고, 나나미는 이쪽을 모두 검사해봤지만 지휘관의 우편물은 발견하지 못했어.


리브

저도 검사를 해봤지만 지휘관님의 개인 우편물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루시아

내 쪽도 마찬가지야...



남은 것은 저장탱크에서 이미 스캔을 거친 문서와...


루시아,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볼래? 지휘관의 개인 우편물의 크기가 대략 어느 정도였는지 말야. 이 기계의 시스템에 접속해서 스캔한 기록을 우편물의 크기를 통해 필터링해서 살펴볼게.


루시아는 애써 그 우편물의 모습을 되새기며 머릿속에 그 윤곽을 그려보려 했다.


점점, 눈앞의 봉투와 그 모습이 겹쳐졌다.


루시아

저 모습이랑 비슷했어...


루시아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그물에 빠져나온 물고기 하나를 가리켰다.


모두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보니 회색 봉투가 컨베이어 벨트로 질주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손을 쓴 자는 예술협회원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잡아낸 연하장을 내려놓은 뒤, 손을 내밀어 가로막았다.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가 컨베이어 벨트를 내리쳤다.


두 번째로 반응한 것은 나나미였다. 그녀는 파워의 거대한 손을 아래로 조작했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양쪽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와있는 탓에 편지가 파워의 손 밑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가 목표를 정확히 포착해 오른손을 내밀어 우편물의 한 귀퉁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아이라

성공이야!


아직이야...


이미 끝부분에 다다른 탓에 우편물의 대부분은 기계에 의해 입속으로 삼켜지기 직전이었다.


리는 조심스럽게 그것과 줄다리기를 벌였는데, 그 입구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그는 구조체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우편물이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


리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우편물을 천천히 밖으로 당기고 있을 때, 기다란 봉투 하나가 입구에 끼여 심문을 받으러 왔다.


리의 행동 때문이었는지, 긴 봉투를 반쯤 빨아 들이다가 다시 토해내고, 다시 빨아 들어가다가 또 다시 토해냈다...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하는 빈도가 점점 빨라졌다. 마치...스캐너가 혀를 내민 것과 같았다.


스캐너

붸에에에에에에에에...


예술협회원

이 녀석 왠지 인격을 각성한 것처럼 보여서 한 방 먹이고 싶단 말이지...


나나미

기계는 그렇게 거칠게 다루면 안 돼.


그러나 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봉투를 조금씩 꺼냈다.


라디오가 갑자기 울릴 때까지는.


조종사

뒷좌석에 계신 승객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돌발상황으로 인해 본 항공편은 일정 고도 이상 상승할 예정입니다. 5초 뒤에 이동할 예정이오니,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예술협회원

갑자기 또 뭐야?!


예술협회원

빨리, 다들 난간 같은 걸 찾아 꽉 붙잡아.


그러나 리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스캐너와의 각축을 계속 이어나갔다.


조금만 더...


조종사

5...4...


거의 다 됐어...


조종사

3...2...


...


조종사

1!


처리했어.


쾅!


동체가 갑자기 기울어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곧이어 나나미는 재빨리 파워를 조종해 움직이며 기관실 후미로 미끄러지는 리를 잡아당기려 했다.


예술협회원

잠깐, 조심해! 그 버튼에 닿으면 안 돼!


나나미

어라?


파워의 손이 무언가를 누른 것 같다.


뚜 하는 소리가 울리며 기관실 끝에 있는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예술협회원

모두 조심해! 꽉 붙잡아!



브리이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예술협회는 또 무슨 떠들썩한 이상한 장비를 왜 운반하고 있는 거고?


조종사

모르겠습니다. 올라갈 때 뭔가 상황이 벌어진 모양입니다....어, 기관실 문이 왜 열렸지?



파워는 한 손으로 기내의 돌출부를, 다른 한 손으로 선실 밖으로 빨려 들어가는 리를 붙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킨 뒤 조종간을 벗어나 점차 선실 밖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박스들을 막아 선실 후미에 부딪히는 두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했다.


스캐너는 여전히 쉬지않고 작동하면서 리가 풀어놓은 봉투를 입에 삼키고, 스캔을 한 후 반대편 수납함 안으로 토해냈다.


마침 그 옆의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색색의 작은 종이조각이 쏟아져 나와 선실 밖으로 빨려 나갔다.


알록달록한 조각들은 우선 파워의 몸뚱이를 스친 뒤 리 쪽으로 얼굴을 향해 들이받았고, 결국 어김없이 해치 밖으로 날아가 밤하늘에 뿌려졌다.


스캐너

스캔 작업 완료!


알림음이 끝나자 스캐너는 저절로 작동을 멈췄다.







앙증맞은 찐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