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겨진 글자들은 봉투에 담겨진 채 먼 곳으로 향했다.



포뢰

후아~


포뢰는 불꽃놀이 화약이 담긴 상자를 끌어안고 제자리에 놓았다.


포뢰

15번째 상자, 응! 거의 다 옮겼어.


포뢰는 기대에 부풀어 폭죽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손뼉을 치며 다음 상자를 옮기려고 돌아섰다.


포뢰

???


포뢰

창위, 왜 혼자 여기서 게으름 피우고 있어? 축제가 곧 시작하려고 하는데 옮겨야 할 폭죽상자가 아직 남아있잖아.



창위

아, 미안. 방금 뭔가 생각을 하고 있었어.


창위

여기서 밤을 보내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옛날 생각이 좀 났거든.


창위는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포뢰가 놓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포뢰

...


포뢰

황금시대의 추억 말이야?


창위

응...대충 그래.


포뢰

그 시절의 축제도 지금처럼 아침부터 준비했어?


창위

공연의 경우 약 한 달 전부터 리허설을 했고, 그 사이에 각종 물자를 마련하기 시작했었지.


포뢰

준비하는데 그렇게나 오래 걸렸어? 다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창위

그때는 퍼니싱 바이러스가 없었으니까 한가한 사람들도 꽤 있었어.


창위

오히려 이런 곳에서 수요가 없었더라면 도리어 할 일 없어 노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을 거야.


창위의 시선은 옛 건물로 향했다.


분명 윤곽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 그대로지만, 지금 보니 너무나 낯설다.


창위

옛날에는 저 건물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시커멓게 보였었는데.


이제 구조체가 된 창위의 눈에는 밤이 더 이상 일몰 뒤의 장막이 아니라 그 아래에 감춰진 한산함이 고스란히 보인다.


포뢰

그래서 황금시대였다면 창위는 지금 너무 바빠서 쩔쩔맸겠네?


창위

물론이야. 그때쯤이면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구룡에 도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도 명성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였거든.


창위

더구나 관장님들은 명절은 떠들썩한 게 좋다고 하셨고.


포뢰

당연하지.


포뢰

옛날에는 나도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을 좋아했었어. 명절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었으니까.


창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표하고, 추억의 수레바퀴에서의 번화함은 점차 눈앞의 풍경과 어울리게 되었다…


창위

다만 그런 성황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창위

지금은 지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고 하늘을 향해 뛰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아.


창위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지만, 지금처럼 되어버리니까 뭔가 좀...아쉽네.


그러자 창위는 머리를 움켜쥐고 한숨을 쉬었다.


포뢰

그래, 또 다시 그런 거에 얽매일 필요 없어.


포뢰

폭죽 옮기는 것 좀 도와줘. 네가 말한 대로 명절을 보낼 수 없더라도 모두들 이번 축제를 기대하고 있을 거야.


포뢰는 몸을 돌려 떠나려다 창위 쪽의 이상을 느낀 듯 다시 돌아보았다.


포뢰

창위?



창위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허공에서 떨어지는 무슨 물건을 받아내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선명한 색채가 눈앞을 스치자 포뢰의 눈은 재빨리 그것을 포착했다.


포뢰

종잇조각?


손바닥을 펴니 앙증맞은 조각들이 포뢰의 손아귀에 고즈넉하게 누워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더 많은 색종이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포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데 창위가 말을 떼려는 순간, 개인 단말기에서 새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도착했다.


포뢰

자밀라 씨의 연하장인가?


창위

아니야...


창위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창위

공중정원에서 온 연하장이야.



어선이 기슭에 정박하자 다양한 해양생물을 담은 상자가 하나둘 부두로 옮겨졌다.



다이아나

이것으로 단기 어획량은 확실히 보장했어.


어민A

숲을 지키는 자의 도움 덕분에 당분간 굶을 일은 없을 것 같구만.


어민B

에휴, 예전에 그 수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고기가 영문도 모르게 눈에 띄게 줄어버렸어.


어민B

정말이지 존에게 펌프를 빌려서 물을 퍼내보고 싶은 심정인걸.


이들의 개인 단말기는 어민들의 잡담을 앞두고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안내음을 냈다.


다이아나

즐거운 추석 되세요...공중정원?



종자

명절 연휴 추가 물자를 전부 분배해놨습니다.



와타나베

수고했다. 편히 쉬도록.


종자

수령님은요?


와타나베

사람들이 쓴 연하장을 취합하러 갈 거다.


종자

예전처럼 몇 장만 골라 읽어주나요? 올해는 누가 재수 없는 놈이 될지 모르겠네요.


와타나베

우리가 늘 진행했던 행사인데, 왜, 자신의 운에 자신이 없나?


망각자 병사

수령님! 수령님!


와타나베

진정해, 무슨 일이야?


망각자 병사

공중정원에서 온 서신을 받았습니다!


와타나베

공중정원? 왜 갑자기 이런 시간에 연락이 왔지?


와타나베

서신 내용은?


망각자 병사

그자들...공중정원이 말하길ㅡㅡ


망각자 병사

즐거운 추석 되세요...



밝은 달이 비추고, 아무도 없는 폐허 속에서 소녀는 화판을 늘어놓고 종이를 펼쳐 놓았다.


붓이 닿는 곳마다 마치 기계식 센서가 수신한 화면을 재현하듯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그려낸다.


마무리를 앞두고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스푸너

하카마.


하카마

공개 내용 확인, 리스크 평가 중...


하카마

받으세요. 이것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푸너

즐거운 추석 되세요...공중정원? 하카마, 공중정원의 공개편지에 암호화된 메시지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까?


하카마

...


스푸너

하카마?


하카마

아...미안합니다. 메시지 내용에 익숙한 필체를 관측했고, 이 편지가 왜 이런 식으로 전달됐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카마

어쩌면, 일종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