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비슷한 고집, 비슷한 과묵함, 비슷한 말투.

 


리: ……대략 이렇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조사가 중단되어 저는 그 자료들을 회수할 수 없었습니다. 


아시모프: 폐허에 버려진 로봇에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다는 건 단순히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없어.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너를 유인한 것 같아. 단지 네가 그것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함과 동시에 증거를 인멸할 뿐이지. 


리: ……아무도 자연재해를 그렇게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시모프: 그게 정말 ‘자연재해’라면 말이지. 


리: ……!


아시모프: 이건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야. 그보다 기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지. 그런데 ‘자연재해’라고 하니까 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더 있다. 리브가 백야 기체를 사용하던 중 감염률이 임계값에 도달하면서 승격 네트워크가 시뮬레이션한 미래를 봤어. 관측한 정보를 재활 기간에 보고서로 정리해서 제출했는데, 그중 지구의 ‘영원한 겨울’이 언급되었지. 비앙카가 코퍼필드 박물관 지하에서 본 적조 환상의 ‘미래’에도 비슷한 풍경이었다고 하더군. 승격 네트워크나 퍼니싱의 시뮬레이션에서, 인류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영원한 겨울 속에서 멸망할 거야. 


리: 최근의 지진이 이 추론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아시모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모프: 빙하기 현상을 유발할 수 있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태양 운동의 변화를 뺀다면, 공중 정원의 추락……이라는 강렬한 지질 활동도 이 중 하나지. 


리: 영원한 겨울……. ……! (……또……이상한 의식 교란……이번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어.)


아시모프: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퍼니싱이 더 위협적이다. 그냥 내가 걱정이 많다고 생각해……내가 이미 며칠 전 의회에 대안연구팀 구성을 요청했는데 통과할지 모르겠군. 

 


손을 들어 테이블을 두드리자, 아시모프는 화면 속의 초기화 완료 알림을 살펴본다. 

 


아시모프: 시간이 거의 다 됐으니 기체 적응을 위한 사전 준비를 시작할게. 잠깐 기다려. 네가 온 힘을 다해 얻은 그 자료들을 가치 있게 하는 게 내 직책이니까. 


바빠진 아시모프의 뒷모습을 본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손으로 만진다. 그 작은 기계의 로컬 데이터 중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영상 기록이 있다. 그것이 기록한 내용은 그의 불안과 의혹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

 


알 수 없는 목소리: ……그러면, 결론은? 넌 알아야 해. 공중정원의 수송기에 필요한 것을 가져오려면 항상 수많은 노력이 필요해.


‘기계’: 전 당신에게 제가 아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냥……그쪽이 실망할까봐요. 


알 수 없는 목소리: 그러면 내가 결정하지. 어쨌든, 나는 네 능력과 감을 믿을게. 그 인어를 보내지 않았는데도……우연히도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니, 그녀에게 이런 가치가 있을 줄은 몰랐어. 너는 생각이 너무 치밀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말로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 고기의 냄새를 맡은 건 쿠로노뿐만이 아니니, 그게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기대해보자고. 

 


어둠 속에서 손끝이 유리잔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 ……


알 수 없는 목소리: 하하, 보니까 너는 실수로 정보를 유출한 게 아닌 것 같네. 니콜라 그 늙은이는 다루기 쉽지 않아. 언젠가 그가 너를 다 써먹은 개처럼 발길질할지도 몰라. 


‘기계’: 당신은 공중정원의 총사령관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설마 당신들 사이에도 흥미로운 과거가 있나요?

 


전화 너머에 있는 검은 그림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알 수 없는 목소리: 정직한 거래인 이상, 우리는 서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어?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면, 대행자? 그들은 정말 신비해. 우리 인력을 총동원해 추적해봐도 결과는 끊임없이 마그마 속에 돌을 던질 뿐이야. 


‘기계’: 그의 정보를 얻고 싶다고 하시면, 아마 전 당신을 실망시킬 거에요. 자칭 작가라고 하는 비밀스러운 대행자는,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진실’만을 공개하고, 당신이 그의 함정에 자발적으로 접근하도록 하죠.


알 수 없는 목소리: 아니, 아니, 우리가 원하는 건 그 남자의 정보가 아니야. 공중정원에 회수되지 않은 쇼메의 연구 자료 후반부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이지. 


‘기계’: “자비로운 자.”


알 수 없는 목소리: 틀림없어. 이거야말로 대어야. 어떤 미끼를 써야 낚을 수 있을까?


‘기계’: 이 대행자에 관한 자료는 공중정원의 정보 부서조차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아요. 


알 수 없는 목소리: 그래서 내가 너에게 맡기는 거야. 

 


...

 


이 대화에서는 양쪽의 목소리와 말투가 특수 처리되어 성문(聲紋)만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식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의 말투와 습관은 위장해도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었지만, 리에게는 간파당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머레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리: (머레이는 얼마나 많은 걸 숨긴 거지……)

 


머레이는 자신 몰래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리는 이것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니라, 입을 열어 물어본 적이 없을 뿐이다. 

 


...

 


멀어져 가는 거리, 반복되는 대화, 계속되는 전투, 모두가 족쇄를 메고 있었고, 형제간에 예전처럼 모여 마음껏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어진 지 오래다. 그는 더 이상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고, 자신을 향해 어리광 부리는 동생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평안하고 건강한 머레이를 보며 시종일관 자랑스러웠다. 


머레이의 나날이 바빠지는 걸 보며, 문득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동생이 이미 다 컸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다시는 같은 피가 흐르지 않지만, 그들은 언제나 형제이다. 비슷한 고집, 비슷한 과묵함, 비슷한 말투. ……비슷한 속임수. 

 


...

 


리: 형이 일을 잘해서 빨리 끝냈으니, 일찍 퇴근해서 머레이와 함께 있을 수 있어. 물론, 정비사의 업무는 형에게 있어서 가뿐하지. 

 


……

 


리: 괜찮아, 이제 모든 게 다 좋아졌어. 머레이도 곧 건강해질 수 있을 거야. 

 


...

 


머레이: 형, 나도 세계정부에 가서 일하고 싶어. 어……그냥 평범한 전술 연락관 업무인데, 어쨌든 난 계속 형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으니까……

 


……

 


머레이: 요즘에? 난 진짜 잘 지내고 있어. 응, 몸도 큰 이상이 없어. 형, 나 어쩌면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시험만 치르면 되는데……난 괜찮아. 형의 동생이니까. 

 


...

 


과학 이사회 회의실에 서 있는 리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초조함과 진실한 분노가 서렸다. 

 

리: 제 기억이 맞다면, 세계정부가 원격 링크 프로젝트를 중단한 이유는 사용자에게 매우 심각한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시모프: 맞아. 의식 링크는 지휘관과 구조체의 의식을 동기화하지만, 그 대가로 지휘관이 엄청난 정신적 부담을 안아야 하지. 심지어……반격 시대 초기에는 원격 접속에 따른 후유증으로 조기 전역한 지휘관이 여럿 있었으니까. 

 


니콜라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시모프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으나, 아시모프는 ‘나는 단순히 사실을 진술할 뿐이다’라는 눈빛으로 회답했다.

 


리: 그렇다면 왜 이 원격 접속 테스트 명단에 머레이의 이름이 있는 거죠?

 


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커진 걸 느꼈으며, 이는 규정에 맞지 않고, 구조체가 그런 태도로 장관을 향해 말해서는 안 된다. 

 


하산: 네 동생은 매우 우수하다. 우리는 이런 인재가 매우 필요하지. 게다가 그는 이미 적극적으로 몇 차례 자진한 적이 있다. 

 


하산은 리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너그럽게 입을 열었다. 

 


하산: 아마 그도 너한테 계속해서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재난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는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네. 


리: 그러나, 머레이의 유일한 법적 후견인으로서 저는 만약 그가 임무 중에 어떠한 사고가 생긴다면 알 권리가 있습니다……. 


니콜라: 무단으로 기밀문서를 열람한 것에 대해 우리가 너에게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면, 넌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았겠지. 넌 더 이상 쿠로노의 구조체가 아니며, 네가 그때 체결한 협약이 세계정부에 전달되었다는 걸 내가 알려줄 필요가 있나? 아니면, 소대에 불필요한 폐를 끼치고 싶은 건가?


리: ……머레이가 하고 싶은 일을……말리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니콜라: 머레이의 파일은 여전히 나에게 있으니, 나는 그의 모든 임무를 내 관할권에 둘 것이다. 


하산: 리, 우리는 네가 한 모든 일이 동생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걸 안다. 머레이의 건강 상태는 우리가 엄격하게 감시하겠다. 어쨌든 신형 원격 접속 실험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외에는 머레이밖에 없으니. 우리는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모든 불꽃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니콜라: 여기까지다. 우리는 마땅히 수행해야 할 직책이 있으니, 이제 네 소대로 돌아가라. 

 


...

 


아시모프: 좋아. 

 


설비가 작동하는 소리가 리의 생각을 끊자, 아시모프는 선체 앞으로 와서 완전히 새로운 그의 기체를 내려다 보았다. 

 


아시모프: 준비가 다 됐으니 오늘의 기체 적응을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