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햇살이 응접실의 창문을 통해 마루로 흩어졌다. 밤새 군사 신청과 관찰 기록 보고서를 작성한 탓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어젯 밤에 리가 아프다고 나오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의식의 바다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리, 괜찮아? <-선택


휴게실의 문이 활짝 열렸지만, 바로 보이는 것은-



으악!! <-선택



이쪽을 향해 내리치던 접이식 의자는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궤적을 바꿔 팔을 스쳤지만, 팔과 다리에 찰과상 자국이 남았다. 


날아오던 접이식 의자 뒤에서, 리는 빠르게 다가와 내 목에 무기를 겨누었다. 



'리' :출구는 어디지?



뭐라고?? <-선택



총알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이런 무기가 목에 걸리는 느낌은 매우 불편했다. 목에 힘을 주고 총신을 손으로 살짝 받치자, 그나마 살짝 느슨해졌다. 


큰 소리가 들리자 루시아와 리브도 뛰어들어왔고, 루시아는 칼자루를 꽉 쥐었다. 리는 싸늘하지만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 :어서 이곳의 상세한 위치와 가장 가까운 비상구를 말해, 그렇지 않으면... 


여긴 공중정원이야. <- 선택


'리' :...불가능해. 공중정원은 수송선에 탑승해야만 갈 수 있는데 난 그런 기억이 없어. 


'리' :..그리고 공중정원은 현재 미사용 상태야... 누가 너희를 보낸 거지? 


리브 :리 씨, 진정하세요...


'리' :지도를 내놔. 그렇다면 인질을 풀어주겠어. 



침묵하던 루시아는 틈을 타 무기를 든 리의 팔을 번개같이 제압하고, 그를 바닥에 짓눌렀다. 



루시아 :지휘관님, 괜찮으세요?


큰 문제는 없어... <-선택



닭이 울고 개가 일어날 시간인 새벽 6시에, 의자에 맞았다...


리브는 책걸상을 임시로 정리해두고 여분의 약품을 꺼냈다.



리브 :피가 나요... 다행히도 의자가 녹슬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라면 면역 글로불린 주사를 맞아야 했을 거에요. 


'리' :.....



루시아에게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한 리는 눈을 감고 '어떻게 되든 마음대로 해'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널 어떻게 안 해... <-선택


'리' :그럼 왜 나를 감시 카메라로 감시 중인 거지?

...됐어. 임무는 실패했으니...



리는 의연하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황금 시대 영화에서 죽을지언정 적에게 굴복하지 않는 용감한 병사 같았다. 



리브 :리 씨는... 새로운 의식 파편이 몸을 차지한 걸까요? 


그런 것 같네... <-선택



의식 소란 증세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경고를 듣긴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바닥의 부품 파편을 보자, 리가 감시카메라로 착각한 저공비행 드론이 아직도 붉은 빛을 반짝거리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는 드론 위의 서류봉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제 저녁. 


보육 구역 임무 중지 이유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자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일어났는데, 문 옆에 낯익은 그림자가 있었다. 



리 :지휘관님...



여린 어조에서 벗어난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믿을만한 리의 목소리였다. 



의식이 회복된 거야? <-선택


:네. 하지만 잠시입니다. 의식의 파편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어요. 다른 의식 파편이 언제든지 이 기체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약간 아쉬워 보이는 겁니까? 



아시모프가 회복하려면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는데... <-선택


:비상 간호실을 신청해서 일주일 정도 머물 생각입니다. 


:이미 크롬과 연락해 두었습니다. 중간에 긴급한 임무가 있으면 반즈나 카무이를 보내 그레이 레이븐을 지원해달라고 말입니다. 


플랜 B는? <-선택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제 파일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당신이나 그레이 레이븐에 대해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의식의 파편이 나타났을 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만약,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다친다면... 



심야의 휴게실, 중앙 제어 시스템은 방의 조명을 옅은 노란빛으로 조정했고, 그 옅은 그림자가 구조체의 푸른색 눈동자에 비추었다. 리의 입꼬리는 걱정스러움으로 구겨져 있었다. 


요즘은 휴식기라, 총출동해야 하는 복잡한 임무도 없었고, 리는 혼자 있을 수 없는 상태인데다... 응급간호실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기체는 이미 적대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만약 그 안에 리를 혼자 두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계속해서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레이 레이븐이 곁에 있으면 아무도 리를 데려갈 수 없을 테니까.



비상 간호실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냐. <-선택


:저도 제 몸 하나쯤은 지킬 수 있어요.



의심하는 눈빛을 보내자 리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결국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꽉 찬 커피잔을 내밀었다.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렇다면, 대안 B입니다. 우선 '그' 가 정비실이나 무기고의 예비 무기를 가져가지 않도록, 잠시 제 모든 방의 접근을 봉쇄해두겠습니다. 개인 휴식실을 제외하고요.


:또한, 상황을 설명할 영상 기록과 제 이력 파일을 수필으로 정리한 서류를 남기겠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기록을 '그' 에게 보여주세요. 


:만약 그 기록을 믿지 않는다면... 루시아와 리브가 '그'를 제압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상황을 통제해 주십시오. 



그는 다시 한 번 입꼬리를 구겼는데, 이러한 방안에 대해 매우 걱정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선택


:...


:..당신들을 못 믿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저 자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필요할 경우... 비앙카에게 일을 맡겨달라고 정화 부대에 설명해두겠습니다. 


:밤이 늦었네요. 지휘관님, 남은 일을 마치고 쉬러 가시죠. 

최대한... 남은 파편을 빨리 정리하겠습니다. 



리는 휴게실의 문을 닫았다. 




서류 봉투를 들어 올리니 안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졸업 증서, 쿠로노 구조체 개조 동의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로의 파견 서류. 모든 서류에는 손으로 쓴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서류 봉투에는 소형 데이터 기록 장치도 있었는데, 단말기가 그것을 읽어내자 그 안에 있던 홀로그램이 재생되었다. 


낯설지만 낯익은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자, 리는 루시아에게서 벗어나려고 조용히 힘겨루기하던 것을 멈추고, 개의치 않는 듯 홀로그램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는 당신이 어떤 단계의 의식이지 모르지만, 어느 단계든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name]은 당신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리' :... ...


:서류봉투의 모든 파일들이 제 말을 증명해줄 것입니다. 


:모든 행동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세요. 당신의 유일한 목표는 지휘관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임무든 일상에서든 지휘관이 다치지 않게 하세요. 


'리' :... 


'리' :요즘 유인 기술은 이렇게 발달됐나?



입으로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리는 어느새 저항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곁눈질으로 이쪽을 훑어보다가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졸업 증서, 쿠로노 구조체 개조 동의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로의 파견 서류... 그 파일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리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네 필적인 거, 알아볼 수 있지? <- 선택



'리' :.....



훌륭한 킬러는 필적을 능숙하게 구별할 수 있다. 


비록 몇몇 문서는 조금 빛이 바랬고, 어떤 필체는 조금 더 날카로운 편이었지만 위조의 흔적은 없었다. 심지어 몇몇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것이었다.


루시아가 천천히 힘을 풀었지만, 그는 발버둥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때에서 왔어? <-선택


'리' :...당신에게는 알려줄 수 있지만, 당신 한 사람한테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루시아 :..지휘관님?



루시아가 걱정스러운 듯이 이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한테 맡겨. <-선택


루시아 :...네. 



리브와 루시아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라는 신호를 보내고, 응접실 문을 살짝 닫았다. 




'리' :당신은...뭔가 익숙합니다. 


응접실에는 두 사람만 남아서, 조금 분위기가 풀린 것 같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선택


아니면 네가 던진 의자가 빗나갔을 리가 없잖아?

<-선택


'리' :그건 실수일 뿐이에요. 



리는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리' :저는 암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목표지에 잠입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있었죠. 


'리 ':타겟인 사람이 제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결국 잡혔습니다. 


'리' :그게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의... 마지막 기억입니다.



암살... 쿠로노의 킬러였을 때의 리인가? 


서류더미 안에 사진 한 장이 찍혀 있었다. 리가 감시 카메라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진이다. 


사진 속의 그는 지금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그늘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임무 목표를 겨누는 옆얼굴에는, 지금의 질서정연함이 배어 있었다. 


이 시간대의 리는 아마 더 어릴 것이다. 문서 서명 시기에 따르면 구조체로 개조된 시기도 18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는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한 장 한 장 뒤적거렸다. 마치 이 서류들에서 그 이후의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것 같았다. 



'리' :이건... 구조체 개조 동의서네요. 


'리' :제가 어떻게 그런 것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거죠?



동의서 뒤의 내용을 펼쳐보는 리의 눈동자에는, 감개무량한 것인지 혹은 다른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 감돌았다.  



'리' :...모리는요? 그 아이는 지금 괜찮나요?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는 모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케르베로스 소대에 대한 루머나, 자신의 단말기로 온 알림을 보면... 몸이든 정신이든 모리는 괜찮은 듯 했으니, 모리는 잘 지내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리'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언뜻 보니 리는 지금까지의 정보를 다 소화하지 못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 매우 피곤해 보였다. 



'리' :저기가 제 휴게실입니까? ...저 방에서 눈을 떴어요. 


'리' :...돌아가서 쉬고 싶습니다.



그는 허락을 받고서 서류들을 가지고 개인실로 돌아가 문을 닫았는데, 문을 닫는 습관마저 지금의 리와 똑같이 문틈을 손가락으로 살짝 막아 문 닫는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홀로그램 속의 리의 영상은 이미 한 번 반복되었고, 두 번째 재방송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온하고도 진지해 보였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지휘관, [nickname]은 당신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