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별바다처럼 펼쳐진 풍경 속에서 그 유일한 답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리의 의식은 끝없는 별의 길을 헤쳐 나간다.

 



 

?: 탑 전체가 하나의 시공간적 연속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여기서 너는 네 것이 아닌 세상의 ‘가능성’에 접근할 수 있어. 원래는 그것들에 접촉할 수 없어. 하지만, 퍼니싱의 특성에 영향을 받아 시공간 연속체에서 연결됐어. 과거와 미래 모두 ‘탑’ 안에서 너의 인지에 따라 어떠한 실체로 존재할 거다. 다시 말해 탑의 ‘과거’에 대한 너의 간섭이 탑의 구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그러나 너는 시공간 틈에 닿아 자신이 처한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떨어져, 존재해서는 안 될 환영을 만날 수도 있어. 너는 제시간에 빠져나와 이런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진정한 등반길을 찾아야 한다. 

 


시뮬레이션으로 답을 얻어내니, 사방의 그림들은 줄줄이 뒤로 물러나 사라지기 시작하며, 탑 안의 구조들은 마치 겹쳐진 변환의 블록처럼 무너지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한다. 까마득히 부서지던 그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 진실되고 또렷해진다. 

 


?: 열쇠는 때때로 사소한 곳에 숨겨져 있지. 

 


과거로 보낸 희망은 수없이 떠나가고, 페이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

 


감염체: ――!!

 


허공을 뚫은 총알은 마지막 감염체의 핵심을 정확히 명중시킨다. 커다란 쇳덩어리가 두 번 흔들린 후 쿵 하고 쓰러져 사방이 다시 고요해진다. 

 



리: 여기는 리, C-20 구역의 감염체 소탕을 완료하였으며, 복귀를 준비한다.

 


루시아: 알겠다. D 구역 소탕도가 이미 80%에 이르렀어. 완성되면 임시 지휘부에서 합류하자. 



리브: B 구역은 감염체 반응이 없습니다. 격리 장치는 이미 설치되었어요! 다음 장소로 이동 중입니다!


리: 알겠어. 합류를 준비하지. 

 


주변에 있던 감염체 신호가 사라졌고, 리는 교신을 마치고 총을 허리에 수납한 채 얼굴을 찡그리며 다리 쪽 상처를 바라본다. 

 


리: 방심했군……

 


감염체가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퍼니싱 형질 전환 프로브를 투척할 줄은 예상하지 못해, 그것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감염되었다. 다행히 제때 대처해 약간의 부상이 남긴 했지만 감염도는 안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 윽……!


 

역원 장치에서 비정상적인 통증이 전해져온다. 의식의 바다에는 순간적인 과부하가 있었으나, 환상처럼 빠르게 지나가 곧 정상치를 회복한다. 바로 그때, 문득 자신의 의식 속에 새로운 데이터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 이건?

 


의미 없는 난잡한 코드처럼 보이지만, 리는 이유 없는 익숙함을 느낀다. 그는 한때 머레이와의 통신으로만 사용되었던 암호가 아닌가 하는 한 가지 추측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리: 설마……풀렸다! 이건, 한 구역의 좌표인가?

 


이 암호는 그와 머레이를 제외한 제 3자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머레이가 보낸 메시지로는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의식 속에 허공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이상한 의혹이 리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이런 건, 마치 신비한 안내와도 같은 느낌이다. 이로 하여금 자신도 마땅히 가서 보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안는다. 

 


리: 지도에 따르면……이 구역은 여기서 2km도 안 되는 곳에 있군. 

 


메시지가 주는 정보는 너무 우연적이다. 마치 자신이 이 구역에 와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걸 아는 것 같다. 

 


리: 아무튼, 일단 가봐야겠어. 아무래도……노선을 좀 바꿔야겠군. 

 


...


 

전투 시작

 




리: 목표 방향으로 가는 지름길이 막혔어…… 돌아가서 지도를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군. 일단 올라가자. 칫, 역시 감염체가 있어. 속전속결이다. 


 

지하철역을 떠나세요.

 



리: 이 구역은…………좌표점 대상 재배치. 

 



좌표 배치중...

좌표 확정


 

리: 찾았다. ……전방에 대량의 감염체 반응 감지. 이건……구조 신호? 이 지역에 어떻게 아군 신호가 있지? 

 


목표 지점으로 가서 지원하세요. 

 



 

구조체: 이 코드는……그레이 레이븐 소대?! 여기는……합동 작전 소대입니다. 지원이 필요합니다!


리: 당신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이곳은 연합작전의 임무 구역이 아닐 텐데. 


구조체: 제 동료의 위치 추적 시스템이 감염체 공격에 교란되어 대열을 이탈했습니다. 저는 그를 찾으러 왔어요!


구조체: 제 전투 모듈이 형질 전환 프로브에 영향을 받아서……재시동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휴……


리: ……그는 감염체에 포위됐군. 운반 도구의 통제는 나에게 맡겨!


구조체: ……부탁드리겠습니다!

 

 

리: 감염체는 내가 처리하지, 네가 가서 구해!


구조체: 알겠습니다!

 


구조체: 대량의 감염체가 이쪽으로 접근합니다!


리: 부상자를 데리고 먼저 여기를 떠나! 내가 엄호하지. 


구조체: 전투 모듈 재부팅 완료, 제가 도와드릴게요!

 


 

감염체를 처치하세요.

 



리: 전방에 장애물을 넘어야 하니, 기체 균형에 주의해!

 


구조체: 감염체 신호가 사라졌어…… 협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참, 당신도 임시 지휘부에서 합류해야 하나요? 


리: (좌표가 가리키는 게 바로 이 위치인가…… 먼저 떠날 방법을 찾아야 해.)

 


전투 종료

 


...

 

 



리: 이곳은 비교적 안전하니, 먼저 멈추고 수리해야겠어. 

 


핑계를 대고 떠나려다가, 가뜩이나 부상이 심한 구조체가 힘겹게 자기 동료를 메고 가는 걸 보고 다시 주의를 돌린다. 

 



 

구조체: 저는 괜찮아요, 저보다는 그가 더 문제거든요. 감염체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잠시 멈춰야겠어!

 


이미 응급 휴면 상태에 놓인 구조체 대원을 안전한 구석에 내려놓는다. 리는 즉시 쪼그려 앉아 그의 부상을 점검한다. 

 


리: ……부상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감염도도 하락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의 의식에 바다가 좀 더 안정된 이후에 행동하는 게 좋을 거다. 


구조체: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구조체는 눈에 띄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돌아서서 리에게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구조체: 진짜 정말로 감사합니다!


리: ……그렇게까지 사양하지 마. 

 


자신의 파트너가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걸 알게 되자, 구조체는 한결 가벼워지고 말도 많아진다. 

 


구조체: 지원하러 온 게 그레이 레이븐 소대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당신들은 위험한 전쟁터로 갈 줄 알았죠. 


리: 왜 이런 인상이 남았는지……


구조체: 아아, 죄송합니다.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당신들과 같은 엘리트 소대는 더 중요한 임무에 배치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막 연합작전 소대에 합류한 우리 같은 신병들에게 지휘부가 맡기는 일은, 단지 장치를 설치하고 거점을 순찰하는 일이니까요. 


리: 이런 임무는 비교적 안전하니까 나쁠 것도 없지 않나?


구조체: 그거랑은 달라요! 저는 안전을 위해 구조체가 된 게 아니에요!


리: 너……자발적으로 개조를 수락했어?


구조체: 맞아요. 제가 이래 보여도 군인 집안인데…… 어릴 때부터 병약해서 걷는 것조차 외골격으로 보조해야 했죠. 제 가족은…… 모두 감염체와의 전투에서 희생됐어요. 저는 유산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심지어 그들을 위해 복수조차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와 탄탈-193 공중합체의 상성이 좋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다행이었죠. 저는 최전선에서 지휘관과 함께 싸우며, 지금과는 다르게 대원을 보호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대장이 되고 싶어요…………지금은 동료도 못 구할 뻔했지만요. 


리: ……


구조체: 죄송해요……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긴장이 풀리면 말이 많아져서요…… 제 고질병이에요, 하하. 


리: ……괜찮아, 사과할 필요 없어. 누구 하나 올라오자마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없지. 

 


리는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이곳은 좌표가 가리키는 위치이지만, 그는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어떤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 자신이 무슨 핵심 정보를 빠뜨린 건가? 아니면, 그 정보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구조체: 어? 이건……


 

구조체는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일어서서 거리의 맞은편으로 걸어간다. 뒤이어, 버려진 기계 더미 앞에서 약간 파손된 기계 설비 하나를 집어 든다. 


 

구조체: 여기에 이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직 쓸만해 보이네요. 어느 소대가 여기에 두고 간 걸까요?


리: 이건……전자 관측 장비?


구조체: 네. 보아하니 정비 부대가 소지하고 있을 만한 모델인 것 같아요. 그들과 함께 임무를 나갈 때 흔히 볼 수 있지만, 집행 부대에서는 보통 이걸 사용하지 않거든요. 위치 추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 장비는 내비게이션을 대체하여 사용할 수 있어요. 제 파트너가 워낙 길치라서, 이것만 일찍 찾았더라면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리: ……


구조체: ……퍼니싱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어요. 영상 촬영만 된다면, 위치 추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좋은 경로 탐지 방식으로 쓰이죠. 다만, 이런 장비는 휴대가 불편해요. 소형화가 가능하다면 적어도 만약을 대비하여 예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말이죠. 


리: (만일을 대비한다……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개조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