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그는 어두운 지하 공장을 필사적으로 뛰어다닌다. 밀집된 총알과 레이저 빔이 뒤에서 허공을 뚫어 그의 주위의 강철 프레임에 부딪혀 밝은 불꽃을 튀긴다. 안전문은 이미 경보를 발령하면서 닫혔다. 그는 거대한 공작 기계와 창고 선반 사이에서 쉴 새 없이 피할 수밖에 없다. 모퉁이를 돌 때 레이저 한 줄기가 그의 왼팔을 스쳐 지나가자, 상처로부터 가슴이 저리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 온다. 바로 이 순간, 그는 슬라이딩해 눈에 띄지 않는 통풍구로 들어가 방 너머로 기어든다. 

 



 

리: 칫, 옷이……!

 


최근에 머레이가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자신을 대할 때 항상 머뭇거리는 느낌이다. 리는 다시 얼버무렸다. 머레이의 병세는 다시 악화하여, 더 이상 그를 걱정하게 할 수 없었다――

 


경비 A: 그 못돼먹은 놈은 어딨어, 빨리 그를 잡아 내!


리: ……지금은 다른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 


경비 B: 서두르지 마. 그는 우리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막혔어. 지금쯤이면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 사장님이 오시기 전에 끝까지 놀아보자고. 이렇게 담대한 놈이 감히 혼자 이곳에 와서 물건을 훔칠 줄이야. 


리: 하나……둘……셋……총알은 네 발 정도 남았군. 

 


통풍구 바깥쪽에 떨어진 핏자국을 지우고, 방구석에 기댄 리는 붕대를 물고 상처 난 팔에 잘 감으며 탄약을 점검한다. 

 


동료: 리, 들리나. 그쪽 상황은 어때?

 


초소형 통신 단말기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려와, 리는 목소리를 낮춰 답장한다. 

 


리: 목표물을 확보하여 철수하고 있다. 


동료: 들키진 않았지?


리: 아니, 적발됐다. 우리가 얻은 정보가 틀렸어. 보안 시스템의 키는 네 개의 레이어로 되어 있다. 해독하는 데에 시간이 더 많이 걸렸고, 네가 설정한 CCTV 위장은 3초 동안 효과가 없었어. 


동료: ……물건만 손에 넣으면 되는데. 우리의 행동 계획은 노출되지 않은 건가?


리: 그들은 나밖에 눈치채지 못했다. 


동료: 좋아 좋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합류하자. 


 

맞은편에서 통신을 재빨리 끊었다. 


 

리: 공장 안에 경비원 둘, 밖은 적어도 여섯……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그는 앞에 있는 어두컴컴한 방을 둘러보는데, 공장 안의 기계 창고로 실험의 실패작과 흠집이 있는 기계 부품들이 가득 쌓여 있다. 그는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보았다. 

 


...

 


경비 A: 이건 혈흔이야!


경비 B: 부상을 입은 거로 보아 그다지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 것 같군.


경비 A: 저기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오른쪽이야!


경비 B: 따라와!


경비 A: 이상하다…… 방금 여기에 누가 있는 걸 봤는데……


경비 B: 저쪽이다……!

 


검은 그림자는 매우 빠르게 선반을 통과하여 구석의 화물 더미 속으로 숨는다. 그리고 끈적한 액체가 그의 동작에 따라 바닥에 흩뿌려진다. 

 


경비 A: 너무 격 떨어지네. 이렇게 중상을 입었으니 꼼짝도 못할 것 같군.

 


그들은 크게 웃으며 모퉁이를 향해 총으로 두 번 사격한다. 

 


경비 B: 산 채로 잡아서 심판받게 해야겠네. 아니……이건……

 


그들은 가까이 가서야 화물 더미에 누워있는 건 예상대로의 부상당한 침입자가 아니라, 파손된 인간형 기계라는 걸 깨달았다. 

 


경비 A: [삐――], 우리가 방금 본 게 완전 사람이 아니잖아!


경비 B: 이건 창고에 있는 불량품 아냐? 이럴 리 없어, 어떻게 움직인 거지?!


경비 A: 잠깐, 저놈 어디 갔어?!


리: 말이 많군. 

 


두 경비원은 결국 뒤에 있던 자가 어떻게 어둠 속에서 빠져나왔는지, 어떤 속도로 그들의 숨통을 찢었는지는 볼 수 없었다. 리는 이미 기를 잃은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손에 든 칼을 허리춤에 수납한다. 그는 안전문의 카드 키를 더듬어 꺼내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난다. 

 


...

 


리: ……이게 무슨 짓이지?

 


예정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자신을 맞이하는 동료가 아닌, 이마에 박힌 차가운 총구이다. 

 



 

동료: 무기를 내려놓고 물건을 내놔. 잔꾀 부리지 말고. 


리: ……


동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리는 주머니에서 메모리 형식의 막대형 설비를 꺼낸다. 


동료: 아주 좋아. 

 


그 사람은 만족스럽게 메모리를 가져간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뒤이어 지극히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동료: 나는 네 능력을 매우 존경해. 근데 미안하지만, 너는 오늘 반드시 여기에서 죽어야겠어. 


리: 이게 바로 네가 정보를 숨긴 이유인가?

 


몸에 오한이 돌고,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친다. 급하게 처리한 상처는 건물을 탈출하던 도중에 다시 벌어졌고, 이로 인한 출혈 과다로 멀미와 무력감을 분명하게 느낀다. 그는 아무런 기색도 없이 이를 악물며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으려 한다. 

 


동료: 예리하네. 그래서 내가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복잡한 보안 시스템을 풀 수 있는 너를 ‘믿는다’는 거지. 아, 잘 들어. 추격병이 이미 왔어. 내 뒤를 잘 부탁해, ‘동료’.


 

그는 웃으며 뒤로 물러선 뒤, 총구로 리의 다리를 겨눈다. 

 


...

 


――감염도 저하를 감지하여 기초 기능 모듈을 보정합니다. 

 


???: ……

 


――청각 모듈 교정 완료. 

 


???: 리 씨!! 


???: ……내려놓을게. 잠시만 기다려. 곧 치료할 거야!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 한바탕 어지러운 잡음이 난 후, 리는 동료의, 리브와 루시아의 다급한 외침을 어렴풋이 듣는다. 

 



 

리: (기억이 혼란스럽다……감염 때문인가.)

 


그러나, 리는 입을 열지 못한다. 퍼니싱 감염으로 시각 모듈에 이상이 생겨, 검붉은 색의 기이하고 네모난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비틀린 나선처럼 의식의 바다에서 터진다. 격심한 고통이 계속하여 의지를 흔든다. 퍼니싱은 그의 사상을 잠식하고 빼앗으려 한다. 리는 얼마 남지 않은 모든 힘에 의지하여 자아를 유지한다. 그가 몸으로 티파의 마지막 일격을 막아내자, 퍼니싱 바이러스는 상처를 따라 기체에 침입한다. 다행히도 지휘관의 마인드 표식 덕분에 감염도는 한계를 돌파하지 못하고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지하철 안의 안전한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리브는 그를 위해 응급 치료를 한다. ――시각 모듈 교정 완료. 

 



 

루시아의 시종일관 늠름한 얼굴은 지금 초조함으로 물들어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합류한 이래, 단 한 번도 이 정도로 그녀의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리브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파묻은 채 한시도 쉬지 않고 상처를 치료한다. 지휘관은 리의 어깨를 부축하고 그가 몸을 기대게 만들어, 그의 절반을 지탱한다. 뒤에 있는 사람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깨에 걸친 팔이 가늘게 떨리는 걸 느낀다. 리는 자신이 이런 상태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리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리: (의식의 바다와 기체 제어 인터페이스가………격리된 건가? 이미 감염도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기체를 통제하지 못할 리가 없어. 그러면 한 가지 가능성뿐이다. ……자신의 의식의 바다를 점검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

 


의식의 바다 점검은 휴면과 비슷하게 자아 딥다이브 모드로 진입해야 한다. 이는 그가 한동안 외부 세계에 대한 감지를 철저히 차단하고, 위험에 처하면 반격할 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 (여기서 끝나면, 웃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 위급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행동 능력을 상실한 대원을 버리고 신속하게 철수하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대원’도 ‘미끼’가 될 수 있다는 건 쿠로노 작전의 관례적인 ‘규칙’ 중 하나다. 철수 속도가 심하게 지연되고, 감염체와 마주쳐 몇 차례나 둘러싸임에도 그레이 레이븐은 그를 포기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자아 딥다이브 모드로 진입하려면 외부와의 연결을 끊어야 하는데, 지금 그의 곁에는 그레이 레이븐이 있다. 

 



 

루시아: ‘그레이 레이븐의 모든 동료는 까마귀의 비행을 담당하는, 없어서는 안 될 날개이며, 결코 외력에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맹세를 포기한 적이 없다. 

 


리: (그러니까…… 그들이 계속 걱정하게 둘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잠시 외부 감지를 차단하고, 자아 딥다이브를 준비한다.)


 

그는 부상으로 인한 혼수상태를 수없이 많이 겪어봤지만, 이번은 처음으로……안심을 느낀다. 

 


...

 


자신의 의식의 바다와는 다른, 혼돈의 무질서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리: 방금 그건?! 일시적인 데이터 이상…… 퍼니싱의 영향으로 논리적 혼란이 일어난 건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하나씩 확인해보자. 

 


...

 


텅 빈 의식의 바다 공간에서 공중에 뜬 붉은 결정체가 보인다. 

 


리: 이게 이상의 원인인 것 같군…… 이건……티파의 데이터 조각인가? 이런 걸 심다니……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

 


결정체에 닿는 순간, 리는 또 다른 기괴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

 


전투 시작

 



 

리: 이건 내 의식의 바다가 아니야…… 쯧, 이미 이 정도까지 침식되었다니……


티파: 감염됐는데도 정신을 유지하다니……그러면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자!!


리: 나는 너와 여기서 소꿉놀이할 시간 없어.

 


남아 있는 티파의 환영을 쓰러뜨리세요.

 



티파: 내가 이 힘을 좀 더 일찍 가졌더라면……지휘관은 살 수 있었을까? 우리는 함께 여명을 맞이하기로 했어. 하지만, 지휘관이 죽고 나서는 내 세상에 온통 밤뿐이야.



티파: 내가 죽였어……내 대원을……어째서……그들은 고통스러워하겠지? 미안해……미안해…… 날카로운 가시가 심장을 관통하는 느낌……너도 느껴봐!


리: 그녀의 의식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


티파: ……왜 발버둥 치는 거야? 너도 지휘관이 있어? 지휘관이 죽는 걸 보기만 하는 것보다, 나처럼 승격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는 게 나아……


리: ……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거다!


티파: 정말……순진하네. 난 네가……절망 속에서 무너지는 걸 지켜볼 거야.

 


티파: 지휘관……지휘관……


리: ……

 

전투 종료

 


...

 


회색빛 별하늘과 끈적한 조수는 서서히 퇴색하고, 티파의 마인드 표식 오염으로 형성된 공간은 모두 붕괴하여 점차 의식의 바다 본연의 모습을 회복한다. 검은 수렁은 티파의 곁으로 물러난다. 그녀의 신체는 이미 산산조각이 나 걸어갈 힘을 잃었다. 그녀는 땅에 엎드린 채로 있는 힘을 다하여 앞을 향해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 붕해(崩解)가 그녀의 손끝부터 사지로 번져, 흩날리는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리: 벌써 끝났군. 



티파: 아니……아직 끝나지 않았어……나는 아직……


리: ……너의 전자 두뇌와 핵심 부품은 이미 내가 파괴했어. 여기에 남은 건 오로지 너의 기억 데이터뿐이다. 이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 넌 네 것이 아닌 기체를 조종할 방법이 없어. 


티파: 아니……하하하……보니까 너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네.

 


티파의 왼쪽 눈이 붕해하는 중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으로 변한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웃기 시작하고, 입가에 괴상한 곡선을 띄운다. 


 

티파: ……난 여기서……네 기억을 봤어. 너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잖아. 안 그래? 네가 쿠로노에 있을 때……그리고 훨씬 전에……그 피들……시체……그리고 배신…… 지금은 평범한 사람인 마냥 이런 약한 소대에 있으니……많이 힘들지? 너는 집행부대보다 정화부대가 더 잘 어울려. 어쨌든, 너는 이미 그런 일에 익숙하잖아? 


리: 너……


티파: 네 기억을 보았을 때 난 우리가 같은 부류라는 걸 깨달았어…… 넌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걸 참을 수 없어…… 그들을 위해 넌 더 잔인한 일을 할 수 있어. 너의 소중한 가족, 동료, 지휘관을 잃었을 때……넌 반드시 지금 내가 한 말을 떠올리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탕――

 


리는 손을 들어 격발한다. 총탄이 티파의 머리를 관통하자, 그녀의 잔해가 두 번 반짝였다가 소리 없이 터져 완전히 사라진다. 

 


리: 이제 그만해.

 



 

총성이 울리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 버튼이 눌린 영화처럼 툭 멈춘다. 

 



 

리: …… (이때 제어 트리거가 묻힌 건가……)

 


비록 당시에는 자신이 제어 트리거의 영향을 빨리 떨쳐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의식이 또 다른 ‘티파’에 의해 통제되지 않도록 티파의 의식 파편을 소멸시켰다. 

 


리: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그때 정말로……그들에게 상처를 남겼겠지. 

 


이것은 그가 어떻게 해서든 보고 싶지 않은 일이다. 

 


리: 사전 작업으로 의식의 바다에 끔찍한 반전 명령을 남겼다. 이렇게 되면……괜찮을 것 같군. 

 


...

 



 

리: ……

 


자아 딥다이브 모드에서 빠져나왔을 때, 리는 이미 그레이 레이븐의 도움으로 수송기에 탑승해있다. 케로베로스 소대의 그 악랄한 여인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그의 맞은편에 앉아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베라: 야, 리. 너 진짜 비참해 보여. 


리: 그래? 그럼 나도 알려주지. 지금 네 모습은……매우 보기 흉해.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리는 더 이상 맞은편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스크린 너머의 본부에 보고하는 지휘관을 쳐다본다. 

 


티파: 너의 소중한 가족, 동료, 지휘관을 잃었을 때……넌 반드시 지금 내가 한 말을 떠올리게 될 거야.


리: ……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또 어떤 힘든 싸움을 겪게 될지 알 수 없기에 그는 언제나 방심할 수 없다.

 


리: (앞으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사용할 모든 무기와 장비는 출전 전에 한 번 더 꼼꼼히 점검하고 조정해야겠어. 그리고 돌아가면 가능한 한 빨리 비상 통신이 가능한 예비 장치를 만들어 지휘관에게 건네야겠다. 우발적인 상황을 놓치지 말고,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기체의 상처는 단지 응급 처치일 뿐이기에 감각과 의식이 돌아오면서 통증이 신경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예기치 못한 상황과 대응책을 명료하게 생각한다. 그는 그레이 레이븐의 일원으로, 더 이상 무모하게 혼자 싸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