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와타나베의 ‘우리의 임시 거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라는 말이 거짓말이었던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망각자의 진짜 거점은 사건 발생지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고, 이들이 짐을 싣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와타나베는 심지어 그레이 레이븐에게 망각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고, 그들이 최대한 보급과 정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더 이상의 은폐나 제한이 없었다. 그리고, 와타나베 본인은 거점으로 돌아온 후 다 우려낸 박하차 한 주전자를 그들 앞에 내던지고는, 쉴 새 없이 사라져 다른 곳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리브는 구조한 망각자 병사들을 위해 의식의 바다 확인을 고집했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 거절할 수 없는 목소리로, 그녀보다 훨씬 키가 큰 병사들을 향해 순순히 누우라고 재촉한다. 또한 의식의 바다 열화에 따른 후유증을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망각자의 병사들은 모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보였다. 한편, 지휘관은 박하차와 함께 와타나베의 작업실을 빌려 진지하게 임무 브리핑을 하고 있어 방해할 수 없었다. 

 


리: (겉치레인 줄 알았는데, 진짜 마시네……. ……)

 


모두의 무기는 이미 방금 보급 휴식에서 조정이 끝났기 때문에, 지금은 모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한가한 시간이다. 주거 지역이 소등할 시간이 되자, 밝은 달이 공중에 높이 떠 산발적인 비상등만 있던 거점에 부드러운 빛이 감돈다. 예전에 지휘관으로부터 황금시대의 일부 지역에서는 보름달이 가족과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노인: 젊은이, 비켜 봐.

 

한 노인이 손가락으로 리의 옆을 가리키자 그는 말에 따라 몸을 옮긴다. 노인은 허리를 굽혀 뒤에 있는 진열대에서 상자 두 개를 내렸는데, 보아하니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것 같다. 

 


리: 제가 하겠습니다. 어디로 옮길까요?


노인: 창고 쪽이다……고맙네, 젊은이. 

 


리는 허리를 숙여 상자를 들고 창고 쪽으로 걸어가다가, 노인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조금 속도를 줄인다. 

 


리: 여기에 든 건……화약입니까?


노인: 그래, 구조체의 후각이 이렇게 뛰어날 줄이야. 아니, 너희 젊은이들은……후각 감지기(传港器)이라고 해야 하나?

 


센서입니다. 

 


리: 하……망각자가 이렇게 낡은 무기를 쓰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노인: 허허……이건 무슨 무기가 아니라, 불꽃이란다. 


리: 불꽃?


노인: 그래. 이건 와타나베 그 꼬맹이가 어느 날 보급품을 찾으러 나갔을 때 가져온 건데, 아이들의 답답함을 달래는 데 쓸 수 있다고 하더군. 챗봇 같은 재밌는 물건도 가지고 왔는데……아이들이 다 좋아한다네. 이 불꽃놀이도 원래는 오늘 꺼내서 거점에서 모두를 즐겁게 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그들은 일이 있어 늦었다고 말했지. 내가 방금 돌아오니, 많은 아이들이 잠을 기다리고 있더군. 게다가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아, 습기가 차지 않도록 다른 곳에 보관할 생각이네. 


리: 비……? 그러나 지금은 날씨가 맑아서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와타나베는 망각자에게 날씨 모니터링 시스템이 없다고 했는데. 


노인: 허허……그가 너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나? 젊은이여, 우리가 밖에서 풍찬노숙하여 얻은 경험을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비가 올 거라고 하면 반드시 내린다네. 음――내가 바로 이 거점의 살아있는 날씨 모니터링 시스템이니까. 아이고, 여기다 놓으면 돼. 고마워, 젊은이.


리: 천만에요. 

 


리는 불꽃놀이 재료가 담긴 상자를 가볍게 바닥에 내려놓고, 창고의 불빛을 빌려 상자 위의 도안을 본다. 비록 퇴색하고 누렇게 변했지만, 사진 속의 불꽃이 밤하늘에서 터지는 현란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리: ……

 


리의 기억에도 많은 불꽃놀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는 그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가시가 돋친 것 같은 사소한 아쉬움이 되었다.

 


...

 



 

동료: 너……으아아아악!!!

 


리의 손에서 총소리가 나자, 다음 순간 상대방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넘어진다. 그의 허벅지에는 빠르게 두 개의 진홍색 핏자국이 번져 나온다. 리는 발을 들어 상대방의 무기를 걷어차고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워 든다. 그는 총성과 함께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동료’가 웅크리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담담하게 내려다본다. 

 


동료: 내가 세봤는데……네 총알은, 이제 없어……


리: 내 생각에는, 네 정보도 갱신이 필요한 것 같군――난 무장 부족으로 인해 결코 전투에서 밀리지 않는다. 


동료: 젠장……


리: 헛수고지만……그래도 묻고 싶군. 왜 나를 죽이려는 거지?


동료: 당연히 누가 널 죽이라고 하니까 그렇지. 넌 이 업계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원수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해? 게다가……네가 임무에서 죽기만 한다면 난 모든 보수를 받을 수 있어. 정말 일석이조 좋은 일이지. 


리: ……돈 때문이군.


동료: 맞아, 돈 때문이지! 이 일을 하는 게 사탄과 미친놈들 빼면은 전부 돈을 위해서 하는 거 아니겠냐?! 너 미쳤어? 아니면 괴물이야?


리: 네 말이 맞아. 나도 돈을 위해서다. 

 


리는 여전히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가버린다. 

 


리: 내가 계산한 것보다 추격 속도가 좀 빠르군. 보아하니 그들이 모두 멍청한 건 아닌 것 같으니, 내 ‘뒤’를 잘 부탁해.


동료: 너……! 기다려……물건은 아직 내 손에 있는데……안 가져갈 거냐?!

 


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킨다. 

 


리: 비밀 무기의 설계도일 뿐이다……이미 여기에 다 있어.


동료: 그럼 나한테 준 건……


리: 초소형 폭탄이지. 

 


리는 뒷사람의 울음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난다.

 


...

 



 

리: 하……아……으윽……

 


한참 달린 후에야 리는 남은 추격병을 따돌릴 수 있었고, 그는 거리의 뒷골목으로 숨는다. 과다출혈과 오랜 시간 탈출에 집중한 탓에 그의 눈앞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천천히 담 모퉁이에 미끄러져 앉아 젖은 붕대를 풀고 마지막 지혈 붕대로 다시 감는다. 

 


리: ……괜찮아, 이제 출혈이 멎었어. 

 


어두운 옷을 입으면, 적어도 밤에 돌아올 때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우울한 하늘을 바라본다. 휘이――펑! 눈앞의 회색빛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색색의 빛을 터뜨린다. 현란한 불꽃이 머리 위에서 송이송이 피어오르며, 빛이 넘쳐흐르는 풍경은 마치 황금시대의 환몽과 같다. 그렇다, 오늘은 동생이 항상 기대했던 그 축제 날이다. 

 


리: 미안해……머레이……


 

그와 함께 참가하기로 했으면서, 자기가 약속을 어겼다.

 


...

 


집에 돌아왔을 때, 머레이는 이미 베개를 껴안고 잠들어 있었기에 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옆으로 누워서, 자기 전에 줄곧 창밖의 불꽃놀이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리: ……

 


리는 손을 들어 동생의 이마를 만져보려 하였다. 그러나, 손에는 마른 피와 화약의 잔재가 가득 묻어 있었다. 머레이의 약간 창백한 얼굴은 부드럽고 깨끗했지만,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어 매우 불안하게 자는 것 같다. 머레이는 일어나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게 철이 든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머레이는 그의 눈빛이 항상 자신의 감정과는 반대로 나타낸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처를 잘 수습한 후에 리는 사과의 작은 선물을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머레이의 방을 나온 뒤 조용히 작업실로 들어가, 천천히 자신의 방문을 닫는다. 창밖의 불꽃놀이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

 


창고의 철문이 겹겹이 내려져 쾅 소리를 내자, 리는 회상에서 되돌아온다. 

 


리: ……왜 갑자기 과거 일이 생각나는지……

 


비록 추억에서 벗어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느껴져 한숨이 시종 가슴에 맺힌 기분이다. 

 


리: ……시간이 아직 이르니, 나가서 좀 걸어야겠어.

 


...

 


전투 시작

 


리브 구출에 성공한 지 몇 시간 후……

 


밖을 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자꾸만 잡생각을 하게 된다……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세요.

 




챗봇: 초조해 보이시는군요.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기분을 풀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음악 로봇과 상호작용

 


음악 로봇: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축음기 말씀이신가요? 그건 공교롭게도 주인이 없는 물건입니다. 


축음기와 상호작용

 


축음기: 삐걱……삐걱……끼익……(끊임없는 노랫소리)

 


(축음기 회전 가능)



알림: 오래된 축음기 한 대일 뿐입니다.


그만두기


 


 

경비: 전방에서 교량을 복구하고 있어, 정비 부대가 아닌 자는 당분간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응?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 씨인가요? 죄송하지만, 당신이라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리: 동선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응? 비가 내리는 건가?

 



경비: 리 씨, 여기 계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방금 제가 순찰하다가 형과 헤어진 아이를 만났습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직 순찰 임무가 남아있어서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와 대화하세요.

 

리: ……너……네가 형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어디야?

길 잃은 아이: ……저 챗봇 쪽에서……

 



 

길 잃은 아이가 그의 형을 찾는 것을 도우세요. 


 


 

챗봇: 본 기기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신은 조급해 보입니다. 당신의 심리 건강을 위해서, 원한다면 연락하시기를 바랍니다……

 



 

리: 받침대가 비어있으니, 뒤집어서 살펴봐야겠어. 

 



 

가족……대체 불가한……존재. (글씨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길 잃은 아이: 역시 형의 축음기야……하지만……형은 어디로 갔지?

 



경보! 경보! 비전투 인원은 즉시 피난하십시오!


리: 이건……1급 경계?

 



 

길 잃은 아이: 형……큰형……부러진 다리 쪽의 경비 누나가 형을 찾고 있어요!

 



 

경비: 리 씨, 감염체입니다. 감염체가 부근에 출몰하고 있습니다. 비전투 인원이 휘말려 지원이 필요합니다. 리 씨, 부탁드려도 될까요?


리: 문제없습니다. 제가 곧 출발할 테니, 그쪽이 아이들을 돌봐 주세요.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해……

 



 

리: 시간……지점……확인 완료.

 


 


리: 그러면, 시작하지……

 


과거의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세요.

 


 

리: 이 자가 바로 그 아이의 형인가? 미안하다, 잠시 축음기를 빌리지……

 

축음기를 이용하여 정보를 과거의 자신에게 전달하세요.

 



 

리: 메시지와 좌표……미래로 향하는 열쇠. 바로 여기서 전달을 진행한다. 

 



 

리: 이건……내가 있는 구역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군. 

 



 

리: 메시지 보관이 완료되었으니, 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어. 본래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현재 시간대에서 벗어나세요.

 


 


리: 응급처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해. 


부상당한 청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리 씨. 근데……궁금한 게 있는데, 저를 어떻게 찾으셨나요?


리: 받침대 안에 있는 송신기를 보고 역추적을 했을 뿐이다. 위험에 휘말린 게 너라서 그렇지.


부상당한 청년: 축음기? 송신기? 리 씨의 말씀은……?

 


길 잃은 아이: 형……형아!


부상당한 청년: 미안, 형한테 좀 일이 있어서……늦었네……근데 봐봐, 형이 너한테 줄 선물을 가져왔어.

 


부상당한 청년: 자, 형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안아줄게. 


길 잃은 아이: 형……왜 그렇게 상처가 많아……!


부상당한 청년: 괜찮아, 이제 별로 안 아파.


길 잃은 아이: 거짓말! 분명 아플걸. 가서 약 발라줄게. 나도 형을 돌볼 수 있어. 계속 나를 어린 애 취급하지 마. 


부상당한 청년: 하하하, 내 동생도 많이 컸네. 리 씨,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부상당한 청년: 참, 축음기 보셨나요? 그걸 어디에 뒀는지 까먹었네요……


길 잃은 아이: 축음기? 저기 보여? 음악 로봇한테 있어.

 


부상당한 청년: 음악 로봇이라, 이상하네. 어떻게 저기까지 갔지?


길 잃은 아이: 아마 음악 로봇이 주운 것 같아……


리: 이 형제……예전에 머레이와 함께 살던 날들이 생각나는군. “가족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요즘 전투가 많아 머레이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어. 

 


쥐죽은 듯한 진동이, 교차하는 운명의 실타래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리: 머레이니? 응, 아직 지상에 있어……

 

전투 종료

 


...

 



 

머레이: 형?

 


통신 너머의 머레이는 지금 형이 자신에게 통신을 보내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약간 놀라는 눈치이다. 그러나 이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머레이: 형이 아직 지상에 있다니? 지금 임무 수행 중?


리: 응, 난 아직 지상에 있어. 


머레이: 이번 임무를 시작한 지 되게 오래된 것 같은데. 잘 되고 있어?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형을 도울 거리가 있을까? 마지막 말을 머레이는 하지 못한 채 어렵게 삼킨다. 

 


리: 일단락된 참이야. 지금은 마침……비교적 한가하지. 


머레이: 그렇구나…… 그런데, 형은 임무 수행할 때는 거의 연락을 안 하잖아. 임무가 많을 때는……한두 달은 기본으로 형 목소리도 못 들었어. 그래서 방금 연락을 받았을 때, 난 형이 위험한 상황에 놓인 걸까 하면서 긴장했어. 어쨌든, 형이 괜찮으면 됐어. 


리: 응, 난 괜――




리: ――윽!

 


리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이마에 있는 역원 장치를 손으로 움켜쥐며 인상을 찌푸린다. 

 


머레이: 형?! 왜 그래?!


리: ……아무것도 아냐. 


머레이: 형은 또 이렇게……형, 나 다 봤어. 방금 정말로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 안 믿어. 

 


손을 내려놓고 속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다. 더 이상 얼버무리는 건 오히려 머레이를 걱정하게 만든다. 

 


리: 방금 거점 근처에 감염체가 출현했는데, 비전투 인원이 전투에 휘말려서 내가 우선 그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지. 그런데 감염체 수가 좀 많아서……전투 중에 약간 감염됐어. 하지만 역원 장치가 있어서 감염도는 금방 감소하니까,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머레이: 진짜 괜찮아? 다시는 날 속이려고 하지 마……


리: 내 신용 가치가 그렇게 낮아졌어?

 


머레이에게 자신의 기체 상태를 보여주며 농담 반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머레이는 이에 웃음을 짓지 않고 오히려 서글픈 듯 속삭인다. 


 

머레이: 형이 항상 나에게 자꾸 숨기니까 그래…… 하지만 난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고 싶지 않아. 결국……형은 나의 유일한 가족이니까.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 그런데……형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러면 내가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잖아……


리: ……

 


‘가족……대체 불가한……존재.’ 리는 문득, 방금 축음기의 받침대에서 본 메모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릿했던 대목을 떠올린다. ‘필요하지 않더라도 동생에게 연락 좀 많이 해.’ 어린 남자아이의 형을 보호하기 위해 감염체와 싸우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그의 마음과 같기도 하며……시공간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메시지 같았다. 그는 재빨리 머릿속에 있는 이 황당한 생각을 떨쳤다. 하늘에 뜬 밝은 달을 응시하고 있었을 때, 리는 머레이와 통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후, 이미 통신 신청을 한 후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목 부근을 만지작거리다가, 옷 사이의 작고 네모난 펜던트를 건드린다. 

 


리: 말하자면, 오늘은 머레이 덕분이야.


머레이: 형 또 말 돌리는 거지――응……? 내 덕분이라니?


 

리는 낮에 중력자 탐지 장치로 지형도를 만들고, 전자기 투영의 환영에서 프로젝트 장치를 무사히 찾게 된 경과를 머레이에게 간단히 들려준다. 


 

머레이: 역시 형은 이런 방법을 잘 찾아낸다니까. 


리: 모두 네가 나에게 준 이 선물 덕분이야. 그러니 봐, 머레이가 내 곁에 없어도 여전히 큰 도움이 되잖아. 


머레이: 내가 정말 도움이 됐어?


리: 당연하지. 


머레이: 그것참 잘됐네……


 

머레이는 입을 열었다. 분명히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그는 잠시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머레이: 형……정말 괜찮아?


 

결국 내뱉은 말은 이러나저러나 같은 말뿐이다. 

 


머레이: 하하, 이미 물어봤지……괜찮으면 됐어. 

 


머레이는 다소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평소 훌륭했던 말솜씨가 이 순간에는 사라졌다. ――정말 괜찮아? 형은 왜 그렇게 슬퍼 보여?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을 해……형,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형은 내가 모르는 일을, 무슨 일을 겪은 거야? 그 슬픔은 나 때문이야……?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리: ……머레이, 나……그냥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머레이: 응……?

 


‘가족……대체 불가한……존재.’ 가족에게 필요한 건 숨기는 게 아니라 함께 감당하는 것이다. 오로지 동생을 가리고 보호하려고만 했던 그는, 지금까지 줄곧 날개 밑에서 보호받던 새가 이미 다 자랐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의 날개는 단단해져, 이미 하늘을 날기에 충분하다. 

 


리: 네가 어렸을 때, 난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머레이: 왜 갑자기……이 얘기를 하는 거야?


리: ……지상의 창고에서 불꽃놀이를 봤어. 그 축제가……생각났어. 


머레이: 축제……

 


머레이는 당연히 그 축제, 불꽃놀이, 떠들썩함,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에 앉아 팔을 감싸던 형을 기억한다. 형이 하는 일이 형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때였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입을 열어 물어봐야 할지, 도대체 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또한, 그날 이후로 그는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는 형의 뒤를 따라가고 싶고, 형의 일을 돕고 싶고, 형이 그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가 어둠 속에서 혼자 다닐 필요 없도록……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그것들을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하고, 철봉으로 봉하고, 짐을 꾸리고,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언제 시작됐는지 몰라도 한참 된 것 같았다…… 형과 이렇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이 길은 너무 어두워서, 가는 도중에 그는 자신이 가는 방향이 과연 형이 있는 곳인지 확인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리: 그때 나는, 네 병세가 걱정돼서…………미안해. 

 


서투른 사과가 미끄러져 나온다. 리는 고개를 약간 돌린 채 어떤 표정으로 머레이와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머레이: ……사과할 필요 없어, 형. 난 항상 알고 있었어. 형이 하는 모든 일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거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거니까. 나는 형을 탓한 적이 없어. 형은 여태껏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고, 나도 감히 입을 열어 물어볼 수 없었어. 폐를 끼칠까 봐, 형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봐. 난 언제나 형이 뭘 하는지 알고 있어. 나도 항상……무서워. 나쁜 소식을 듣게 될까 봐. 언젠가 형이……


 

머레이는 약간 슬픈 미소를 짓는다. 

 


리: ……그때 너에게 말했어야 했어. 


머레이: ……그때 문을 밀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리&머레이: !

 


거의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똑같은 뜻을 담고 있다. 

 


머레이: 형……?


리: ……난 단지 내가 한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어릴 적 선의의 거짓말이든, 공중정원에 도착한 후의 기쁜 소식이든 간에. 한 번씩 ‘선의의 거짓말’이 예상대로 동생을 안심시키고 공중정원에서 자라게 하는 대신, 오히려……두 사람의 거리를 벌리게 하는 것 같다. 

 


머레이: 진짜 ‘올바른’ 선택이 어디 있어? 어떤 일을 해도, 모든 선택이 정확하다는 걸 확실히 알 방법이 없잖아. 안 그래?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면 돼. 예를 들어……내가 나의 형을 잘 지켜주고 싶다는 것처럼. 

 


리는 놀라서 고개를 든다. 그는 방금 전에야 눈앞에 있는 머레이가 이미 어릴 적에 깨질 정도로 연약한 도자기 인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크고, 충분히 어깨가 넓고, 충분히……자신과 함께 서 있다. 

 


머레이: 선택할 때 추가로 걱정도 들겠지만. 비록 출발점이 확실하게 ‘정확’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여곡절이 있겠지. 마치……내가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도 같아. 빨리 형을 도와야 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내가 내린 모든 선택도 정말 옳았을까? 미안해, 형, 나……


 

통신 맞은편에 있던 인간은 조금 조마조마하게 눈을 돌려 뒷말을 삼킨다. 짧은 침묵이 통신 양쪽의 공간을 지배하고 가벼운 숨소리만 남는다. 머레이는 자신의 다급한 심장 박동을 듣는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그는 형에게 이런 일들을 알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수렁과 소용돌이들은 단지 자신 안에서만 있으면 된다. 형은 단지 그 지휘관을 따라 빛나는 전투를 연달아 끝내고, 더 큰 영광을 얻으면 되는데…… 그 지저분하고 사람을 갉아먹는 공허함은 단지 자신이 끌어안으면 되는데……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건 이전의 형과 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불과 몇 초가 지난 듯, 또 한 세기나 지난 듯, 맞은편 구조체는 가볍게 기침을 한다. 


 

리: 우린 역시……닮았네.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고, 아픔은 숨기고 싶다. 공기가 부드러워지자 머레이는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머레이: 형이 먼저 다 얘기하니까, 나도 괜히……


리: ……앞으로 안 그럴 거야.


 

고통을 숨기지 않고, 진실을 숨기지 않는 이유는……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필요한 건 숨기는 게 아니라 함께 감당하는 것이다. 


 

머레이: 그러면……약속한 거야. 우리는 이제부터 어떤 일이든 서로를 속여서는 안 돼. 


리: 응……약속할게. 참, 이번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면……보고 싶어 했던 화가의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가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또 한마디 덧붙인다.


 

리: 이번에는 절대로 약속을 깨지 않을게. 


머레이: 응, 나도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머레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그를 휘감고 괴롭혔던 불안은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진다. 

 


...

 


그 후 리와 머레이는 서로의 근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형제가 이렇게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눈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리: 너는? 요즘 일은 어때? 뭐 할지 생각해 봤어?


머레이: 음……최근 군부의 전술연락관 자리에 공석이 생겨서 지원서를 제출하려고.


리: 전술연락관? 어떻게 이걸 할 생각을 했어? 이 일은 비교적 힘들 텐데. 


머레이: 난 형의 뒤에서 지원해주고 싶으니까. 형이 앞으로 전선에서 싸울 때 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것과 같잖아! 만약에 그때 가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임무를 분배받을 수 있다면, 난 바로 형의 전술연락관이 될래!


리: 응, 그래도 좋을 것 같네. 근데 공부할 게 엄청 많아…… 도서관에 《전술정보정찰정리집합》과 《정보배분학》이 있었는데, 시간이 나면 봐봐. 


머레이: 형 진짜 대단하다. 이런 과목까지 섭렵하다니!


리: 자료를 열람할 때 어쩌다 봤어.


머레이: 모르는 게 있으면 형한테 물어봐도 되지?


리: 당연하지, 내가 언제 안 된다고 한 적 있어? 하지만 건강 잘 챙기고, 너무 과로하지 마.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반드시 조심해야 해.


머레이: 응, 조심할게. 형도 마찬가지야. 전투에서 자기 자신을 잘 보호해야 해. 형이랑 같이 전시회 가는 거, 기다리고 있을게……


리: ……응.


 

따뜻한 보금자리 속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그는 보호하던 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작은 새를 잃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작은 새는 일찍이 자라 높은 하늘을 빙빙 돌며 그를 위해 비바람을 막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밤하늘에 밝은 달이 휘영청 밝아, 멀리서 지저귀는 두 마리의 새가 차례로 뒤쫓아 먼 곳으로 날아간다. 

 


...

 


교신이 끝난 후 리는 마음이 많이 풀리는 걸 느낀다. 마음속에 맺혔던 안개도 서로의 대화와 함께 서서히 걷혔다. 다만,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리: (방금 갑자기 받은 그 메시지는 과연……메시지가 아니라, 해독하기 어려운……깨진 코드인가?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록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