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힘을 가진 강자만이 자신의 의지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루시아를 떠나보내는 뒷모습에 루나는 상대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루나

(언니는... 단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야.)


자신과 똑같이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루시아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똑같이 가져야 한다.


루나

(아마도 똑같이 배신당한 구조체에 대한 동정심은 있지 않을까? )


과거 루나는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서 언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비오는 밤의 통곡 후에 루시아는 모든 감정을 털어놓은 것 같았다.


봇물 터지듯이 쏱아낸 감정 뒤에 남아있는 끝없는 막막함, 루나는 루시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

우리가 따라갈까요, 루나 아가씨?



익숙한 목소리가 루나를 생각에서 깨어나게 만들었고, 롤랑과 가브리엘이 한쪽 그늘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루나

아니, 연민에 기대고 있다 하더라도 언니의 실력은 공중정원의 구조체를 상대하기에 충분해.


루나

더욱이 승격 네트워크를 통해 쌓은 연결고리는 내가 언니의 상황을 계속 알 수 있게 해주거든.


루나

언니가 혼자 걷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


루나

보고할 거라도 있어?


가브리엘

아직 그 승격자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수색 범위를 넓혔지만 그의 행방을 가리키는 단서는 없었습니다.


루나

그래...


이 결과에 대해 루나는 딱히 의외라고 여기지 않았다. 상대방이 그렇게 쉽게 잡혔다면 '사기꾼'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롤랑

그리고, 루시아 양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루나

...?


이 말은 루나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롤랑을 바라보자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다.


루나

무슨 정보지?


롤랑

어둠을 버리고 빛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몇몇 녀석들의 입에서 '그레이 레이븐은 지난 임무에서 거의 전멸했고 유일한 생존자인 루시아는 공중정원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놀라움, 확신, 분노...복수의 감정이 루나의 옅은 금빛 눈동자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다 다시 고요해졌다.


루나

그렇구나, 그들은 역시나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언니를 놓아주기 싫어했었네.


롤랑

그녀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할까요?


루나

...


언니에게 이 일을 알려주면 언니를 더 자기 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을까? 루나는 처음으로 이 일에 대해 망설였다.


자신의 소원은 늘 언니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언니도 그렇게 생각할까?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이런 간극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롤랑

루나 아가씨?



루나

롤랑, 가브리엘, 언니가 승격자가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루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두 승격자는 별다른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가브리엘

이전 추적에서 얻은 데이터로 볼 때 그녀의 전투 능력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구조체 중 희귀합니다.


가브리엘

다만, 승격 네트워크가 부여한 힘을 운용하는 데 있어 아직 미숙해 보입니다. 허나 선별을 통과한 이상, 이 또한 시간문제일 뿐이지요.


가브리엘

그녀가 승격 네트워크의 힘을 익힐 때까지 기다린다면... 루나 아가씨의 계획에 전례 없는 보탬이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

그녀는 루나 아가씨가 선택한 자입니다. 루나 아가씨의 의지는 곧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이지요. 저는 기필코 따르겠습니다.


롤랑은 가브리엘의 단호함에 비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미루었다.


루나는 다그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롤랑

전 승격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롤랑은 먼저 가브리엘을 바라보다가 루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롤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루시아 양이 루나 아가씨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롤랑

그녀의 가입은 루나 아가씨에게 있어 '목적'을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일 것입니다.


롤랑

이제 그녀는 그것을 깨닫기 위한 시간과 계기가 필요할 뿐이죠.


가브리엘

이게 저의 주장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요? 당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고뇌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뿐입니까?


롤랑

그런 말 하지 마, 적절한 단어와 문장을 고르기 위해 오랫동한 고민한 결과라고.


롤랑

'영웅의 안목은 대게 비슷하다'라는 옛말도 있잖아? 서로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어서 기뻐해야 마땅하겠지.


롤랑의 말을 들은 루나는 다시 루시아가 떠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명령했다.


루나

그 승격자의 단서를 계속 찾아. 적어도 누가 그를 보냈는지 알아내야 해.


루나

롤랑이 말한 그 일은 언니가 돌아온 후에 다시 얘기하자.


가브리엘&롤랑

네.



침식체

쉬이이익!


상처투성이 침식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거대한 로봇팔에 의해 통째로 부서졌다.


가브리엘은 금속 파편에서 상대방의 메모리 칩을 주워 그 안의 데이터를 읽기 시작했다.



롤랑

그렇게 모질게 손을 쓸 필요는 없잖아. 너랑 걔는 같은 부류 아니였어?


가브리엘

다만 선별되지 못한 침식체일 뿐, 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요.


가브리엘

당신은 자신을 그 허약한 구조체와 같은 부류로 놓을 수 있나요?


롤랑

예리한 질문이야.


롤랑은 동의도 반대도 없이 변함없는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롤랑

어때, 그 승격자의 꼬리는 찾았어?


가브리엘은 판독 슬롯에 연결된 칩을 빼낸 뒤 바닥에 떨어진 금속 파편을 향해 던졌다.


가브리엘

이전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접촉한 그 승격자를 목격하지 못했으니 다음 구역으로 가지요.


롤랑

좀 쉬는 게 어때, 난 너처럼 피곤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야.


롤랑

그리고 루나 아가씨가 그 승격자에게 너무 집착한다는 생각 안 들어?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결국 루나 아가씨는 이미 남들의 이목을 끌어버렸으니까.


롤랑

공중정원도 그 승격자를 물밑에서 수색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들과 정면충돌할 때가 아니라고.


가브리엘

대행자의 의지는 곧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입니다. 아니면 지금 루나 아가씨의 결정을 의심하고 싶은 겁니까?


롤랑

난 충성심이 두텁지. 하지만 충성을 더 잘하려면 주인의 마음을 더 많이 헤아려야 하거든.


가브리엘

그러면 당신의 충성을 행동에 더 많이 쏟으십시오. 말로만 그치는 헌신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악독한 특성이니까요.


롤랑

자꾸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걱정이 든다니까. 루나 아가씨가 그 승격자에게 이토록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가 설마 나를 해고하고 내 자리를 대신하려는 거 아닐까?


롤랑은 과장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여행자의 일상적인 농담에 가브리엘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브리엘

이 승격자는 확실히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인류와 연결한 최초의 승격자로서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연구 가치가 있기에 루나 아가씨가 그를 잡으려 할 수도 있지요.


롤랑

정말 이게 원인이라고 생각해?


롤랑은 아연실소하며 말했다.


가브리엘

루나 아가씨에게 다른 고려 사항이 있을 순 있지만, 이건 제가 추측할 것이 아닙니다.


가브리엘

루나 아가씨가 그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약탈해야 하며, 루나 아가씨가 그를 파괴해야 한다면, 우리는 짓밟아야 합니다.


가브리엘

상대가 같은 승격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롤랑

이것도 루나 아가씨를 위한 건가?


가브리엘

루나 아가씨를 위하여, 또한 승격 네트워크를 위하여.


롤랑

...


롤랑

그럼 위대한 승격 네트워크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너에게 다른 구역을 맡길게.


가브리엘

가서 뭘 할 건가요?


롤랑

잊지 마. 그 승격자를 찾는 것 외에도 우리는 자격을 갖춘 자를 찾아 선별해야 해.


롤랑

마침 몇 가지 표적을 노리고 있었거든. 지금은 그물을 걷어내야 할 때야.


롤랑

네가 나를 도와 이 일을 대신하고 싶다면야 나로서는 고맙기 그지없지.


가브리엘

저는 진작에 당신에게 불필요한 추가 행동으로 선별 과정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만.


가브리엘

자질이 있는 자라면 직접 루나 아가씨 앞으로 데려오면 됩니다. 승격 네트워크가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가브리엘

당신의 그 지루한 게임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롤랑

에휴, 자꾸 날 억울하게 만들지 마. 나도 정말로 자질을 갖춘 자를 고르기 위해서니까.


가브리엘

당신의 그 따분한 연출에 의지해서 말인가요?


롤랑

그것을 시련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가브리엘

그것이 부디 유용하길 바라지요. 다른 대행자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우리는 확실히 동료를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롤랑

네가 다른 대행자를 대비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


가브리엘

절대적인 힘을 가진 강자만이 자신의 의지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뒤처진 인류를 깨끗이 몰아낸 뒤 남은 것은 승격자 집단 간의 싸움이 될 것이지요.


가브리엘

저는 그들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다른 대행자가 승격 네트워크에 자신의 힘과 의지를 드러내는 그날을 말입니다.


가브리엘

그것은 곧...복음이 될 것입니다!


롤랑

그러니까, 넌 내 방법에 동의한다는 거지?


가브리엘

동반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저는 항상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가브리엘

다만 당신이 보낸 시간이 유용하길 바랄 뿐, 이는 단순히 당신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롤랑

걱정 마, 이번에는 대어를 잡을 것 같아.


롤랑은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롤랑

과연 그들은 어떤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