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정원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후, 리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암살을 돕겠다고 소리친 적도 없었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리… 정말 문제 없는건가?


보고서와 서류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저녁 무렵에는 늘 그런 걱정이 앞섰다.


문제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지휘관 : 리? 괜찮아?


리 : 괜찮습니다….


실내의 목소리는 다소 침울했지만 부상이나 다른 문제처럼 들리지 않았다.




리는 객실 내부를 정돈한 채 침울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공책을 뒤적거렸다.

같은 노트에 다른 글씨가 나타나면 첫 페이지부터 뒤로 넘겨 한 장씩 넘겼다. 둥글둥글한 글씨가 점차 날카로워진다.


리 : 엉망진창이네...


다시 첫 페이지를 넘기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질구레한 기록들을 바라보았다.

둥글고 여리여리해 보이는 필체가 노트에 적혀 있다.



《총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을 때 실수로 지휘관의 귀를 스쳤을 뿐입니다.

그 기습당한 지휘관의 감염체도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감염체는 원래 이런 괴물이었습니까, 무섭네요.》



리 : 유치해...


이렇게 말하면서도 우유의 향기가 다시 미각 모듈을 가득 채웠다.

비록 구조체가 영양소가 포함된 복합 콜로이드를 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특별대우를 받았으니...


리 : ...


한 페이지를 넘기자 더욱 날카로운 글씨가 나오는데, 그 단계는 악화되는 모리의 병세와 생업으로 필체가 확실히 엉망이 되어있었다.


《감염체, 퍼니싱, 적조, 헤테로모이타…. 앞으로 마주할 것은 이런 어둠일까.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매우 달았어요.

지휘관이 이 무기를 이렇게 잘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스크림과 무기의 낙서가 책 끝에 나란히 그려져 있고, 그 뒤에는 그날 의자가 그려낸 호선처럼 길게 자국이 그려져 있다.


《모든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킬러가 어떻게 실수를 할 수 있습니까.

다만... 목표물을 본 순간 신체 본능이 정확한 포물궤도를 계산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리 : ...다행히 지휘관을 제대로 맞추지는 않았어.


이런 위험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두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상 간호실을 신청하는 건데...


책상 앞에는 임무를 받고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식물 때문에 몇 개의 잎사귀가 말라붙어 그 중 하나가 웅크리고 뒹굴고, 자연이 만들어낸 산들바람을 타고 노트 위로 떨어졌다.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필체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를 알 수 있는 글씨가 있었다.



《역시 지휘관에게 이 일을 알리지 말고, 임무에 나가는 척하고 빈 방을 찾아 가만히 머무르십시오.》


...그레이레이븐 소대의 임시 파견은 해당 지휘관의 구두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장기 임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그 때, 그레이레이븐으로 막 부서를 이동해서 동료든 지휘관이든 항상 경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뒤의 필체는 앞 부분과 거의 비슷했고, 일부 의식해 검사 데이터와 이번 의식해 혼란에 대한 추측이 난잡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시모프의 보고서상으로는 기체 이상 데이터 유출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인데, 이런 신형 기체의 어떤 상황이 이런 데이터 침적을 초래했을까?


몇 차례 밤늦게 외출했을 때 지휘관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휘관은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고, 주변에는 특수기체에 대한 각종 보고와 자료들이 쌓여 있었어요.


지휘관도 요즘 힘들었을 겁니다.

뭐라도 남겨두죠. 감사의 표시로. 기념으로 삼아도 좋고요.》


노트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리 : …이런 일을 기념할 게 뭐 있어.


노트를 덮자 의식의 바다가 서서히 정리되며 기억이 섞이기 시작했고, 희미한 조각들이 마치 컬러 영화처럼 의식의 바다에서 생생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빛깔이 기억의 빈자리를 채우고, 낡고 작은 갈라진 틈조차, 조금씩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실내의 휴관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갑자기 멈추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입구에서 두 바퀴를 돌다가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 하자 문이 열렸고, 리가 작은 줄칼을 들고 무표정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리 : ...뭐하는 겁니까.


-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 선택

- 크흠...


리 : 지나가요? 제 방이 어떤 필수 장소로 가는 길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리는 약간 비켜서서, 들어와 얘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실내의 휴게실은 예전과 다름없이 깔끔했고-- 책상 위에 공책 한 권이 펼쳐져 있어 특히 눈에 띄었다.



리, 일기 쓰기 시작했어? <- 선택


리 : 일기가 아니라 그냥...


아마 더 좋은 표현의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은 건지, 그가 드물게 머뭇거렸다.


리 : 그저 의식해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기록으로 의식해 문란 증상에 대한 연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오늘 저녁 7시에 휴게실에 와줘. 할 말이 좀 있어서. <- 선택


아시모프의 추측대로 의식의 바다 파편 청소의 진도를 따지면 이 시간에는 의식의 바다가 거의 다 청소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쪽지를 준비해 안방 문에 붙여 놓고 리가 다시 의식이 바뀌어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했다.


리 : 지금 당신은 너무 신중하고 꿍꿍이가 있어 보여서, 휴게실에서 절 기습할 생각인지에 대한 의심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붙어 있는 종이 메모지를 보며, 리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리 : 하지만 지휘관의 요청이 있었으니… 오늘 밤 저는 제시간에 도착할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려다가 멈춘 뒤, 리는 손에 든 작은 줄칼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 선택


리 : ...요즘 제가 폐를 많이 끼쳤죠.


리 : 이런 이상한 의식해 문란 증세는, 저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 <-선택


리 : 이 증상이...치유가 안 되고 정리도 안 되면요?


예를 들어, 이렇게 영원히,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간헐적으로 의식장애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럼 내가 은퇴하면 돼. <-선택


리 : ?


은퇴하고, 같이 교환 상인으로 일하자. <-선택


간헐적으로 의식불명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구조체 기반의 전투 능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염체를 청소하는 교환상인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리 : ...

리 : 들어보니 괜찮은 것 같네요.


그래서, 너는 지금 어때? <-선택


리 : 의식의 바다 청소가 곧 끝날 것이고, 제가 방금 말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은 상황을 가정한 것일 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리 : 크흠, 그리고 요 며칠 동안 번거롭게 한 답례로, 당신에게 뭔가를 드릴 생각입니다.


리 : 뭔가 갖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예를 들면 총기 수리 도구라던가? 아니면 새로운 보조 로봇?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분명 리의 성격상 한동안 혼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럼, 노트 좀 줄 수 있어? <-선택


리 : 무슨 노트요?


의식의 바다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증상을 기록했다고 하지 않았어? <-선택


의식해 문란 증세가 기록된 노트도 연구해 보면, 그 안에서 나타나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리 : .....


리 : 알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할 줄 몰랐다는 듯 리는 뻣뻣한 자세로 한 발짜국 뒤로 물러섰다.


리 : …또 다른 건 없습니까?


- 없어. <-선택

- 저녁에 보자.


리 :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는 경직되고 조용하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살짝 막으며 문을 닫았다.



여느때처럼.




======================


늦어서 미안하다... 입시 때문에 뭐빠지게 바빴음

리 말투가 계속 바뀌어서 오역, 의역 다수 있을 수 있음


노안 호감스의 우리 도망치자에 이은 우리 은퇴하자 입갤 ㅋㅋㅋㅋㅋㅋ... 호감스에는 뭔가 있다 ㄹㅇ


6장도 최대한 빨리 올려볼게 암튼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