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극작가의 즉흥으로부터 시작된다.



며칠 뒤, 예술협회.

원래 아이라가 혼자 썼던 작업실에 두 명의 뉴 페이스가 등장했다.

창설된 지 일주일도 안 된 '홍앵' 소대의 지휘관 시카와 대원 중 한 명인 트로이는 대장 아이라의 도움을 받아 매일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긴급 예술 훈련'을 받고 있다.



트로이

내가 붓을 집을 날이 올 줄이야...

마치 은퇴 실버타운 같은 곳에서 젊은 자원봉사자를 따라다니며 단기 예능 과목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미묘하군.


시카와 트로이는 진열된 과일과 꽃꽂이 앞에 앉아 무릎 위에 스케치용 캔버스를 얹었다.



아이라

트로이, 황금시대에는 환갑의 나이에 그림을 처음 접한 몇몇 예술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성취는 결코 남들보다 뒤지지 않았어요.


아이라는 소리 없이 두 사람의 등뒤에 나타나 두 사람이 완성해 가는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트로이의 도화지는 어지러운 선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는 요즘 그림 실력이 거의 늘지 않았지만 아이라는 "잠재력이 있다!"고 평했다.


트로이

소일거리로는 나쁘지 않아. 황금시대에는 '골동품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만으로도 인기 있는 오락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회화 외에도 그녀들은 아이라를 따라 황금시대, 더 오래된 예술품과 공예품이 보관된 예술협회의 컬렉션 룸으로 들어갔었다.


트로이

왜 그 당시 영감들이 이른바 골동품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러 가는 걸 좋아했는지 갑자기 이해가 되는군...


아이라

이건 제가 자료에서도 읽은 적이 있어요! 앨런 회장님은 젊었을 때 유난히 그 쪽에 소질이 있으셨던 모양인데, 워낙 눈치가 빨라 여러 곳의 골동품 가게로부터 출입을 통제당했다고 해요.

여러분이 거기서 흥미를 얻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우리 소대의 성격으로 아무래도 좀 특별한지라, 다른 소대와 달리 이런 것도 필수 소양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시카

홍앵의 창설은 앞으로 추진될 지상 재건 계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고고학 소대의 구조체 선배들에게 임무 수행 시 현장에서 어떤 사물이 보호 가치를 갖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저 또한 꼭 필요한 연습이라고 생각해서 앨런 회장님에게 특별히 신청했어요.


트로이는 시카의 스케치를 힐끗 쳐다보았다. 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이라에게 배우기 시작했지만 시카의 발전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아이라

시카는 윤곽선에 대한 감각이 매우 기민한데, 혹시 전에 기초를 배운 적이 있었나요?


시카

파오스에서는 탄도 계산도나 지상방어요새의 배치도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도면에 대한 지식을 배운 적이 있었어요

참, 모처럼의 기회인데 아이라씨가 시범을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아이라가...예술협회 사람들이 평소에 어떻게 창작하는지 보고 싶어요!


트로이

하긴, 유명한 예술가라고 들었는데, 그림 한 점이 공중정원에서 수만 장의 블랙카드에 팔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하군.


아이라

그건 생계유지의 측면이 커요. 가능하다면 제 그림이 너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걸 원하진 않는데...사실 수집 매니아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새로운 그림 도구를 마련해야 하고 평소에도 예술협회를 운영할 경비가 필요하니까….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인 셈이죠.


시카

현, 현실적인 이유였네요...


아이라

아무튼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무리하는 걸로...


아이라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이 쓰던 화대를 꺼내 판을 고정시킨 뒤 새 도화지를 꺼내 고정시켰다.

자신의 화가 모자를 쓰자, 곧바로 작업 모드로 전환했다.

펼쳐진 그림 도구함에서 필요한 작화도구를 꺼내 시카가 스케치했던 정물 더미를 바라보며 아이라는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연필로 간단하게 초고를 올리고 물감을 맞춘 뒤, 아이라는 물감 쟁반을 들고 붓을 쥐며 흑백 선만 있는 도화지에 색을 입혔다.


아이라

이건 이렇게...그리고 여기는...

아마...이런 느낌이겠지?


물감을 묻힌 붓이 종이를 넘나드는 것은 마치 둥지를 짓기 위해 새가 날아다니며 나뭇가지를 물어오는 것과 같았다. 색깔이 쌓여가자 어느새 살아 있는 듯한 그림이 그 작고 창백한 상자 안에서 탄생했다.

자신의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시카와 트로이를 향해 아이라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아이라

형체, 색채, 빛ㅡㅡ이것이 회화의 기본 요소예요. 바로 이 세 가지로 역대 명화가들이 대를 이어 평생의 열정을 그림에 쏟아부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표준적인 형체를 그리고 가장 정확한 색을 내고 가장 과학적인 빛을 분석한다고 끝인 것은 아니에요.

평론가들은 다양한 이론으로 장면의 배치, 색채 활용을 분석하지만, 막상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어 올릴 때는 단순한 테크닉이 작품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아니랍니다.

정말 중요한 건… 상투적인 말로 '창작자가 생각하는 것을 주입하라'는 거죠.

표현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 완성하고 싶은 것…. 이런 소망에 이끌려 화가는 붓을 꺼내게 되는 것이에요.

회화뿐 아니라 음악·연극·문학·무용…. 다른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이 지론은 통한다고 생각해요.

아참,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이런 주제들이 너무 심오하다든가 보통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시카

무슨 의미예요...?


아이라

공중정원에서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치스러운 일로 보이기 마련이거든요.

예술 협회가 정부 보조금을 가지고 엉뚱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결국 저희는 그림이나 음악으로 침식체와 승격자를 감화시킬 수 없어요.

하지만, 예술은 "공중누각"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숭배받는 신이나 제단이 아니라 더 생명력이 있고 더 친근한 사물이 되어야 해요.

전쟁 상황에서라도 예술이 행운아들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으로 여겨져서는 안 돼요.

창작은 사실 그렇게 신비롭고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아님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요. 여러분이 방금 한 것도 스스로 창작하는 행위랍니다.

이것은 예술 협회가 존재하게 된 의미 중 하나이며, 협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자 아이라는 캐주얼하게 그린 이 작품에 마지막 한 획을 더했다.



시카

의미와...목표?


아이라

제 말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전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을 뿐이거든요.

그 바탕 위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쁠 것 같아요.


???

그래, 사이좋게 지내는 것 같군.



잿빛 머리를 한 중년 남자가 어느새 열린 문 앞에 서 있었고, 세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작업실로 들어갔다.


시카

앗...오신 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앨런 회장님.


앨런

여기는 군대가 아니니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어, 시카 양.


트로이

예술협회의 회장...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트로이입니다. 참, 저를 소대 우선 명단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앨런

소대의 구성원 명단은 내가 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의 의견도 많이 섞여있었어.

당신 같은 베테랑 구조체가 합류하게 되어 나로서는 영광이야.


트로이

설마 베살리 씨가 당신에게 저를 추천한 것은 아니겠죠...하지만 지금의 저에게 있어 다른 곳보다 이곳이 더욱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런

허허, 다들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아이라

앨런 회장님, 중요한 일이 생겼나요?


앨런

구체적인 사항은 다소 복잡해. 물론, 추후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간단히 말해서, 너희들은 곧 이 소대로서 맞이하게 되는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야.



웰스

어떤가? 좀 더 자세한 분석 결과는 산출할 수 있겠나?


참모부원A

아닙니다...이름 모를 전자기 교란 때문에 집행부대를 보내 현지에서 정찰하지 않으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웰스

신호 방해라...출처를 알 수 있을까? 또한 상대방은 우리와 소통할 의도는 있는가?


참모부원A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몇 가지 암호화 수단의 전파 전송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고고도 무인기가 촬영한 최대 정밀도의 이미지에 따르면 이 지역은 인간이 활동한 흔적이 없는데…. 반면 적은 양이지만 도시 내에서 활동하는 기계체 여러 대가 관측되었습니다.


웰스

퍼니싱에 침식된 기계체...? 불가능해. 이곳은 아직 이중합 타워의 영향권 안에 있다. 퍼니싱 바이러스가 이전에 존재했더라도 현재 농도는 안전 임계치까지 낮춰졌어야 해.



하산

웰스,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후, 하산 의장이 문을 밀고 들어와 웰스에게 물었다.


하산

이전에 위성이 감지한 이상 신호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웰스

최전방 집행부대에 의한 조사 결과는 없고, 지금으로선 대략적인 추측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구체적인 암호 알고리즘은 아직 해독 중이지만, 이 신호에 사용된 암호화 수단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지상 세력의 것도 아니며, 황금 시대의 유산도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하산

혹시 승격자 세력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들은 퍼니싱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으며 저농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죠.


웰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전 이중합 타워 작전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장소에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려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하산

상대가 누구든 제대로 해독할 수 없다는 점만으로도 경계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또 드론이 보내온 영상으로 볼 때, 이곳의 이상 상황은 당장 집행부대를 파견해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웰스

니콜라 사령관은 어떻습니까? 참모부는 이런 임무의 경우 케르베로스나 무스 같은 엘리트 소대가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기밀유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레이 레이븐과 차징팔콘도 고려해 볼 수 있죠.


하산

니콜라는 이중합 타워 주변 전반의 탐사를 총괄하고 있어 당분간 이쪽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한 이 소대들도 이미 각자의 구역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중합 타워 작전에 투입된 집행부대의 사상자 비율을 감안해 아직 휴양 조정 중인 소대가 적지 않으므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여유는 많지 않습니다.


웰스

시몬이 지휘하는 한양소대는 어떻습니까? 구조체 노안의 '관찰보호'기간은 이미 충분하고, 시몬도 이중합 타워로 인한 혼란에서 회복되었으며, 팔루마와 릴리안의 상태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하산

노안의 경우는 좀 특수합니다. 승격자의 활동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한양소대는 가급적 현장에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웰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하면 직책의 범위 밖이지만, 정화부대를 동원한다면….


하산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웰스.

소집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팀이 있지 않습니까?


웰스

예술 협회에서 나온 그…? 홍앵소대의 설립은 아직 심사 단계에 있고, 인원도 모두 잠정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이번 임무의 조건에 부합할 수 있습니까?


하산

그런가요? 저는 오히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매우 훌륭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 아이라는 예술협회 출신이지만 경험이 풍부하고 우주정거장의 이합체 핵심 작전 수행에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탰었고, 트로이는 공중정원 조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복무 중인 원로 구조체이며, 마지막 주자는 비록 경력은 짧으나 니콜라가 그녀에 대해 평가한 바 있습니다.

소대의 지휘관도 당신이 직접 선정한 파오스 수석이니 웬만한 베테랑 소대 기준에서 이렇게 호화로운 편제도 없겠지요.


웰스

하산 의장, 설마 진지하게 하는 말은 아니겠죠?


하산

허나, 무엇보다도 예술협회장 본인의 주문이 있었습니다.


웰스

앨런? 그가 홍앵소대의 임무 수행을 요구했다고요?


???

허허, 바로 그겁니다. 웰스 양반ㅡㅡ아니, 참모장.


앨런은 웰스의 약간 놀란 시선을 받으며 작전실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아이라가 이끄는 홍앵소대 3명이 따랐다.



앨런

이번 임무는 새로 창설된 홍앵소대가 수행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심사 기간 중이니, 현장 임무를 심사 내용으로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게다가 이번 임무의 장소는…예술협회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라

황금시대가 남긴…도시?



지상 드론에 올라온 이미지 데이터를 재구성한 홀로그램 영상이 작전실 중앙에 투사되었고, 하산과 웰스의 간단한 설명을 들은 아이라는 청록색 가상도시 모형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하산

정확히는 미완성의 도시였고, 황금시대에는 전체적인 설계와 지반계획만 완성되었을 뿐, 사람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네.

실제 건설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퍼니싱 바이러스가 폭발하면서 도시는 버려졌지.

이후 이 지역 주변은 고농도 퍼니싱으로 뒤덮인 중재해 구역으로 변했다.


웰스

이중합 타워가 반전되기 전까지는.


하산

…얼마 전 이 도시의 원래 위치로부터 이상한 신호들이 포착되었고, 신호 내용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다 방금 본 것과 같은 것들이 위성과 드론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네.


하산의 말이 끝나자 영상의 해상도가 확대되었다.

단순히 겉모습만 보면 지금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도시였다.

새로운 건물과 거리, 복잡하면서도 완벽한 입체궤도교통...인간이 현재 이용하고 있는 보육구역과는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퍼니싱에 의해 파괴된 흔적이 없었고, 마치 길고 절망적인 면역시대와 반격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마냥, 시간이 영광스런 황금시대에 영원히 멈춰져 있는 것 같았다.



트로이

그야말로 지난 몇 년 만에 만들어진 신도시와 같은데…. 그러나 현재로선 그 어떤 인간세력도 해낼 여력이 없지 않습니까?


웰스

그렇네. 여과탑의 보호가 없다면 황량한 폐허가 되었을 텐데...사실 도시 주변 대부분의 지역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지.

그러나 가장 중심적인 부분만 잘 보존되어 있어 마치 누군가가 애써 지키고 있는 것과 같네.


시카

하지만 인간이 움직인 흔적은 없고…. 기계체가 배회하고 있는 건가요?


황금시대의 유적, 겉모습만 남은 무인도시…. 이 시점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시카

...

하산 의장님, 웰스 참모장님. 혹시 백로소대가 이전 임무에서 특이한 행동 패턴을 지닌 기계체를 조우한 적이 있었습니까?


시카가 갑자기 말을 던지자, 하산은 웰스와 눈빛을 교환했고, 이를 깨달은 이들의 얼굴에는 심각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산

그 기계체의 잔해는 공중정원에 의해 회수되었고, 과학이사회는 그것의 전자뇌를 연구하고 있네…. 아시모프에 따르면, 그의 기저사고회로에 프리셋에는 없는 수많은 이상코드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그 이상에 대한 원인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네.


웰스

그러나 그 고아원의 상황은 확실히 많은 참고가 되지.

자네의 말은 이 도시도 백로가 조사했던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이상 기계체가 관리하고 있다는 뜻인가?


시카

바네사 지휘관은 저에게 해당 임무와 관련된 세부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규모 차이는 크지만 기존 정보를 종합해 판단할 때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산

요컨대, 우리는 모두 이 도시를 현지 정찰할 소대가 필요하다.

앨런 회장의 말대로라면 예술협회의 배경을 갖춘 홍앵소대가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보네.


앨런

맞습니다. 대퇴각 당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황금시대 문명의 유물을 회수하는 일은 본디 예술협회의 몫이었으니까요.

이 도시 자체가 인류가 면역시대에 진입하기 이전, 황금시대 말기에 인류 군집문명이 최후까지 발전시킨 '결정체'를 상징하죠.

황금시대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많은 예술협회 회원들도 분명 그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산

원래 홍앵소대를 증설하기로 결정할 때 이러한 고려사항이 있었네. 그러니까 이번 임무의 결과로 홍앵소대가 존재의 필요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어떨까요, 웰스?


웰스

...집행부대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이견은 없습니다.

앨런 회장의 말대로 이 도시와 예술협회 사이에 인연이 있다면 예술협회 회원들이 조사를 맡는 것도 당연하지요.

아이라, 자네는 예술협회 출신이자 홍앵소대의 리더네. 너의 의견은 어떤가?



아이라

...


아이라는 단말기가 투사하는 입체 영상과 영상 옆에 표시되는 좌표 지형 정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었고, 분홍색 눈에는 복합적인 광채가 감돌았다.


시카

아이라 씨...? 뭔가 알아차린 게 있나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카는 언제나 웃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듯한 아이라가 이렇게 진지하고 엄숙한 기색을 보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이라

(이 도시의 좌표는...며칠 전에 탐지한 세레나의 '고래 노래' 신호와 같은 장소...)

(우연일까...아니면...)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 올리고 눈을 감아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이라

저는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웰스 참모장님.

저희 지휘관도 마침 근질근질한 모양이거든요.


아이라는 시카에게 윙크를 했고, 시카는 아이라가 방금 한 행동이 의심스러웠지만 긍정적인 눈빛을 보냈다.


아이라

이 임무는 홍앵소대가 수행하겠습니다.



시카

...아이라 씨는 방금 왜 그랬을까요?


회의가 끝난 뒤 시카는 트로이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고, 아이라는 그들에게 '나중에 봐요'라고 말한 뒤 서둘러 예술협회로 돌아갔다.


트로이

뭔가 단서가 잡혔을 수도 있어. 당장 협회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시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임무 시작 전에 우리도 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겠어요.


트로이

지휘관은 너니까, 어떻게 결정할지는 너에게 달렸다.


???

어라? 이건 1등학생 아닌가?


시카

흡...!


낯익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개구리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킨 듯 시카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약간 전전긍긍하며 고개를 들어 마주 오는 그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시카

좋...좋은 아침입니다. 바네사 지휘관.

그나저나     그 '1등 학생'이라는 호칭은...이제 그만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바네사

왜, 내 칭찬에 불만이라도 있어? 일.등.학.생?


바네사는 가볍게 웃으며 그 '애칭'을 더욱 강조하였다.


바네사

아니면 연수기간이 끝나자마자 나와 거리를 두고 싶은 거야? 새로운 '수석'답게 내세울 거라곤 스펙밖에 없는 평범한 지휘관인 나를 깔보려는 심산인가?


시카

그런 적 없어요, 저는 항상 바네사 지휘관을 존경한다고요!


트로이

바네사...백로 소대의 지휘관인가?


시카

네, 파오스에 계셨던 제 선배님이에요. 비록 제가 입학할 때 바네사 선배는 이미 졸업하기 직전이었지만요.

졸업 후 집행부대에 왔을 때 바네사 지휘관이 한동안 연수해 줬어요.


트로이

그런가...?


트로이의 다소 의아한 눈빛에 바네사는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렸다.


바네사

아니, 그냥 저 녀석을 괴롭혔을 뿐이야.


시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바네사

그리워라...귀찮은 서류작업은 다 떠맡아주고, 기분 나쁠 때는 언제든지 찾아가 화풀이를 할 수 있었는데...그렇게 훌륭한 따까리 겸 천덕꾸러기는 흔치 않다니까...

아참, 네가 처음 왔을 때 임무 브리핑 조판을 잘못 짜서 나한테 엄청 혼나고 밤에 휴게실에 숨어 몰래 눈물도 닦은게 아직도...


시카

잠깐...이런 얘기 해도 되는 건가요!?


트로이

(둘의 관계는 정말이지 복잡하군...)


바네사

자, 감동적인 추억은 여기까지야. 1등 학생, 원래 있던 소대가 해체되어 지금은 예술협회에 파견되었다면서?


시카

어...정확히 설명드리자면 예술협회는 인력만 지원하고 소대 편성은 아직 집행부대 쪽에...


바네사

흥, 됐어. 너처럼 쓸모없는 놈이라면 적이 별로 없는 곳에 가서 흙을 파내고 도자기를 닦는 것도 아주 적합하니까.

어쨌든 너의 지휘 수준으로는 정면전장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지. 내가 너의 상급자가 된다면 너는 총알받이가 될 자격도 없을 거야.


트로이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나?


바네사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쓸모없는 쓰레기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아니야. 네 소대의 참모부가 해산시키기로 결정한 거라고.

잘 들어. 난 너 한 사람만을 겨냥한 게 아니야. 올해 신참 지휘관의 작전 효율이 이전보다 30%나 떨어졌다고 하지…. 하긴 너 같은 사람까지 수석이 되다니, 파오스의 졸업생은 정말이지 1기보다 못한 것 같군.

'공중정원 세대'라...하하, 인류의 미래가 너희 세대 손에 망쳐질지도 모르겠는걸?

만약 파오스가 나에게 신입생들의 지도를 부탁했다면, 전쟁터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을 가진 너희 같은 놈들을 학교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했을 거야.


시카

...


바네사

쯧...시시한 인사말만 실컷 했군. 나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바네사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흔들었다. 그 위에 구조체 자료가 많이 등록되어 있는 걸 보니, 그녀는 백로 소대의 새 멤버를 뽑기 위한 인선을 보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네사

안녕, 1등 학생.



트로이

예전부터 그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개성이 참 뚜렷하다고 밖에 할 수 없군.


바네사가 떠난 후 트로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시카

괜찮아요, 저는 이미 익숙해졌어요. 바네사 선배는 항상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누구에게든.

더욱이 그녀가 말한 것도 사실이라 반박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트로이

...

그래, 네가 의욕을 돋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시카

네! 그럼 지금 출발합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고 트로이와 함께 회의실 복도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