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는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자아가 도사리고 있다.



무수한 역광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거울마다 무기력하고 막막한 자아를 비추고 있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헛되어 손을 내민다.


시카

...


마치 등불을 쫓는 나방처럼, 영원히 그것이 바라는 종점에 도달할 수 없다.



???

세계정부연합군, 제 3포병연대, 구조체 연대, 르블랑 대위를 필두로 한 도합 127명의 용감한 전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기억될 것이고, 그들이 개척한 길은 우리가 물려받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인류의 자손들이여, 그대의 명복을 빕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축포와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성이 울릴 때마다 마음속을 옭아매는 끈이 점차 조여졌다.



???

그 녀석이 또 1등을 했네...랭스턴 선배랑 【지휘관 이름】 선배랑 비교당하지 않을까?


???

에휴, 그 사람들은 진정한 천재이자 엘리트 소대의 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영웅들이잖아! 시험이나 잘 볼 줄 아는 그 답답이랑 비교할 수 있겠어?

...그녀가 왜 수석이 될 수 있었는지 알고 있어? 그녀는 르블랑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이라고. 그 황금시대의 유명한 군인 가족 말이야... 듣자 하니 윗사람이 그녀를 사령부에 추대하려 했기 때문에...


???

진짜? 파오스가 그런 짓을 눈감아준다고?


???

하지만 사령부에 가진 않을 거래. 그녀의 제1지망도 지휘관이라고...

이것은 내가 친구한테 직접 들은 거야. 걔 아버지가 정보부쪽 사람인데 가짜일 리 없잖아? 지휘관으로서도 아마 고만고만한 수준에 금칠을 쫌 한 모양인데, 정말 그녀가 전선에 나갈 것 같아?


마음의 끈이 팽팽하게 조여온다ㅡㅡ



???

자네의 성적을 종합해보면 사관학교는 자네가 사령부 산하 참모부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고, 또 절차에는 맞지 않지만 감사원과 사법원의 고위층도 자네에게 관심이 많았었네.

...하지만 자네는 자신의 희망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군.

만일 이것이 자네의 고집이라면, 사관학교는 자네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팽팽하게ㅡㅡ



???

마지막으로, 파오스 사관학교를 대표하여 시카 르블랑에게 '수석 졸업생'칭호를 수여한다.

청년들이여, 영웅의 뜻을 이어받아 세계를 개척하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조여온다ㅡㅡ



???

전선이 붕괴되었다! 척후대와 선봉을 버리고 전선을 수축시켜 인원을 투사해 수비를 강화해야 이 공격을 견뎌낼 수 있다!

그들은 이미 구할 수 없어. 당신의 지휘는 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 거야!

아무리 많은 전술을 안다고 한들 어디에 소용이 있는지 기억해, 전쟁이 교과서에 묘사된 대로 흘러가는 줄 알고 있는 거냐!?


팽팽하게ㅡㅡ



???

네가 바로 새로운 '수석'인가? 쯧, 다른 사람과 헷갈리는 것을 피해야 하니까, 너를 1등학생이라고 부르면 되겠네.

객관적으로 말하면 사상자 수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은 너만의 책임은 아니야. 우리의 제1목표는 이 진지를 지키는 것이다. 침식체의 수가 예상을 뛰어넘는 이상, 약간 운이 좋지 않은 녀석들을 보내 공백을 메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

그런데 너의 그 부끄러운 태도는 도대체 뭐지?

구조체 몇 놈이 죽었다고 이런 꼴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데, 지휘부가 널 지휘관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까?

부하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사람이 전선에 남아 있을 필요 없어. 오늘 작전 보고를 총결산한 후에 즉시 너의 소대를 데리고 후방으로 돌아가 의료반 녀석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끊임없이, 팽팽하게 조여온다ㅡㅡ


그리고ㅡㅡ



???

파오스의 '수석'이 얼마나 뛰어날지 생각해봤지만, 그 몇 분이 오히려 특수한 사례였던 것 같군.

참모부에서 해산령을 내렸으니, 이 소대도 이제 끝이다.


팽팽하게 조여오는 현의 실이, 낭랑한 진동음과 함께 끊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고 있을 뿐이다.

정체불명의 빛 주위를 맴돌 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기계적으로, 무감각하게 걸음을 내딛고 오로지 전진을 자신의 직책으로 삼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헤매는 이유조차 거의 잊어버렸다.



???

'꿈'을 갖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실현하기 어렵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꿈이라도 좋아요.

이 길을 가는 사람들도 피할 수 없는 실패에 직면할 것이고, 그런 자신을 향한 위안조차 얻지 못할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바보'들의 몸짓은ㅡㅡ

눈부시니까요.



아이라

시카...시카...

음...잠이 덜 깬 건가?


트로이

대기권에 돌입할 때 소음이 장난아닐 텐데, 잠이 오는 건가...


드문드문 들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어 잠든 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더니 엄청난 원심력이 한바당 요동침과 동시에 몸을 뒤흔들어 잠의 기운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시카

우으ㅡㅡ!


아이라

오, 깨어났네요, 시카.


시카

어...음...

어!? 나 잠들었어? 지금 몇시죠? 설마 벌써 임무 장소에 도착했나요!?


출발 도중 자신의 심각한 실태를 깨달은 시카는 흠칫 놀라 허둥지둥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는데, 만약 안전 잠금장치가 몸을 고정시키지 않았다면 다음 순간 그녀는 시트 위에서 넘어졌을 것이다.



트로이

침착해. 착륙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남았다. 방금 적란운을 만나 잠시 상승했지만, 우리는 아직 대류권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이라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었죠? 마침 이참에 푹 자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시카

아니에요...임무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그랬던 건데 지금 자버리면 본말이 전도되버려요.

그...늦었지만 이번 임무에 대한 정보부터 통합합시다.


시카는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자물쇠를 풀고 전술 단말기로 가서 요 며칠 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시카

미지의 도시 001ㅡㅡ황금시대 명칭 '콘스타레예'는 '군집하는 별자리'라는 뜻에서 따온 신조어입니다. 총 디자이너는 미켈레 바사리로, 그는 황금시대 예술 협회의 주요 구성원이자, 또한 건축 예술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명인이기도 합니다.

콘스타레예의 건설은 퍼니싱의 폭발로 중단되었고, 미켈레 본인은 폭발 1년 전에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공중정원에 의해 재발견된 콘스타레예의 완성도는 원래 디자인의 20%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전회의에서 추정한 대로 비정상적인 기계체에 의해 유지 및 관리되고 있다면 이들과 무력 접촉을 취할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침식체가 아니더라도 이번 임무의 위험성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라

...과연 그렇네요. 그렇다면, 미리 준비한 이것을 유용하게 써 볼까요!


아이라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이어 전술 단말기의 아래쪽에 있는 어두운 칸에서 사물함 하나를 끌어냈다.

암호를 입력해 잠금을 해제하자, 기체 상태의 드라이아이스가 흩어지면서 접이식 사물함이 '딸깍'하고 열렸다.


트로이

이것은...


시카

침식체에 대비한 고주파 펄스 나이프, 광역 전자기 충격탄, 지휘관용 전술 권총, 특수 탄약을 갖춘 다목적 유탄총, 그리고 각종 전술 설비····


트로이

...어떻게 이런 걸 얻은 거지?


시카

이, 이건 모두 과학이사회의 최신 테스트 무기 아닌가요? 저희 소대의 무기 할당량에는 아예 이런 걸 신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맞죠?


아이라

흐흥, 개인적인 커넥션을 동원한 셈이죠. 마침 예술협회에는 무기 개발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과학이사회 사람들은 그냥 약~간의 테스트 비용만 지불하면, 이것들을 우리에게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말했어요. 결국 그 사람들도 신무기가 실전 환경에서 사용된 데이터를 원하니까요.


트로이

부자는 참으로 무섭구만...


시카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는 뭔가요...?


아이라

홍앵소대의 첫 번째 출격이니까 당연히 빈틈없이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시카는 이번 임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나요? 지휘관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리더인 저도 모범을 보여야죠.

여기에 지휘관이 쓸 무기도 많으니까 원하는 것을 골라 쓰면 돼요!


말을 마치고 아이라는 시카와 트로이에게 손을 뻗었는데, 마치 마녀가 헨젤과 그레텔을 사탕집으로 안내하면서 이곳에 있는 사탕은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시카

하지만...그...무기가 많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고, 휴대성도 고려해야 해서...


시카는 황급히 손을 흔들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자 안의 내용물에 시선이 꽂혔다.


시카

꿀꺽...


트로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걸...


시카

새로운 CI제 기관단총…혹시 7세대인가요? 저 파오스에서도 6세대를 쓰고 다녔는데…오오, 선택가능한 부품도 늘었는데…어, 방아쇠 안전장치 위치가 바뀌었네요?


트로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 신형 무기들에 눈을 빛내고 있는 시카를 힐끗 쳐다보았고, 곧이어 이를 어렴풋이 꺼내든 아이라에게 묘한 눈길을 보냈다.


트로이

나는 예술협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과 다투지 않고 인축무해한 예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너의 기체를 보면 구조체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도 있을 것 같군.


아이라

헤헤...다들 예술을 좋아하니까 예술협회에 가입한 거랍니다. 그 외에는 각자 사연이란게 있으니까요.

트로이와 시카도 언젠가 자신이 예술 연구에 관심이 있다고 느낀다면 언제든지 가입해주세요.


트로이는 아니오라는 대답 대신 말없이 웃었고, 아이라가 가져온 '커다란 선물 상자'안에 그녀와 어울리는 무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트로이

이 기체의 전용 무기는 분명 베살리 씨의 작품이겠지. 그녀가 자신의 디자인을 공유한다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군...우리 리더의 인격적인 매력이 쿠로노의 연구주임마저 정복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다고 봐야 할까?

그리고 이건...컴파운드 기계활에 맞춰 특수제작된 화살인데, 아직 만나지 못한 '네 번째 멤버'를 위한 건가?


시카

아, 레나 말인가요?


집행 부대는 보통 4인 1대 편제이며, 홍앵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이라와 트로이를 제외한 홍앵소대의 잠정 대원은 바로 '레나'라는 구조체였다.


아이라

앨런 회장님이 저에게 말씀한 게 기억나네요. 예전에 무스 소대에 있었다고 했죠?


시카

네, 일 년 전의 일이었어요. 무스 소대의 성격은 좀 특수해서, 구성원 자료가 모두 고도의 기밀로 처리되어 있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것밖에 없어요.

무스에서 나간 후, 그녀는 오랫동안 지상에서 단독 임무를 수행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공중정원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지휘부가 그녀의 인적사항을 계속 업데이트하지 않아...그녀가 어떤 모습인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몇 가지 이유로 지상에 머물렀었는데, 이번 임무에서 그녀는 스스로 목적지로 가서 직접 콘스타레예에서 저희와 합류하는 것을 신청한 것 같아요.


트로이

무스...사령부는 이 소대에 대단한 인물을 모아놓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지.


시카

트로이 씨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아카디아 대퇴각 이후 공중정원에서 복무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트로이

단순 복무기간만 놓고 보면 아마 현 정화부대 리더와 비슷할 거다. 그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뤘으니, 나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이전 임무가 남긴 의식의 바다 손상 후유증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강도 높은 정면작전에 나서기에 적합하지 않다.


시카

도대체 어떤 임무였기에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가요? 트로이씨의 이력도 어느 소대에 소속되었는지 적혀있지 않아서...


트로이

모르겠다. 이 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 소대에 대해서는...무스와 마찬가지로 조사할 수 없는 이상, 너희들이 모르는 편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아이라

음...마치 팀원마다 남모를 과거를 한두 개씩 쥐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아무도 몰랐던 신비한 힘을 폭발시켜 소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구도 같네요?


트로이

어디서 그런 이상한 인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만...정말로 그런 때가 오면 순순히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나한테 기대하지 마.


아이라

트로이는 첫 장에서 '너희 애송이들로는 어쩔 수 없군'이라고 외치면서 뛰쳐나가 앞서 등장한 최종 보스와 싸우기 위해 달려나가 자라나는 병아리들의 퇴로를 열어주는 그런 열혈파 같은데요?


트로이

...아니다.


아이라

아니면 겉으로는 정파 중에서 경력이 가장 오래된 대선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찍이 배후와 결탁해 중요한 전투에서 죽은 척할 계획을 세우고, 그 후에 신분을 속여 주인공 무리와 맞서는 이중간첩인가요?


트로이

상상이 너무 풍부한 것 같군...그리고 어느 쪽이든 나에게 아무런 결말도 없는 것 같은데?


아이라

저희 스토리가 대본이나 소설이라면 이렇게 디자인하는 게 좀 더 드라마틱하잖아요. 파란만장한 줄거리와 복잡한 인물 관계는 그동안 독자와 시청자를 사로잡는 금자탑이었거든요.


트로이

그래 그래...어쨌든, 우선 임무에 집중한다.


아이라의 진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트로이는 군중의 이목을 다시 끌기로 결정했다.


트로이

곧 목적지 근처 공역에 도착한다.



트로이의 말에 세 사람은 함께 창가로 걸어갔다.

짙은 구름을 뚫고 수송기는 고도를 꾸준히 낮추면서 대류층으로 뛰어들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 '콘스타레예'의 경치가 어렴풋이 보였다.


시카

황금시대, 인류가 건설한 최후의 도시...


시카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것은 그녀가 원래의 소대를 내보낸 후 첫 번째 임무이며, 그녀는 이번 임무도 또 한번의 '실패'의 경험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아이라

걱정하지 마세요.


귓가에 파고드는 속삭임 소리에 이끌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아이라를 바라보았고, 상대방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그 위로는 환청과도 같았다.

손을 유리에 붙이고, 아이라는 마치 무수한 별들의 바다를 건너 마침내 신대륙의 한 귀퉁이를 바라보는 모험가처럼, 보일 듯 말 듯한 도시를 응시했다.

왜 그녀가 그런 눈빛을 보일 수 있었을까ㅡㅡ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의문점이 착륙할 무렵, 엔진 조절 동력의 굉음에 뒤엉켜 부서졌다.


아이라

자, 이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