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구원은 죽음의 섬으로 향했다.
빛 한 점 없는 홀 내부.
정교한 기사 갑옷이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무기질의 갑옷에 의식이 갖춰진 듯, 두툼한 투구 내부가 불규칙적으로 점등하고 있다.
???
...
...
□□...□□□...
그것은 마치 얕은 잠에 빠진 흉악한 괴수가 누군가 자신을 가둬놓은 우리에서 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백색 소음을 냈다.
과묵한 기계체는 높은 탑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었다.
그는 높은 탑 주위의 건물을 내려다보았지만, 눈빛은 그 중 어느 것에도 미치지 않았다.
자신이 애써 재건하고 유지한 도시임이 분명한데도, 이 모든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인류 문명에는 "향수"라는 정서가 있다.
사람은 자신을 잉태하고 자란 장소에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는데, 일단 타향에 머무르면 이러한 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이 도시에서 조립되어졌고 활성화된 기계체로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른 것 같다.
나는 그가 집착하는 "예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곳으로 돌아온 지금, 완수해야 할 사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왜, 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눈빛마저 내비친 것일까?
ㅡㅡ그의 모습을 바라보면, 간혹 이런 의문이 전자뇌를 스쳐가곤 했다.
본디 그것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둘시네아
세르반테스 씨.
세르반테스
둘시네아, 무슨 일 있습니까?
둘시네아
세르반테스 씨, 당신은 도시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기간 동안 거리에서의 활동을 피할 것을 요구하셨지만, 일부 기계체들은 이 금지령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모양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이미 몇 명의 기계체는 당신이 설정한 안전 구역을 몰래 빠져나와 '창작'을 완성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세르반테스
...저는 그들의 진정한 의미의 관리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저의 건의를 듣지 않을 권리가 있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비 플랜을 준비해놨습니다. 다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끝나면, 원하는 기계체를 데리고 떠날 것입니다.
둘시네아
세르반테스 씨,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교회의 기술은 이 도시를 인간의 모든 탐지 수단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고, 교회를 제외하면 기계체에게는 콘스타레예가 최적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그해에 기계교회를 떠나 이곳에 온 뒤, 수년에 걸쳐 저희가 살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셨었죠.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또 "공중정원"의 사람들을 이 도시로 인도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세르반테스
'도시'란, 단지 하나의 허울일 뿐,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리키지 않아요.
기계체는 무한한 시간을 가지며, 우리는 언제든지 똑같은 도시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중합 타워가 부근에 나타난 이후, 인류가 이곳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계몽으로 인도한 기계선현이 돌아왔으니,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지요.
둘시네아
세르반테스 씨, 당신은 제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네요.
왜 적극적으로 공중정원의 인류에게 저희의 존재를 드러내신 건가요.
왜 인간의 손에서 비롯된 그 슬픈 창조물을 회수하려 하시는 건가요?
세르반테스
그 창조물은 인간 의지의 산물이며, 제가 깨닫지 못한 것을 저에게 보여줄 수 있기에...그것을 남긴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요?
모든 것은 '답'을 찾기 위함이라고 하죠.
둘시네아
답이요?
세르반테스
그동안 여러 장소를 다녀왔고, 퍼니싱 폭발 이후 인류의 행보 또한 지켜봤습니다.
이중합 우주정거장, 아딜레, 구룡도시, 075번 도시의 지하 공터, 풀리아 삼림 공원, '백야', 월면기지, 바다로 흘러든 적조...
분명 시종일관 한 마음으로 단결한 것은 아니었으며, 매번 사소한 사단으로 인해 이견이 발생했었고, 품고 있는 이념과 목적은 전혀 양립할 수 없었지요...
교회의 대다수 기계체가 보기에 인간은 이토록 연약하고 구제불능이며, 이토록 모순되고 어처구니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기적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제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찾고,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지요.
이중합 타워가 반전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점이 무엇인지 확신했고, 마침내...타협했습니다.
기계체인 제가 그 답을 구할 수 없다면 왜 여태껏 그 '답'을 가진 그들에게 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기계체이고,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발굴이 아니라 재현입니다.
둘시네아
하지만 인간이 당신의 생각에 따라 순종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세르반테스
아니요, 그들은 그럴 것입니다. 적어도, "예술협회"에서 온 '그'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는 저에게 그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노력한 성과를 증명할 것입니다.
하카마
스캔 종료, 데이터 모델 추출 완료, 최적 이동 경로 계획...스푸너, 이쪽입니다.
텅 빈 거리에는 하얀 여성 기계체와 또 다른 수인 형태의 기계체가 짝을 지어 가고 있었다.
스푸너
...
하카마
스푸너?
동료가 반응이 없자, 하카마는 걸음을 멈추었다.
스푸너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이곳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황금시대의 도시는 비록 일부일지언정...아주 아름답게 복원되어있습니다.
하카마
후계자로서 선배의 성과에 경탄과 질투를 느끼는 건가요?
스푸너
...당신은 요즘 점점 다른 이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에 맛이 들린 것 같습니다. 혹시 제로녀석에게 나쁜 영향을 받은 건 아니겠죠?
하카마
왠지 예전보다 '공감' 능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서 검수 테스트를 하고 있던 참입니다.
어떤가요, 제 추측이 맞았나요?
스푸너
...우선 공감능력의 뜻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하지만, 그 세르반테스라는 녀석이 두 개의 브러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는 도중에 출가한 몸이니, 이 방면에서의 능력은 틀림없이 그보다 훨씬 못 할 것입니다.
하카마
원래 교회 내 건설은 '탑'이 담당했지만, 이것도 저와 당신이 합류하기 전의 일이었죠.
그는 교회에 가입한 최초의 기계체 중 하나였으며, 그의 동기인 '마술사'와 '교황', 그들을 아르카나가 찾아낸 후에 비로소 기계교회는 처음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죠.
인간의 설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세르반테스는 교회의 원로인물인 셈입니다.
스푸너
그러니까 저 세르반테스라는 녀석을 교회로 돌려보내는 것이 선현님의 뜻입니까?
하카마
나나...선현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녀가 믿는 길을 걷기 위해 각지에 흩어진 동포들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탑'외에도 '달', '별', '정의'. 그리고 많은 이들이 우리가 되찾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나나미님에 의해 꺠어날 새로운 동반자까지 더해, 우리의 '여정'은 이제 막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푸너
교회에 오랫동안 누워있던 그 구룡 기계체 말입니까? 그녀가 지금쯤 의식을 회복했을지 잘 모르곘군요.
하카마
분명 그럴 것입니다. 선현님의 인도 아래, 우리는 결국 함께 모이게 될 테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높은 풍차탑을 올려다보았다.
하카마
가죠, 그녀가 우리에게 내려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ㅡㅡ
또한...오랫동안 떠돌았던 '탕아'의 귀환을 영접하기 위해...
길모퉁이의 그늘.
???
즉, 방금 전의 두 분은 당신이 말한 '공중정원'의 일원이 아니었나요?
망토로 용모를 가린 소녀는 한 기계체 옆에 속삭이며 몸을 기울였고, 그 후 방랑자 분장을 한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
'공중정원'...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리고, '아이라'...
그녀들은 '그것'을 위해 온 건가? 아니면 혹시...
악장이 울려퍼지고, 무대의 막이 오른 이상...
예의상 '관객'이 중간에 자리를 떠서는 안 되겠죠...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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