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동경하는 결말이 결코 해피엔딩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트로이

그 세르반테스라는 기계체가 구룡도시뿐만 아니라 진짜 곡도 만났을 줄은 몰랐다.


아이라

구룡의 전시장이 두 파트로 나눠져 있는 것을 보면 퍼니싱 폭발 직후 구룡을 떠나는 야항선에도 올랐을 거예요.

더욱이 극지와 아직 탐험하지 못한 전시관까지 더해보면, 아마 세계일주를 했을지도 모르겠고요.


트로이

그는 어떤 사물에 대해 집착하는 것 같다.


아이라

네, 콘스타레예로 돌아가서 이 예술관들을 짓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취한 행동들은 아마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을 거예요.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그가 섬겼던 그 주인, 콘스타레예의 설계자인 미켈레 바사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트로이

미켈레...그도 예술협회 출신 아닌가. 그의 업적은 너희들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아이라

어, 맞아요. 그런데 미켈레와 예술협회의 전임 회장은 서로 탐탁치 않게 여겼었는지, 협회를 탈퇴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협회 업무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참고할 만한 기록도 별로 남기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콘스타레예의 건설은 비밀리에 이뤄져 그가 사망할 때까지 미켈레의 만년 행적은 협회 구성원 대부분에게도 수수께끼였어요.

퍼니싱 사태가 터진 뒤, 예술협회는 황금시대 자료 상당수를 잃어버렸고, 많은 구성원들이 결국 공중정원에 가지 못해 더더욱 찾을 길이 없었지요.

앨런 회장님이라면 속사정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요.

원래 이 방면의 단서를 유심히 살펴보려고 했는데 그때 당시 저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구요.


트로이

당시 입수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이를 간과한 것도 정상일 것이다.

적어도 3일 전의 나는 내가 지금 예술관에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아이라

하긴 저도 도시를 점령하고 자신보다 더 큰 거대 기계를 몰고 영토를 다투는 사악한 로봇 무리를 매일같이 만날 줄 알았는데...

아니면 이 도시가 지하에 영점 에너지 반중력 엔진이 숨겨져 있는 거대한 기계 요새에, 작동만 하면 완전무장한 공중 요새가 될 수도 있었고….


트로이

...이젠 세계관까지 바꿔버릴 작정인가?


아이라

이 세상에 상식을 뒤엎는 이중합 타워까지 나타났는데 거대 로봇과 공중요새가 허락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트로이

...정말 이런게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나?


아이라

상관없어요. 우리는 용감하게 나서는 영웅들을 응원할 수 있잖아요? 그때쯤이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 천공대전, 공중환상요새》나 《신 차징팔콘 전기 : 유성작전》같은 거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예요.


트로이

...네 감정은 스스로 해소하고 싶지 않나?


아이라

저는 화가예요. 화가의 본업은 당연히 그림을 그리는 거죠.


트로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토를 달아야 하나...



공략이 끝난 구룡도시 전시관을 지나고, 아이라와 트로이는 전시관을 잇는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복도 벽에 나란히 기대어 있는 초췌한 두 사람이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보였다.


트로이

너희들 이미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군.


아이라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카

...


레나

...


시카와 레나는 트로이와 아이라의 인사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정확히는 대답할 힘이 없었다.


시카

레나...아이라 씨 일행이 도착했어요. 어서 출발해요...


레나

...닥쳐, 좀 더 누워 있게 냅 둬...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은 말다툼을 벌일 기세조차 없어 보였고, 15분쯤 지나서야 레나와 시카가 겨우 일어섰다.


트로이

보아하니 다친 곳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운이 빠져버린 거지?


레나

아니, 지쳐 쓰러질 지경인 건 그녀야. 난...일종의 노이로제에 걸린 셈이고.


레나는 시카와 동행했던 경험을 떠올리기 싫다는 듯 이마를 감쌌다.


레나

전투 때마다 내가 지정한 안전 범위 밖으로 뛰쳐나갔고, 몇 번은 나보다 앞섰고, 오로지 몸으로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전술만 생각했지….


시카

저희는 애당초 전력을 분산시켰는데, 이때 더 과감한 방법을 쓰지 않고 몸을 사리면 작전 시간이 늘어져 아이라 씨 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어요.

왜 저를 신뢰하지 않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저는 파오스의 졸업생이고, 실전에 투입된 경험도 있었다구요!


레나

신뢰...?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기대한다고? 이름만 아는 구조체에 목숨을 걸고 싶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야? 파오스는 구조체와 지휘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했었는데?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하든?

지휘관은 구조체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지 격의 없는 전우가 아니야.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전술을 짜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나친 믿음이 전장의 의사결정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선례가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는 거야? 한두 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그 이면의 위험을 무시하는 것은 임무 수행에 악영향을 줄 뿐이야.


레나의 잇단 힐문에 어리둥절해진 시카는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처음보다 기세가 많이 약해졌다.


시카

하지만, 분명 그렇지 않아요ㅡㅡ

그레이 레이븐 소대 같은 경우도 있잖아요...【지휘관 이름】 선배가 이끄는 소대...

구룡도시, 풀리아 삼림 공원, 이중합 타워 작전...분명 그 많은 실제 사레가 있었는데ㅡㅡ



지휘관

우리는 어쩌면 평생 동안 결과를 얻을 수 없는 답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가치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내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외롭이 걷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 중 어느 것 하나 개인적인 성취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대원, 저의 은사, 저의 전우들...

그들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입니다.


시카

...



???

공중정원의 "영웅"인 당신의 아버지는 면역시대 이후 처음으로 구조체 개조수술을 받은 군인이었는데, 그의 딸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탄탈-193 공중합체 상성이 기준에 미달하여, 우리는 당신에게 구조체 개조 수술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혹시 지휘관이 되는 것은 어떤가요? 이 또한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제74번 도시 공방작전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다시 한 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



바네사

어떻게 구조체의 신뢰를 얻을 셈이지?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야?

구조체는 물건, 도구이며, 승리를 위한 수단이지 너와 우정 게임을 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야.

넌 고장난 도구를 사용할 때마다 가슴이 아파? 감수성이 넘쳐 흐르면 지휘관이 될 수 없어. 지난번의 피닉스 소대가 그랬었지, 그와 그의 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참, 내 앞에서 그레이 레이븐 소대에 대해 말하지 마, 그 녀석들 때문에 내가 상처를 입은 거니까.

감히 그런 지휘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조지

널 믿으라고? 난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계집애랑 무슨 감정따위 쌓고 싶지 않아.


랜돌프

파오스의 수석을 붙여줬다고 해서 왠 일인가 했더만…… 흥, 그냥 우리더러 가정부가 되라는 거 아냐?


제시카

에휴...앞으로 작전이 있으면 잠자코 후방에 있어. 우리야 수고를 덜으니 좋고, 너도 '커리어 갱신'을 할 수 있으니,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보기 좋겠지?



웰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는 제2의 크롬도, 제2의 【지휘관 이름】이 될 수도 없다.

자질, 잠재력, 실적, 모두 불가능해.



시카

저는 단지 그들...제가 꿈꾸었던 그 사람을 상상했을 뿐이에요.

단지 그들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구요ㅡㅡ


트로이

...

레나의 말도 일리가 있다. 우리는 서로 알게 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내가 일전에 받은 교육 역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의 등 뒤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지 말라는 것이었으니까.

하물며 육신의 인간이라면...지상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카

...아이라 씨,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이라

음...레나의 츤데레 속성을 저도 어렴풋이 느꼈어요. 마치 혼자 사는 데 익숙한 길고양이처럼 건어물 몇 조각 줬다고 해서 당신에게 안기지 않겠다는 거죠.


레나

...그런 이상한 비유로 묘사하지 마! 그냥 그녀에게 부대의 기본 상식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니까.

너는 리더고, 지상에도 여러 번 내려온 경험이 있으니까,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 알고 있을 거야.


아이라

시카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항상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을 주목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아니죠?


시카

...


아이라

우리는 다른 소대와 달리 인원 편성과 전망이 복잡하다고 해야 할까….

이 소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당신이 어떻게 해야 홍앵을 그런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결국, 당신은 '홍앵소대'의 지휘관이니까요.



트로이

...


트로이는 거리의 가로등 하나에 기대어 팔뚝의 개인 단말기를 조용히 돌려보았다.

차디찬 불빛이 청람색 머리를 비추었고, 눈을 내리깔고 단말기에 표시된 페이지를 쳐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시카는 연이은 조우전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데다 '곡'과 일전을 벌이면서 트로이와 아이라의 무기가 어느 정도 손상돼 보수 케어가 필요했기 때문에 소대는 탐색을 잠시 멈추고 예술관 외곽의 거리로 물러나 하룻밤을 머물며 손질하려 했다.

이들은 거리 상황을 미리 확인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소대는 트로이를 첫 번째 순번으로 삼고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밤의 도시는 그녀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고층 빌딩의 불빛이 불규칙하게 점등하고, 마치 입체적인 암호 매트릭스처럼 기계체들은 이러한 색광의 배열 조합으로 정보를 전달하거나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을 탐색하고 있었다.

중앙에 우뚝 선 거대한 풍차도 새파랗게 푸른 그윽한 망울을 뿜어내고 있어 트로이는 그곳에서 이 도시를 내려다보면 어떤 야경이 펼쳐질지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그 세르반테스라는 기계체가 풍차의 맨 꼭대기에 서서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는 트로이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트로이

세르반테스...


먼 곳을 응시한 시선은 잠시 머물렀다가 경계하며 뒤로 물렀고, 단말기의 가상 화면을 지우고는 돌아섰다.


트로이

왜, 교대까지 좀 남았는데 잠이 안 오나?



아이라

좀 그렇네요. 이 도시의 기계체를 생각하면 세르반테스와 미켈레 씨의 관계도 상당히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트로이

그리고?


아이라

별거 아니에요. 임무와 상관없는 일이니 지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트로이

시카처럼 동료들 사이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 같았는데, 숨길 만한 일이 있나?


아이라

흐흥, 여러분과 비슷하죠. 저도 저만의 작은 비밀이 있답니다. 알고 싶다면 필사적으로 저와의 호감도를 높여보세요.

게다가 이번 임무는 상황이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지금은 예술관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세르반테스의 메모리 데이터가 마음에 걸렸고, 더욱이 바지유가 말한 '공중정원에서 온 사람'까지….


트로이

항상 웃고 다니니까 이런 것들을 걱정하지 않을 줄 알았었다.


아이라

당신은 어때요? 계속 찌푸린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는데, 설마 골치 아픈 마음에 머리가 납작해지는 느낌이 드나요?

저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고 그냥 긍정적인 마음으로 행동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그래요.


트로이

우리 소대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건가?


아이라

물론이에요. 제가 집행부대에 합류해 지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신선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다들 잠재력이 있지 않나요? 이전의 전투는 다소 버벅거렸지만 어쨌든 모두 견뎌냈어요.

트로이도 마찬가지예요. 참, 아직 구룡 전시관에서 우리의 빈틈없는 협력을 축하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하이파이브를 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자 아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 채 트로이의 응답을 기다렸다.


트로이

...내가 졌다.


트로이는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아이라의 손바닥을 가볍게 스쳤다.


트로이

미리 말하지만, 나는 레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동료'라는 단어를 가장 최근에 본 것은 10대 시절 황금시대의 그림책에서였지.


아이라

음… 우리는 확실히 동료가 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동료가 될 수 없다고 하는 게 옳겠죠.

목숨을 맡길 만한 단짝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더욱 기적 같은 일이며, 실제로 만났다고 해서 그녀가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동료'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소대 전우'잖아요?

동기와 출발점이 완전히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트로이

이건 털털한 거냐, 아니면 고집이냐...


아이라

물론 고집이죠! 전 아직도 당신과 레나 각자의 과거가 너무 신경 쓰인다구요!

직감이지만 정말 멋진 스토리 소재가 될 것 같아요!


트로이

일반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오글거리는 대사로 내 마음을 풀어주고,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라

트로이가 원한다면 한 번 해봐도 될까요? 하지만 저도 이 방면에 전문가는 아니에요.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라면 아마 이런 걸 되게 잘할 거예요. 시간이 되면 그 사람을 찾아가봐요.


트로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은...집행부대에서도 상당히 독보적인 존재다.

퍼니싱의 침입, 승격자의 계획을 몇 번이고 좌절시켰는지 셀 수 없어...

오메가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자료를 가져왔고, 월면 기지의 처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자신의 팀원...폐기처분 직전까지 갔었던 '백야'를 필사적으로 구출했지...공중정원의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자를 흠모하는 것을 막는 것이야 말로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트로이는 엷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는 아이라에게 이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소대가 주둔하기로 한 건물 2층에서 가녀린 그림자가 창문을 열고 땅으로 껑충 뛰어내렸고, 그녀의 발걸음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마치 고양이처럼 조용했다.



레나

...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사람들에게 거짓없는 희망을 주었지만, 그 희망은 복제할 수 없어.

되살릴 수 없는 희망은 독이 되고 결국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

그 지휘관이 백야의 편에 설 때, 한편으로는 지상에 주둔하던 구조체도 대규모 탈주를 감행했었지.

그때 얼마나 많은 지휘관이 소대 구조체에 배신당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구조체가 자신의 지휘관에 의해 온갖 누명을 쓰고 처리됐는지 알고 있어?

고위층은 이 일을 억누르고 '백야'라는 기적을 선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만, 그때의 탈주를 목격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헛소리를 믿겠어?


아이라

그래서 시카에게 그런 말을 한 건가요?


레나

지금이라도 그녀의 바보 같은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앞으로의 지휘관 생활에 더 도움이 될 거야.

직접 경험해보고 후회하기보다는… 아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후회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트로이

언제나 너는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방금도 그랬지, 밤이 된 이후로 계속 날 감시하고 있었다.


레나

정확히는, '처음부터'야.

예술협회가 발기해 만들어진 소대인데 구성원 명부에 쿠로노의 배경을 가진 구조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트로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리, 케르베로스 소대의 베라, 심지어 니콜라 사령관 본인도 쿠로노에 몸담은 이력을 갖고 있는데, 설마 너도 그들의 입장을 일일히 의심하려는 건가?


레나

그럼 어째서 너의 복무 정보가 비어있는 거지? 너의 과거 소대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모든 자료를 삭제해야 했던 걸까?


트로이

노코멘트다. 어떻게 무스 소대에서 탈퇴하게 되었는지 경위부터 우선 설명해보실까?


레나

...


두 사람은 서로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트로이는 자신이 한쪽에 내려놓은 톤파를 향해 살짝 뻗었고, 레나도 손에 든 활을 꽉 쥐었다.



아이라

음...


둘 사이에 낀 아이라는 어느새 공책과 연필을 꺼내 레나와 트로이를 노려보며 무언가를 메모할 준비를 했다.


레나

너 뭐하는 거야?


아이라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하세요. 그냥 핫이슈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메모를 하려고요.

앞으로 계속 서로 흑역사를 들춰내거나 아니면 멱살잡고 싸우겠다는 거죠? 양측의 활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제가 조금 뒤로 물러나야 하나요? 아니면 심판을 볼까요? 뭐든 괜찮아요!


아이라는 하이라이트 촬영을 앞둔 일선 기자처럼 앞으로 나서서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이 커지기를 바라는 듯했다.


트로이

...리더로서 일촉즉발의 팀원들을 제지하고 가슴 뭉클한 싸움 말리기 선언을 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나?


아이라

하기사 그렇죠. 하지만 좀 더 재미있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충동을 최대한 참아볼게요!


트로이

...

설마 계속 추궁할 속셈은 아니겠지?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아이라가 그녀들에게 계단에서 내려갈 의사를 비치지 않자 트로이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레나에게 잠시 화해의 뜻을 제시했다.


레나

...좋아. 이건 일종의 경고인 셈이니까.

아무튼 우선 임무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테니ㅡㅡ


레나는 더 이상 트로이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 풍차를 바라보았다.



???

...


레나

...

쳇...나는 돌아가서 지휘관의 상황을 볼 테니까, 교대할 차례가 오면 불러.


레나는 아이라에게 손을 내저으며 건물로 돌아갔다.



트로이

하...긴장한 나머지 땀이 날 지경이군.

어때, 생각보다 멤버들 사이가 더 안 좋은 것 같지 않나? 하지만 너의 반응을 보니, 진작부터 이 방면을 예상한 것 같다.


아이라

사실 팀을 꾸리기 전에 앨런 회장님이 이때쯤이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질 수 있다고 제게 말씀해 주셨어요.

하지만 제가 방금 말했듯이,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소대 전우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트로이, 당신은 '홍앵'에 의지하여 무언가를 이루려고 여기에 온 것이겠지요.

이상과 신념이 따로 실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현실에 자취를 남길 수 있어요.

어떤 형태로든 '홍앵'이 의미와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네요.

비록 그것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결말로 기울지 않더라도, 후대에 의해 실패작이라는 꼬리표가 붙더라도 말이에요.

저도 노력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요.



희미한 달빛이 창문으로 어둑어둑한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작은 휘장을 밝게 비추었다.


시카

...


시카는 건물 한 구석에 기대어 앉아 손아귀에 누워 있는 단단하고 차가운 '증명'을 바라보았다.

은으로 도금한 파오스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밑단에는 S·L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그녀의 이름의 약자였다.

그녀는 졸업식에서 '수석'을 뜻하는 이 배지를 받았을 때, 무대 아래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낸 시선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부러움, 질시, 경시, 불가해...조롱과 경멸.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웰스

너희들이 이 소대에 전출 신청을 했나?


랜돌프

맞습니다. 저희 세 사람은 '스위프트'에 계속 머물더라도, 앞으로 어떤 성과도 만들 수 없다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조지

부대 증원이 필요한 다른 소대 지휘관들은 이미 신청을 했으니 참모부가 이번 편성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제시카

저희와 지휘관은 잘 어울리지 못했고, 저희의 전투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웰스

...

이중합 타워 작전 당시 그녀와 너희들을 제27번 보육구역으로 호송하라고 보냈지만, 임무가 끝난 뒤에도 너희들은 지휘관과 연락을 취하지 않고 승인도 없이 제멋대로 조직행동을 벌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랜돌프

당시 지상 통신은 모두 끊겼고,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소대가 서로 연결이 두절되었습니다.

구조체가 지휘관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일정 범위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군 규정에 부합합니다.


웰스

통신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너희들의 응답기는 그때까지 파손되지 않았고, 지휘관도 너희들의 좌표 위치를 알아내려고 계속 시도했었다.


조지

허...그때 전자기 교란이 얼마나 심했는지 참모부도 인지했을 텐데, 참모장님은 저희가 지휘관의 지시를 고의적으로 묵살했다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웰스

...그렇게 말한 적 없네.

나는 단지 너희들의 지휘관이 마지막 순간까지 너희들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너희들의 신청은 내가 수리하겠다. 원래...참모부에서도 고려한 사항이었으니.



시카

...



...

그동안 나...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녀는 마치 무언가를 봉인하려는 것처럼 배지를 꽉 쥐고 들고 있던 가방에 다시 넣었다.





참모총장 앞에서 말뽄새가 왜이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