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협회의 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지난번 임무에서 회수한 자료를 예술협회에 넘기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예술협회 로비를 오가는 인파를 보면서 문득 생각났는데, 아이라를 못 본 지 꽤 된 것 같다.

마지막 채팅 기록은 며칠 전으로, 아이라는 매니저에게 붙잡혀 전시회를 준비한다며 며칠 동안 자신의 작업실에 머무를 것이라고 했었다.

그녀의 작업실은…예술협회 쪽에 있는 것 같은데?

단말기를 꺼내 아이라가 자신에게 보냈던 작업실 주소를 찾아 수소문해 찾아갔다.



아이라의 작업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단말기에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로 아이라였다.

그녀가 보내온 머리 긁는 캐릭터 이모티콘, 아마도 전시회에 대한 고민 때문인 것 같다.


아이라

지휘관ㅡㅡ어디야~ ㅠㅠ, 전시회 준비하느라 골치 아파ㅡㅡ

왜 그림 전시회를 준비하는 데 출품만으로 안되는 거냐고ㅡㅡ!

진짜 일하기 싫어ㅡㅡ! 내가 놀러갈게! 어디야!


지휘관

문 좀 열어봐.


아이라

엣ㅡㅡ!?


작업실에서 무슨 병과 깡통이 뒤집히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가까이 황급히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힘차게 열렸다ㅡㅡ



아이라

지휘관! 정말 너였구나!

장난치는 줄 알았잖아!


'창작 모드'였던지 아이라의 옷자락에 하얀 물감이 묻어 있었고,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 행복해 보였다.


지휘관

마침 근처에서 볼일이 끝나서 보러 왔어.


아이라

그래? 앞으로 이 근처에 볼일이 자주 생기길 진심으로 기대할게.

들어와서 앉아. 내 작업실에는 거의 온 적 없겠지?


지휘관

확실히 이쪽으로 잘 안 왔었네.


아이라

바닥이 좀 지저분한데 신경 쓰지 마.

그러게 누가 갑자기 나타나래? 다 치우지도 못했는데...


아이라는 어깨에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는데, 모처럼 다소 어색해 보였다.


아이라

그래도 요즘은 깔끔한 상태라 할 수 있어. 예전에 캔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든 적 있었는데, 그땐 다양한 캔 조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현관을 돌아보니 작업실 내부가 어수선해 보이긴 했다.

알록달록 튀긴 물감, 석고상에 아무렇게나 꽂힌 조화, 이상한 금속과 나무를 이어 붙이는 장치, 뿔뿔이 흩어진 액자와 클립, 심지어 아직 덜 그린 자신의 그림도 있었다ㅡㅡ


아이라

ㅡㅡ그거 아직 안 그린 거야.


자신의 시선을 의식한 아이라는 재빨리 옆에서 천을 꺼내어 미완성작을 덮었다.


아이라

그날 자료를 찾다가 파오스 제복을 보고 지휘관이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어서 그냥 그려봤어.

에이, 다 그리고 나서 보여줄게. 계속 쳐다보지 마. 자기 그림 보려고 여기에 온 거야?

 

지휘관

(1)생각지도 못했어.


아이라

영감이 오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거지.


(2)잘 그렸는데.


아이라

물론이지, 난 이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구.



아이라

그림 다 그려서 보내주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 대기실에 걸어두는 거야.


지휘관

꼭 그럴게.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라는 붓을 옆에 있는 이젤에 꽂고 두 팔을 들어올렸다.


아이라

좋아, 아이라 선생님이 숙제 검사할 거예요.

요즘 그림 연습하고 있어? 저번에 알려준 구도 표현 방법, 터득한 거야?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고 말해 "당연히 연습을 더 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예를 들며 단호하게 자신을 다그치기를 기대하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지휘관

터득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을 듣지 못할 운명이었다.


아이라

ㅡㅡ어? 말도 안 돼!


아이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상 임무였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림을 연습한 거야?


지휘관

지상 임무에도 휴식 시간이라는 게 있잖아.


지상에 있을 때는 서두르다가도 옮기는 과정에서 공책에 몇 획을 그을 시간이 있었다.

언제나 제대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림이 삐뚤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펜을 들면 저절로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이라

그럼 지휘관을 시험해봐야겠네ㅡㅡ


아이라는 바닥에서 화대를 하나 일으켜 세우고 도화지를 갈았다.


아이라

이 오른쪽 석고상을 한 장 그리자! 지난번에 강조했던 투시관계와 명암변화에 주의해!


지휘관

ㅡㅡ아니면 밥부터 먹는 건 어떨까?


정오의 햇살이 창살을 뚫고 석고상에 내리쬐며 지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창밖에서 점점 요란해지는 사람 소리도, 눈부신 빛도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이라

...맞네, 점심시간이구나.


아이라는 마치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명사를 들은 것처럼 멍해졌다.


아이라

지휘관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지휘관

점심 챙겨왔어.


미리 사둔 점심 도시락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고, 코를 찌르는 향기는 스튜디오를 휘감아 대예술가 아이라를 예술세계에서 불꽃의 세계로 끌어냈다.


아이라

후...냄새 좋다!

정말 오랫동안 아무도 나에게 이 시간에 밥을 먹으라고 알려주지 않았었거든!


아이라는 펄쩍 뛰어올라 베이 윈도우에 있던 잡동사니를 모두 바닥에 던지고는 냅킨으로 쓸 수 있는 덮개를 깔고, 그 위에 테이크아웃 상자를 정교하게 올려놓았다.


아이라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있네!


석고상에 꽂힌 조화를 뽑아 알록달록한 물감을 털어내고 다른 꽃병에 정성껏 꽂았다.


아이라

이렇게 하면 완벽해!


그녀는 이런 배치에 매우 만족해 보인다.

이런 정교한 의식감 때문인지 오늘 점심은 확실히 여느 때 혼자 먹을 때보다 맛있는 것 같다.


아이라

참~ 지휘관! 며칠 후에 미술 전시회 시상식이 있는데 지휘관의 초대장도 있어!

어디다 뒀더라? 진열장 안에 있는 것 같아!


지휘관

미술 전시회 시상식?


아무리 들어도 이런 시상식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아이라

...찾았다!


옆에 도화지가 쌓여 있는 캐비닛을 샅샅이 뒤진 아이라는 초청장 한 장을 들어 보였고, 거기에는 초청인, 시상식 시간과 주소가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아이라

세계 정부 측 연합 예술 협회가 개최하는 소규모 화가 컨테스트야.

《내 마음속 영웅》이라는 테마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많은 아이들이 집행부대를 그림 주제로 삼고 있어 예술협회도 몇몇 지휘관들을 게스트로 초청할 계획이었거든.

당연히 제일 먼저 지휘관 생각이 났지~ 지휘관의 초대장은 내가 직접 쓴 거야.


그녀는 손에 든 초대장을 흔들며 늘어뜨린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감았다.


아이라

어때, 참석할 시간 있어? 존경하는 【지휘관 이름】 지휘관님?


초대장을 받아 뒤적여 보니 식전 시간이 저녁 식사 전후였다. 그날의 일정을 계산해 보면 몇 시간을 비워두고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휘관

늦지 않게 참석할게.


아이라

잘됐네, 그날 회장에서 봐!


아이라는 매우 행복해 보였고, 그녀의 새로운 코팅 디자인 원고와 지난번 영감을 받아 그린 새로운 작품을 황급히  자신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휘관

점심 식겠다.


딱히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베이 윈도우에서 잊혀진 음식은 확실히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라

아이고, 또 깜빡할 뻔했네.


아이라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다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게 바로 예술가의 '영감이 왔다'는 상태인가?

슬그머니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창턱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꽃병, 창밖의 짙푸른 천막과 함께 창가에 앉아 있는 아이라가 창틀에 둘러싸인 채 한 폭의 천연 수채화를 이루고 있다.

방금 아이라가 받쳐놓은 이젤과 펜을 옆으로 치워두고 단말기를 보니 아직 쉬는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펜촉이 도화지에 닿아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칼, 창밖을 응시하는 옆모습, 아무렇게나 뻗은 다리, 소녀의 실루엣이 화필로 생생하게 그려졌다.

초안을 스케치한 직후 단말기가 울려 다음 회의로 가야 함을 알려주었다.

아이라를 방해하지 않고 미완성작을 제자리에 둔 채 조용히 문을 닫고 조용히 아이라의 작업실을 떠났다.


'탁'

문소리가 떠다니는 하늘에 있던 아이라의 생각을 다시 작업실로 끌어당겼다.



아이라

...지휘관?

어떻게 갈 때마다 인사도 안하는 거야...


베이 윈도우에서 뛰어내린 아이라는 바닥 위의 '장애물'을 솜씨 좋게 피하다가 곁눈질로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지인 도화지를 보았다──

도화지에는 화사한 코팅도, 날아갈 듯한 미소도 없었고,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 페인트와 석고로 얼룩진 옷, 그 옆에는 미처 다 그리지 못한 테이크아웃 상자도 몇 개 있었는데ㅡㅡ

창문에 앉아 생각에 잠긴 소녀의 눈동자엔 빛이 비치는 듯했다.


아이라

아까 내가...이런 모습이었어?


손가락을 내밀자 아이라는 터치를 따라 그림 속 소녀의 뺨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라

내가 멍하니 있을 때 이런 모습이었구나...


오후의 햇살은 창살을 뚫고 어수선한 작업실에 깔렸고, 아이라의 핑크빛 눈동자에도 굴절됐다.

앞에 놓인 도화지를 보며 아이라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