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의역 O

 

심연에서 돌아온, 악귀와 같은 선홍빛 인간의 형상이 천천히 칼집에서 장도를 빼내며 도발적인 시선을 보낸다. 

 


10:00 AM 오아시스 주둔지 밖 8km. 

 


노랫소리: 사막 가운데서 여행하는 외로운 늑대~ 방향을 잃고, 의지할 곳도 없네~ 기진맥진해도 걸음을 멈출 수 없어~ 


사막 갱단 1: 잡아, 그놈은 멀리 가지 못해! 절대 그것이 망각자에게 소식을 전하게 해서는 안 된다!

 


황사가 날리고, 해골과 각종 뒤틀린 글자를 칠한 오프로드 차량이 사막을 질주한다. 엔진 소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까지 덮는다. 그 앞에는 회색 털을 가진 늑대가 있다. 겉모습만 봐도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상처 사이로 뼈가 보인다. 모래는 맨살에 달라붙어 검은 진흙으로 물들었고, 다시 새어 나온 혈액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이렇게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폭발적인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막 갱단 1: 빌어먹을, 월터 그게 반격할 줄은 몰랐네. 


사막 갱단 2: 그의 애완동물이 정보를 가지고 나가도록 해서는 안 돼. 행방불명된 ‘적음신계’ 신도들이 우리에게 유괴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모질게 침을 뱉는다. 

 


사막 갱단 2: 와타나베는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쿠로노 그것들이 접선해서 자기들은 결백하다고 하겠지. 


사막 갱단 1: **아, 이 늑대 새끼가 존나 빠르네!


사막 갱단 2: 그 늑대 새끼가 멈췄어. ……잠깐, 옆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아!


 

...

 


무리를 떠난 외로운 늑대는 결국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일 뿐, 달리는 도중에 비틀거린다……. 그것은 얇은 그림자 옆에 넘어져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다. 사막의 다른 무장 괴한들과는 사뭇 다르게 보이는 상대방의 유일한 무기는 등 뒤의 긴 칼뿐이다. 

 


사막 갱단 1: 망각자 쪽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지프차의 우두머리가 모래 먼지 사이에서 살펴본다. 상대방은 사막에서 홀로 움직이고 망각자 병사의 제식 무장을 갖추지 않았으니 대열에서 낙오된 넝마주이일 것이다. 

 


사막 갱단 1: 뭉개버려!

 


그는 매우 빠르게 명령을 내린다. 

 


 


질주 차량이 몰고 온 풍압은 상대방이 아무렇게 몸에 감싼 누더기를 들치고 흰 머리를 휘날리게 한다. 

 


사막 갱단 1: 오드아이의……구조체?

 


다음 순간, 칼날에 굴절된 하얀 빛이 시야를 모두 앗아간다. 두 동강 난 지프차는 알파의 머리 위를 굴러 황사 속으로 떨어졌다. 알파는 고개를 숙여 발을 바라본다. 죽은 듯이 숨을 거둔 외로운 늑대는 핏빛이 섞인 흰 거품을 내뿜으며 몸을 떨면서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어느 발을 먼저 내딛을지 결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의 목에는 검푸른 목걸이가 달려 있었는데, 이것은 본래 자연에 속하는 그것이 인간에게 귀속됐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집요하게 앞을 내다보고 있었고, 탁한 눈은 약간의 빛을 띠고 있었다. 

 


노랫소리: 외로운 늑대는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네~

 


노랫소리가 바람 소리에 들려온 것은 운 때문인지 지프차의 플레이어는 차량처럼 두 동강 나지는 않았다. 

 


노랫소리: 외로운 늑대는 고향 노래를 기억하네, 고향 사람이 노래하네~

 


회색 늑대는 알파에게 눈을 돌렸고, 그것은 알파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이해하는 듯하다. 알파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알파: ……


 

알파는 숨이 턱턱 막히는 생명에게 손을 내민다. 

 


알파: 윽……

 


하지만 그녀가 더 움직이기 전에 그녀는 보았다……

 



 

부서진 총기는 피와 살과 섞였고, 부러진 비수는 순환액을 적신 토사에 꽂혔다. 

 



 

심연에서 돌아온, 악귀와 같은 선홍빛 인간의 형상이 천천히 칼집에서 장도를 빼내며 도발적인 시선을 보낸다. 

 


???: ▄▃▇▆▂▃▁▆█


알파: 닥쳐!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져 마치 수녀에서 일어나는 물결처럼 가벼운 통증만이 알파의 왼쪽 눈에 남아 있다. 그녀는 흰머리로 다시 왼쪽 눈을 가린다. 애원하는 늑대의 눈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정한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한다. 그녀는 원래 행인일 뿐이며,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게다가 방금의 동정은 이미 일부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노랫소리: 과거, 현재, 미래를 버리고 모든 걸 맡겨~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회색 늑대의 숨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점점 잠잠해졌다. 

 


...


 

30분 후……

 



 

망각자 병사: 수령님, 이미 정찰했습니다. 현장에 약간의 퍼니싱 잔류물이 남아 있지만, 오염원을 찾지 못했습니다. 


와타나베: 수고했다. 상대방이 떠난 것 같으니 다른 캠프에 24시간 경계하라고 전해.


망각자 병사: 네!


와타나베: 월터는 찾았어?


망각자 병사: 찾았습니다. 바로 차량 트렁크에 있었습니다…… 유가족에게 시신 인수를 통보해야 합니까? 

 


와타나베는 고개를 저었다. 

 


와타나베: 월터의 유일한 혈육은 이미 이전의 혼란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망각자 병사: 죄……죄송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와타나베: 너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어. 


 

와타나베는 회색 늑대의 목걸이에서 꺼낸 칩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와타나베: 월터를 워커와 함께 화장하자. 이 또한 그의 소망이다. 철수 부대와 제련장 사람들에게 자동차 잔해를 회수하라고 알려. 아직 공중정원과 따로 이야기할 일이 있다. 


망각자 병사: 실종 사건은 그 사람들……쿠로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전에도 비슷한 일을 수사하여 해결한 적이 있잖아요. 그들은 뒤처리를 원체 깨끗하게 하니, 결국 찾은 건 작은 새우 몇 마리뿐이었죠. 정말로 공중정원과 협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더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와타나베: 어떤 일은 그들과 협력하는 게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실종 사건의 재발을 막는 거야. 그리고 공중정원에도 괜찮은 인재가 있거든. 


망각자 병사: 공중정원의 신세대에는 괜찮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수령님께서 연락하실 건 대퇴각 명령을 내린 놈들이겠죠. 이 무익한 무리들이 정말 실종된 교인들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와타나베: 그들은 이 정보에 흥미 있어 할 거야. 결국 의회와 쿠로노의 힘겨루기는 이미 비밀이 아니거든. 그리고 이 정보의 진위도 그들이 검증해야 해. 

 


...

 



 

망각자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프차의 잔해 옆에 늘씬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달우산으로 황사를 헤집고 있다. 

 


???: 찾았다~

 


가볍게 파내니 그녀의 손에 작은 음향기기 하나가 떨어진다. 붉은색 불꽃이 공기 중에 번쩍거리자, 원래 오늘부로 작동을 멈췄던 기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랫소리: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 이런 힘은 정말 편리해,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늘씬한 모습은 음향기기를 받쳐 들고 약간 황홀한 듯이 말한다. 

 


???: 음향기기의 신호를 조작하여 그 인간이 ‘예상치 못하게’ 그 인수인계 인원의 정보를 발견하게 한 다음에는, 그들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 추적해 나갈 거야. 단지 작은 우연의 일치만을 만들었는데도 임무를 이렇게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는걸.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알파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남보라색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 게다가 뜻밖의 수확도 있었고. 

 


그녀는 음향기기가 방출하는 리듬에 맞춰 가볍게 흥얼거린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 이번 ‘인턴 시험’, 잘 통과했으면 좋겠네~

 


노랫소리: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고향을 떠난 외로운 늑대는 나아갈 용기를 되찾네~

 


...

 


노랫소리: 새로운 보금자리를 위해~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지휘관: 루시아. 



루시아: ……응?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한 음악 소리를 끊는다. 

 


지휘관: 무슨 생각해?


루시아: 아니요, 그냥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요. 


지휘관: 노랫소리?


 

가까운 곳에 시선을 두자 이 대형 보육 구역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합 생물의 추격을 피해 동분서주하던 넝마주이도 있고, 아딜레 산업연맹에서 온 수송 부대도 있다…… 그리고 나와 루시아는 공중정원에서 온 인원이다. 

 


루시아: 아마도 넝마주이들의 구전인 것 같아요. 저도 잘 듣지 못했거든요. 

 


창위: 어, 여깄다, 여깄어!

 


루시아의 말대로 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보려고 할 때 구조체 한 명이 먼저 들어섰다. 

 


창위: 너네가 엔지니어링 부대에 있는 걸 보지 못했으니 여기에 숨어있겠다고 생각했지.


루시아: 원래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엔지니어링 부대 대원에게 쫓겨났어……

 


...

 


엔지니어링 부대 대원: 도움을 주실 건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또 온다면……여기는 물 샐 틈 없이 포위될 테니 숨는 게 좋겠어요. 

 


...

 


지휘관: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돼. 



약간 힘없이 숨을 들이마신다. 이중합 탑이 역전된 후 땅의 형태가 천지개벽으로 바뀌었다. 푸른 첨탑과 함께 등장한 건 지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안전지대였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여과탑에 의지할 필요도, 이합 생물이 일으키는 광풍의 충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첨탑은 그 색깔 자체와 같이 인간에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깨끗한 흙과 푸른 하늘을 제공한다. 퍼니싱 농도, 이합 생물의 행동 범위, 수원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여 대부분의 보육 구역은 전선의 후방에 건설되었다. 이중합 탑이 등장하기 전, 원래 그 부근에 있었던 건 오히려 전선 보급과 관측 임무를 겸하고 있던 몇 개의 작은 보육 구역뿐이었다. 대부분의 보육 구역은 오히려 반 이중합 탑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여과탑이 필요하다. 여과탑 가동 유지에 필요한 자원은 결코 적지 않은 액수로, 장황한 회의 끝에 세계 정부는 기존의 대형 보육 구역을 반 이중합 탑 정화 범위 내로 우선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반 이중합 탑을 둘러싼 감시 시설은 예비적으로 확보돼 이것을 전천후로 감시할 예정이며, Ω 무기도 상시 대기 중이다. 인류는 모처럼 찾아온 ‘기적’을 가장 신중한 태도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전 작업이 순탄치 않았다. 

 


보육 구역 구성원: 내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야 하고, 게다가 새로운 곳에 더 이상 여과탑이 필요 없게 된다면 내 일자리는 어떻게 할 건데?


교환 상인: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면 동일한 대우를 보장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옛날 혈청은 어떻게 처리할 건데요?


넝마주이 A: 퍼니싱이 없는 ‘청정 구역’, 이런 곳이 과연 있을까. 설마 우리를 그곳으로 옮겨 실험용 쥐로 관찰하려는 건 아니지? 


넝마주이 B: 내가 보기에는 우리를 죽을힘을 다해 공사에 부려 먹은 다음 내치려고 하는 것 같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좋은 곳에 공중정원 나리들이 왜 제일 먼저 가지 않는 거지?

 


불안, 막연, 시기, 계산…… 지친 사람들은 미지의 ‘아름다움’보다 눈앞의 ‘안정감’을 더 선호한다. 보육 구역은 공중정원의 사유지가 아니며, 주민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

 



 

하산: 웰스한테 자네가 홍보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만?


지휘관: ……


하산: 하하, 이런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네. 일선 지휘관인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 지금 지구의 형식은 이미 이전과 같지 않아. 반 이중합 탑이나 그것이 만들어 낸 ‘청정 구역’이든, 콘스타레예의 각성 기계이든 말일세. 인류가 직면해야 할 도전은 퍼니싱뿐만 아니지. 이 새로운 두 가지 사물의 출현은 인류에게 있어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네. 의사결정을 빨리 실행할수록 미래의 기선을 잡을 수 있지. 


지휘관: 사람들이 보육 구역을 떠나도록 설득하고 싶으시다면, 저보다 외교관이 더 말을 잘할 것 같습니다. 


하산: 자신의 영향력을 경시하지 마라. 자네들이 창조한 전과는 충분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네들이 내린 판단을 신뢰하는 건 민중뿐만이 아닐세. 

 


하산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하산: 물론 일부 사람들은 자네들을 통제할 수 없는 요소로 간주하지만, 그들조차도 지금의 자네들에게 손가락질할 방법이 없어. 신뢰를 쌓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기에는 한순간이면 족하지. 대퇴각이 바로 이러한 예시이며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우리가 토론할 길이 없어. 아직 지구에 체류하는 사람들에게는 철두철미한 배신이었고, 우리 세대가 그들과 다시 신뢰 관계를 맺으려 할 가능성은 희박했다네. 다행히도 너희 젊은이들이 있지. 특히 자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말이야. 이게 바로 자네가 이 보육 구역의 일을 돕길 바라는 이유일세. 


지휘관: 그러면…… 청정 구역은 정말 안전합니까? 


하산: 당연하지. 이건 충분한 조사를 한 후에 나온 결론이다. 과학 이사회의 관련 보고서는 자네가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어. 이는 지구 수복의 첫걸음이자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신뢰를 재건하는 첫걸음일세. 그렇기에 어떤 위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제거할 것이다. 

 


보육 구역 구성원: 다른 일자리를 찾아주고 원래의 대우를 보장해주면 환경이 더 안전할까…… 좋아, 난 널 믿어. 다른 사람들도 내가 설득해 볼게…… 괜찮아. 공중정원은 자신의 금색 간판으로 속임수를 쓰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는 아직 에덴에 사는 그 사람들보단 이곳에 발을 함께 디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믿어.

 


교환 상인: 좋아. 장사는 어디에서든 할 수 있으니까. 근데 앞으로는 너희 군인들만 혈청을 쓸 수 있겠지. 지금이라도 좀 살래? 

 


넝마주이 A: 정말 말도 안 되는군. 분명 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목숨을 연장하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청정 구역’이라는 꿈도 꾸지 못하는 곳이 생겼다니……


넝마주이 B: 우리는 너희에게 협조할게. 너희들이 없었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미 그 지하실에서 죽었을 테니까. 그 당시 너는 여전히 혼수상태였지만……

 


...

 



 

창위: 너희들이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수령님도 기회를 봐서 너희들과 다시 만나고 싶으시대. 수송 부대의 준비는 거의 끝나 가. 그쪽은 어때? 


지휘관: 반즈의 통신도 곧 도착할 거야. 그는 항상 시간을 잘 지키니까. 



반즈: 이쪽은 반즈. 다음 D-12 영역의 비트맵 작업을 완료했어……

 


그때 반즈가 옆에 서 있는 창위를 본다. 

 


창위: 요~


반즈: 음……다른 사람이랑 상의하고 있어? 그럼 이따가 보고할게……잠 좀 자도 괜찮을지도……


지휘관: 괜찮아. 이번에 아딜레의 운송 부대를 고용했거든. 창위는 아딜레의 대표로 왔으니 정찰 결과 보고에서 그를 제외하지 않아도 돼. 


반즈: 담당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도시의 폐허 속에서, 공중정원 정찰 부대의 대원들은 발치에 엎드려 있는 뒤틀린 생물을 보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고, 집게발 하나를 앞으로 내밀고 있어 마치 순례길에 머무는 신도 같다. 

 


반즈: FD-12 구역은 이 방향의 마지막 한랭지야. 퍼니싱 농도는 파일에 기록된 것보다 많이 낮아졌지만 0은 아니었어. ‘청정 구역’의 가장자리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 하지만 구체적인 농도는 배치된 탐지기가 정확한 증거를 전달해야지만 결론을 내릴 수 있어. 

 


공중정원은 반 이집합 탑 내의 정화 범위와 정화 구역 내의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휘하의 거의 모든 정찰 부대를 파견하여 합동 정찰단을 구성하였다. 반 이집합 탑을 중심으로 정찰 부대가 12개 방향으로 원형 형태로 흩어져 오랫동안 정찰 임무를 펼쳤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퍼니싱 농도가 0인 ‘정화 구역’이 확인되고 있다. 그 뒤를 이은 지원 부대도 이합 생물의 방해로 회수할 수 없었던 물자, 특히 대형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고업 물자를 대량으로 회수하였다. 또한, 후방 근무부로 전보를 보내 보급하는 난이도가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희소식 말고도 합동 정찰단에서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이 발견된다……

 


지휘관: 현장에서 활동을 중단한 이합 생물은 이전 보고서와 일치해? 


반즈: 음, 분포 구역은 별다른 법칙을 찾지 못했지만, 이 이합 생물들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유지하고 있어. 

 


반즈는 앞에 있는 인간과 교감하며 광학 보조 모듈에 의지해야 조금 보이는 저 영상 너머의 푸른 첨탑을 바라본다. 

 


반즈: 맞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방향이 반 이집합 탑 쪽인데…… 이 새 이름 너무 대충 지은 거 아니야? 


지휘관: 이건 임시 코드명일 뿐이야. 과학 이사회의 분석이 중단됐어. 


반즈: 결국 이제는 우리가 어떤 방법을 써도 그 탑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거네. 유일하게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은 리밖에 없는데, 그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잖아? 


지휘관: (고개를 젓는다) 그의 의식의 바다에 남겨진 기억을 봤는데……그래도 단서는 없어.


 

의식의 바다에서 추출한 기억은 운송기를 몰고 탑 안으로 들어가 탑에 오르는 모습을 재현했다. 이 화면들이 계속된 시간도 자신의 링크에 기록된 시간과 일치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전 과정이 없다. 의식의 바다 기록에서 보낸 시간도 설명할 수 없는 영복귀(零復歸) 현상을 보이는데, 아시모프의 말대로라면 용량을 초과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즈: 듣자 하니 그 탑이 움직이는 모습은 무슨 억지 상상에서 나온 공중 다락방 같던데. 


지휘관: 이걸 새 이름으로 삼는 게 좋겠어. 내가 같이 보고해줄까?


반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다음 보고를 계속할게……

 


반즈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새로운 이합 생물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여덟 개의 절지를 가지고 있지만, 뱀 모양의 몸을 가진 이합 생물이다. 각진 결정체가 그 체표면에 널려 있으며, 흉악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호신의 갑각이자 도륙의 날카로운 칼이다. 

 


반즈: 이번에 발견된 이합 생물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신품종 12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해당 영상자료는 참모부에 업로드했어. 


지휘관: 지금까지 86개 째야.


반즈: 우리가 보지 않은 곳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을지……

 


이형 접합 생물은 무궁무진한 수로 인류의 거점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다. 명암 속의 길잡이인지, 혹은 진화의 본능인지 이합 생물은 의도적으로 고슴도치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몸체로 진화한 것 같다. 이로 인해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몇 안 되는 탄약을 소모하여 장거리 타격에 나섰지만 구조체 자체의 성능 우위는 발휘하기 어려웠다. 탄약이 모두 소모되면 이어서 진행되는 육탄전은 인류에게 있어서 일방적인 소모이다. 

 


반즈: 그동안 너희에게 신세 정말 많이 졌어……

 


누구를 향한 탄식인지, 반즈는 이합 생물의 붉은 광채를 잃고 무색투명하게 변한 외계 수정을 걷어찼다. 스르륵…… 외력의 작용으로 결정체는 소금처럼 하얀 멍지로 붕괴해 도시에 불어오는 미풍에 휩쓸려 갔다. 

 


반즈: 이 이종 유기체들도 어느 정도 ‘유사 풍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과학 이사회의 추론과 일치하고, 이들의 유사 풍화 정도는 이중합 탑에 가까웠던 개체보다는 경미해. 현장에 남아 있던 감염체……아니,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지만……현장에 남아 있던 지능 기계들도 모두 활동을 멈추고 논리 회로가 심하게 파괴됐어. 실종자 명단에 있는 인원은 발견되지 않았고. 

 


반즈는 침묵을 지킨다. 

 


반즈: 앞으로도 계속 주의할게. 


지휘관: 적조의 흔적은 있어? 


반즈: 지하, 방공호, 저축 시설 등 모든 건물에서 적조의 체류 없이 점검을 완료했어. 그런데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반즈는 단말기의 영상을 확대한다. 붉은 옷을 입은 백발의 구조체가 영상 구석구석을 스쳐 갔다. 


지휘관: 승격자……


반즈: 5일 전 영상인데, 그 지점의 퍼니싱 농도가 좀 비정상적이어서 유심히 살펴봤어. 그 구역은 원래 폐공장이었어. 아직 파손되지 않은 카메라를 찾는 데에 공을 들였는데, 마침 영상이 찍혔더라. 


지휘관: 승격자들은 모두 퍼니싱을 통제하는 능력이 있지. 그녀는 아마 그렇게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거야. 


반즈: 가능성은 많으니, 나머지는 너희 둘에게 맡길게. 


지휘관: 수고 많았어. 


반즈: 그럼 다음에는 그쪽 휴게실 좀 더 빌려줘. 먼저 끊을게. 

 


루시아: 지휘관……

 


루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그녀는 절대 그 모습을 착각한 게 아니다. 그런데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그녀가 왜 다시 나타났을까? 이렇게 뚜렷한 흔적까지 남기고서 말이다. 잠시 마음속의 궁금증을 내려놓고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지휘관: 창위……


창위: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보안 계획을 다시 논의하라고 알려야지. 


지휘관: 응, 부탁할게. 


창위: 앞에서 이합 생물을 상대하고, 이어서 이상한 탑까지 상대했으니 오히려 승격자라는 위협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릴 지경이야. 슬금슬금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