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고독한 죽음으로 향하는 '예언'대로 흘러갔다.


자막설정 ON



이 임무는 애초부터 함정이었다.

이것은 탈주자가 정화부대의 리더를 맞이하기 위해 설치한 함정이자, 그녀가 탈주자들에게 설치한 함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비앙카는 용의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의도적으로 흘려, 그들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미리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했다.

다만...그녀는 '밝고 순수하며 솔직한' 루이난이 탈주자에 포함될 줄은 몰랐다.



루이난

...살아있었네, 역시 마녀인가.


불빛이 터지는 순간, 비앙카는 루이난의 손을 뿌리치고 수송차에서 뛰어내렸었다.

폭발의 여파는 두 사람의 기체에 많은 상처를 남겼고, 수송차에 얹혀 있던 보급품도 잿더미가 됐지만 그녀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비앙카

당신마저 배신하다니.


루이난

맞아. 당신 말대로, 가장 견고한 속박은 영원한 족쇄가 아니라, 안주할 수 있는 집이지.

누군가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합류한 거야.


비앙카

승격자가 겨울 계획을 통해 맺은 약속이라면, 더 많은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겠죠.



구조체 대원1

그게 뭐 잘못됐어?!


루이난의 뒤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고, 두 구조체 대원이 폐허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보아 이미 인근에 오랫동안 매복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앙카

(총 3명, 그 "꿈"과 점점 맞아떨어지고 있어...다음에는 '인체 실험과 약자의 희생은 진화의 필연'이라고 말할까?)


구조체 대원1

너와 의회의 그 늙은이들은 인체 실험을 보고 당황했고, 그 신도들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생각지도 않았었지.

그 녀석들은 공중합체 적응성이 없고, 우매하고, 미신을 믿어, 보육구역을 재건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차라리 실험 재료가 되는 게 나아.

과학 기술이 발전해야만, 우리처럼 의식의 바다 안정성이 부족한 사람도 충분히 강한 특화 기체를 사용할 수 있고, 전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비앙카

공중합체 적응성이 없는 사람을 희생시켜 특화 기체 적응성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길을 터준다, 당신들의 주장은 승격자와 무슨 차이가 있죠?


구조체 대원1

당연히 달라, 우리의 목표는 미래의 진정한 평화야!


비앙카

...


데이터가 남긴 '꿈'은 기껏해야 막연한 단서일 뿐, 긴 잠의 끝이 언젠가 현실이 되더라도 오늘에 이를 만큼 그리 가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녀가 일시적으로 계획을 바꿔, 미리 조사하기로 선택했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이 황금시대의 작품이 말한 대로 "세계선 수속"과 같은 효과를 낳게 될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이어지는 결말은 자명하다.


구조체 대원2

승격자 중에는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도 있었어. 그들은 침식체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기도 하지.

이건 마지막 경고야. 우리에게 합류하거나, 여기서 죽어.


구조체 대원1

충고하지 마, 이 반푼이 마녀는 아직도 '선량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이 구제불능 쓰레기들을 동정하겠지. 승낙할 리 없잖아.


비앙카

확실히 승낙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정 때문이 아니라, 사태 악화를 저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화부대는 겨울 계획을 오랫동안 주시해왔고,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가져온 성과와 악과를 목격했었죠.

'비밀멤버'가 전해온 정보에 의한다면, 겨울 계획의 근간은 아마도 다이달로스와 그들의 '크틸라 계획'이 되겠죠.


구조체 대원1

뭐라고...?


"크틸라 계획", 그것을 아는 자들은 수십년 전에 벌어졌던 대규모 인체 실험을 바로 떠올린다.

이 계획의 이름이 그 특성을 나타내듯이*, 연구자들은 복제와 기억의 백업을 통해 모체의 자궁에서 고인의 윤회와 재생을 시도했었다.


*크틸라(Cthylla)는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그레이트 올드 원으로, 크툴루가 죽으면 다시 크툴루를 부활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루이난

이 계획이 분명 연구 단계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초래한 건 맞지만, 그것은 더욱 유용한 인재를 남기기 위한 것이었어. 뭐가 문제야?

잘못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 것이겠지.


비앙카

그들은 후기에 연구 방향을 틀어, 이 기술을 구조체에 대한 의식의 바다의 복제와 개조에 사용하였습니다.

'크틸라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은, 연구원을 포함하여 결국 모두 매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고, 대다수는 생환하지 못했죠.

만약 당신이 이 계획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고 있다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 죽는 것은 공중합체 적응성이 없는 인간들이지만, 앞으로 죽게 될 것은 특화 기체 적응성이 없는 당신들입니다.

실험과 희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만분의 일의 확률로 선택받은 신품종의 인조 승격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학 기술의 진보는 무수한 죽음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필요한 희생 따위가 아니라 학살일 뿐이에요!


구조체 대원1

그렇다면 너도 이해하라고, 머나먼 미래의 희망과 눈앞의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매력적인지 말이다!


구조체 대원2

죽음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어, 살고 싶으면 당연히 더 빠른 길을 찾는 게 맞잖아!


비앙카

계속 설득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 같군요.


"꿈"에서 이 전투의 결과를 예견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무기를 들었다.


 


비앙카

신이시여...제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연약함과 무력함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동료였던 적에게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죄이자, 속죄의 길입니다.

숙청을 시작합니다!



원격 링크가 끊어진 그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



루시아

지휘관님, 표정이...무슨 일 있으신가요?


【원격 링크가 두절됐어】


루시아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비앙카에게 통신 요청을 보냈다.


루시아

연결이 되지 않아요.


【내가 해볼게】


다시 그녀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역시 결과는 같았다.


루시아

심흔 기체에는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가 존재하고 있어요. 아무런 이유 없이 링크를 끊지 않았을 거예요.


【알고 있어】


루시아

혹시 무슨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 건지...임무 이상 상황을 보고할까요?


【아니, 정화부대의 임무라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


루시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우선 그녀의 안전을 확인한 후에 행동을 취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루시아

지금 그녀와 연락이 안 되고 있고, 제가 그녀의 위치를 검색해 볼 수는 있어요. 그 외에 또 다른 방법은 있습니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한다고 말했었어】


루시아

다른 사람이요?


【참, 루이난의 통신 번호 찾아줄 수 있니?】


【아마 비앙카와 함께 있을 거야】


루시아

저에게 맡겨주세요.



저녁 무렵, 낮게 드리운 구름과 찬바람이 눈이 내릴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탈주자와 침식체의 포위로부터 벗어나자 비앙카의 기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눈 덮인 폐허 속으로 넘어졌다.

새빨간 순환액은 그녀의 몸짓과 함께 끊임없이 배어나와 하얀 눈 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지휘관과 원격 연결을 유지하고 있었던 팔찌나 자신의 단말기는 모두 전투 중에 파손되었다.

일단 원격 링크가 끊어지고 통신이 또 연결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 지휘관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비앙카

안 돼, 지휘관님은 절대로 내려오면 안 돼...루이난은 살아있어...또 다른 탈주자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기체 상태로 고립무원인 그녀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복부, 등을 비롯한 침식에 의한 손상은 견딜 수 있으나, 거동이 어려운 문제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왼쪽 손목 연결부가 파손됐고, 왼쪽 무릎 관절과 오른쪽 종아리가 각기 다른 정도로 부러졌다.

검장을 짚고 움직이는 것조차 느렸고, 일단 적이 지상의 순환액을 따라가 그녀를 찾게 된다면, 결과는 볼 것도 없다.


비앙카

...


모든 것은 고독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이런 곤경, 이런 배신을 처음 겪어본 것은 아니었다.

비앙카도 구조체가 되기 전, 그녀 역시 그 탈주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비앙카

...웬 씨.


ㅡㅡ그 사람은 자신이 다이달로스의 "대표이사", 웬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직 막막한 비앙카에게 확신을 던져주었다.

어둠 속에 잠복해 있는 침식체를 청소해,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하며 그녀를 초대했다.

그는 다이달로스가 판매하는 것은 오로지 안전뿐이라고 말했다.



구조체 군인

정말 고맙네. 네가 없었더라면 여기서 침식체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야.


다수의 안위를 위해, 소수자<//침식체>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비앙카

상처가 심각해요. 제가 늦었습니다.


그녀는 웬이 말한 소수자란 침식체를 지칭한다고 믿었었다.



구조체 군인

흥, 이 상품들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 형제 몇 명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비앙카

...상품?


그 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는 비로소 그 침식체들이 바로 다이달로스의 마수로 인한 것이며, 자신도 실험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탄로난 그날 밤, 비앙카는 아직 알지도 못했던 정화부대와 뜻을 같이하여 다이달로스를 숙청하였다.

이 덕분에 그녀는 공중정원에 수용되어 정화부대의 일원이 되었다.

...다이달로스에 관한 모든 것은, 본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비앙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



울창한 가지와 무성한 잎처럼 뻗어나갔던 '계획', '실험', '상품', '대표이사'는 이미 파괴되었지만, 지하에 만연한 뿌리는 근절하기 어려웠고, 진정한 지도자는 여전히 인파 속에 숨어 있었다.

계획의 이름은 바뀌었고, 실험실의 위치도 바뀌었으며, 주모자 '웬'은 사후 '쿠로노의 탈주자'로 불리며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그가 남긴 자산은 '몰수'를 통해 합법적으로 쿠로노 그룹에 편입되었다.

아직 잠재된 위협은 근절되지 않았다.

정화부대는 "다이달로스"에 대한 추적을 포기한 적이 없지만, 그들의 야심은 이미 의회에서 논의될 정도로 거창하게 포장되었다.



비밀멤버1

고위층도 더 이상 이 일을 따지지 않고 있고, 단지 이익을 따라 움직입니다...리더, 우리가 그들을 계속 감시하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비앙카

물론 의미 있습니다. 이익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죠.

그 당시 레븐쉬가 몰고 온 참극은...누군가가 관련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그를 꼬드겨 미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비밀멤버1

관련 계획...? 당신은 겨울 계획의 전신, 오랫동안 감춰졌던 그 악명 높은 크틸라 계획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비앙카

맞아요. 그는 유혹을 견디지 못한 첫 번째 사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예요.

설령 의회가 묵인한다고 해도, 저는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군이나 다른 부서와 협력하여 탈주자를 체포하고 침식체를 숙청하는 일 외에도

정화부대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사원과 협조해 은밀히 월선 행위를 조사하는 데 할애했다.

그들은 가장 기초적인 법률의 마지노선을 지키며, 비로소 질서가 종말의 혼란 속에서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하였다.


허나, 이제 타락은 오히려 전란을 틈타 정화부대의 몇 명의 대원들에게 침투해왔다


비앙카

...그렇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실험에 의해 학살된 수많은 생명을 손수 보내버렸고, 수많은 아비규환의 현장을 목격했으며, 스스로 안심하고 있다고 생각하다 똑같은 최후를 맞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조사를 진행할수록, 겨울 계획과 배후자의 잔혹함을 알게 되었고, 얼룩덜룩한 피를 따라 과거를 물으면 여전히 백골이 먼지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단지 파편 같은 단서만을 쥐는 것만으로도 사고 보고보다 더 깊은 지옥을 엿볼 수 있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비밀멤버2

또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죽은 자는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아요. 지상의 전황이 엄중하니, 크틸라 계획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울 계획도 곧 별 수 없게 될 것이며, 청산의 필요조차 없어질 것입니다.


비앙카

최소한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비밀멤버1

리더, 당신이 그 배신자를 잡아내고 싶어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작전은 당신 혼자 수행하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비앙카

제가 무방비하게 보여야, 그들은 비로소 송곳니를 드러내겠죠.


비밀멤버1

좋습니다...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저희에게 지원 요청을 보내주세요.


비앙카

아니요, 이것은 당신들의 신분을 드러내게 할 거예요.


비밀멤버1

그래도 혼자 힘으로 맞서는 건 안 됩니다.



비앙카

...크윽!


비앙카는 힘껏 무게중심이 손상된 기체를 지탱하며 아직 얼지 않은 웅덩이 옆으로 이동했다.


비앙카

몸의 순환액을 깨끗이 청소해 기체를 유지해야 돼...



그녀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손으로 차가운 물을 들어 자신의 몸에 뿌렸고, 선홍색의 순환액이 물을 따라 웅덩이에 떨어지면서 새빨간 물결무늬가 번졌다.

통각은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고, 긴급 유지 보수와 재가동 수단은 이미 다 써버렸다. 만약 계속 앞으로 나간다면, 그녀는 반드시 죽음의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큰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앙카

...혼자서 맞서면 안 돼...


살을 에는 듯한 통증과 한기 속에서, 그녀는 그 비밀멤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구조 요청을 해야 하나,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자신의 단말기는 이미 전투에서 완전히 파손되었고, 다행히 루이난의 단말기는 남아 있었지만, 그것의 손상도로 보아 고작 한 번의 통신만 유지가 가능하다.

정화부대에 섣불리 연락하면 감청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불러온 지원군에도 배신자가 섞여 계획 밖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비앙카

...그레이 레이븐 소대와 지휘관님...


방금 이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녀는 스스로 부정했고, 지금은 더더욱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 "예언"이 보여주는 미래에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그레이 레이븐 소대까지 끌어들였다.

비록 그들의 우수한 실력은 그들을 최악의 결과로부터 구해냈지만, 그 전투로 인해 적지 않은 손상을 입고 비앙카와 헤어지게 된다.

다시 만났을 때...그녀는 이미 침식체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그 지휘관이 총을 쏘아 자신을 보내주려 할 때, 거의 눈물을 흘리는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뒤이어 주변을 돌아다니는 침식체와 침식체가 된 그녀 모두 순간의 망설임을 틈타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

인간의 새빨간 피가 설원을 불태우는 순간 또한, 그녀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그녀는 '꿈'의 힌트로 비로소 배신자의 정보를 미리 알아차렸는데, 어떻게 이 '꿈'의 다음 힌트를 못 본 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다음에 터닝 포인트가 정녕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루이난이 남긴 단말기에 갑자기 진동이 들려왔다.


【루이난, 안녕, 비앙카 옆에 있어?】


비앙카

...지휘관님?


【비앙카...?】


그녀가 연못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인간의 목소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비앙카

죄송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어요.


【너 다쳤어? 심각해??】


비앙카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관절에 손상에 있어 당분간은 싸울 수 없어요.


【지원 요청을 도와줄게】


비앙카

아니요. 모종의 사건이 밝혀지기 전까지 섣불리 저의 위치를 드러낼 수 없어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배신자가 있기 때문이지?】


비앙카는 가볍게 대답했다.


【적어도 나는 믿어줘】


비앙카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비앙카...】


비앙카

그렇다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 좌표점으로 가서 그곳의 시신을 확인하고 회수하는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에게서 아직 정화부대가 조사해야 할 단서가 남아 있어요.


【문제 없어】


비앙카는 부서진 단말기에 위치를 표시했고, 스크린은 그녀의 터치와 동시에 계속 깜박거렸다.


비앙카

모든 것이 밝혀지기 이전에, 이 임무는 오로지 그레이 레이븐 소대만 알고 있으니, 다가오는 자들을 더욱 주의해 주세요. 저는 아직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릅니다.


루시아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비앙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반드시 신중하게 이 임무를 완수할 거예요.


단말기의 반대편에서 루시아의 목소리가 그녀 특유의 단호함을 띠면서 들려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어?】


비앙카

저는 기체를 수리고 단독으로 탈주자의 행방을 추적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도대체 무엇을 만난 거야?】


비앙카

죄송합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어요.


【너 지금 북극 쪽에 있지?】


【근처에 거점은 있어? 우선 기체를 복구해야 해】


비앙카

아니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요소가 너무 많아, 거점에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도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다. 탈주자는 살아있고, 그녀는 계속해서 승격자를 포함한 '도움'을 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도와줄게, 비앙카】


비앙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정화부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랍니다.


【나는 정화부대뿐만 아니라, 너도 도와주고 싶어】


비앙카

...저요?


【...비앙카】


【나는 정화부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혼자 싸우는 것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하지만...】


비앙카

저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


【배신과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사람은 없어】


【설령 네가 정화부대의 리더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야】


비앙카

배신과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사람은 없다...?


비앙카는 이 말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조용한 목소리로 이 말을 되풀이했다.

    

비앙카

알고 계시나요? 정화부대를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것을요.


수녀임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든 순간부터, "비앙카"는 "이별"과 "배신"으로 묶여 있엇다.


비앙카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아직 익숙해 진 것은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고, 당신이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혹시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줘】


비앙카

..


그녀의 현실은 점차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미래와 겹쳐지고 있었다.

만약 이런 결말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타인이 자신의 곤경에 말려들지 않았으면 한다.


비앙카

...지휘관님, 당신은 지키고 싶은 사람이나 사물이 있나요?


【물론이야】


비앙카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래도 계속 다가오실 건가요?


【...】


【내가 아는 비앙카는 그렇다고 해서 물러서지 않아】←선택

【내가 이런 가능성 때문에 물러설 일은 없어】


비앙카

아니에요.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어쩌면 언젠가, 이보다 덜 위험한 임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때 저는 기꺼이 지휘관님과 동행하도록 요청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저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더욱이 쓸데없는 위험을 당신에게 가져다 줄 수 없어요. 만약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제가 된다면… 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건 나에게도 있어 마찬가지야】


【나도 너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어】


【설령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이 너일지라도 말이야】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비앙카

당신의 말은 마치 제가 거절하더라도 통신 위치를 추적해 찾아내겠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솔직히 말해서, 마침 그렇게 하려고 했어】


【중상을 입은 동료를 버리는 것은 그레이 레이븐 소대 스타일이 아니라고】


비앙카

...


【비앙카...】


비앙카

그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마지막 결심을 마음속에 숨겼다ㅡㅡ침식체가 되기 전에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면, 그러한 미래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전제로, 그녀는 자신이 지원과 위험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했다.


비앙카

이것은 저의 위치와 교체가 필요한 기체 부품 모델입니다.


비앙카는 손을 들어 부서진 단말기를 몇 번 더 클릭했다.


비앙카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지휘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