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 여기에 눈뿐만 아니라 꽃도 있어



비앙카가 강력하게 요구한 대로 그녀의 곁에 서서, 그녀가 자랐던 이 교회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우선 복도 너머의 활동 신호를 조사해보자】


비앙카

이미 조사해보았는데, 교회 안에 아무런 활동 신호도 없고, 침식도도 매우 낮아요, 다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강한 불안을 안은 채 추적장치를 들어올렸다.

희미한 허상은 추적장치에 의해 점차 선명해지고, 루이난과 나머지 세 사람의 형상이 되었으며, 군중들은 복도 뒤쪽에 있는 현관문에 손을 얹었다.



사츠키

아델린 언니와...또 다른 나...?


【이건 가상 이미지이자 기억 데이터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사츠키

선지자님, 이곳은 신계의 자손이 기적을 행한 곳이에요. 저희랑 같이 가요.


아델린

성단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루이난

허, 성단이라...종교는 정말로 훌륭한 속임야. 몇 개의 조각상, 일련의 이야기만 있으면 사람을 속여 제 무덤을 파게 만들 수 있잖아.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니까 너희들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희생양 취급을 받는 거라고. 실험 재료로 전락했다는 것은 곧 폐기물로 간주되었다는 뜻이지.


사츠키

무슨 말씀이신가요?


루이난

아무것도 아니야. 가. 니네들이 말한 기적인지 가호인지 한번 보자고.


육중한 문을 밀어서 열자, 방문객의 눈에 들어온 성당은 예상과 달랐다.



비앙카&루이난

...이게...성단?


기도용 의자에는 화분이 가득 쌓여 있었고, 먼지를 뒤집어쓴 창문을 통해 푸른 잎사귀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아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작은 성상이 놓여 있던 곳은 선반으로 대체되었고, 바닥에도 바구니와 나무상자가 늘어서 있었으며, 예외 없이 모두 흙이 담겨 있었다.

그 안에는 꽃과 채소와 곡식이 자라고 있고 종류도 많아 대여섯 명이 생활하기에도 충분할 정도였다.

유일하게 그녀에게 익숙한 것은, 무너진 성상과 성당 내부의 낡은 난방 시스템뿐이었다.



아델린

네, 여기가 바로 신의 축복이 깃든 장소라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으니 안심하세요. 이곳에는 아무 위협도 없답니다.


비앙카

...


사츠키

성녀님은 여전히 긴장하고 있으신가봐요.


고개를 들어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허상을 조사하면서, 주변에 잠복한 침식체가 있는지 경계하며 그 틈마다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치 1초라도 시선을 떼버리면, 그 악몽이 실현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을 잡는다)】


비앙카

지, 지휘관님?!


【이미 교회 내 활동 신호를 확인했잖아】


【여기에 침식체는 없어】


【나를 믿고, 너 자신을 믿어. 알았지?】


그녀가 잠시 고민한 끝에 무기를 놓고 돌아와 자신의 손을 잡았지만, 표정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비앙카

네, 일단 계속 조사하죠.


검장이 추적장치를 가볍게 두드리자, 허상은 휘광 속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루이난

씨*, 이건 그냥 온실이잖아? 성단이 뭐 어쩌고 저째? 그냥 적조를 가리켜 성단이라고 부르지 그래, 정말 연기력이 좋네.


가이

다...당신 무슨 말씀이신지요? 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설원에서 어떻게 식물이 자랄 수 있습니까?


루이난

니네들의 신은 난방 시스템이야?


가이

그럴리가요? 여기 처음 왔을 때 난방 시스템은 작동이 멈춘 지 오래였고, 동력난로도 마비된 데다, 에너지도 없었어요.

다행히도 그때 신계의 자손께서 아직 계셨었는데, 그는 저희를 도와 신의 계시에 대해 물어보셨고,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여러 장소로 인도하셔서 난방시스템을 복구해 환경을 조성하셨어요.


루이난

인도? 설마 너희들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었으면서, 이 모든 것을 너희 스스로 했단 말이야?


아델린

신을 모욕하지 말아주세요. 신의 가호가 없다면, 우리 같은 쓸모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있었을까요?


루이난

...하, 그랬던 거였어. 네놈들은 자신을 전혀 믿고 있지 않았던 거야. 왜 신계의 자손을 찾아가지 않는 거지? 그레이스라는 사람 살아있지 않아?


가이

신계의 자손께서 인도하실 수 있는 신도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요. 그레이스님은 가장 많은 신의 총애를 받고 있으시지만, 더 이상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보실 수 없습니다.


루이난

아, 그레이스가 망각자에게 간 이후에 사람이 꽉 찼나 보네.

공중정원에서 다른 난민 거점으로 너희들을 데려가려 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 남아있는 게 좋은 거 아니야? 굳이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성단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건지.


사츠키

그 거점에 저를 수용할 장소가 없었어요...



아델린

이 아이는 하마터면 거점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죽을 뻔했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거점 사람?】


아델린

네...신의 계시를 받기 전까지 저도 그 폭도 중 하나였어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고, 그들도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어요.

자발적으로 만든 거점은 보육구역과 달리 항상 혼잡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해요.

이것은 어른 모두에게도 가혹할 뿐더러, 사츠키에게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녀는 단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일 뿐이니까요.


사츠키

...신계의 자손께서 저희를 구해주셨어요.


아델린

맞아요. 적음신계에 합류한 이후, 신계의 자손과 적조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셨고, 저희는 더 이상 두렵지도, 공황으로 인해 충돌할 일도 없었죠.

그분은 언제나 설원의 현세가 되었든, 적조의 내세가 되었든, 신을 통해 저희를 인도해 주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저희는 여기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보세요...이 성단이 바로 신의 계시의 증거랍니다.


루이난

오, 보아하니 그 신계의 자손이 난방 시스템 고치는 법도 가르쳐주고 채소 키우는 법도 가르쳐줬나 보네, 그래서 여기 남아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가이

그들은 모두 적조왕생으로 돌아갔어요.


루이난

너희 몇 명만 살아남았구나...신계의 자손은? 그 사람도 죽었어?

아니, 너희들의 표현대로라면 '적조왕생'으로 가셨겠지.


가이

아니요. 신계의 자손께서는 적조로 가시지 않으셨어요. 저희를 지켜주다 중상을 입으셨고, 죽을 때까지 적조로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루이난

그럼 그는 어디로 갔지?


가이는 잠시 침묵한 뒤, 교회 깊숙한 곳의 난방용 용광로를 가리켰다.


가이

신계의 자손께서 말씀하시길...그는 평생동안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적조로 고통을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으셨기에, 뛰어들으셨습니다.


루이난

...


아델린

저희는 그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그리고 이 다음에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단지 이곳을 지키며 또 다른 신계의 자손의 소식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어요.


가이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신의 시련을 거치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했었죠.

그 사람을 따라 떠나기 전에, 저희는 거점에 있는 친구에게 성단을 맡겼고, 대신 그 친구는 그동안에 성단에서 채소를 수확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사츠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리 시도해봐도 결국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루이난

하...그리고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나한테 온 거구나.


가이

저희를 모욕하지 마세요. 설령 당신이 선지자라 할지라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비앙카

시련을 통과하지 못했다?


아델린

네. 저희를 떠나보내신 분은 '그 선지자는 신의 계시를 예견할 수 있었으나, 너희처럼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 자였다'고 하셨어요.


사츠키

선지자님은 이 일을 받아들이기 싫어하셨고, 사실대로 말씀드린 후, 저희와 말다툼을 하셨어요.



루이난

나를 너희들과 헷갈려하지 마!!


사츠키

가이 할아버지가 그녀와 한참을 다투다 겨우 설득하셨는데, 선지자님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셨어요...


비앙카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루이난의 인식표를 어루만졌다.


루이난

난 단지 그를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어...


사츠키

저희도 그래요. 저희도 그저 신계의 자손을 다시 뵙고 싶을 뿐이었어요.


루이난

...


루이난은 자신이 얕잡아보던 신도들을 보고 나서야, 그들의 동기와 처지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기 시작했고, 한참을 웃다가 자신의 웃음소리가 울음소리에 녹아들자 멈추었다.


루이난

그래...우리는 전혀 다르지 않았어.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고 싶어, 난 심지어...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느껴본 적도 없었고...

작은 실수로만 여겼지만, 이런 실수들과 인식의 편향이 쌓여, 이미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생매장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쌓여버린 거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성상을 향해 물었다.


루이난

비앙카 리더, 이 신도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죠. 저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나요?


그러고는 다시 자신에게 대답했다.


루이난

아니, 난 이미 선을 넘어버렸어...당신이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도대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남을 비웃은 걸까….


가이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선지자님, 지금 우리가 함께 뭉치면 반드시 신의 계시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 말에 루이난은 고개를 돌려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품에 있던 단말기가 갑자기 진동했다.


???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비앙카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원을 요청했고, 우리가 보낸 사람은 모두 청산당했죠. 당신의 잃어버린 단말기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군요.


루이난

뭐?


???

당신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비앙카를 이 교회로 유도할 테니, 당신은 난민 신도들을 불러서 그녀를 찾도록 하십시오. 그들의 몸에는 전자기 펄스 링이 달려있고, 이미 원격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루이난

그 사람들의 목숨을 이용해 비앙카를 죽일 셈이야??


???

폐기물은 원래 소중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폐기물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이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저는 당신을 승격자와 만나게 할 것입니다.


루이난

저번에도 그랬고, 저저번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날 속였을 뿐이야. 그 사람들을 속인 것과 다를 바 없이.


???

당신의 기분따위 집어 치우시죠. 전 그중 한 명일 뿐이고, 요구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 저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루이난

하하...그래, 너도 시키는 대로 해.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지. 우리 모두 다를 바 없어. 마지막에는 버림받게 될 거야.


???

쳇, 저는 당신만큼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루이난

그래, 오늘 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사츠키

통신을 끊은 뒤, 그녀는 단말기를 버리고 저를 불러 제 몸에 있는 '시련 고리'를 풀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제야 그 고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죠…. 그런데 그녀가 제거해 주자, 머리 위에서 '펑'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녀는 매우 슬퍼 보였고, 온몸이 아픈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저희에게 당부하셨어요.


루이난

늦었어...도망치고, 가서 찾아...이 설원처럼 새하얀 성녀를 찾아,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야.

그녀는 나 같은 거짓 선지자와는 달리, 반드시 너희를 구해줄 수 있을 거야…

어서 도망쳐...! 나는 곧 침식체가 되버릴 거야! 나한테서 떨어져!! 빨리 도망쳐!!!


아델린

그후, 저희는 당신을 만났어요...가이 씨의 몸은 그런대로 정정해서 가장 빨리 달려갔었죠. 하지만...


사츠키

아델린 언니...가이 할아버지 돌아올 수 있어요?


아델린은 사츠키를 안고 고개를 저었다.


아델린

성녀님,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앙카

...

만약 당신들이 난민 거점에 가고 싶지 않다면, 당신들을 받아줄 수 있는 것은 망각자를 따르는 그레이스뿐입니다.


아델린

하지만 그 신계의 자손께서는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여력이 없어요.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정화부대의 보고가 끝나면, 내가 망각자에게 지원을 요청할게】


【적음신계 신자들이 거점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이 정도의 연락은 가능하겠지? 정화부대장?】


비앙카

이 일은 의회에 맡깁시다.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기 이전에, 당신들은 증인의 자격으로 저희와 함께 공중정원 직속 보육구역으로 가시는 건 어떤가요?


사츠키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내 소대가 모두를 지켜줄 거야】


비앙카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저도 가능한 한 빨리 조사를 마무리하고 정화부대가 정상 운영될 수 있도록 하죠.


【좋아, 그럼 루시아에게 모두를 데리러 오라고 할게】


비앙카

당신을 번거롭게 만들어버렸네요.


비앙카는 감사의 미소를 지었고 이내 고개를 숙인 뒤 손에 든 인식표를 움켜쥐고 무너진 성상을 향해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갔다.



【...】


사츠키

성녀님이 슬퍼하시는 건가요?


【...그래】


【비앙카】


【아직도 활동 신호를 탐지하는 거야?】


그녀는 넋을 잃고 주위의 식물을 보고 있다.


비앙카

조사는 이미 끝났어요. 이곳은 안전하고, 눈 덮인 교회랑 달라요. 그럼 된 거예요...당신이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만이 아니지?】


비앙카

...

이미 발생한 범죄에 관해서, 정화부대의 처리 방식을 의심해 본 바는 없었지만, 저는 줄곧 이 모든 것이 터져나간 이후에, 결국 '처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들이 말했듯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합리적인 도움"을 줄 여력이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 서로에게 의지하는 거야】


【너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니까, 꼭 한 사람의 힘으로 구원을 할 필요는 없어】



【죄를 지었으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매우 어리석어 보여. 너는 이 일로 고민해서는 안 돼】


비앙카

당신은 매우 이성적이에요. 지휘관에게 있어 매우 훌륭한 자질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자질이기도 해요.

타인에게 감정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잔혹한 처사예요. 벌만을 앞세워 엄포를 놓는다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은 위험을 선택할 수 있어요.

제가 추구하고 싶은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수단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할 방법이에요. 더구나 루이난은 이미 그 대가를 치렀고요.


【누구나 막막한 순간이 존재하고, 더구나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격려할 필요가 있어】


이 말을 듣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자신을 주시했다.


비앙카

당신 말이 맞아요...저도 감정에 눈이 멀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당신이 여기에 있었기에, 저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던 거예요.



비앙카

제가 말했던 그 "꿈" 기억하시나요?


【끄덕】



비앙카는 땅 위의 꽃을 넘어 성상 앞에 앉았다.


비앙카

그 꿈의 종착점은, 바로 여기였어요...

당신은 홀로 이 성당에 왔었고, 흰 눈에 파묻혀 잠시 활동을 멈춘 침식체를 눈치채지 못한 채...방황하는 저만을 바라보셨죠.

꿈속의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당신의 표정만큼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어요.


기억 속의 미래로 향하는 장면과 지금 이 순간은 이미 멈춰버린 시곗바늘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비앙카

그렇게 당신은 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다른 사람들이 달려왔을 때….


그녀는 두 눈을 감고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비앙카

...이곳에서 수녀가 됐을 때, 신부님이 저에게 '마음이 여린 것을 이해하라, 악마와 신 모두 불멸이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법이 아무리 규정하더라도, 인간은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사랑과 미움, 상처, 보호가 생겨나죠.

어쩌면 언젠가 눈이 성당을 완전히 뒤덮을 때, 저는 또 한 번 배신을 당하고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게 될지도 몰라요.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봐, 여기에 눈뿐만 아니라 꽃도 있어】


인간은 손을 내밀어 작은 분홍색 장미 다발을 건네주었다.


【이건 내가 사츠키에게 부탁한 거야】


【그녀는 네가 슬퍼하고 있다고 여겨 어떻게 하면 널 행복하게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봤지】


비앙카

지휘관님...


【이곳에는 네가 구해준 사람들도 있어】


【나도 아직 여기에 있어】


【우리가 아무도 살리지 못한 건 아니야...】


【미래가 오기 전이라면, 아직 바꿀 시간은 있어】


【예언을 믿은 왕의 이야기처럼 잘못된 길에 빠져 파멸로 치닫지 마】


비앙카

...바꾼다...


【맞아, 바뀌는 거야. 우리뿐만 아니라 이 교회도】


비앙카

...

그래요...이 성당도 바뀌고 있어요.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다소 석연치 않은 미소를 지었다.


비앙카

지휘관님, 그 장미들을 제 머리장식에 달아주시겠어요? 오늘의 일, 당신의 말, 그리고 설원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요.


【물론이지】



비앙카

감사합니다...잘 어울리나요?


【엄청 아름다워】


비앙카

이 코팅은 더 이상 "설원"의 꿈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협회 사람들의 말대로 신부의 드레스처럼 변해버렸네요.

설원에서 이렇게 많은 식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이렇게 갈망한 적도 없었는데…. '설원'을 모티브로 한 코팅에 꽃을 장식할 수 있었어요.

당신이 제게 오기 전에, 저는 죽을 각오를 다졌지만…'꿈'의 결말이 바뀌었어요.


【이 변화는 나 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알려준 덕분에 루시아와 리브가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무사할 수 있었어】


비앙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방에 무성한 식물을 바라보았다.


【이 설원에 있는 교회가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신앙이 주는 용기겠지】


비앙카

맞아요...허황된 신념 하나로 자신을 믿는 것일지라도, 그들은 해냈어요.


【다음은 어떻게 할 계획이야?】


비앙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비앙카

가장 견고한 속박은 영원한 사슬이나 가혹한 형벌이 아니라 따뜻한 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승격자들은 거짓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배신을 유도해왔었죠.

우리는 그들의 마음이 확고하지 않은 것을 비난해서는 안 돼요. 당신의 말처럼 아무도 배반과 이별에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별과 고통을 제아무리 어느 쪽이 더욱 무거워 보이는지 객관적으로 따지더라도, 결국 상처로 남아 이별의 서곡을 새기게 만들어요.

충분히 따뜻한 집만이 머무르고 싶게 만들 수 있고, 우리는 타인에게 털어놓을 것은 털어놓고, 격려를 나누며, 아픔이 빚어낸 균열을 서로 메우도록 해야 된답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변화를 주고 싶어요.


【정화부대의 편제를 조정한다는 거야?】


비앙카

음, 그건 그중 일부일 뿐이고, 아직 바꾸고 싶은 부분이 많아 구체적인 세부 계획을 세워 의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하겠죠.

방금 추적장치가 보여준 기억에서도 다른 탈주자들의 육성이 포착되었고, '크틸라'가 승격자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겨울 계획과 승격자가 여전히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죠.

그들의 약점을 잡을 때마다 철저한 수사를 회피할 방법을 찾았었고, 때로는 희생양, 때로는 '공적으로 만회할 수 있는' 성과를 이용했어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네...】


비앙카

네, 저는 똑똑한 체하는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자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어요.

…그 점에 있어,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나?】


비앙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모두가 선망하는 영웅 소대로,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규정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빨리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겠죠.

따라서 당신도 승격자와 가장 자주 접촉하는 사람이니, 반드시 그들에게 말려들지 않도록 하세요.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보네?】


비앙카

당연히 당신을 믿고 있어요. 어쩌면...화살로 당신을 겨누게 될 그날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에, 이렇게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것 같네요.


【걱정 마, 그런 날은 없을 거야. 맹세할게】


비앙카

네, 저도 믿고 싶어요.

자꾸 이런 생각만 하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결국 정화부대의 리더로서 이런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언젠가...


【여전히 이별과 마주할 수 있다?】


비앙카

네, 그래서 현재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어요.


【그걸로 충분해】


비앙카는 시선을 내리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좀 찔리는걸】


비앙카

...?

지금 무슨 말씀 하신 거죠? 저와 함께 취조실로 가서 자세히 이야기 해보세요.


【잠깐, 그냥 장난 좀 쳐본 거야...】


비앙카

...장난이라고요?


그녀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앙카

지휘관님, 이런 일로 저를 놀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미안미안】



바로 그때, 들고 있던 단말기에서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루시아는 이미 교회 근처에 와 있었다.


【루시아가 올 거야. 그녀와 합류하러 가자】



비앙카

네.


그녀는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인간의 손을 잡고 성상 앞에서 일어섰다.

교회를 떠나기 전, 비앙카는 다시 한 번 멈춘 시계를 돌아보며, 과거 시계 아래에 서 있던 신부와 어린 자신을 바라보았다.



비앙카

백합꽃은 어디에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은지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저를 위로하려고 거짓말 하지 말아 주세요.



그때 눈물에 젖은 장소는 폐허로 변해 있었고, 그 사이로 눈처럼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신에게 기도하던 소녀도 성장해 무기를 움켜쥐었고, 종말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묵인하는 신을 대신해 세상을 거닌다.

그녀<//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녀<//우리>는 여전히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