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눈은 거위털 흩날리듯 내렸고, 대지는 소리 없이 두껍고 하얀 눈담요를 뒤집어썼다.


크로와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군...

지휘관님? 괜찮으십니까?


【문제 없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고, 외골격의 도움을 받더라도 파묻힌 눈더미에서 다리를 빼낼 때마다 힘이 들었다.

연구자료를 회수하기 위해 잠시 보육구역 이전 행렬을 이탈한 지도 꽤 됐는데, 뒤쪽 행렬은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보육구역에서 따라나온 털복숭이 고양이는 배낭 위에 쭈그리고 앉아 높이 치켜든 꼬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갑자기 배낭에서 뛰어내렸다.

힘껏 발을 빼내고 고양이를 바짝 뒤쫓으며 이 작은 언덕을 넘어갔다.



크로와

앞에! 얼음 호수가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눈이 빙판 위에서 소용돌이치며, 꽁꽁 얼어붙은 검푸른 호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멀리서 보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졌다.


크로와

지휘관님, 이전에 당신이 설정한 경로에 따르면 이 얼음 호수를 건넌 후에 무장 폭도들의 흔적을 잡을 수 있습니다.


크로와는 재빠르게 땅바닥을 깨끗이 치웠다.


크로와

우선 여기서 좀 쉬십시오, 제가 얼음 호수 근처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수고해】


원래 자신과 함께 있었던 멘티스 소대의 두 사람은 보육구역 대열을 보호하는 조로 차출시켰고, 지금은 크로와만이 자신 곁에 남아 있었다.

경직된 몸을 앉혀 휴식을 취하자, 거의 얼어버릴 정도로 마비된 뇌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비로소 마인드 표식이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과부하된 상태임을 알아차렸다.


【알파?】


알파

...흥.


알파는 가벼운 콧소리로 그녀의 존재감을 표시했다.

아까까지 계속 링크를 유지한 것인가? 설마 자신이 임무 내용이나 장소에 대해 얘기한 건 없었겠지...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알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파

순진한 계획이 막 틀어지려고 해?

지금 나에게 도움을 구해도 아직 늦지 않았어.


【뭐?】


체력이 떨어지면서 뇌는 점점 사고 속도를 늦추는 것 같다. 알파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알파

네 의약품과 식량은 모두 나눠준 거 아니었어?

충분한 보급도 없으면서 무엇을 가지고 다음 보육구역까지 버틴다는 건데.


【이미 익숙해졌어】


알파

훗.


【예비 플랜이 있어】


알파

예비 플랜?


알파

식사 안 한지 얼마나 됐더라?


눈 위에 뻣뻣한 사지를 쭉 뻗자, 뇌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음식을 못 먹은지 얼마나 오래됐을까...대략 하루 정도였나? 어제 그 병든 노인에게 마지막 과자를 나눠준 뒤부터는 응급용 지혈붕대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계획한 대로 무장 폭도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 다른 보육구역과 그리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민할 필요 없이 어제 계획을 세운 자신을 믿으면 된다.


크로와

지휘관님!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크로와의 목소리와 함께 얌전한 고양이가 등장했다. 고양이는 빨간 열매를 한 알 물고 머리를 높이 쳐들어 자신의 가슴팍 위로 뛰어올랐다.


【열매?】


이렇게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어떻게 열매가 열릴 수 있는 거지?



알파

피식.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이쪽에서 과일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링크 저편에 있는 알파가 은근히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뭔가 즐겁나 본데】


알파

착각이야.


알파는 이렇게 말했지만 채널에서 엔진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크로와

지휘관님, 아래로 내려가서 쉬십시오. 호숫가에서 꺼지지 않은 모닥불을 발견했습니다. 모닥불 옆에 깨끗한 과일이 많이 놓여있었는데...

아마 근처에 사냥꾼이 남긴 것이 아닐까요? 제가 공중정원에 있을 때 읽은 책에 의하면 어떤 사냥꾼은 길가에 음식과 보급품을 남겨둬, 뒤에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돕는데 쓰기도 한다고 했는데….


고양이를 따라 언덕을 넘자 호숫가 근처에는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는 붉고 아름다운 작은 과일 한 움큼이 옆의 눈더미 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 유달리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이 친절한 사냥꾼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네】


알파

...풋, 지금 시대에 사냥꾼? 뭘 사냥한다는 건지, 침식체? 아니면 이합생명체?


채널 맞은편 알파는 콧방귀를 뀌었다.


【음...어쩌면 착한 행인일 수도 있겠지】


더 이상 알파와 논쟁하지 않았다. 과일을 눈에 비벼 씻고 난 다음, 새콤달콤한 즙이 입 안으로 들어갔고, 빈 속이 채워지면서 이성과 힘이 점차 돌아왔다.

무엇이 어떻든 간에, 그 "착한 사람"에게...감사해야 할 것이다.



흐느끼는 듯한 바람소리에 알파는 숲 속에 자신을 숨긴 채 냉담하게 전방의 흔적을 살폈다.

이전에 그녀가 추적한 경로로 볼 때 무장 폭도들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단지...

분명 그녀는 가는 길에 자신과 무장 폭도들이 남긴 흔적을 모두 지우고 다녔지만, 【지휘관 이름】은 여전히 이렇게나 빨리 쫓아올 수 있었다.

첫 번째 예상치 못한 링크의 시간으로 추산하면, 【지휘관 이름】은 자신보다 최소 1~2일 늦게 출발했고, 심지어 발목을 잡는 보육구역 주민들까지 데려갔다.

알파는 【지휘관 이름】과의 거리를 쉽게 판별하기 위해, 눈에 띄는 붉은 크랜베리를 모아 자신의 길목에 놓았다.

그녀는 채널에서 열매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듣기만 한다면, 그 사람과의 거리를 판단할 수 있다.

예상치도 못한 짧은 시간만에 【지휘관 이름】은 그 열매를 '우연히' 만났다.

알파는 자신과 【지휘관 이름】 사이의 직선 거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쫓기는 듯한 위기감이 의식의 바다에서 뿜어져 나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칼자루와 그 거친 무늬들을 꽉 움켜쥐었다.

과연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상대답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삼나무 뒤에 몸을 숨긴 알파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숲에서 위장한 무장 폭도들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들을 직접 죽일 수는 있지만, 그녀는 자료가 누구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만약 그들이 흩어져 도망치거나 물건을 다른 곳에 숨긴다면...

그녀는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



무장 폭도A

...뭔가 이상해.


무장 폭도B

그 보육 구역에선 아무도 따라올 수 없어요. 안심하세요, 보스.

우리가 손에 쥔 그 메모리를 그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기만 한다면, 보수만 받아도 모두가 오랫동안 살아가기 충분하다고요!


무장 폭도A

...아니, 여전히 뭔가 이상해.

원래 코스를 버리고 두 팀으로 나눈다. 두 번째 팀은 다른 길로 가.


무장 폭도B

아이 참,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보스. 그 길은 엄청 험난한데...


알파

...쳇.


너무 늦었다. 이들이 흩어지게 내버려 두고, 【지휘관 이름】이 쫓아온다면 자료 확보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태도를 뽑자, 설광이 칼날에 드리운 차가운 빛을 반사했다.

그렇다면 바로 여기서...그들이 물건을 내놓게 하는 것이다.



펑!


【총소리다!】


공포에 질린 까마귀 몇 마리가 산허리 숲에서 허둥지둥 날아와 눈덮인 나무 한 그루를 떨쳐냈다.

그러나 총성은 먼 곳에서만 울리는 것 같지 않았고, 귓가보다 더 선명한 소리가 채널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설마...】


크로와

무장 폭도들입니까?!


【전에 호출한 지원은 어디에 있지?】


크로와

근처에 호출할 수 있는 임무 수행 중인 두 개 소대가 저희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현재 속도라면 한 시간 후에 저희와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늦잖아...】


단말기에 새 위치를 지정하여, 두 곳의 좌표에 직접 집결했다가 무장 폭도를 조우한 순간 즉시 제압할 것을 요청하였다.

확인 답변을 받은 후, 자신의 외골격 파워 출력을 높여 까마귀가 날아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분명 알파다.

그간의 의혹은 총성으로 풀렸다. 알파가 쫓고 있던 '쥐'는 무장 폭도들이었으며, 알파도 겨울 계획에 대한 비밀 자료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알파는 저쪽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시 한 번 외골격의 동력 출력을 높여 총성이 울리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마지막 전장이 펼쳐질 것이다.



5장



숲 속에서 알파는 무장한 폭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장 폭도A

구조체?! 그 만신창이가 된 보육구역은 진작에 포기한 거 아니었나?!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하기 싫었던 알파는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알파

물건은 내놓고 너희들은 떠나.


무장 폭도A

...그럼 넌?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지?

이 물건을 저 보육구역에서 빼내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알파

너희들이 살아 나가게 해주지.


무장 폭도A

...


두목은 알파를 음흉하게 훑어보았다. 그들 사이의 무력 차이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알파

난 인내심이 좀 약해.


태도가 칼집에서 밀려나자, 칼끝은 서늘해졌고, 알파가 눈을 가늘게 뜬 것은 분명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펑!"


뜻밖에도, 두목은 총을 빼들고 알파 쪽을 향해 잽싸게 총을 쏘았다.


알파

...쳇.


그녀는 칼을 휘둘러 총알을 막았고, 칼바람이 뒤따라오는 연막탄을 가르는 바람에 폭도들이 기대했던 연기의 장막은 보이지 않았다.


알파

시시한 수작이야.


무장 폭도A

흩어져! 도망쳐라! 흩어져!

물건을 가지고 가! 보수만 챙기면 모두에게 몫이 돌아간다!


두목은 팔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외쳤고, 알파의 기세를 피해 산 아래로 굴러갔다.

지령이 떨어지자 무장 폭도들은 와르르 흩어져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알파가 오토바이에 올라타 아무 방향이나 쫓아가려 할 때….



???

알파!


그리 멀지 않은 숲가에 낯익은 인간 한 명이 나타났는데, 길을 질러 급하게 쫓아온 모양인 듯, 몸에는 진흙과 나뭇잎이 많이 묻어 있었다.

【지휘관 이름】이다.



알파

따라왔어?

하지만 이번에는 자비롭게 너에게 물건을 양보하지 않을 거야.


【잠깐】


【거래할 게 있어】


알파

...

이런 졸렬한 수를 써서 내 발을 묶으시겠다?

난 너와 얼굴 맞대고 옛날 이야기 할 시간이 없다고.


알파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도망친 무장 폭도들을 계속 쫓으려 했다.


【공중정원의 지원이 이미 오는 중이야】



알파

...협박이야?


자신이 공중정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알파는 위협스럽게 쳐다보았다.

단말기에 새로운 경로를 다시 표시하여 크로와와 동기화하였다.


【크로와, 계획대로 움직여】


새로 나타난 이 "구조체"에게 있어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듯 싶었지만, 크로와는 명령을 따라 자신이 표시한 좌표를 향해 쫓아갔다.


알파

...공중정원의 지휘관이 이렇게 홀로 승격자와 함께하시겠다?


알파는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협력하자】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카드로 알파에게 자신과 협력해야 한다고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알파

협력?


【나랑 협력하지 않으면, 넌 한 명씩 쫓아가서 너의 "직감"에 맡길 수밖에 없잖아】


다른 2개 소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장 폭도들이 많아 빨리 추격하지 않으면 여전히 자료가 담긴 메모리를 가지고 나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계획상, 알파는 자신에게 협조해야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우리 중 누가 몫을 얻든 간에 서로 나중에 공유할 수 있어】


그러나 무장 폭도들이 혼란을 틈타 빠져나가면 자신이나 알파나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알파

...말해봐.


엔진 소리가 멈췄고, 알파는 자신의 주장에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로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단말기를 열어 신속하게 지점을 표시했다.


【이건 이 산의 통행 가능한 경로고, 그들이 어느 쪽으로 뛰어가든지 간에 반드시 이 몇 개의 출입구를 통과해야 해】


【난 이미 다른 두 소대를 배치해서 몇몇 지점을 봉쇄해놨고, 크로와는 이 방향으로 쫓아갈 거야】


【이 세 곳의 지점을 최대한 빨리 틀어막으면 90%는 확실히 그 녀석들을 막아낼 수 있을 거야】


알파

...

공중정원의 능숙한 포획수단을 떠오르게 만드네. 다만 안타깝게도 난 더 이상 예전의 연약한 '루시아'가 아니야.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지만, 눈에는 오히려 깊은 심연이 보였다.


【크로와는 이미 떠났고, 나는 너와 단둘이 동행할 거야】


【나를 믿는 것을 선택할래, 아니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선택할래?】


알파

...


알파는 잠시 침묵한 뒤 곧바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알파

이렇게 승격자와 가깝게 다가오려고 하는데, 준비는 단단히 했어?


아무래도 협력은 성립된 것 같다.


【물론이지】


망설임 없이 올라타 자리를 잡자마자 알파는 핸들을 비틀었다.


알파

...그럼, 혈청이 충분하길 빌게.


엔진은 굉음을 내며 승격자의 팔 사이로 밝은 붉은 빛이 들어오고, 빨갛게 물든 오토바이는 마치 한 줄기 핏빛 번개처럼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산림을 헤쳐나갔다.

눈부신 적색 뇌광 속에서 퍼니싱 바이러스의 판독값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50%……60%……70%……


【...】


심박수가 빨라지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방호복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즈음에 눈앞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알파

무서워?


바이러스의 농도는 임계점 직전에 멈추었다.


【아니】

【난 여전히 '협력 파트너'를 믿고 있어】


바로 그때 단말기에서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크로와?)】


연결되자 그 안에서 크로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로와

지휘관님! 여기서 갑자기 고농도의 퍼니싱 바이러스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검문소로 향해 고속 이동 중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좌표가...퍼니싱 반응과 겹쳐있는데 무슨 일 생긴 겁니까?!

지원이 오고 있습니다.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아니, 너희들은 원래 계획대로 움직여】


【내 명령 없이 경솔하게 노선을 바꾸지 마】


크로와

하지만...


통신 중 갑자기 날카로운 전류음이 들렸고 크로와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오토바이가 순간 속도를 늦추는 바람에 갑작스러운 엄청난 관성에 의해 자신은 알파의 등에 들이박았다.


【...윽!】


알파

설마 외부 지원을 찾을 속셈이야?


크로와

지(치지직ㅡㅡ)퍼니싱...간섭(지직ㅡㅡ)...


알파

나와 너의 이번 거래에 제 3자는 없어.


"통신 두절"


【내가 협력하자고 한 이상...】


【내가 그런 짓 안 하는 거 알잖아】

【그들은 원래 계획대로만 행동할 거야】


알파

내가 널 이렇게 납치해 가는 게 정말 두렵지 않나 보네.


【네가 그 '물건'을 스스로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여기지 않는 한에는 말이야】


알파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지?


【내 제안이 네가 날 이대로 데려가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믿어】


【너도 빈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잖아】


알파

...흥.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알파는 속도를 높였고, 눈먼지는 차바퀴 밑에서 차가운 물결을 뿜어냈다.

가속이 붙으면서 바람이 귓전을 울렸고, 알파의 목소리도 바람 속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알파

...아.


【뭐라고?】


알파

내 말은 꽉 잡으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토바이는 다시 전속력으로 속도를 높였고,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몸을 옥죄어 마치 보이지 않는 두 손이 자신을 뒤따라 날아오는 눈 사이로 끌어당기려는 듯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두 손은 앞사람의 허리에 감겨 있었다.

방호복을 사이에 두고도 부드러운 감촉과 온도가 느껴졌고, 알파의 몸이 한순간 굳어지는 것을 분명히 감지했다.


알파

...


【...】

【다른 데 잡을 곳이 없어】


의외로 알파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한 채 오토바이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고, 눈송이가 소나기처럼 지나가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알쏭달쏭한 회백색의 덩어리가 되어 시야의 끝에서 빠르게 물러갔다.

하늘과 땅 사이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없어지고 자신과 알파만이 흩날리는 난설에 싸여 가는 듯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급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가 멋지게 눈 위를 반 바퀴 돌며 한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저 녀석이야!】


겁에 질린 채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바로 무장 폭도 중에서 명령을 내렸던 바로 그 두목이었다.

오토바이에서 깔끔하게 뛰어내린 알파는 비틀거리며 뒤로 도망치려는 무장 폭도의 앞을 가로막았다.


알파

역시 여기에 있었네.

물건은 바로 네 손에 있었고.


무장 폭도A

...줄 리가 없잖아!


알파

허.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태도를 꺼냈고, 칼의 빛이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당황한 무장 폭도를 향해 한 걸음씩 쫓아갔다.


【(마취총을 발사한다)】


마취탄이 무장 폭도의 피부를 먼저 찔렀고, 그는 소리와 함께 쓰려졌다. 알파의 태도는 허공을 헛되이 그으며 칼집에 꽂혔다.


알파

착해빠지기는.


【그 녀석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야】


알파

...흥.


알파는 콧방귀를 뀌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칼을 계속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녀가 다가가서 그 사람의 주머니에서 메모리를 뒤적거리려고 할 때, 무장 폭도는 갑자기 힘차게 앞으로 달려들었고, 작은 메모리 조각이 손가락 사이로 절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무장 폭도A

너희에겐 못 줘!


【알파!】


폭도의 마지막 고함과 함께 알파는 훌쩍 뛰어 메모리를 쫓아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이곳은 산 중턱이지만 절벽 아래에는 기암괴석이 겹겹히 보였고, 깊이는 헤아릴 수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크로와

지휘관님! 괜찮으십니까?!


크로와는 허름한 도로에서 황급히 나타나 절벽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달려왔다.


크로와

이건...어떻게 된 일입니까?


【승격자야】


크로와

설마 고농도의 퍼니싱 반응이?!


【맞아】


크로와에게 현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크로와

즉, 승격자와 저희는 목적이 같은 거였습니까?! 이렇게 깊은 낭떠러지는...아마 더 이상 추적할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승격자가 취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습니까?


【아니】


【추적기를 붙여놨어】


조종 단말기는 승격자의 활동 신호를 보고한다. 단말기의 화면을 켜자 지도에 빨간 점 하나가 깜박였다.

알파와 동승할 때 자신은 그녀에게 추적기를 남겼는데, 이제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거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분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크로와

저항하다 부상당한 세 명의 무장폭도를 제외하고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지휘관님, 저희는 이제...


【...】


다시 한 번 낭떠러지 아래를 쳐다보았다.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고, 그 하얀 형체는 아직 망막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보육구역으로 가자】


단말기의 스크린에는 목표물을 추적하는 광점이 언제나 깜박거려 마치 무언의 초대처럼 보였다.



어둠이 내렸다.

알파는 절벽 위에 서서 이 각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침 산기슭의 그 보육구역을 볼 수 있었다.

날이 저물면서 보육구역은 점차 밝아지고 등불이 켜졌다. 이 보호구역은 큰 시련을 겪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물자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낭패를 겪은 이재민들을 아낌없이 받아들였다.

【지휘관 이름】도 이 보육구역에 있다.

그 희미한 불빛들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작은 불꽃을 굴절시켰고, 알파는 태도의 칼자루를 움켜쥐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가져다 주는 "희망"을 바라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불빛은 없고, 짙은 안개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길에서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리더라도,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향한다.

낭떠러지에 얻은 상처를 간단히 싸맨 알파는 고개를 돌려 산꼭대기로 향했다.




6장



별들이 드문드문 떠있고, 하늘은 먹빛으로 칠흑같이 어두우며, 눈의 빛은 공기중에 굴절되어 구름의 그늘에 가려졌다.

알파는 희미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옆에 앉아 반짝이는 불꽃을 노려보았다.



알파

...


그녀는 반쯤 감은 붕대를 내려놓고 모닥불을 지폈다. 모닥불이 나른하게 타오르며 눈밭에 우거진 나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알파】


고양이의 등장과 거의 동시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파

이 고양이가 널 따라다녔었구나.


고양이? 알파의 손짓에 잽싸게 움직이는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나도 보육구역에서 만났는데...】


그러니까, 이 고양이가 자기 옆에 없을 때 알파를 따라다녔던 거였을까? 어쩐지 링크 채널에서 희미하게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니….

고양이는 기지개를 켜며 두 집 살림을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편안하게 알파의 다리에 엎드렸다.


알파

의외로 너랑 많이 닮았어.


【...】


알파는 돌아서지 않고 모닥불 속에 장작을 집어넣었고, 불빛은 순식간에 밝아져 허무한 밤을 갈랐다.

손에 들고 있던 약품과 붕대를 내려놓고 알파의 맞은편에 앉자 모닥불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뛰어올라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알파

주인에게 돌려줄게.


광점 하나가 은빛 호를 그리며 한 치의 치우침 없이 정확히 자신의 손에 떨어졌는데, 그것은 이미 부서진 추적기였다.


【그냥 부숴버릴 줄 알았는데】


알파

협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끝낼 차례야.

다만...네가 실망할지도 몰라.

자료는 이미 확인했어. 이 자료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 그 안에 기록된 이른바 '겨울 계획'에 관한 내용은 글자도 모르는 유랑민들까지 줄줄 외울 수 있을 만한 내용들이라고.

네가 나한테서 이런 물건을 받은 건 이번이 두 번째야.


알파는 손에 들고 있던 메모리를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버렸다.


【그렇지 않아】


알파

아니라고? 아무 소용 없지 않아? 아니면...'단지 이 자료가 목적'이 아니었던 거야?


【...】


메모리 케이스는 마모된 흔적이 있고, 말라붙은 순환액이 묻어 있다.

그렇게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은 제아무리 알파가 강하더라도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기체 상태가...】


알파

훗...

네가 이 자료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그녀 때문에...그들 모두 이 계획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

너는 자신의 구조체 대원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그게 네가 나한테도 그렇게 신경 쓰는 이유야?


【...내 생각엔, 좀 다른 것 같아】


【이번에는 정말 고마웠어】


알파

...


【자료는 확실히 낡았지만, 안에 있는 자료도 마찬가지로 연구원들이 밤낮으로 고생한 결과물이야】


【자그마한 땔감도 쌓여서 빛과 열을 뿜어낼 수 있지】


마치 자신의 말을 입증하듯 보육구역에 불이 켜졌다. 이 시간쯤이면 1조의 탐사대가 일찍 기상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비록 진흙탕에 넘어졌지만 그는 항상 발악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떨어져도, 작은 희망이라도 준다면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나 기어오른다.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길이다.


알파

순진하긴.


뜻밖에도 알파는 자신에게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과 달리, 마치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전심전력으로 모닥불을 노려보았다.

모닥불이 그녀의 눈과 밤하늘 한구석을 밝게 비추었다. 날이 밝아왔다.

알파는 벌떡 일어나 손을 뻗어 모닥불 옆에 앉아 있던 자신을 끌어당겼다.



알파

따라와.


【?!】



그녀의 걸음이 너무 빨라 자신은 그녀의 발걸음을 거의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늘 한 귀퉁이가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닥불에서 벗어난 이 오솔길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싸여 있었다.

전술 랜턴을 켰지만 발밑의 자갈을 간과했다….


【윽!】


알파

...!


자신이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알파는 재빨리 몸을 돌려 절벽 가장자리에 엎드려 자신의 손을 잡았다.


알파

...정말 연약해. 언제까지 버틸 생각이야?


푸른 아침 햇살 속에서 알파의 얼굴은 날카롭고 낯빛은 어두컴컴했다.

어떤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거리 제트비행장치 작동기를 잡고 있던 다른 손을 슬쩍 뒤로 빼낸 뒤, 얌전히 알파의 힘에 기대어 절벽에 매달렸다.

그녀가 손을 떼면 방호복에 달려있는 단거리 제트비행장치를 최대한 빨리 작동시켜 절벽 아래로 안 떨어질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알파를 바라본다)】


알파는 눈을 가늘게 떴고 눈동자에는 희미한 빛이 번쪅였다.


알파

내가 손을 뗄까봐 두렵지 않아?


일부러 엄포를 놓는 듯 그녀는 애써 자신을 붙잡고 있던 힘을 빼고 있었다.


【넌 안 그럴 거야】


알파

너는 정말로 모든 사람을 무조건 믿고 보네.

설령...적일지라도.


조금 힘을 주자 알파는 쉽게 자신을 절벽에서 끌어 올렸다.


【내가 믿는 것은 '알파'야】


허겁지겁 땅바닥에서 일어나 방호복의 먼지를 털고 알파의 질문 아닌 질문에 조용히 대답했다.


알파

'알파...'


천천히 자신의 말을 반복한 알파는 위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알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물론】


비록 소속 진영이 다르고, 원하는 길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적어도 이번에 우리의 목적은 같아】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최선을 다할 거라고】



【적?】


허겁지겁 땅바닥에서 일어나 방호복의 먼지를 털고 알파의 질문 아닌 질문에 조용히 대답했다.


알파

네가 퍼니싱을 완전히 소멸시킬 미래를 바란다면, 우리는 적이 될 거야.


【아무리 적일지라도 넌 이런 승리를 무가치하게 여기겠지】




알파

하...아주 좋아.

그럼 발버둥 쳐, 이후의 대결은 지금처럼 공평하지 않을 테니까.


【마찬가지야】


알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산꼭대기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이 산봉우리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장소는 아니지만, 멀리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았다.

검은 하늘은 점차 푸르게 물들었고, 구름 뒤로 옅은 빛깔은 깊은 빛깔이 되어 점점 끝없는 하늘을 태워갔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겹겹이 피어오르고, 세상 곳곳마다 금빛과 붉은 빛이 눈동자를 불태우려 하고, 맞은편 설산까지 눈부신 빛으로 도금되었다.

날이 밝았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옆에 있던 인간이 먼저 침묵을 깼다.


【너 괜찮아?】


알파

우선 너 자신부터 신경 써. 부족한 보급으로 설원에서 싸운 사람은 내가 아니야.


【딱히 별 문제 없어】


알파

별 문제 없다고? 그럼 너에게 기념품 하나 남겨줄까? 적발되면 구속될 수도 있는 그런 걸로?


【그럴 필요 없어】


몇 마디 잡담을 나누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다. 따스한 빛이 산꼭대기에 서 있는 두 사람과 고양이를 감싸며 어디에 있는지 잊게 만들었다.

허리춤에 있는 통신수단이 몇 차례 계속 울렸고, 퍼니싱 바이러스에 관한 유용한 자료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다음 장소가 전송되었다.

시간이 되었다.

주머니에서 무심코 남은 붕대를 만지작거리다 옆에 서 있는 인간에게 붕대를 던지고는 알파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옆에 있던 인간은 붕대를 받았고, 만류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오토바이 좌석으로 뛰어오르자 알파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양이 뒷목을 집어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이내 다시 뛰어올랐다.


알파

가.


정말 못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척을 한 건지 고양이는 돌아서서 오토바이 좌석으로 뛰어올라 안심하고 쭈그리고 앉아 느긋하게 털을 핥기 시작했다.

...됐다.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자리에 쑤셔넣고 알파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음에 그녀와 【지휘관 이름】이 다음에 만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나 【지휘관 이름】은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고, 다시 만날 수도, 다시 못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담담한 표정으로 이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런 갑작스런 만남과 이별을 미리 예상한 것처럼.

시동을 걸자 알파는 햇빛을 받으며 자신이 선택한 세상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결국 다른 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오늘처럼 갑작스레 어딘가의 풍경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