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오역 O

 


진화를 모색하는 승격 네트워크도 대행자와 승격자에 대한 새로운 선별을 시작했어. 

 


풀 사이에 숨은 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공 모양의 가랜드 조명이 알록달록한 색채를 굴절시킨다. 썩어 문드러진 외벽은 흰 페인트가 다시 칠해져 있고, 제멋대로 자란 잔디도 평평한 녹색 담요처럼 재단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언제 생겼는지 모를 2인용 의자이다. 그 위에는 꽃과 그렇게 잘 어울리지는 않는 바보 개구리가 앉아 있다. 눈앞의 낯익으면서도 낯선 광경을 본 알파는 황홀함에 빠졌다. 의식 가장 깊은 구석에 묻힌 기억은 조금이나마 부드러웠다. 

 



 

루나: 언니도 지금이 더 좋다고 생각해?

 


루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지금의 그녀는 전보다 더 따뜻해 보여 더 이상 그녀의 이름처럼 차갑지 않다. 

 



 

알파: 아마도…… 근데 여기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조금 감정적인 것 같네.

 


알파는 다시 눈앞에 있는 거대한 그네 의자를 바라본다.

 


알파: 역시 좀 다르긴 하지만, 어렸을 때 루나가 확실히 그네 의자를 사달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 하지만 다른 장난감을 더 갖고 싶어서 과감히 포기했지. 

 


알파는 추억을 회상하며 손바닥으로 그것을 가볍게 건드린다. 의자는 흔들리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알파: 이게 흔들리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루나: 아마 그럴 거야. 결국 이것도 단순한 모조품일 뿐이니까. 

 


알파는 이어지는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앞에 놓인 그네 의자를 손으로 멈춘다.

 


알파: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너 루나야?

 


잠시나마 있었던 온기가 사라졌다. 이제 알파의 눈에는 오직 주의와 감시만이 있다.

 


루나: 언니, 당연히 나야. 

 


알파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묻는 건 이유 없는 의심에서 나온 게 아니다. 앞에 있는 소녀가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루나라면, 반드시 계속 해명할 것이다. 이것이 그녀와 루나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기 때문이다. 

 


루나: 하지만 달라진 점도 있어. 

 


루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저울질하듯 눈을 감는다. 

 


루나: 언니, 일단 앉아서 천천히 얘기할까?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걸터앉자, 알파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따라 앉는다.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 의자는 살랑살랑 흔들린다. 이에 따라 루나의 어조가 조금 느릿해진다.

 


루나: 언니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결과부터 얘기할게. 나는 루나야. 언니가 알고 있는 그 루나. 너의 여동생 루나, 대행자 루나, 그리고 새로 선별된 루나.


 

알파: 새로 선별됐다고?


루나: 언니, 그 나선의 탑이 파란색으로 역전된 거 기억해?


알파: 그래. 그리고 승격 네트워크에는 이것으로 변화가 생길 거라고 말했지. 


루나: 인간 중에는 나선의 탑 시련으로 자격을 얻은 사람이 이미 나타났어. 하지만 선별의 반대에 있는 승격 네트워크는 아직 거기까지 진화하지 못했지. 진화를 모색하는 승격 네트워크도 대행자와 승격자에 대한 새로운 선별을 시작했어. 아마도 충분한 자격의 사람을 찾고 싶었을 거야.


알파: 새로운 선별이라……

 


알파는 피와 불만 남았던 이전의 의식 공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선별이었다면, 자신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루나: 맞아. 그건 언니에 대한 새로운 선별이야. 

 


루나는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알파가 입 밖에 내지 못한 의문에 답했다.

 


루나: 승격 네트워크에는 더 강력한 대변인이 필요하고, 그 의지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대리인도 필요해. 근데 언니가 계속 저항하니까 선별이 손상되고 통제되는 거야. 그래도 언니가 일찍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쉽게 언니의 의식을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알파: 그러면 너는 지금 어떤데?


루나: 선별 과정에서 난 새로운 권한을 얻었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일들도 알게 됐고. 우리의 인지는 곧 감옥이고, 생각이 미치는 곳은 담장이야. 알면 알수록 이 감옥은 더욱 넓어져. 더 많은 권한을 얻는다는 건 승격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더 긴밀해지는 거야. 까지……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

 


그네 의자가 흔들리며 루나의 목소리가 더욱 희미해진다. 

 


알파: 루나!

 



 

잃어버린 기억이 드디어 머리에 떠올랐다…… 은백색 소녀가 붉은 결정 덩어리 속에 조용히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생기가 얼어붙은 인형 같기도 하고, 곧 제단에 바쳐질 어린 양 같기도 했다. 이것은 승격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대가이다. 이 힘을 사용할수록 그것이 선별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알파는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

 


쇠사슬에서 뻐근한 소리가 나며 의자가 멈추었다. 루나는 갑자기 무언가에서 벗어난 듯 원래의 소리를 되찾았다. 

 


루나: 걱정 마, 언니.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새로운 권한을 얻으면서 나도 의무를 다해야 하니까, 당분간은 언니랑 이런 식으로 만날 수밖에 없어. 나는 여기에 머무르기로 결정했고, 또 여기 있을 수밖에 없어. 언니 말대로 난 이미 승격 네트워크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묶여있을지도 몰라. 


알파: 왜 꼭 그래야만 하는데?


루나: 그래야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니까. 승격 네트워크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기능은 없어. 모든 승격자를 그 안에 가두는 거대한 담장 같아. 나는 이미 승격 네트워크와 너무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간단히 넘어갈 수 없어. 하지만 언니는 달라. 언니는 계속 그것의 가장자리에 있었으니, 가장 유력한 후보야. 


알파: 왜 새로운 가능성에 집착하는 거야? 


루나: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은 종점이 없는 영원한 원의 고리니까. 이러한 선별 끝에 남는 건 강대함과 외로움뿐이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언니의 생각이 더 중요해. 


알파: 난……


 

바로 그때, 주위의 벌레 소리가 점차 고요해지고, 가랜드 조명도 점차 어두워진다. 

 


루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봐. 난 권한으로 승격 네트워크가 언니한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지만, 이것도 마지막이야.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알파: 승격 네트워크는 이미 자기 방식으로 네 자유를 제한했고, 똑같이 나를 통제하려고 했어.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든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걸 추구할 수 없어. 그것과 결착을 지을 때가 왔군. 


루나: 그러면 이 연구소 안에 언니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어. 


 

하나의 명확한 좌표가 갑자기 알파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알파: 여긴 어디야?


루나: 윈터 홀드. 우리가 북극 사건 이후 추적해 온 비밀 연구소이기도 해. 


알파: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루나: ……달로 옮겨지기 전에, 난 여기에 갇혀 있었어. 승격 네트워크는 일찍이 두 개의 순간적인 신호에 접속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인류가 연구해 낸 신형 특화 기체였어. 그리고 그 이중합 탑이 전자기 복사를 방출하는 동안 승격자가 세 번째로 순간 신호를 포착했는데, 장소는 바로 그 연구소 내부였어. 그 연구소에는 언니가 나 의외의 경로로 반드시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 우리에게 그것은 승격 네트워크와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문이야. 언니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상태로 승격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면, 정말로 승격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알파의 의식이 부유한다. 동시에 루나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루나: 언니……다음은 언니 자신에게 달려있어. 

 


...

 



 

의식이 다시 체내로 돌아오자 알파는 짧은 휴면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다시 한번 수정 속에서 잠든 소녀를 바라보며, 날이 구부려져 한쪽에 떨어진 태도를 거두어들였다. 아마도 의식의 바다에 휩쓸리기 전 폭력을 사용하여 루나를 구출하려고 했던 흔적일 것이다. 이 연약해 보이는 덩어리들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단단하여 감옥으로서 안전이 보장되는 장벽이다. 

 


알파: 이런 농락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알파는 수정 덩어리의 표면을 가볍게 가리고 소리 없이 맹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