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오역 O

 


5:15 PM D12 구역. 몇 명의 구조체가 수송기 옆을 지키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알파는 눈앞의 수송기를 보며 자신이 목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알파: (승격자와 승격 네트워크 간의 균형이 깨지고 일방적인 제어로 바뀌었어…… 이제 끝날 때가 됐는데……)

 


알파는 들끓는 마음을 누르고 수송기 근처 부대에 다시 눈을 돌린다. 

 


알파: (공중정원의 집행부대, 아니……정화부대인가?)

 


알파는 몇 시간을 걸어 인적이 드문 이곳에 도착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함정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 플레이어의 음성처럼 반 이중합 탑 부근에서의 작전은 그녀에게 더 모험적이거나 성가신 선택이었다. 

 


알파: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 같고, 뭔가를 찾거나 지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 수주대토[守株待兔]인가……? 아니, 그러기에는 인원이 너무 적어. 


 

알파는 오가는 구조체를 꼼꼼히 살피며 어둠 속에 적이 매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 뒤 은신처에서 빠져나간다. 

 


알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녀는 이성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적들을 상대하는 건 충분하다. 

 


(전투 시작)

 



 

공중 수비대: 지상부는 ‘범고래’의 착륙에 주의하라. 


지상군: 지상부대에서 접수한다. 접수 절차를 이행한다. 


공중 수비대: ‘범고래’가 지정된 구역에 도착하여 공중 호위 임무를 종료한다. 


지상군: 호위에 감사한다. 호위 임무를 인계하겠다. 


공중 수비대: 현재 임무가 인계되었다. 다음 임무 장소로 이동하겠다.

 



 지상 도시의 폐허
 센트럴 애비뉴



알파: 공중정원의 수송기군. 저걸 이용하면 윈터 홀드가 있는 위치에 도착할 수 있어. 의식의 바다……큭……기체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수송기를 더 안전한 방법으로 가져가야겠군. 하지만……이런 번거로운 방법이 아니더라도 이 기체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조사



행동



 

수송기 통제권을 탈취하세요.


 


 

(전투 종료)

 


5:30 PM 수송기 내부. 다른 추격병이 없음을 확인한 알파는 다시 조종실로 돌아왔다. 

 


알파: 이 수송기는 의외로 정식 번호가 없는 것 같은데?

 


알파는 좌표를 설정하기 전에 수송기에 먼저 지정된 위치를 해제하려고 했으나, 뜻밖에도 이 컨베이어가 철저하게 ‘정식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알파: 일련번호뿐만 아니라 이전의 운항 기록도 전무하군. 이건 진짜 정화부대인가?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주워온 단말기를 꺼내며 의문점을 찾기 시작한다. 

 


알파: 이건 그들의 임무 정보인가. 

 


알파는 단말기의 임무 브리핑을 켠다. 정화부대가 이 부대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면 진실은 그들이 넘겨받은 임무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임무 브리핑에는 여러 탈영병의 이름과 그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역이 기록되어 있다. 브리핑에 따라 탈영병 색출을 위해 이곳을 찾은 건 정화부대에게 있어서 당연한 책무이다. 

 


알파: 뭔가 잘못됐어……

 


처음에 암암리에 지켜봤던 상황과 정화부대와 싸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알파는 일말의 위화감을 느낀다. 

 


알파: 수색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군……

 


알파는 단말기에서 삭제했을 수도 있는 항목을 복원하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익명의 암호화된 메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메일을 클릭하니 한 구조체의 상세 정보가 들어있다. 


 

채널 잡음: 보아하니 당신은 언제나 그들 눈에 감시당해야 할 대상인 것 같아. 


알파: ……

 


...

 


임무 목표: 루시아ㆍ아우(의식의 바다 번호: BPL-01)

임무 내용:

그리니치 표준시 17:00 이전에 D12 구역에 도착하여 수송기의 안전을 확인한다. 

임무 1이 완료되면 그리니치 표준시 17:30에 피뿌리풀 소대가 D12 구역으로 이동하여 목표 상태를 확인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알파: 그녀들은 그녀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 거지, 아니……더 중요한 건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야. 

 


그레이 레이븐과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으로 알파는 보이지 않는 실이 하나의 그물로 모여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그물이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있다. 

 


채널 잡음: 뭐 하나 알려줄까? 그녀를 만나면 당신은 마음속 의혹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청각 모듈의 잡음에 알파는 결국 고개를 젓는다. 

 


알파: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찾을 이유가 없어. 내가 해야 할 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채널 잡음: 만약 당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그녀는 이미 이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 당신은 그녀가 같은 처지를 반복하는 걸 보고 싶지 않잖아? 아니면 당신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계속 그레이 레이븐을 도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알파: 075번 도시에서 손을 댄 건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루나의 행방을 파악했으니, 그때 살아있어야 하는 게 나에게 더 유리했기 때문이야. 


채널 잡음: 그러면 지금 그들이 곤경에 빠진 게 당신에게 더 나은 상황이야? 


알파: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 뒤에 드러나는 정보는 확실히 나에게 유리하지. 의회는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지만, 이제 누군가는 ‘영웅’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네. 


 

알파는 냉소를 터뜨리며 눈앞의 이미지를 꺼버린다.

 


알파: 이 방법은……굉장히 익숙해. 분명히 배후에 쿠로노가 있어. 그러나 이게 의회 자체의 통제력이 쇠퇴한 건지, 아니면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람이 그들이 공격받을 수 있는 오점을 발견한 건지는 모르겠군. 인간의 화살이 내 쪽으로 쏠렸으니 이건 내가 움직이기 편할 수밖에 없다는 증거네. 그리고 이 장소를 알려준 사람도 그레이 레이븐의 조력자일 수 없어. 그녀가 정말로 그랬다면 승격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겠지. 


 

알파는 손에 든 단말기를 부수고 기억 속의 좌표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

 


5:20 PM D14 구


 

감염체: 드르륵……


지휘관: (격발한다)


 

제식 권총의 탄환은 감염체의 에너지 핵심에 정확히 명중했다. 새빨간 눈은 어두워졌고 금속 마찰음도 잠시 후 잠잠해졌다. 

 


지휘관: 이게 마지막이야. 


 

무사히 수송대를 새 보육 구역으로 보내던 중 승격자를 만나지 않아 모두가 한숨을 돌린다. 

 



 

창위: 그럼 협력도 잘 끝났고, 공중정원도 정말 대범하니,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해. 영구열차를 재가동하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 

 


아딜레 상업 연맹의 수송부대에 작별 인사를 한 후, 그레이 레이븐 소대, 정확히는 나와 루시아가 감염체를 처리하는 임무를 다시 받게 된다. 이전보다 크게 줄었지만, 산발적인 감염체는 여전히 청정구역 밖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루시아는 대부분의 부담을 지고 있고, 스스로도 임시 캠프에 감염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거에 최선을 다한다. 주변에 움직이지 않는 감염차를 재검사해 확인한 후, 총구가 과열된 보조 무기를 검사하고 회수한다. 

 



 

루시아: 지휘관! 다친 곳은 없나요?


지휘관: 없어. 


 

이미 코앞에 와 있던 루시아는 나의 대답에 그래도 열심히 보고 나서야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루시아: 응, 아무래도 진짜 다치지는 않으셨나 보네요. 남서쪽의 감염체도 모두 해결했습니다. 아직 다른 행동 신호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지휘관, 다음에는 다른 방향으로 정찰하는 건가요? 


 

이때 루시아의 오른팔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 스며 나온 순환액이 옷을 적시는 걸 본다.

 


지휘관: 너 다쳤어?


루시아: 작은 상처예요. 행동에 지장은 없습니다. 

 


루시아의 말이 확실히 맞다. 이 정도의 작은 상처는 그녀와 나에게는 일상적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지휘관: 어떻게 다쳤는데?


 

떠도는 감염체들은 루시아의 실력으로 대처하기에 수월할 것이다. 

 


지휘관: 또 의식의 바다가 흐려진 거야?


루시아: 네……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 보이는데,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혼자 생각하던 중 갑자기 이어폰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고농도 퍼니싱이 감지될 때만 나타나는 경보이다. 

 


지휘관: 루……


 

경계를 알리려다가 옆에 있던 루시아에게 밀쳐졌다.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수 미터 떨어진 강판에 부딪혔다. 

 


지휘관: 커흑……


 

충격으로 인한 현기증은 경고음마저도 들리지 않게 한다. 비틀거리며 시야를 간신히 회복하고, 등 뒤의 강판을 짚고 일어선다. 

 


지휘관: 루시아!


 



지하에 숨어 있는 감염체 때문에 경보가 울린 것이 아니라, 루시아 때문이었다. 루시아는 얼굴을 감싸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인다. 분사기가 한쪽으로 던져지고, 탁하게 붉은 불꽃이 그녀의 몸을 스친다. 육안으로도 상대방의 감염률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역원 장치만으로는 더 이상 의식의 바다를 진정시킬 수 없어 당장 의식 링크를 걸어야 한다. 

 


지휘관: (링크 진행)


루시아: 하지 마요!

 


루시아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갑자기 경고했지만, 결국 한발 늦었다. 

 


지휘관: 으윽……


 

뇌에 질식감이 밀려들고, 심장이 두 손으로 으스러질 것만 같다. 혼돈의 사고가 의식을 가득 채우고, 더러운 수렁이 이성을 삼키는 느낌이다. 

 


지휘관: (마인드 표식이 오염됐어……)


 

자신이 075번 도시 지하에 다시 서 있는 듯 찰나의 시간이 무한대로 길어진다. 그리고 이 긴 순간,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가장 또렷하게 느껴지는 건……적의이다. 시야가 허황된 붉은색으로 물들고, 복부에 순간적인 따끔거림이 전해져 차갑고도 따뜻한 온기가 뒤섞인 역설적인 느낌으로 이어진다. 혈액과 순환액이 두 사람의 손바닥을 타고 함께 칼날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지휘관: 쿨럭……


 

한순간의 직감으로 급소를 스스로 피했고, 손으로 태도를 잡아 더 악화할 상황을 모면한다. 그러나 나의 말만으로는 도저히 구조체의 공격을 멈출 수 없었다. 루시아는 한 손으로는 칼자루를, 다른 손으로는 나와 같이 칼날을 잡았다. 발악, 두려움, 혐오, 증오, 죄책감…… 다양한 표정은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마치 악귀와 몸의 통제권을 두고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지휘관: 루시아……


 

혼돈의 늪을 밟으며 눈사태처럼 흘러내린 감정을 한사코 중턱으로 밀어 넣어, 어지러운 의식의 바다를 가라앉히면서 허리를 찌른 태도를 천천히 뽑아낸다. 

 


지휘관: 지면 안 돼……


루시아: 지휘관!

 


선혈이 상처에서 쏟아져 나온다.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