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께
갑작스럽게 편지를 드리는 실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어째서일까요, 지금 당신을 위해 붓을 움직이고 있으니 따뜻한 감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되살아나요. 먼 옛날, 당신과 이 세상의 모든 경치,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만 그때의 저는 거짓의 평화와 번영 속에서 자랐고,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모르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거짓으로 가득 찬 허구를 그리는 것이 싫어서, 저는 이 세상의 진실을 찾아 상상할 수도 없이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퍼니싱은 송곳니를 드러낸 바이올린의 활과도 같이 사람들의 현(심금)을 잡아뜯고, 전쟁에서 마음을 찢어대는 비명을 연주하고있었어요. 제 의식의 바다는 지금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절한 만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새빨간 시야,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모든 고통이 저의 악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절망에 의식이 빼앗길 것 같았을 때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의 별과 같은 눈동자를 찾게 됩니다. 한때 제가 무한한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문득 발견한 빛이 당신이었듯이, 당신의 존재, 당신의 강인함이 저를 비추고 나아갈 길을 보여줘요. 당신은 절망해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빛입니다.
분명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연주해온 것이죠? 이 비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요. 생명의 선율이 끊어지려 하고 있는 병사들은, 당신의 격려 덕분에 혈관에 흐르는 생명의 역동에 귀 기울이며… 다시한번, 죽음의 문턱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가장 충실한 연주자가 되어 희망의 프렐류드를 함께 연주하고 싶어. 당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승리의 최종 악장에서 함께 춤추고 싶어.
짧은 편지 속에서는 제 마음을 다 말할 수 없어요. 사소한 마음이지만 이것을 받아주지 않으실래요?
세레나로부터
22년 일섭 발렌타인우편
마지막 부분은 원문도 반말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