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의역 O

생각보다 웅장하지도, 별다른 장식도 없이 그것은 검은 바위처럼 조용히 산속에 칩복해 있다. 

???: 이곳이 ‘북아시아생명과학진화연구소’인가?

초보 남성 연구원은 눈앞의 가림막을 치운 뒤 주변과 혼연일체가 된 요새를 보며 감격했다. 계절은 이미 초봄이지만 눈앞에는 여전히 설경이 펼쳐져 있었고, 땅에는 엷게 눈이 깔려 검은 진흙 속으로 점점 스며들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위 산봉우리에 묻힌 보루를 제외하면, 주변에 인류 문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강철의 틈 사이로 중무장한 보안 요원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 정말 볼품없네.

점잖은 남성: 하하, 저는 오히려 이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상태에 딱 맞는다고 생각해요.

옆쪽 출구에서 점잖은 남성이 걸어 나왔다. 

점잖은 남성: 제가 듣기로는 옥을 품고 있을 만한 광석을 거금을 주고 구입하는 ‘옥 내기’라는 행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거래가 성사된 후 단칼에 좋은 색의 비취가 나타나 구매자는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원금을 날릴 수도 있죠. 옥을 베팅하는 사람들에게 도박은 그들의 안목과 운이에요.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는 얼마나 더 연구해야 성공할지, 애초에 연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성과와 경비 소진 중 어느 쪽을 먼저 겪을지……. 옥 내기와도 같지 않겠습 니까? 진정한 성과를 내기 전에는 모두의 노력은 모두 볼품없는 돌멩이입니다. 구매자 외에 누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질까요? 물론 전체적인 과학 시스템의 연구에 여전히 우리는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오답을 제거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길을 닦는 돌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남성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 설마 당신 다른 부서에서 해고당했어? 아니면 경비가 소진되어 팀이 그대로 해산됐나?

점잖은 남성: 정말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앞으로는 동료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상대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거침없는 말투에 살짝 무기력함을 느낀 듯했다. 

점잖은 남성: 하지만 저는 이곳의 연구원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사업가일 뿐이고, 여기에 온 건 단지 물건을 인수하기 위해서이죠. 고드윈 씨, 당신의 명성은 저도 들었습니다. 그 저속한 사람들이 당신의 대담한 실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드윈: ……

점잖은 남성: 안심하세요. 여기에서 당신은 원히시는 모든 지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라죠.

남성은 고드윈이 방금 내린 헬기에 빠른 걸음으로 올라탔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에 의해 휘날리는 바람과 눈이 고드윈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는 주위의 추위를 느끼며 방한복을 꼭 껴안았다. 

고드윈: 정말 춥군……

...

수십억 년의 진화와 선별 끝에 인간은 결국 먹이 사슬의 정점에 서게 됐다. 지구는 인간에게 편안한 요람과 같으며, 인간을 대기의 수호 아래 보호한다. 그러나……. 이 보호는 인류의 문명을 지구에 굳게 가두어, 인류가 결코 끊을 수 없는 탯줄이기도 하다. 극한의 환경, 변이한 병원체, 심지어 적정 온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인간의 상태는 빠르게 악화한다. 우주의 치명적인 방사선과 저온 및 산소 부족은 말할 것도 없으며, 별바다를 향한 갈망은 우주 환경이 인간에게 혹독하다는 사실을 무효화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주 생명 보호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다. 인류가 아니라, 지구 생태권을 우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탯줄의 연장에 불과하다. 지구와 같은 규모의 운반체가 없고,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없다면 이 탯줄은 어디까지 뻗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원이 소진될 때까지 다음 안락 지대를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까? 지금의 인류에게는 넘을 수 없는 겨울과도 괕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이 탯줄을 끊으려 한다. 우주의 추운 겨울을 진정으로 뛰어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은 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긴 계약서를 쓰고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류는 수만 년 만에 또 한 번 진화의 사다리를 밟을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사다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인류의 손에 달려있다.

...

카득카득... 크랭크축이 돌아가는 소리가 고드윈을 생각에서 끌어냈고, 검은 철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물론, 그 원대한 야망 이전에 고드윈이나 그늘에 숨은 투자자들에게는 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엄동 계획은 공양받은 거대한 나무와 같으며, 하늘로 뻗을수록 뿌리도 땅속 어둠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들은 시간이라는 궁극적인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고드윈은 먼 설산을 돌아보고는 돌아서서 깊은 통로에 발을 디뎠다. 

...

침묵의 요새는 초대받지 않은 두 명의 방문객을 맞이한다. 

알파: 바로 여기야. 

험한 산길은 둘의 속도를 전혀 막지 못했고, 곧 윈터 홀드의 전경이 드러난다. 루시아와 알파가 접근함에도 예상했던 경고는 울리지 않는다. 

루시아: 너무 조용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알파: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어. 

그녀들과 함께 이동하며 방향을 튼 CCTV는 이곳이 버려진 장소가 아님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것은 마치 침묵의 구경꾼처럼 무대 위의 배우들을 관찰한다. 알파는 이미 눈앞에 있는 무거운 수문을 올려다본다. 이 요새는 그녀들의 접근을 막지는 않았지만, 손님을 맞이할 계획도 없어 보인다. 

루시아: 이 문은 내부에서만 열 수 있는 것 같아. 

루시아는 수문을 조금 조사한 후 결론을 내렸다. 

루시아: 이런 대형 연구 시설에는 다른 탈출로가 마련돼 있을 거야. 일단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알파: 그럴 필요 없어. 

루시아: 이 수문의 두께는 아마 네 무기보다 더 클 거야. 이걸 자르는 건 불가능해. 

알파: ……그런 뜻이 아니야.

알파는 출입 금지 장치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약간의 붉은 전류가 장치에 흐르더니 무거운 수문이 양쪽으로 열려 그윽한 통로를 드러낸다. 알파는 먼저 눈보라를 뚫고 들어간다. 

전투 개시

북아시아생명과학진화연구소

유전공학 실험실

루시아: 엘리베이터 내부 도면을 보면, 이 층은 그들의 실험실일 거야. 아마 자료가 있을 텐데. 첫 번째 문 뒤에 소독 통로가 있어. 예상외로 아직도 작동하고 있고. 

알파: 신분 인증은 이미 해결했다. 이곳의 자료는 많이 파괴되어 몇 가지 기록밖에 없어. 크라 계획……?

루시아: 나는 이 계획이 퍼니싱 발발 전에 시작된 걸로 기억해. 처음 들었을 때는……아빠가 뉴스를 보시던 때였어. 

알파: …………맞아. 그때는 인류가 영생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만 했고, 과학자나 위인들에게 먼저 쓰일 거라고 했지. 이 계획의 이름을 여기서 들을 수 있다는 건 이게 엄동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는 거겠지. 

루시아: 봐, 여기 실험 기록이 하나 더 있어. 복제체 배아, 인체 해부, 의식의 바다와 기체 조립까지…….

알파: 복제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기 구성의 실험 절차로 특별한 건 없어. 

루시아: 주변 배양 접시에 남아 있는 이 유기체들은, 바로 실험한…….

알파: 그들을 깨우면 알 수 있어. 

시스템 알림음: 실험체를 깨우는 중……. 실험체의 활성이 부족합니다. 실험실에서 과정을 확인하고 재료를 교체하십시오!

알파: 앞쪽의 출입 금지가 해제됐군, 가자. 너 지금 뭐 봐?

루시아: ……편히 쉬어. 

알파: 그런 말을 할 필요 없어. 그들은 이미 들을 수 없으니까. 

루시아: 죽은 자는 당연히 들을 수 없어. 이 말은 산자를 위로하기 위한 거야. 적어도, 리브는 이렇게 말하겠지. 

자율방어기계: 경보! 침입자 발견!

통금 해제 방법을 찾으세요

포드와 상호작용

죽은 구조체와 상호작용

루시아: 여기 또 다른 구조체가 한 명 있어. 그도 실험체 중 하나일까? 

알파: 침입자일 수도 있어. 그한테서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봐. 

비밀 키에 해당하는 터미널을 찾으세요.

루시아: 이 단말기는 아직 사용할 수 있어. 

알파: 남은 자료가 있는지 확인해 볼게. 

루시아: 나도 할래. 

실험실을 떠나세요. 

전투 종료

마지막 경비 로봇이 칼에 쓰러지며 한산한 실험실은 잠시 정적에 휩싸인다. 두 사람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데스크톱과 단말기에 아직 손상되지 않은 파일을 검사하고 있다. 

알파: 이건……

한 보고서가 알파의 주의를 끈다. 

알파: 하……이거 참……

루시아: 왜? 

알파: 직접 봐봐.

알파는 손에 있는 보고서를 건넨다. 

루시아: 023번 도시, 112번 보육 구역, D56 주둔지……. 모두 한때 이합 생물에 의해 파괴된 작은 거점들이네. 

알파: 그러나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이합체뿐만이 아냐. 

루시아: 이 습격들은……모두 이 사람들이 직접 계획한 거구나…….

보고서 속의 상세한 습격 계획을 보는 루시아의 손은 참지 못하고 떨린다. 

알파: 그들은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만 암암리에 많고 못 봐주겠는 일들을 해낼 수 있지. 실험 재료를 위해서도 그들에게는 더 많은 실종 인구가 필요해. 

알파는 배양관의 파기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실험체는 투명한 액체 속에서 소리 없이 녹아내린다. 

루시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알파는 배양관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루시아는 물결의 반사를 통해 점차 겹쳐지는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본다. 

알파: 그들을 해방시켜 줄 건가? 아니면 그들이 계속 이런 몰골로 겨울 계획의 길을 터주길 원하나? 

루시아: ……

루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거두었다. 

루시아: 편히 쉬어. 

알파: 네가 이 보고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뒤에 숨은 녀석들을 움직일 수 없어. 오히려 네 자신에게 문제가 되겠지. 

루시아: 그렇다고 해서 이 어둠이 계속 커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알파: 욕심이 있는 한 이 어둠은 계속 몸집을 불리고, 인류가 여전히 승격 네트워크에 대한 갈증을 버리지 않으면 네가 하는 일은 헛수고야. 

알파는 자조적으로 웃는다. 

알파: 어쨌든 너희들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특화 기체조차도 이런 일련의 계획의 산물이 아니겠어?

루시아: …….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 과거의 잘못을 고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이어가겠다는 게 아니야. 지금의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나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