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이제 나는 너의 감옥이야. 

 


천천히 눈을 뜨니 역시 루나와 그녀의 집에 있었다.


 

루나: 언니, 돌아온 걸 환영해.


 

매서운 겨울 서리가 걷히고 새싹이 파릇하게 돋아나니, 알파도 웬일인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알파: 루나…….

 


그녀가 이곳으로 온 건 이번으로 두 번째다. 알파는 눈앞의 소녀가 자신을 현혹하는 승격 네트워크의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곳은 교묘한 함정이 아니라 루나가 직책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비호이다. 그리고 그녀와 루나의 유일한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순백의 소녀는 평소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가려다 이내 걸음을 멈춘다. 

 


루나: 언니가 여기에 오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겠네, 그렇지?


알파: ……응.


 

알파는 떠나려고 몸을 돌린다. 



 


 

알파: 루나, 예전의 너는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파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달에서 돌아온 후 너는 변했고, 기꺼이 다른 가능성을 믿게 되었어. 나는 네가 이런 변화를 보여 기쁘지만, 너와 승격 네트워크 사이의 관계도 더욱 긴밀해졌어. 난 정말 걱정돼……. 하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

 


알파는 눈을 감고 보기 드문 연약함을 얼굴에 드러낸다. 

 


알파: 나는 좋지 않은 결정을 많이 했고, 어느새 능동적으로 나아가려던 마음을 접고 너에게 의지하게 되었어. 난 자신에게 항상 행동을 취하기 전에 기다리고, 보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라고 말하지.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모든 준비는 무의미해. 루나……. 정말 미안해. 모든 결정을 너에게 떠넘겼어. 나야말로 제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야. 

 


알파는 다시 눈을 뜨고 앞의 대문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 


 

알파: 루나, 나는 네가 승격 네트워크를 선택했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승격 네트워크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이 너에게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는 거야. 네가 마지막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든, 나는 너에게 가능한 많은 선택지를 남겨주고 싶어. 그러니까, 이건 단지 한순간의 이별일 뿐이야. 나는 조금 먼 길을 떠날게. 


루나: 언니……. 앞으로 나아가. 언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따스한 보호막이 무너지고 알파는 눈앞의 문을 밀친다. 산산조각이 난 땅을 밟으니 뒤의 풍경이 차례로 점점 희미해진다. 시야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알파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발을 들인다. 

 


 


알파?: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가 의식 공간에 메아리친다. 사지는 사슬과 띠로 단단히 묶여있다. 검은 사각형이 떠다니며 의식 공간 전체를 좁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깨진 거울은 현실 속 알파의 모습을 비추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다. 


 

알파?: 그것이 너희에게 남은 유일한 연결고리야. 너는 그녀를 포기하고 싶어?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계속 조종당할 수는 없다. 알파는 힘껏 쥐어뜯었고, 검붉은 족쇄는 끊임없이 부서지고 재구성된다. 이 의식의 바다 밑바닥에서 자신이 먼저 속박에서 벗어날까, 아니면 의식이 먼저 삼켜지는가? 


 

진?: 만약 내가 그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그를 막을 수 있었을 거야. 


무롤?: 약육강식이야말로 본래 유일한 진리지.


 

잡음은 알파와 가까운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 점차 과거의 익숙한 소리로 변해간다. 이것은 일종의 환청인가, 아니면 그녀가 결코 털어놓지 않은 속마음인가?


 

니콜라?: 이 별의 문명은 이미 새로운 사다리를 탔다. 생명의 형태는 새로운 변혁을 필요로 할 거다. 


루나?: 따라서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로 승격자가 생겼지. 


롤랑?: 퍼니싱은 무기도, 도구도 아니야. 


아시모프?: 그것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자연법칙이다. 


 

끝없는 은하계가 알파 앞에 펼쳐지고, 수억 년 전의 광채가 눈앞에 번쩍인다. 


 

아시모프?: 우주는 태어날 때부터 정보구조를 가진다. 공간, 물질, 에너지……. 문명마다 호칭이 다르며,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점차 발견되지. 이러한 정보구조와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구조를 생성한다. 


니콜라?: 모든 정보구조에는 사명과 목적이 있다. 


가브리엘?: 인류……. 지혜와 생명도 이 수많은 정보구조의 일환입니다. 


아시모프?: 정보구조는 단일 항목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야. 정보구조가 다른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당연히 또 다른 구조도 영향을 받겠지. 


루나?: 퍼니싱은 항상 존재하고, 특정 상황에서만 발견돼. 


알파: 만약 퍼니싱이 계속 존재한다면, 승격 네트워크는 무엇이지?


롤랑?: 일단 상호작용이 생기면 퍼니싱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구조가 생겨. 


루나?: 승격 네트워크의 탄생은 벗어날 수 없는 법칙이자 정해진 숙명이야. 


알파: 승격 네트워크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거지?


루나?: 문명을 선별하고 ‘규칙’을 깨뜨릴 수 있는 개체를 발견할 때까지 개체군을 선별하는 것. 


알파: 개체?


알파?: 정체된 문명은 결국 쇠퇴와 멸망으로 치닫고, 생명의 형태도 진화의 속도를 멈출 수 없다. 승격 네트워크는 그 개체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선별할 거야. 이는 정해진 운명이지. 


루나?: 미지의 가능성을 기대해…….


본ㆍ네거트?: 변수를 줌으로써 시련을 내리죠…….


 

은하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알파는 설원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보는 듯하다. 순환액은 오색찬란하게 작은 개울을 이루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칼날이 사방에 꽂혀 있어 훈장이나 감옥 같기도 하다. 주위는 텅 비어있고, 잔해는 그녀의 왕좌이다. 먼 하늘빛이 손에 닿을 듯하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알파는 가볍게 웃는다. 


 

알파: 깨지지 않는 숙명은 없으며, 절대적인 법칙도 존재하지 않아. 약육강식의 선별은 법칙일 수 있지만 결코 진리는 아니지. 선별의 종점이 없다고 하면 더 큰 우리로 갈아 끼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나와. 직접 얘기를 나누자고. 


 

바로 다음 1초, 알파의 모습은 눈밭에서 사라지고 잔해만 가득 남아 공허한 무덤을 연상케 한다. 


 

알파?: 너는 이미 선택을 내린 것 같군.

 


...

 


눈앞의 광경이 되살아나자 알파는 어느새 속박에서 벗어난 자신을 본다. 기체의 모습도 현실과 일치했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편에는 똑같은 자신이 거울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알파?: 네가 새장을 깨고 싶은 것 같으니, 최종 선별을 시작하지. 


알파: 원하는 바다. 


 

태도와 태도가 서로 부딪치며 격렬한 불꽃을 내뿜는다. 


 

...

 


도대체 얼마나 싸웠는지 알파는 이미 기억할 수 없다. 매번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이 의식의 바다 공간을 격동시켰던 것만 기억이 난다. 의식의 바다 가장자리에는 검은 균열이 생겼고, 균열 밖을 들여다본 그 모습은 허무하기만 하다. 

 


알파?: 의지는 여전하지만, 이 의식의 바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태도가 다시 부딪히자 둘은 힘의 장벽에 두 걸음 뒤로 물러서고, 알파는 칼자루를 움켜쥐며 팔의 떨림을 멈춘다. 

 


알파?: 용기는 너를 한탄하게 만들고, 심연으로 끌어당긴다. 네 의식의 바다는 원래 손상되어 있었으니, 속박에서 벗어나기 전에 먼저 무너질 거다. 


 

알파는 공격과 회피에 집중하지만 똑같은 상대에게 매번 같은 방법으로 막힌다. 황야가 타오르고 땅이 갈라지며, 거친 용암이 그 틈에서 뿜어져 나온다. 의식의 바닷속 모든 것이 충돌로 산산조각이 나며 알파는 점점 다 타버려 없어진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알파?: 넌 졌어. 


 

정면으로 오는 무게 실린 베기 공격을 막았으나, 알파는 뒤따르는 칼집에 복부를 맞는다. 

 


알파: 윽…….


 

알파는 걷어차여 순환액을 한 모금 크게 내뱉고 칼날로 간신히 몸을 지탱한다. 이것은 원래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지만, 의식의 바다가 무너지며 주의력이 산만해져 더 이상 상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죽음의 환상은 무너진 의식의 파편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서 끊임없이 아른거린다. 

 


알파?: 이건 불공평한 싸움이네. 이제 끝날 때다. 


 

상대는 태도를 칼집에 넣어 잠시 행동력을 잃은 알파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한다. 불꽃은 위태로움 속에서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 

 


???: 일어나!


 

타오르는 불바다에 갑자기 순백의 눈송이가 나타난다. 눈송이가 떨어지며 끝없이 이어진 빙벽들이 솟아올라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검은 머리의 소녀는 빙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적을 향해 연이은 참격을 잇는다. 

 


알파?: 의식 딥다이브? 이런 상황에서?


 

알파는 붕괴 직전이었던 자신의 의식의 바다가 복구되고 있음을 느낀다. 


 

알파: 왜 이렇게까지 하지?


 

075번 도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루시아가 의식 딥다이브를 통해 알파의 의식의 바다에 잠입했을 때 같은 뿌리인 의식의 바다가 융합하고 침식되는 상황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알파의 만신창이인 상태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융합이 분기점을 넘어서면 루시아의 의식도 완전히 침식된다. 

 


알파?: 왜 그녀를 돕지? 너희들은 분명히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는데. 


 

알파의 환영은 루시아의 회선참을 가볍게 피한다. 그것은 상대가 힘을 모으지 못한 사이에 뇌광을 여러 번 휘두른다. 

 


루시아: 비록 우리는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흩날리는 눈송이가 빙벽을 이루며 밀려오는 뇌광을 막아낸다. 루시아는 다시 앞서 연신 칼빛으로 상대의 공격 루트를 봉쇄한다. 

 


루시아: 하지만 우리는 항상…….

 


칼날이 닿는 순간 루시아가 뒤의 분사기를 작동시킨다. 분사된 기류가 그녀의 옷자락을 위아래로 날리며 알파의 환영이 부딪혀 나간다. 

 


루시아: 똑같이 저항할 운명이야!

 


루시아는 팔에 서리 자국을 남기고 알파의 곁으로 후퇴한다. 그녀가 분사기의 경로를 몸으로 막았기 때문에 방금 그 한 방이 효과가 있었다. 


 

루시아: 나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침식될 생각도 없어. 일어서, 알파! 여기서 쓰러질 거야? 


알파: …….


 

그녀가 바로잡으려 했던 ‘실수’는 이미 자신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에게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앞으로 등을 돌리고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에 얽힌 두 사람은 어딘가에서 작은 교집합이 생기곤 한다. 칼을 맞대거나……. 또는……. 뇌광은 다시 칼날에 응축되었고, 알파는 루시아와 나란히 선다. 

 


알파: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 쓰러지지 않아……. 의식이 침식되기 전에 해결하자고!

 


...

 


기나긴 전투는 끝을 맞이했고, 또 다른 알파는 그녀가 걸어 나온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금이 간 신체가 번쩍거려 다음 순간에 무너질 듯하다. 

 


루시아: 윽…….

 


눈송이가 의식의 공간에서 점점 더 많이 흩날리고 있다. 


 

알파: 융합이 분기점을 거의 넘으려 하니, 넌 절대로 지금 떠나야 해.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보라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의식 공간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변해간다. 

 


알파?: 너는 또 다른 결말로 가는 길을 얻었어. 


 

이 말에 알파는 별 표정 없이, 묵묵히 무너져가는 상대의 몸에 칼을 댄다. 거울이 깨졌다. 또 다른 알파는 데이터 조각으로 부서져 어떠한 링크를 통해 본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힌다. 의식의 바다 주변의 공간이 좁아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촘촘한 감옥이 형성된다. 


 

???: 이것이 당신들의 진정한 목적이었군요. 


알파: 정해진 선별 규칙만 따랐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됐겠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려면 반드시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해. 이제 나는 너의 감옥이야.


???: 공중정원은 당신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승격자들은 당신들을 배신자로 간주하며, 모두가 당신들의 가치를 탐내겠죠. 아마 당신들은 모든 사람과 적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동맹을 가질 수도 없을 거예요.


알파: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해. 


???: ‘지류’를 가로채면 기점과 종점은 영원히 교차할 수 없죠. 긴 시간, 끝없는 소용돌이가 그대를 심연의 나락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알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