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낯선 소녀가 나무줄기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죽은 나비처럼 가볍고,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그녀의 존재 흔적을 가져갈 것 같다.

 


21호: B 영역 5호……. 여기, 꼬마야.


 

21호는 단말기 화면의 전자지도를 450도 회전시켜 정확한 방향을 정한다. 


 

21호: 너도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해?


 

21호는 똑바로 앞으로 걸어간다. 보조 기계는 그녀의 발 옆에서 날렵하게 뛰어노는 강아지처럼 보인다. 


 

21호: 하지만 꼬마가 한 말은 직접 듣지 않아도 마음으로 알 수 있어. ‘으음, 그래.’


 

21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마치 보조 기계의 기계음을 연기하는 듯하다. 


 

21호: 도착했어, 여기야.


 

―몇 시간 후―

 


구조체 1: 야, 뒤에 있는 거, 케르베로스 중에서 제일 정신 상태가 불안정한 것 같은데?


구조체 2: 좀 작게 말해……. 내가 듣기로는, 전에 임무가 한 번 있었는데 저 사람은 주위에 적을 죽인 뒤 이성을 잃고 심지어 친한 사람도 다 놓치지 않았대. 결국 그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현장에 도착해서 처리한 후에야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더라.


구조체 1: 응? 그러면 정화 부대는 왜 저 사람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건데?


구조체 2: 듣자 하니 위에서 누군가가 감싸고 있대. 케르베로스잖아. 알지? 지독한 녀석들만 있는 거. 뭐라 할 수가 없네.


구조체 1: 근데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거 아니야?


구조체 2: 누가 알겠어? 이 임무에 케르베로스 모두가 있는 걸 알았다면 난 오지도 않았을 텐데…….


구조체 1: 네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냐.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어딜 가든 싸워야지. 도구가 된 사람의 숙명인걸. 저 사람 왔다. 뒤돌아보지 마.


21호: 21호가 맡은 일, 끝났어.


 

21호는 말하며 단말기를 높이 치켜든다. 다른 두 명의 동료 구조체에 자신의 데이터 인터페이스를 보여준다.

 


구조체 1: 빨리, 빨리!


 

21호가 다가오려는 발걸음을 눈치챈 두 사람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절로 거리를 벌린다. 

 


21호: …….

 


‘가까이 오지 말라’는 느낌이 낯설지 않다. 21호는 동작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분주한 구조체가 일상 작업을 마치기를 기다린다.


 

구조체 1: 돼, 됐다!


21호: 응, 다음 장소로 갈게, …….


 

21호는 측정 지점에 서서 단말기에 표시된 보정 지점을 영역 각도 표시의 배열과 합친다. 몇 분을 기다리니 누락된 작업 요구 사항이 채워진다. 베라에게 자신도 알 수 없는 문제를 설명하거나, 그 두 명의 구조체를 찾아가 심문하는 것보다 오히려 빈틈을 찾아내는 게 가장 쉬운 해결책이다. 단말기의 알림 소리가 울리니, 21호는 화면을 만져 데이터 결과를 베라의 전용 채널로 전송한다. 

 


21호: 아휴, 이렇게 하면 되겠지. 21호,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꼬마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 

 


21호의 아랫다리를 허물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보조 기계의 합금 재질 외갑에는 익숙하고 차가운 온도가 느껴진다. 

 


21호: 응? 꼬마야, 빨리 봐봐. 시든 나뭇잎이야. 오, 날아간다.

 


보조 기계의 동작은 마른 잎을 놀라게 한다. 그것은 흔들리며 땅에서 떠오르고, 멀지 않은 나무줄기에 둥둥 멈춰 선다.

 


21호: 꼬마야, 그건 잎이 아니야.


???: 움직이지 않는 게 가장 좋아요, 그 아이는 곧 죽을 거거든요.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21호의 머리 위로 근거 없는 대답 한마디가 들린다. 


 

21호: 누구?


 

기체는 이미 공격 자세를 취했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의심스러운 표적을 수색한다. 보조 기계는 짧은 대기 시간 후에 전투 형태로 전환한다.

 


 


???: 깜짝 놀랐나요? 죄송해요.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을 때 바깥의 생명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보는 건 드물어서요.

 


낯선 소녀가 나무줄기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죽은 나비처럼 가볍고,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그녀의 존재 흔적을 가져갈 것 같다. 낯선 옷차림……. 보육 구역 난민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망토를 걸쳤다는 것 빼고는 21호가 인지할 만한 게 더 이상 없다. 상대방은 좀 더 편안한 자세로 앉아 21호와 보조 기계를 이리저리 훑어본다. 이합 생물의 냄새가 나지 않으며……. 상대도 전투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21호는 천천히 무기를 내려놓는다. 

 


???: 고엽 나비는 이제 보기 힘들어요. 이 아이는 아마 당신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에는 거의 완전히 자취를 감췄거든요. 


21호: 나비, 일종의 벌레. 알고 있어. 죽어 가는 거야?


???: 네, 인간에 비해 그들의 생명은 매우 짧아요. 그리고 이 근처는 더 이상 그들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죠. 


21호: 아, 그러면 만지지 않을게.

 

 

단말기에 담긴 영화 외에, 다큐멘터리에만 나오는 내용을 누군가가 먼저 21호에게 토론을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눈앞 소녀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21호: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야? 당신도……구조체야?


???: 구조체……. 맞아요, 당신들의 말로는 확실히 그렇네요. 하지만 여기서 제 호칭은 카론이에요.


21호: 아. 21호, 내 코드 네임.


카론: 21호? 음…….


21호: 너는 어디 소대야?


카론: 저는 당신 측의 소속이 아니에요.


 

카론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21호 앞에 민첩하고 편안하게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마치 가벼운 숲속 짐승 같다. 

 


카론: 저는 보육 구역 정찰 업무를 대신하고, 때로는 심부름도 도와요. 그 대가로 사렌스는 저를 여기에 머물게 해줬어요.


21호: 사렌스?


카론: 보육 구역의 결정권자예요. 그를 모르나요?


21호: 으음,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대장이 맡아. 당신도 임무를 수행하러 여기에 온 거야?


카론: ……당신은 아마 이미 여기서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저에게는 휴식 시간이죠. 쉰다고 하면 여기가 더 편해요.


21호: 왜?


카론: ……. 이게 뭐예요, 당신의 무기인가요? 이건 다른 기계들이랑 달라 보이네요.


21호: 얘는 꼬마야. 꼬마는, 내 파트너.


 

21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그녀는 다른 누군가가 보통의 보조 기계가 아니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카론: 그는 전투 이외의 일을 할 수 있나요?


21호: 당연해. 꼬마야, 춤춰봐.


 

보조 기계는 양쪽의 균형판을 리드미컬하게 회전시킨다. 21호와 카론 주위를 탭댄스를 추듯 돌다가 카론 앞에 멈춰 서서 윗부분의 수신선을 흔든다.


 

21호: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아. 21호와 같아. 그리고 꼬마가 기분이 나쁠 때 하는 첫 번째 생각은 녹티스의 엉덩이를 때리는 거야. 녹티스는 나와 함께하는 덩치 큰 사람이야. 


카론: ‘할루가’.


21호: 무슨 뜻이야?


카론: 군족이라는 뜻이에요. 가족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답니다. 


21호: 오오, 꼬마, ‘할루가’.


 

21호는 이 낯선 단어를 속삭인다. 마지막 음절을 읽었을 때 그녀의 입꼬리는 발음에 따라 절로 올라간다. 


 

21호: ‘할루가’, 듣기 좋아. 21호에게 다른 걸 더 가르쳐 줘.


카론: 네? 그러면……. ‘싱카’, 쉽게 말하면 숲이라는 뜻이에요.


 

카론은 고대 언어에 대한 상대방의 깊은 관심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핏줄에 새겨진 언어를 숨기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황금시대 말기, 어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무한한 숲은 제한적이었고, 오래된 자연보호 구역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족들은 여전히 옛말을 사용한다. 보육 구역의 연구자들은 그녀의 언어를 배우는 데 몰두하여 민족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때의 카론은 언젠가는 살기 위해 외국어도 배워야 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랑의 길에는 예상치 못한 사람과 물건이 항상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카론을 불길한 외부인으로 보았던 첫 번째 보육 구역에서의 짧은 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 


 

21호: ‘싱카’. 음, 이것도 괜찮지만 ‘할루가’가 더 좋아.


카론: …….


???: 카넬리, 노래 정말 잘 부른다! 다시 한번 듣고 싶어. 어때…….


 

~싱카를 연결하고 보호하시옵소서~


~지상의 몸을 감싸고 하늘의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우리의 뿌리를 기르러 우물을 심었노니~


~당신의 속삭임은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전해지네~


~우리 겨레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네~


~영원히 우리를 찬미하소서~


~싱카의 노래를 부르는 영혼을 영원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진짜 짱이다! 나도 이렇게 노래할 수 있었다면 슈네카 아주머니한테 잔소리 듣지 않았을 텐데…….


카론: …….


21호: 방금 그건 뭐야, 듣기 좋아.


카론: 고향의 노래일 뿐이에요. 저도……. 저도 오랫동안 부르지 못했어요.


21호: ‘싱카’를 부른 거, 21호는 들었어. 숲에 산다는 거야? 어쩐지 나무가 더 편해 보이는 것 같았어.


카론: 여기의 숲이랑은 달라요. 제 고향은 한때 끝이 보이지 않는 정글이었어요.


21호: 다 나무인데, 뭐가 달라?


 

21호는 머리를 긁적거린다. 보조 기계도 의아해하는 소리를 낸다.


 

카론: 싱카 님, 우리의 숲. 그녀는 모든 동물과 공기, 물을 받아들여요……. 그녀의 품이라면 잠시라도 외롭고 두렵지 않아요. 우리는 발밑의 흙, 바람의 향기로 그녀를 느낄 수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카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21호: 응?


카론: 아니에요. 너무 많이 말하면 지루할 것 같아서요.


21호: 21호, 지루하지 않아. 당신 집에는 원숭이가 있어? 21호가 단말기에서 봤는데, 숲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몸에서 이를 잡아먹을 수도 있어.


카론: ……원숭이? 우리 말로는 그들을 ‘탐쿤’이라고 해요.


21호: 오――그럼 늑대는? 나는 단말기에서 그들을 자주 보지만, 지금까지 진짜를 본 적이 없어.


카론: ‘사지페’, 그 아이들은 활동 범위가 있고, 저도 딱 두 번 만났어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어린 시절은 민족의 보호 아래에서 보내고 혼자서는 나타나지 않아요.


21호: 21호가 화면에서 봤던 거랑 똑같아.


카론: 당신의 모습은……그들과 비슷하네요. 당신은 사지페 신자인가요?


21호: 비슷해? 21호의 귀랑 꼬리? 그냥 사람 같지 않은 기체 안에 있어야, 21호가 발광하지 않을 수 있어.


카론: 발광?


21호: 응. 대장과 녹티스가 쓰러진 모습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머리가 아파서 그러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겠어. 기체 속이 텅 빈 것처럼 이상하고, 무거운 것 같아. 그들은 21호가 발광하면 자기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고 했어. 어쨌든, 대장은 나의 새로운 기체를 신청했어. 21호는 미쳐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폐기될 거야.


카론: 당신의 대장과 당신이 말씀하신 키가 큰 사람은,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네요.


21호: 응. 꼬마처럼, 그들도 ‘할루가’야.


카론: 그러면 그들이 다치면 슬퍼하는 게 정상이에요. 하지만 확실히 다른 할루가를 다치게 하는 건 좋지 않네요.


21호: 그렇구나. 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21호의 가족이라고는 할 수 없어.


카론: 음……. 굴레의 깊이는 확실히 복잡한 법이죠. 칸고 할아버지께서 사냥을 가르쳐 주셨을 때, 금지된 사냥법이 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나뭇가지에서 처음 잡힌 건 레이너드의 새끼……. 아, 레이너드는 새의 일종이에요. 그런 다음 덫을 놓아 자식들의 울음소리로 성체를 불러와요. 레이너드는 매우 똑똑하고 높이 날 수 있는 새라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도구로는 땅에서 잡기가 어려워요. 그러나 아무리 높이 날고, 함정의 위험성을 알아도 자식들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땅으로 돌아가죠. 다 큰 새의 보살핌이 없다면 새끼를 풀어주더라도 완벽히 성장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해요. 따라서 이런 방법은 허용되지 않죠. 싱카의 노래에서는 영혼은 모두 하늘에서 나온다고 해요. 만약 우리의 영혼을 땅과 가까운 큰 그물로 연결해줄 할루가가 없다면, 외로운 영혼들이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떠다니지 않을까요? 마치……. 지금처럼요.


21호: …….


카론: 죄송해요, 당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마지막 말은 잊어주세요. 21호, 해가 곧 서쪽으로 기울어요. 저의 휴식 시간은 끝났어요. 저는 보육 구역으로 돌아갈 거예요. 당신은요?


21호: 21호, 이쪽으로 가.


카론: 보육 구역 서쪽에 있는 군용 텐트로 돌아가는 건가요? 그러면 보육 구역 옆 오솔길로 가는 게 숲 쪽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빠를 거예요. 보육 구역에 도착하면 그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어요.


21호: 좋아. 꼬마야, 가자.


 

21호가 손짓하자 보조 기계는 통통한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눈앞에 튀어나온 고목 뿌리를 뛰어넘는다.


 

21호: 다시 ‘사지페’ 얘기해줘. 당신은 방금 두 번 봤다고 했어. 진정한 ‘사지페’를.


카론: 좋아요. 그 아이들을 처음 본 건 제가 일곱 살 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