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오를 곳 없던 계단 대신, ‘동포’가 만든 시체 계단으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펑――

리브: 60미터 전방에서 우회전한 다음, 왼쪽에 내부 도로가 있어요! 건물 사이로 지나갈 수 있습니다!

리: 알았어!

리브: 지휘관, 바로 여기예요!

탕탕탕――

부서진 옆문으로 인간 한 명과 구조체 두 명이 줄지어 들어간다. 세 사람 뒤에는 발목이 잠길 정도로 붉은 늪이 솟아오르고 있다. 리브는 대열의 최전방으로 달려 환경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진로에서 자질구레한 장애물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두 번째로 달리고 있고, 리브와 리 사이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위치이다. 뒤에서 리의 총소리가 울리는데, 적을 조우한 이후로 멈추지 않는다. 특화 기체는 퍼니싱 바이러스에 면역이지만, 기체 파손과 의식 피로는 피할 수 없다.

무겁고 다급한 발걸음이 녹슨 철제 계단을 짓밟으며 불쾌한 소리를 낸다. 곧 철제 계단의 비명은 더욱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소리에 묻혀버렸고, 이합 생물들은 앞다퉈 계단을 올라가며 한순간에 도로를 주홍색으로 칠한다.

리는 망설임 없이 다음 순간에 복합 병장을 소총 형태로 전환하고, 계단의 힘점을 향해 정확하게 사격한다――

쾅――

가뜩이나 휘청거리던 계단이 그 위에 붙어 있던 이합 생물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 질주하던 걸음을 멈추고 몇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슴에서 미쳐 날뛰던 심장에 약간의 여유를 준다.

리브: 이 층에서는……. 당분간 건물에서는 더 많은 이합 생물이 스캔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모여있는 곳은 현재 우리 발밑이에요.

리: 우리가 달려오는 길에 홀로 있는 적들을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현재 적의 수는 우리가 처음에 탐지한 것보다 20~30% 더 많습니다.

리는 계단이 끊어진 곳에 서서 아직도 발밑에서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이합 생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쫓는 대상이 위쪽에 있다는 인상이 남아 있는 탓인지 2층을 향해 몸을 흔들고 있지만, 다행히 오르는 데에 필요한 도구는 없다.

리: 우리의 탄약 비축량은 저것들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할지 몰라도, 다음 보급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체급의 적을 만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리&리브: 알겠습니다.

리: 하…….

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는 결코 임무가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마 다른 일이 그를 괴롭히는 것 같다.

리: 루시아는 어떻습니까?

리의 질문을 듣고 리브도 고개를 숙인다. 그동안 이들도 여러 번 묻고 싶었을 테지만, 마땅한 시기가 없었다. 루시아가 공중정원으로 돌아오면서부터 크고 작은 안부를 묻는 게 일상이 됐다. 예비 논의 끝에, 루시아는 승격자와 몰래 접촉했다는 위험한 행동으로 인해 24시간 내내 의식의 바다 감시를 받고 있다. 과학 이사회 책임 아래 감사원이 감독하여, 루시아가 승격자와 접촉했을 때 기억한 데이터를 조사한 다음 보고서를 여러 당사자에게 동기화한다. 명목상으로는 조사 및 데이터 수집일 뿐이지만, 언제 이 모니터링이라는 잔재주를 끝낼 수 있는지는 단기간에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나도 보호 감독 당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고, 그것이 전투보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적어도 과학 이사회에는 비밀리에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

아시모프를 향해 손을 내민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시모프는 차가운 손을 뒤로 흔든다. 

...

리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과학 이사회로부터 정시에 도착한 이메일이 단말기에 뜬다.

단말기의 스크린에 표시된 내용을 잘 볼 수 있도록 리와 리브 쪽으로 돌린다. 위의 내용은 초각 기체 실험 중 의식의 바다 과부하에 대한 일부 기록이며, 더 자세한 주석과 분석이 많이 있다. 

리: 이건…….

리브: 리 씨의…….

리는 조금 놀란 듯하다. 그는 승인을 구하는 것처럼 나를 올려다본다. 단말기의 투영 키보드를 호출하여 리가 조작하기 쉬운 위치에 투사한다. 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움직인다. 30분 후, 초각 기체의 의식의 바다에 대한 추가 주석 및 분석이 제거 및 재배열되어 새로운 텍스트 메일이 된다.

【006호】

【오늘은 정기 검사일 뿐, 그녀는 피로 외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어제 심야에 쿠로노는 공개된 보고서의 몇 가지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감사원은 오늘 아침에 일부 자료를 재분석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나는 인력 부족을 명분으로 명확한 수요 원인을 요구하였으나 아직 회답을 받지 못했다.】

【아직 구체적인 의도를 모르므로 주의 요망한다.】

리브: ‘별일 아니다’……. 루시아를 말하는 거겠죠…….

리: 그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안심할 수 있겠어. 그런데 언제부터…….

리는 메일 발신자의 신원을 짐작한 듯하다. 상대방은 초각 기체와 이중합 탑 사건에서도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리브: 지휘관, 사과하지 마세요……. 지휘관은 항상 우리를 생각해주시잖아요.

리: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굳이 이 일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겠죠.

리브: 어쨌든 루시아만 괜찮다면……. 하지만…….

리브는 그동안 명목상 감시를 내걸었던 일이 생각났는지 다시 표정이 굳어진다. 두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하는 차에 희미하게 가벼운 소음이 들리는 것 같다. 눈을 감고 집중하며 2초 동안 느낀다. 고요 속에서 철제품을 천천히 늘리거나 비틀어 놓는 듯한 묘한 소리가 달팽이관 속으로 조용히 파고든다. 고개를 들어 이 상황을 말하려 할 때, 리브는 일어나 새로운 환경 스캔을 시작한다. 동시에 리는 무기를 들고 막 끊어진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다.

리브: ……적의 기습이 없다면, 주요 위협은 여전히 우리의 발밑에 있어요.

리: 저것들이 끊어진 계단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것 같아.

끊어진 계단은 이미 내가 있는 2층과 완전히 연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지능이 없는 이합 생물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구조체라도 부러진 사다리로 올라타려면 힘이 많이 든다. ――그 계단은 이미 완전히 파손되었고, 그중 날카롭고 찢어진 지탱 재료가 드러나 발 디딜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것은 모래와 자갈 위에 비스듬히 쓰러져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는 곳도 오르기에 불리한 경사가 되었다. 이지적인 사람이라면 2층으로 올라갈 시 다른 길을 찾거나 다른 등반 도구를 빌릴 것이다. 반대로 이합 생물들은 그동안 망가진 계단을 오르려고 시도했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내가 알아챌 때까지. 철제품을 천천히 늘리거나 비틀어 놓는 듯한 묘한 소리는 남은 사지로 계단을 기어 다니는 이합 생물의 소리이다.

리브: 잠시만요, 저 이합 생물, 저건…….

리브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이합 생물 중 한 마리가 특정 계단 중앙에 노출된 날카로운 뼈대로 몸을 조금씩 옮긴다. 그 이합 생물은 가장 부드러운 복부가 바늘 끝 같은 재료에 닿음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의 배가 뚫렸을 때, 나의 뇌에서 들린, 피식하고 흐르는 소리가 자동으로 일치했다. 그것의 행동은 부상으로 인해 점차 느려졌지만 멈추지 않는다. 복부에서 흘러나온 액체는 건물 파편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려 더 많은 이합 생물의 발아래에 긴 강을 만든다. 그것이 멈추었을 때, 또 다른 이합 생물은 시체를 밟고 더 높은 계단을 향하여 봉사적으로 길을 닦기 시작한다. 오를 곳 없던 계단 대신, ‘동포’가 만든 시체 계단으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이전에 들은 소리는 계단을 오르는 이합 생물이 많아지면서 파손된 건축자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해 변형되는 소리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바벨탑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탑을 무너뜨리기에 급급한 신처럼 느껴진다.

리: 알겠습니다.

리브: 대피 경로를 지금 계산 중이에요. 대략 30초 정도!

...

30분 후.

리브: 스캔을 완료했어요. 당분간 위험한 상황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지형적인 이점이 없어서, 저는 계속 스캔을 진행하여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게요.

리브: 별말씀을요.

리: 길에 있는 그 몇 마리일 뿐입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복합 병장 소음기도 오늘 유용하게 쓰였네요. 아주 좋습니다. 최적화 제안이 있는데, 돌아가서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리: 다음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리브: 네! 잠시만요…….

리브는 크고 작은 정보 투영을 동시에 관찰하기 쉬우면서 다른 정보끼리 방해하지 않도록 레이아웃을 조정한다.

리브: 받은 임무 좌표는 총 3개로, 위도 내림차순으로 조사하여 현재 2개가 완료되었고 현재 3번째 좌표점에 있습니다. 1번 좌표점은 여과탑 범위에서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요. 지역 식생이 급격히 괴사하는 명백한 징후를 보여 토양의 퍼니싱 농도는 기준을 심각하게 초과합니다.

리: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여과탑의 적용 범위는 공개된 유효 범위보다 더 크며, 적용 범위 외에 효과가 감소한 ‘반피복 구역’이 있습니다. 저는 1번 좌표점에서 가장 가까운 여과탑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반피복 구역’에서 이러한 퍼니싱 농도가 나타나지 않아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리브: 네……. 그리고 저기 있는 이합 생물의 힘은 우리가 평소 교전했던 상대보다 더 다루기 어려워요.

리: 여분의 퍼니싱 바이러스에 의해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할 텐데, 이러한 ‘영양소’는 어디에서 오는 건지? 그 부근에서 최근 퍼니싱 바이러스의 파동을 일으킨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리브: 2번 좌표점은 원래 46호 대형 보육 구역에서 남서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어요. 여과탑의 유효 범위 내에 있지만 여과탑은 비활성화 상태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퍼니싱 농도가 가장 높은 지점은 보육 구역에서 남서쪽으로 7km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어요. 그곳에서 약 96㎡의 면적을 차지하는……. 이합 생물의 시체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관찰 후, 이합 생물사체의 일부가 분해되어 땅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행히 46호 대형 보육 구역은 반이중합탑과 가까워서, 주민들은 이미 청정 구역의 첫 이주자로 떠났어요. 따라서 이합 생물이 대량 출현했을 때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리: 많은 수의 이합 생물이 집중적으로 죽고 토양으로 분해된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게 확실히 가장 합리적이겠군요. 전제 조건이 있는데, 1번 좌표의 발전이 2번 좌표보다 한 단계 더 빠르기에 1번 좌표점에서 분해되지 않은 이합 생물의 사체를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것들이 모두 토양에 녹아들어서 토양의 퍼니싱 수치가 그렇게 높은 거죠.

리브: 어떤 건가요?

리와 리브는 살짝 의문을 표하더니, 갑자기 세 사람은 모두 사색에 빠진다. 

리브: 혹시……. 새로운 승격자가 아닐까요?

리브: 그러면 저는 우리 밑에 있는 이 목표 지점의 상황을 통합할게요. 3번 목표 지점은 027호 도시 폐허로, 원래 보육 구역 조성 부지로 계획되어 여과탑의 유효 범위 내에 있어요. 6개월 전, 지진으로 도로가 파괴된 뒤 수리하지 않아 027호 도시의 보육 구역 건설 활동은 무기한 중단되었어요. 이 구역의 난민 대부분은 여과탑으로 피복된 지역의 절반에 살고 있어요. 이곳에는 여러 개의 작은 보육 구역이 있다고 해요. 여과탑은 과부하 됐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우리가 받은 임무 정보에 따르면, 지상에서 보낸 데이터에는 여기에 상당한 수의 이합 생물이 있다는 언급이 없어요. 3번 좌표점은 1, 2번 좌표점과 비슷하지만, 진행이 더 느릴 뿐인 동일한 사건일까요?

리: 즉, 머지않아 무언가가 이곳에 와서 모든 이합 생물을 죽이고 같은 시체 더미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인가?

리: 확실히 수치만 보면 여과탑의 존재는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곳의 이합 생물이 여과 탑 환경에 더 내성이 있다는 의미인가요?

여과탑이라는 변수가 균일하지 않으면 방금의 추론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리브: 아니면, 이 세 가지 목표 지점의 이상 현상이 정확히 동일한 패턴을 따르지 않는 걸까요? 

리: 이제 유추할 수 있는 공통점은, 모두 모종의 이유로 다량의 고강도 이합 생물이 출현했다는 거죠. 그들의 출현 원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면 더 많은 추론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토론이 또 교착 상태에 빠졌다. 놓칠 수도 있는 세부 사항을 머릿속에서 짜내는 동안 리브가 갑자기 모든 투영을 종료한다.

리브: 상황이 좋지 않아요, 지휘관. 그 이합 생물들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요. 빨리 움직여야 해요.

리: 바로 돌아갈까요? 모든 이합 생물을 죽일 수 있는 그 적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리: 네. 대기하겠습니다. 

리는 주머니에서 탄창처럼 생긴 작은 물건을 꺼내고, 복합 병장으로 변환한 뒤 머리 위 건물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총을 격발한다. 내용물은 총알처럼 급속히 발사되지 않고, 갈고리 발을 던지듯 비교적 느린 속도로 허공에 포물선을 그린다.

리: 관찰을 위한 ‘눈’입니다. 저기에 머무를 수 있는 소형 원격 제어 카메라 로봇이죠. 하지만 제가 직접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강적이 있다면 직접적인 충격도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리브: 지휘관, 대응 소대의 회신을 받았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수송기는 지정 장소로 이동할 수 없다고 해요. 우리는 목표 지점에서 조금 벗어나야 할 것 같아요!

리브: 잠시만요……. 있어요! 우리는 먼저 남쪽으로 전진할 수 있어요. 그 방향에 중형 보육 구역이 있고, 동시에 공중정원의 임무 부대도 있습니다!

리: 먼저 상대방에게 응대를 신청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리의 현재 화력으로 적의 추격을 막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보육 구역으로 유인할 수 없으니까요!

리브: 네! 부대의 책임자는……. 케르베로스 소대의 베라 양이에요! 통신이 발송되었습니다!

리, 리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