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역/오역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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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름 이벤트 모음



여름의 잔향

일찍이 멀어진 줄 알았던 것들이, 모르는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녹음이 되었다.

 


지도를 따라 콘스타레예의 길을 걸으니, 발소리가 또렷하게 텅 빈 거리에서 울려 퍼진다. 이 구역은 아직 개발을 완전히 끝마친 게 아닌지 관광객들의 방문이 드물다. 여름날의 맑은 하늘에 햇빛이 가득 차 먼 곳의 깨끗한 모래사장이 눈부시게 보인다. 전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같이 휴가를 보내자고 리에게 말했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약속 장소에 다다르니 멀지 않은 곳에 낯익은 그 뒷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휘관: (조심히 걸어간다)


 

이렇게 제멋대로의 ‘기습 공격’이 반드시 리한테 걸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 조심히 다가갔으나, 리의 바로 뒤까지 왔는데도 상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휘관: (설마……서서 잠든 건 아니겠지?)

지휘관: (내 잠행 기술이 이렇게 대단했나?)


 

다음 행동을 생각하던 차에 상대는 갑자기 입을 연다. 

 

 

리: ……28초.


지휘관: 뭐?

지휘관: 어?


리: 목표 경계 범위에 도달한 후, 당신이 놓친 최적의 행동 시간입니다.



지휘관: 역시 내가 온 걸 진작에 알았네.


리: 당연하죠. 제가 당신의 발소리와 행동 습관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습니까?


지휘관: 전술 훈련이 아니라고.


리: 알고 있습니다.


리: 지휘관이 그렇게 귀신처럼 둥둥 떠다니는 행동까지 하면서 무엇을 할지 궁금해 조금 기다렸습니다.



지휘관: 이게 어떻게 귀신이 떠다니는 모습인데……


리: 지휘관은 이 단어의 정의를 다시 배워야 할 것 같군요.


지휘관: 뭐라도 할 시간이 없었어……


리: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도 당신에게 다음 기회를 주지 않아야겠군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차분한 말투지만, 그의 눈빛에는 가벼운 웃음기가 서려 있다. 그 푸른 눈은 원래 적막한 빙해 같았는데, 지금은 부서진 얼음층 아래에 감춰진 따스한 빛을 볼 수 있다.

 


지휘관: 오래 기다렸어?


리: 아뇨.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준비하고 있었죠. 

 


리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의 뒤에 잠수 장비가 쌓여 있다. 종류별로 모두 갖추어져 있어 그가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걸 찾아왔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지휘관: 우리 이렇게 많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지휘관: 그냥 가게 전체를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리: 그저 혹시 모를 물건을 점검하여 만일에 대비할 뿐입니다.

 

하지만 공기통과 튜브에 비해,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역시 리 그 자체이다.

 


지휘관: 뜻밖이네……. 네가 이 옷을 입다니.


 

리가 입은 짙은 남색의 유선형 잠수복을 보다가, 존재감이 강한 밝은 노란색의 작은 러버덕 장식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끌린다. 리는 나의 눈빛을 눈치채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다. 


 

리: ……제 기억이 맞다면, 이건 당신이 추천한 거지 않습니까.


지휘관: 그땐 선택지도 별로 없었으니까……


 

그건 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약속을 받아들인 뒤였다――

 

예정 외의 일이기에 두 사람 모두 스쿠버 다이빙 장비가 없어, 열정적인 한 기계체의 강력한 추천으로 리와 함께 바다와 가까운 구역에 있는 수영 장비 매장을 찾아 잠수복을 골랐다. 지난 임무에서 접한, 감염되지 않은 기계들은 상당수가 인간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성의 주민들은 이곳의 원래 주인들처럼 대부분 온화하고 예의 바른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영 장비 가게의 주인은 모델이 좀 오래된 것 같은 우호적인 기계로, 그에게 온 이유를 설명한다. 기계는 머리를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리며 환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것의 전광판에는 문자가 표시됐다.

 

 


“첫 손님. 알겠습니다. 바키에의 소개로 오셨군요.”


“개업 시 사은품을 무료로 증정해드립니다.”


 

기계는 유리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 매장이 구조체와 생체 기계를 위한 수영복 코팅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다.


 

“편하게 둘러보세요.”


 

기계는 깍듯하게 인사하고, 상품 열람 단말기를 나에게 건넨 뒤 휴면 상태에 들어가 매장 내 공간을 단 두 고객에게 남겨줬다. 진열대 위의 상품에 눈을 돌리지만, 매장이 크지 않아 이곳의 잠수복 종류를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지휘관: 리는 어떤 코팅이 좋아?


 

리는 빠르게 상품 목록을 훑어보더니 침묵에 빠진다.

 


리: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지휘관: 아무거나 금지.

지휘관: ……다 좋은데, 가장 어려운 대답이네.


리: 당신이 고르세요.


 

그는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코팅 피팅 리스트에서 리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세트를 선택했다. 네이비색의 잠수복인데, 황금시대 유행이라고 적힌 스타일링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리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지휘관: 이거부터 입어볼래?


리: 네.

 


손에 든 단말기를 리에게 맡기고, 나도 내 사이즈에 맞게 보이는 잠수복을 들고 가서 입어봤다.

 

 

탈의실에서 나오니 마침 코팅이 바뀐 리를 봤다. 그는 거울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지휘관: 어때, 움직이는 데 불편한 건 없어?


 

공중정원 표준 제식의 코팅과는 다르기에, 아직 기체에 익숙한 코팅이 아니라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리: 네. 잘 맞습니다. 하지만……


 

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의 수경을 조정했다. 무시할 수 없는 작은 노란색 러버덕 장식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소리를 냈다.

 

쮝――

 


지휘관: (웃음을 참는다)

지휘관: ……


리: ……이게 뭡니까?

 


리는 잠수복을 손에 들었다. 밝은색과 같은 스타일의 귀여운 장식이 그의 담담한 표정과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지휘관: ……흔히 볼 수 있는 장식품이지.

지휘관: 스쿠버 다이빙 장비 세트지.


 

리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휘관: 어쩔 수 없잖아. 코팅 종류가 정말로 많지 않다고……

지휘관: (조금 죄책감이 들긴 하네.)


 

상품 페이지의 프로필을 가리켰다. 그 위에 과장된 색의 글씨로 “유행 거장 바키에의 장인 정신이 담긴 작품, 콘스타레예 제1의 패션 브랜드”라고 쓰여 있었다.

 


지휘관: 원래 이런 스타일이래.



지휘관: 아니면, 이 핑크색 코끼리를 한번……?


리: ……갑자기 이게 좋아지는 것 같네요.



지휘관: 봐, 내 옷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잖아.


리: 색이랑 모양, 종류가 다 다르잖아요.


지휘관: 같은 시리즈야.



 

그때, 리는 아직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이 코팅을 선택했다.


...


우리 둘은 다른 일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다가, 한가해진 후에야 리가 내 단말기에 전투 전 브리핑을 보내온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휴가 중에는 전투 임무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메일을 여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이것은 상세한 지형도로, 내용은 콘스타레예 연안 중 잠수하기 가장 적합한 지점, 최근 며칠 동안 수역의 날씨와 해류, 지형 깊이, 그리고 산호초를 관측할 수 있는 천해 좌표, 그리고 잠수에 필요한 주의 사항이다. 형식은 익숙한 임무 전 브리핑이지만, 내용은 오히려 간단명료한 잠수 공략법이다.


 

...

 

리는 이미 장비를 모두 착용했다. 출발할 준비를 마친 리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쩌면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리: 왜 웃으십니까?



지휘관: 이 코팅이 너랑 너무 잘 어울려서.


리: ……전 당신이 고의로 선택한 줄 알았습니다.


지휘관: 나 진짜 기대된다, 리.


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지휘관: 당근 아니지.

지휘관: 억울해!


 리: 갑시다.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지휘관: 좋아.

지휘관: 응, 가자.


 

...

 

 

오후의 햇빛은 해면이 잔잔한 물결 빛을 내도록 한다. 바닷물은 마치 침착하고 깊은 호흡으로 하얀 물거품을 백사장으로 밀어 올리는 것 같다. 리와 함께 얕은 바다 구역을 향해 걸어가던 중 발목이 약간 가려운 것을 느낀다. 고개를 숙이자 떠내려온 소라게가 내 발에 부딪힌 뒤 순식간에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리: 왜 그러십니까?


지휘관: 별일 없어. 소라게 한 마리가 있었어.


리: 이 해역에는 독성이 있는 생물들이 떠내려올 확률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지휘관: 알고 있어. 네가 보내준 잠수 가이드에 나와 있거든.


리: ……좋습니다.


지휘관: 그렇구나……


리: 제가 보낸 메일을 하나도 안 읽으셨나 봅니다?



지휘관: 다 봤어.


리: 그러면 됐습니다.


지휘관: 하지만 리 선생님한테 다시 한번 듣고 싶은걸.


리: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지휘관: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한가한 건 오랜만인 것 같아.


리: 네.


지휘관: 모처럼의 휴가니, 리도 푹 쉬어……


 

내 기억 속에도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다. 전투는 위험과 고통을 동반했지만, 평화와 웃음도 있었다. 그때 모두는 언뜻 본 광풍과 소나기는 단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거친 파도를 헤쳐온 지 이미 너무 오래됐기 때문인지, 마침내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이 평화로운 해안을 거니니 오히려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리도 같은 생각일까? 비록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내가 겪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때로는……

 


리: ……아직 긴장을 풀 때가 아닙니다.


 

마음속 불안을 입증하듯 주변 사람들의 속삭임이 어렴풋이 들린다. 

 


지휘관: 뭐?

지휘관: 방금 뭐라고 했어?


리: ……아닙니다. 지휘관, 방금 가만히 계시지 않았나요……무슨 생각이라도 하셨습니까?



지휘관: 나 멍때린 적 없어.


리: 그러면 당신은 우리가 이미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세요.


지휘관: 널 생각하고 있었지.


리: ……전 바로 당신 옆에 있습니다.


지휘관: 알고 있어.


리: 흠……다이빙 준비하러 가죠.


 

리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걸음을 재촉한다.

지휘관: ……아.

지휘관: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리: 그만큼 당신이 정말 느긋하다는 거겠죠.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는 모처럼 어색한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리: 갑시다. 다이빙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

 


우리는 저번에 고른 입수 장소로 와서, 입수 전 간단한 훈련을 한다.

 


리: 제 기억이 맞다면……이게 지휘관의 첫 현장 잠수인가요?


지휘관: 틀림없어.

지휘관: 예전에도 이런 기회는 없었지.


 

이전에도 휴가 기간에 바닷가를 다녀왔지만, 기껏해야 모래사장에 누워보거나 물장구를 친 게 끝이다.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잠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리: 지휘관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가장 기초적인 훈련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지휘관: 호흡 훈련은 해봤어.

지휘관: 나 그래도 이론은 마스터했어.


 

잠수 이론은 이미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파오스 훈련 과정에도 이와 유사한 게 있었다.

 


지휘관: 무중력 훈련과 비슷할 것 같은데……?

지휘관: 나 아직 몸도 짱짱하고, 운도 좋다고.


 

리: ……저는 지금 당신이 이곳에 일부러 오도록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번은……누군가가 제지에도 불구하고 파도에 머리부터 박더니, 제가 그 사람을 건져와야 했습니다. 그 대가로 관절에 쌓인 염분과 고운 모래를 굉장히 오랫동안 치웠죠.



지휘관: 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누구일까?


리: 모르는 척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 보여드릴까요?


지휘관: ……너는 왜 몰래 사진 찍는 건데!


리: 이걸 죄증이라고 하죠.


지휘관: 하지만 너도 그때 즐거웠잖아.


리: 진짜 아니거든요. ……적어도 당신만큼 신난 적은 없습니다. 



지휘관: 그러니까……결국은 문제없다는 거지.


리: 만약 당신을 잘 알지 못했다면, 지휘관의 IQ가 유아 퇴행한 건 아닌지 의심했을 겁니다. 지휘관, 자신의 생명을 아무에게나 쉽게 넘기지 마세요……. 저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항상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뒤에 이어질 모든 전투에서도요.


지휘관: 너니까, 내가 믿고 이러는 거야.

지휘관: 안심해. 나는 스스로 잘 보호할 수 있어.


 

리는 겉으로는 여전히 평소처럼 차분하다. 하지만 조용히 움켜쥐고 있는 오른손은 그가 무언가를 꾹 참고 있을 때 하는 무의식적인 동작임을 알아차렸다.

 


지휘관: 너……


리: 됐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지휘관은 위급 상황에서의 자기 보호 수단에 필요한 기술을 가능한 한 많이 습득해야 합니다. 기회는 드물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있죠. 다만, 훈련이 좀 엄격할 수 있으니 각오하세요. 



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는 듯한 표정이 역력해진다. 우리……처음에는 긴장이나 풀러 온 것 같았지만?

 



 

파도에 비친 빛

하지만 지금은, 긴장을 풀고……당신이 가져온 평화를 즐겨주세요.

 

 

리: 그러면……


 

잠수복 복장의 리는 이때 무릎까지 오는 바닷물 사이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리: 이번에는 물에 들어가기 전 훈련부터 시작합니다. 스노클링 요령을 터득하면 딥 다이브 등 좀 더 어려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지휘관: 네, 리 선생님.


리: ……


지휘관: 선생님의 잠수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리: 스쿠버 다이빙을 준비 없이 쉽게 시작하지 마세요.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고 섣불리 물에 들어가면, 예상외의 상황에 반응할 기회조차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진짜로 시작하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세요. 어쨌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이미 진지하게 교관 모드에 들어간 리를 보고 있자니, 그가 공중정원의 훈련장에서 나에게 사격술을 지도할 때도 항상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모든 모의 훈련을 대했던 게 생각난다. 그러나 전처럼 훈련장에서의 대련과는 달리, 이건 더욱 오랜만의 ‘수업’으로 리는 교관이고 나는 수강생이다. 그런데, 휴가인데 이렇게 심각해도 되는 걸까? 지금은 약간 과잉보호하는 가장 같다……

 


지휘관: 근데 갑자기 스쿠버 다이빙을 왜 이렇게 잘해? 너도 수영 잘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리: ……전에, 수중작전이 필요한 임무가 있다면 그에 맞는 기능 모듈을 추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구조체라서 처음 배우고 익히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지휘관: 젠장, 인체가 이렇게 불편한 거라니……


리: 제가 가르치면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지휘관: 역시 리 오빠! 진짜 믿음직스럽네!


리: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은 하지 마세요.



지휘관: 근데……요즘 그레이 레이븐은 수중작전이 별로 없지 않아?


리: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휴가 마지막 날에 실제로 다이빙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거죠.


지휘관: 알려줘, 리 쌤!


리: 한 번만 더 그렇게 불렀다가는 바로 물에 던져버릴 겁니다. 먼저 안면 거울과 호흡관을 잘 착용하고……

 


리는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있는 수경을 조정한다. 잠시 후,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기가 쓰고 있던 장비를 벗는다. 

 


지휘관: 왜 그래?


리: 여기……연결된 부분이 계속 햇빛에 노출돼서 그런지 고무가 좀 노화됐습니다. 이런 설비를 쓰면 물이 들어갈 수 있으니 바꾸는 게 좋겠군요.


지휘관: 하지만 우리는 여분의 수경이 없잖아……. 그 가게에 한 번 더 갈래?


리: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머리에 쓰고 있던 수경을 벗은 후 나에게 씌워준다.

 

 

리: ……움직이지 마세요.


 

리는 무의식으로 뒤로 젖혀진 머리를 가볍게 받쳐주며 원래 그의 것이었던 수경과 호흡관을 나에게 씌운다.

 


리: 당분간은 이걸로 합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리가 더 가까이 다가와 간단하게 나를 위해 수경 끈을 조정해준다.

 


리: 꽉 끼는 느낌이 들진 않나요?


지휘관: 응. 딱 좋아.


리: 좋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의 머리둘레는 변화가 없는 것 같네요.



지휘관: 머리둘레 데이터까지 왜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거야……


리: 수트를 디버깅할 때 이 데이터를 사용하니까요.


지휘관: 머리둘레에 변화가 생기면 좀 무섭겠는데……


리: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도록 해주세요.


 

모든 잠수 장비 착용이 끝난 후, 리는 다시 한번 곳곳의 세부 사항을 점검하여 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다.

 

리: 적당하네요.

 


리의 시선이 내 정수리를 스치고 어느 한 지점에 멈추자, 그가 말하는 ‘적당함’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작은 오리 수경은 내 머리 위에 있다…….

 


지휘관: 그럼 네 장비는 어떻게 하고?


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수경이 필요 없어요. 그대로 물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지휘관은 아직 안 됩니다. 잠수 기술부터 연습하죠.

 


리는 계속 내 손을 잡아준다. 먼저 비교적 얕은 바닷물에 뜬 다음, 내 힘으로 파도의 기복을 느끼며 리의 지도하에 사지를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한다.

 


리: 과호흡이 오지 않도록……호흡 리듬에 주의하세요. 무릎에 힘주지 말고요. 다리의 힘 위치를 잘 살펴야 힘이 분산되지 않습니다. 


 

간단명료한 설명과 적절한 안내로, 뜻밖에도 리가 이렇게 인내심이 많고 진지한 선생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리의 협조로 몇 차례 훈련한 후, 스스로 부상과 하강을 통제하며 호흡관으로 물을 배출하는 방법을 많이 익혔다. 

 


리: 거의 다 됐습니다. 


지휘관: 나도 드디어 전장에 나갈 수 있는 건가?


리: 초보자치고는……나쁘지 않습니다. 당신도 기초가 없는 건 아니네요.


 

모두가 알다시피, 리의 ‘괜찮다’는 ‘좋다’라고 할 수 있다.

 


지휘관: 역시 나야. 

지휘관: 다 리가 잘 가르쳐준 덕분이지.


리: 기뻐하기에 이릅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에요.


 

리는 멀지 않은 곳의 해면을 가리킨다. 그곳이야말로 이번 잠수의 진정한 목적지다.

 


지휘관: 출발!

지휘관: 나 준비됐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아간다. 해안에서 멀어질수록 파도의 추진력이 더 많이 느껴진다. 


 

리: 손을 저에게 주세요.


 

리는 손을 꼭 잡고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호흡관의 위치를 조절한 후, 리의 신호에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바닷물이 머리까지 잠긴 순간, 몸이 부드럽고 밝은 파란색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느낀다. 

 

 

햇빛과 맑은 하늘이 바닷물에 의해 부서진다. 현란하게 반짝이는 빛은 바다 밑 고운 모래로 떨어지고, 이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엷은 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 밑에 떨어져 약간의 눈부신 광채를 반사한다. 수중행동에 적응한 후 리에게 OK 사인을 보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자신이 따라간다는 신호를 보낸다. 

 


리: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그의 입술이 열리며 작은 기포가 속박을 벗어나 수면으로 흩어진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둔탁한 물소리를 사이에 두고 귀마개를 통해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래서 리를 따라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천천히 헤엄쳐 간다. 

 

 

밝은색의 바닷물고기는 마치 뭇별처럼 우리를 에워싼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몸을 헤엄쳐 지나가고, 해면에 쏟아지는 햇빛에 힘입어 스스로 해저의 모든 것을 또렷이 본다. 

 


리: ……천천히.

 


리는 항상 옆에서 속도를 맞춰준다. 딱 닿을 것 같지만 행동에 방해가 되지 않는 거리로 나를 더 먼 곳으로 인도한다. 이렇게 리와 나란히 바닷속을 헤엄치니, 한때 공중정원의 가상 투영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경치가 생각난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방식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때로는 리의 지시에 따라 올라가 물을 갈고, 이어서 다시 이 바닷빛으로 녹아든다.

 

 

거대한 규모의 산호초를 지나갈 때, 물고기 떼가 우리 주위를 지나가며 비늘빛으로 반짝이는 은빛 회오리바람이 되어 다시 밀려온다. 

 


지휘관: ……!


 

물고기 떼가 잠시 시야를 가려,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지나가는 물고기 떼를 피하려 한다. 간단한 동작 하나만으로 물줄기를 따라 몸이 뒤로 밀려나고, 나와 리의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진다. 무의식적으로 그가 있는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갑작스레 멀어진 거리 때문에 물고기 떼가 시야를 가린다. 내 손은 그의 손끝을 스칠 뿐이었다.

 

 

멀리 헤엄치기 전에, 리는 이미 속력을 내어 내 앞으로 다가온다. 깜박거리는 물결 속에서 한결같이 담담한 얼굴이, 일순간 선명한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물들어 나를 놀라게 한다. 내 기억으로는, 리가 이렇게 겁에 질린 모습은 좀처럼 본 적이 없었다. 

 


리: 지휘관!


 

팔이 꽉 잡힌다.

 


지휘관: (괜찮다는 뜻으로 손짓한다)


 

그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리: 계속할까요?

 


물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고, 리의 그 상태가 마음에 걸려 고민 끝에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한다. 

 


지휘관: (거의 다 했으니, 우리 먼저 해안가로 돌아가자.)


리: 알겠습니다.


 

리는 평소대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침묵이 흐르고 내내 말이 없다. 나를 데리고 천천히 부상하여 해안을 향해 헤엄쳐 갈 뿐이다.

 

 

햇살은 더 이상 눈부시지 않다. 그것은 해안가에 앉아 있는 두 개의 젖은 그림자에 부드럽게 드리워져, 바닷바람을 맞는 몸이 온화한 온기를 느끼도록 한다.

 


리: ……제1차 잠수인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지휘관: 이 정도쯤이야!


리: ……정말입니까?


지휘관: 괜찮은 것 같아.


리: 그렇습니까, 역시 당신답네요.

지휘관: 좀 어렵네.


리: 아무래도 자신의 수준은 알고 있나 보군요.


지휘관: 그것보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너 너무 긴장한 것 같아.


리: ……지휘관이 위험에 처할까 봐 걱정했을 뿐입니다. 경험이 많은 잠수부라도 돌발 상황에서 몸을 던지지 못하기 마련이죠.


지휘관: 근데 이번뿐만이 아니었어.

지휘관: 그게 다야?


 

얼마 전의 사건 때문에, 그레이 레이븐의 세 사람은 계속 나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여 왔다.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지만, 내가 공식 석상에 설 때는 반드시 동행을 신청한다. 더욱 세밀한 장비와 수송기 검사, 그레이 레이븐과 연락한 사람에 대한 뒷조사, 지나치게 상세한 예비 방안……. 그리고 방금 물속에서 보았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애써 버티는 것 같은 표정. 여전히 시시각각으로 심금이 조여지는 것 같고, 어떤 방대하고 공허한 미지의 대치를 준비하는 것 같다. 또 시야 깊이 안개가 끼는 듯하여 어떠한 방향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지휘관: 너 요즘 계속 긴장하는 것 같아……. 아직도 그전 일로 걱정하는 거야?


 

리에게 이 문제를 묻는다. 이건 또한 리를 여기로 초대한 이유 중 하나이다. 이전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그와 제대로 대화할 적절한 기회는 없었다. 

 

 

리: ……네. 당신이 걱정됩니다. 

 


조금 의외인 것은, 리가 이전처럼 완강히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 하지만 확실히……이번뿐만이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떨구고 그러한 침묵의 표정을 짓는다.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리: ……만약 제가, 많은 일에 대해 기시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 겁니까? 그게 터무니없이 들리고, 심지어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지휘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지. 내가 같이 찾아줄 수 있어. 그런데……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네가 먼저 말해줘야 해.


리: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리: 이 기체에 적응하면서부터, 저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일부 “예감”은 아무런 조짐 없이 나타나지만, 제가 자세히 기억하려고 하면 흔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와 같이 난해하고 분명하지 않으며, 다른 세계로부터의 투영과도 같다. 이미 그의 기억 속에 담기 어려운 각인을 새긴 것 같았다.

 


리: 저는 가능한 한 많은 “예감”을 경험하며 느낀 점을 기록했습니다. 지휘관, 그건 추론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실제로 본 모든 것을 경험했습니다. ……오랫동안 의식의 바다에서, 이런 이상 현상이 어디서 왔는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지휘관: 코퍼필드 박물관 전투에서 네가 말했던 좌표……


리: 맞아요. 그때부터……아니, 아마 그때보다 조금 더 일찍일 겁니다.


지휘관: 나는 네가 제출한 이중합 탑 보고서를 아직도 기억해.


리: ……아직도 이중합 탑 안에서 일어난 일이 제 의식의 바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리: 모든 검사 보고서에 제 기억 데이터에는 공백이 없다고 나와도, 중요한 일을 잊은 게 틀림없다는 걸 압니다. 의식의 바다 상 빈 시간은 데이터 오류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고 싶지만, 아직도 아무런 길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앞바다를 바라보며, 물고기 한 마리가 스쳐 가는 바닷새에게 물려 허우적거리다 다시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을 지켜본다.

 


리: ……만약 이게 풀리지 않는 명제라면, 이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건 무의미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황당한 추측은 결국 믿을 만한 보고로 집약될 수 없죠. 그래서 저는 비논리적인 기시감을 잠시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리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금 난처하게 다시 입을 연다.


 

리: 당신이 탄 수송기가 적조로 오염된 강에 추락했다는 사실을 접하기 전까지는요.


지휘관: ……


리: ……오랫동안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그는 진실이든 허황이든 간에, 한 마디로 뼈저린 많은 절망과 아픔을 가볍게 넘겼다. 

 


리: 제가 그……장면을 봤을 때. ……제 첫 반응은 단지, 일찍부터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낯선 느낌이 금세 사라져도……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뒤, 리는 고개를 들고 나를 주시한다. 또 다른 광경을 나를 통해 본 듯한 눈빛이다.

 

 

리가 특화 기체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 둘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밤을 기억한다. 그때도 이렇게 보기에 좀 막막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달았다. 


 

리: ……그동안 미래가 두려웠습니다. 영원히 당신을 찾지 못할까 봐. 제가 다음에 당신을 볼 때, 당신이 그 모습이 되어 있을까 봐. 논리 없는 기시감을 무시할 수 없어요……어쨌든, 저는 그런 결과를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이게 바로 제가 당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할 때 ‘과잉 반응’이 쉽게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지휘관: 이런 일들은……나에게 일찍 말해줄 수 있었잖아.

지휘관: 내가 묻지 않으면, 넌 계속 마음속에 묻어둘 거지?


리: 죄송합니다. 다시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다고 이미 말했는데……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항상…….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는데, 평안해 보이는 모습인데, 다음 순간 꿈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지도 못했죠. 제가 이런……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하다니.

 


리의 말투는 약간 자조적으로 변한다.

 


지휘관: 아니, 안 그래. 

지휘관: 무서워하지 마.


 

리의 손을 잡아당겨, 그가 꽉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푼다. 

 


지휘관: 봐봐, 나 여기 있어.


 

리의 손가락이 서늘한 온기를 띤다. 내 손바닥을 가져다 대도 그는 즉시 자신의 손을 빼내지 않는다. 

 


지휘관: 난 괜찮아. 멀쩡하게 여기 있잖아.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리: 현실……


지휘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을 수도 있지만……. 네가 필요로 하는 한, 난 몇 번이고……이렇게 현실의 위치를 확인해줄게.


 

네가 항상 방패처럼 그레이 레이븐을 지키고 보호하듯이, 우리도 항상 네 곁에 있을 것이다.

 


지휘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모두 이미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겪어왔잖아.


리: ……알겠습니다.


 

리 역시 천천히 내 손을 잡고, 사람을 자기 심장의 위치로 끌어당기려는 듯 팔을 두른다. ――어깨가 약간 무거워졌다. 리는 내 목덜미에 머리를 기댄다. 

 


지휘관: ……리?

지휘관: ……


 

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올 뿐이다. 

 


리: ……이대로 있어주세요. 잠깐이면 돼요.


지휘관: 얼마든지.

지휘관: 좋아.


리: ……감사합니다.



지휘관: (손을 내밀어 안는다)


리: ……!

 


리에게 더욱 굳은 힘으로 안긴다. 경직돼있던 그의 몸이 점차 풀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지휘관: 고마워, 리.


지휘관: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게 정말 기뻐.


 

리가 아낌없이 나에게 털어놓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우리가 모래사장에서 일어났을 때, 저녁노을은 이미 온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음의 매듭을 풀은 리는 눈에 띄게 홀가분해졌다. 

 


지휘관: 휴가도 끝나가네…….


리: 돌아가기까지 아직 저녁이 남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할 시간이 있죠.


지휘관: 그러려면 계획표를 짜야겠는걸……


리: ……얼마나 많은데요?



지휘관: 갑자기 생각난 건데, 오는 길에 낚시 도구 상점을 본 것 같아. 근처 바닷가로 낚시하러 가는 거 어때?


리: 밤바다는 너무 위험합니다.


지휘관: 근데 말야, 해변에서 해산물 캐는 영상을 아카이브에서 봤는데, 재밌을 것 같아. 우리도 한번 해볼래?


리: 저녁 모래사장은 가시거리가 낮습니다.


지휘관: 그런데 아까 하고 싶은 거 할 시간 있다고 했잖아……


리: ……갑시다. 


지휘관: 어디 가?

지휘관: 돌아가는 거야?


 

리가 뒤돌아보며, ‘저는 여전히 당신의 그 난잡한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리: 근처에 가서 필요한 도구가 있는지 찾아보세요. 


지휘관: 너무 좋아! 아니면 불꽃놀이 있는지도 찾아볼까?


리: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리는 정색하며 빠른 걸음으로 내 앞까지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 미소 지어 올라간 입꼬리가 보인다. 뜻밖에도 앞에 있는 이 모래사장을 걷는 모습이 기억 속의 한 장면과 겹쳐진다.

 

 

어느 정도 된 여름 오후, 데이터로 구성된 가상 세계에 이와 비슷한 푸른 하늘과 넓은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가볍게 웃고 떠드는 동료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는 리.

 

 

리: ……이런 물건은 우리가 쓸 기회는 전혀 없다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


지휘관: 그건 모르는 일이지.

지휘관: 그냥 내 소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줘.


 

...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소원이, 이제는 고운 모래 속의 발자국과 함께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됐다. 황혼이 점점 짙어져 이미 하늘가에 희미한 저녁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밤은 어김없이 올 것이다. 앞을 걷던 리는 걸음을 늦추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기다린다. 나도 걸음을 재촉하여 그의 곁으로 간다. 비록 미래에 더 많은 위험과 전투가 닥칠지라도, 적어도 지금은 모처럼의 평화로운 시간을 소중히 여길 기회가 있다. ――어둠 속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갈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함께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