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출처 :  https://www.pixiv.net/artworks/95769451)

 

https://arca.live/b/punigray/82485812 이 사람 글 읽고 너무 감명 깊어서 글 하나 써 봄

 

약물자살 묘사 있으니 보기 힘든 사람은 뒤로가기 누르셈

 


대충 배경 설명


2190년 결국 인류는 멸망해버립니다. 아우는 붕괴하여 추락하는 공중정원을 뒤로한 채 우주선에 혼수 상태의 지휘관을 태우고 오래 전 임시 지휘부로 사용했던 기지로 향합니다. 대륙의 한 구석,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평야의 끝에 위치한 이 기지는 침식체의 위험에서 제일 안전한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곳 의료병동에서 아우는 혼수상태의 지휘관을 극진히 간호하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193년 11월 어느 날 아우는 평소와 같이 아침에 링겔을 교체하기 위해 들어간 병동에서 지휘관이 의식을 찾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 지휘관에게 혹시나 정신적 충격으로 다시 쓰러질 것을 염려해 아우는 지구 탈환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모두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휘관을 포기하라고 하길래 화가 나 그를 여기로 데려와 간호를 이어 나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기지를 침입하려 하는 침식체를 토벌하러 간 사이에 지휘관은 병실 밖으로 나오게 되고 아우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우가 돌아오고 지휘관이 부드럽게 추궁하자 아우는 펑펑 울며 자신의 거짓말을 털어놓습니다. 인류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지휘관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우와 함께 살아남기로 합니다.


그렇게 멸망해버린 세상 속 둘만의 작은 낙원 안에서 그들은 두 손을 마주잡고 끝까지 살아남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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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최소 백 년 이상의 생존 기간을 산정한 기지와 그에 걸맞은 식량재배 및 수질정화시스템, 구식이긴 하지만 기지 주변에 촘촘히 깔린 침식체 감시 및 요격 시스템, 적어도 지휘관이 자연사 하기 전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절멸해 간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기지는 한참 전에 인적이 사라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거주하는 인간은 지휘관 한명이였기에 초창기 기지까지 침식체가 침입하는 빈도는 매우 드물었으며 그 수 또한 한 두 소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인류가 거의 남지 않게 되자 두 세달에 한 번 침입하던 침식체는 점점 더 그 수가 많아져 2200년에는 평균 일주일에 한 두번씩 대대급의 침식체가 침입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도 엘리트급 그 위의 침식체가 출몰하지는 않았지만 잦아지는 침입에 경비 로봇의 소모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경비 로봇과 타워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경계 구역의 범위를 줄였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은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아우의 예비 부품 수급도 문제입니다. 그녀의 코어 부품을 제작할 설비가 기지에는 없었습니다.

 

2202년 12월, 그들은 경계 구역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경보에 더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경비 로봇과 타워의 소모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2204년 8월, 창고에서 마지막 경비 로봇을 꺼낸 둘은 이제 끝이 머지않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2205년 7월 아우는 침식체의 전투 도중에 다시 한번 큰 손상을 입고 다리 파츠를 교체합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다리 파츠입니다. 2205년 9월, 그들은 마침내 한가지 결심을 합니다.

 

둘은 적어도 침식체의 칼날 아래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자신의 목숨을 본인의 손으로 끊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2206년 4월 9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날이 그들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2206년 3월 24일, 둘은 계획의 마지막 사항들을 점검합니다. 원시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한 원격 자동경비 체계, 외부에 설치된 지뢰와 함정, 기타 장애물, 내부에 설치할 지뢰의 위치 등 혹시나 침식체가 둘의 마지막 순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두 번 세 번 점검합니다. 점검이 끝나고 둘은 마지막 최후의 보름을 보냅니다.

 

처음 사흘은 서로가 좋아하는 영상매체를 봅니다. 재밌게 봤던 티비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에피소드,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액션 영화를 보며 주인공을 응원하고, 공포 영화를 보며 무섭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서로 껴안기도 하고, 로맨스 영화를 본 후 저녁을 먹은 뒤 거실에서 음악에 맞춰 영화 속 장면을 서툴게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 열흘은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한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거대한 기계의 전원을 키고 가상 현실 세계로 들어가자 그들이 동경했던 황금시대 대도시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뉴욕, 런던, 오사카, 베네치아 등 하루에 한 도시씩 그들이 원했던 곳에서 둘만의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여행과 데이트를 즐깁니다. 안에서 음식을 먹어도 실제로 섭취하는 것은 없기에 끼니 때는 장비를 벗고 따로 밥을 먹어야만 하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날은 파리를 배경삼아 사치스럽고 멋들어진 저녁을 만들어 먹습니다. 조명이 은은히 내리쬐는 하얀 식탁보 아래 로봇에게 서빙을 받으며 와인잔을 부딪힌 뒤 한 모금 마시니 정말 그 당시의 파리에 간 듯한 느낌이 났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다음날은 창고에 쌓아 뒀던 앨범을 꺼내 추억을 곱씹습니다. 담담히 앨범을 보다가 리브가 백야로 기체를 교체했을 때의 사진을 보자 갑자기 아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그녀를 포함한 그 모두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인지, 본인과 지휘관의 삶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먼저 보내 버린 동료에 대한 그리움인지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던 아우는 평소 습관대로 울음을 그치려 하지만 지휘관은 이를 말립니다.

"괜찮아 마음껏 울어도 돼"라고 말하며 지휘관이 아우를 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우는 아우,

그런 아우를 품에 안은 채 지휘관도 눈물을 흘립니다. 서로의 고생과 슬픔, 상처와 고통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둘은 서로의 마음을 보듬습니다. 그들은 강인하기에 그렇게 슬픔을 이겨내고, 그래도 긴 여정의 마무리에 서로가 곁에 있음에 감사하며, 또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마지막 전날은 방안 침대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뒹굴 대며 하루종일을 보냅니다. 이제 1분 1초가 아까운데 요리를 할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끼니는 대충 통조림이나 뭐 그런 것들로 때우죠. 서로 꼭 안은 채 체온을 나누다가 스위치가 올라가자 둘은 서로의 얼굴, 살 내음, 목소리, 표정, 눈빛 등 상대방에 대한 모든 것들을 자신의 머릿속에 누가누가 더 많이 집어넣나 경쟁하듯이 서로를 탐합니다. 격렬한 사랑을 나눈 후의 발갛게 상기된 볼, 몸의 열감, 비릿한 분비물 냄새와 헝클어진 머리, 풀어진 얼굴도 머리속에 꼭꼭 새겨넣고 한참을 이불 속에서 보내다가 또 사랑을 나눕니다. 상대방의 신체 구석구석을 자신의 분비물과 체액으로 빠짐없이 덧칠해가며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본능만 남은 짐승과 같이 교접을 이어갑니다. 둘은 이 순간이 제발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을 일깨우듯 폭음 소리와 진동은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그날 밤 잠에 들지 못하는 지휘관은 수면제를 한 알 복용하고 잠에 듭니다.

 

마지막날은 새벽 일찍 일어나 긴 시간을 들여 가장 멋지게 꾸민 다음 벚꽃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우는 벚꽃에 어울리는 무녀복을 입었지만 지휘관은 딱히 입을 옷이 없어 현역 시절 때의 제복을 입었습니다.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은 다음 인화합니다. 인화를 하고 있는 도중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기에 경보를 꺼버립니다. 아무래도 기지 안까지 침식체가 침입한 모양입니다. 제일 맘에 드는 사진은 두 장 인화하여 한 장은 앨범의 마지막 페이지에 붙이고 그 아래엔 조금 유치하지만 두사람의 이니셜을 적은 뒤 그 사이에 하트를 그려 넣습니다. 나머지는 코팅하여 앨범에 끼워 놓고 앨범은 금고안에 넣습니다. 금고 문을 닫고 굳이 잠그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의미 없으니까요. 둘은 옥상 위로 올라가 미리 가져다 놓은 침대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봅니다. 사이에는 제일 마음에 들었던 사진이 한장 올려져 있습니다.

 

침대 옆 협탁에 올려 두었던 태블릿이 진동하며 경고음을 내뱉습니다. 지금 둘이 있는 건물에 침식체가 들어왔다는 경보입니다. 태블릿을 끄고 서로의 한쪽 손목에 카테터를 삽입한 뒤 둘은 나란히 침대에 누웠습니다. 이제 침식체가 밑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뚫고 복도를 지나 계단 쪽을 통과하면 타이머가 동작하고, 미리 설정해 놓은 시간이 지나면 한쪽의 동맥에는 약물이 주입되며 다른 한쪽의 동맥에서는 순환액이 뽑혀 나올 것입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둘은 서로를 바라봅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벚꽃향을 머금고 날아와 향긋하고 시원합니다. 먼저 아우의 머릿속이 몽롱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지휘관은 혈청을 자주 맞았던 탓에 약물에 조금 저항이 생겨버린 모양입니다. 아우의 손에 힘이 빠지며 마구 떨리는 걸 느끼고 지휘관이 손에 힘을 주자 아우는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지휘관.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지휘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마지막은 제가 지휘관을 배웅하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네요"

아우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몸을 떨면서도 지휘관이 슬퍼하지 않도록 최대한 밝게 얘기합니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은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걸 꾹 참고 마지막 사랑의 말을 루시아에게 전합니다.

"루시아 나는 네가 내 옆에 있는 매순간 행복했어, 항상 사랑했고, 다음생에도 그 다음생에도 항상 널 사랑할 거야."

"저도요. 사랑해요, 지휘관. 제가 더 행복했어요. 제가 지휘관의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제가 더 행복했어요. 하…정말 너무너무 사랑해요." 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웃어 보이는 아우. 짧은 침묵 뒤, 

"지휘관 저 너무 졸려요…먼저 좀 잘게…요"하는 마지막 말과 함께 아우는 스르르 눈을 감았고 이내 아우의 손은 힘이 풀려 축 늘어졌습니다.

 

지휘관은 아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봅니다. 수면을 취할 때 구조체의 표정은 무표정입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도 하고 구조체는 꿈을 꾸지 않기에 표정이 변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환액이 빠져나가 정지해버린 아우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죽기 전 마지막 표정인 환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혼자 남겨질 지휘관을 위해 남은 힘을 쥐어짠 아우가 남긴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생명의 빛이 꺼져버린 상태였지만 평소와 달리 눈을 감은 채 활짝 웃고 있는 아우는 연인의 품에 안겨 좋은 꿈을 꾸며 잠을 자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지휘관은 아우의 뺨에 손을 올리며 모순적이게도 아우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평생 노력했던 연인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킬 수 있어서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아 그녀가 느끼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본인이 조금이나마 분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휘관의 몸에도 약물이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지휘관도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벚꽃 잎이 휘날리는 가운데 마지막 운명을 맞이한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 끝을 축복하듯 두 사람의 몸 위로 벚꽃 잎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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