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역 O

2022 화이트데이 스토리 모음



IS-01 축제

 


 


수송기의 해치가 열리자, 보육 구역이 아닌 듯한 인상 깊은 광경이 펼쳐진다. 계류장에서 아래에 있는 계곡을 내려다보니, 여과탑 근처의 작은 광장에 수백 개의 노점용 천막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천막은 형형색색으로, 그 사이에 사람이 붐비고 물건들이 왕래하여 기념일 시장의 떠들썩한 풍경을 묘사한다.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북적거릴 줄은 몰랐다. 

 


 


리: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리브: 리 씨는 계속 경계하고 계시네요. 그것보다는 가끔 쉬는 것도 필요해요.


루시아: 리브의 말은 일리가 있어. 리, 휴식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리: ……

 


리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의 표정으로 짐작하건대, 루시아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없었다. 

 


지휘관: 다음 임무를 위해 기력 보충이라도 하는 거라고 치자. 모처럼 일상복 코팅으로 갈아입었으니 즐겨. 특히 너, 리.


 

이번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전투 복장에서 평소에 보기 힘든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당연히 리도 예외는 아니다. 검은색 정장은 잘 다려졌고 우아하게 보인다. 흉부에는 화려하고 과장된 넥타이를 매고 있어, 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 같지 않은 옷차림이다. 

 


리: 저에게 선택을 강요하신 건 누굽니까……?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오늘 그들이 착륙한 보육 구역에서 큰 축제가 열린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보육 구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고, 축제의 끝에는 일정한 방식에 따라 ‘축제의 별’이 될 수도 있으며 신비한 선물도 받을 수 있다. 마침 1일 휴가를 받았기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모두를 이번 축제에 참여시키자고 제안했다. 리브와 루시아는 당연히 흔쾌히 승낙했지만, 리는 세 사람의 설득 끝에 결국 동의했다. 

 


지휘관: 하지만 전에 네가 이 옷을 입은 걸 본 적이 없는데. 새로 주문 제작한 거야?



리: 아니요. 반대로 이건 몇 년 동안 있었던 겁니다. 원래 그레이 레이븐에 편성되기 전, 어떤 축하연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때 행사장이 습격당해서 사용하지 못했죠. 저는 기념일에 입을 옷이 별로 없어서 이걸 꺼내 조금이나마 수선했습니다. 


루시아: 기념일?

 


지휘관: ‘화이트데이’라고 해.


 

발렌타인데이는 2월에 시작한다. 사람들은 장미, 초콜릿과 같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황금시대 상인들에게 발렌타인데이라는 기회를 잡는 건 더 높은 판매량과 수입을 의미한다. 그래서 3월의 ‘화이트데이’, 4월의 ‘블랙데이’, 5월의 ‘로즈데이’……. 그 후 6월, 7월 등 매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기념일이 생겨났다. 오늘날의 보육 구역은 일정 기간의 평화와 안정으로 생산을 보장하며, 모든 사람이 교환할 수 있을 정도의 비교적 풍부한 물자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발렌타인데이’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기념일로 상징할 만큼, 삶이 점차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다채로운 행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이트데이’를 오랜만에 축하하기 위해 꼼꼼하게 준비한다. 

 


리브: 제 기억으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가 저기 맞나요?


 

리브는 멀지 않은 건물을 가리킨다. 이번 축제를 위해 얼마 전에 지어진 전시관이다. 전시관에서 미리 부스 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지막 일정인 ‘축제의 별’을 뽑기 위한 사전 준비이다. 당연히 이 정보를 얻은 나는 소대원들을 위해 이미 부스를 마련해 놓았다. 


 

지휘관: 리브, 리.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


리브: 앗, 저요? 저는 많이 준비하지 않았어요. 딱 모두가 즐거워할 만큼만 했어요. 


지휘관: 리…….


리: 저는 이런 일을 잘 못하니, 저에게 이상한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네요.


루시아: 저도요……. 과거에 그런 경험은 없어서요. 


지휘관: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이지.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니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해.


리브: 네, 맞아요. 아무튼 오늘은 반드시 귀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축제 분위기에 이끌렸는지 리브는 유난히 즐거워 보인다. 

 


지휘관: 좋아, 목표는 1등!


루시아: 알겠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지휘관이 1등을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지휘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리브: 루시아, 천천히. 긴장 풀어요.


리: ……빨리 갑시다. 곧 시작이에요. 


지휘관: 출발!




IS-02 별표

 


 


전시관 내부. 임시로 만든 공간은 외관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실내는 최대한 잘 꾸며져 있다. 각양각색의 등불과 리본이 현수막을 장식하고, 전체적인 정갈함과 미관을 위해 나무 블록이 깔려 있다. 구석에는 꽃을 심은 화분도 배치되어 있다. 이번 축제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전시관 내 행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각 부스를 찾아온다. 


 

 


루시아: 모두는 ‘축제의 별’에 당첨되기 위해 온 걸까요?

 


루시아는 오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며 상대와의 실력 차를 가늠하는 듯하다. 부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놀고 있는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눈에는 흥분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더욱 는길을 끄는 건 이들의 손에 반짝이는 ‘별’이 하나둘씩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스가 노리는 목표이다. 이 별은 버려진 알루미늄 호일 자투리를 잘라 만들었다. 이번 축제가 ‘축제의 별’을 선정하는 유일한 기준이기도 하여 ‘별표’라고 불린다고 한다. 오늘 축제에서 이 특제 은종이를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은 ‘축제의 별’로 선정되어 보육 구역에서 준비한 상품을 받게 된다. 전시관 내 부스는 대부분 보육 구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것으로, 아이들은 원하는 대로 해당 부스의 주인에게 별표를 선물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행사의 가장 큰 주제는 ‘어떻게 아이들을 겨냥하여 별표를 받을 것인가’로 바뀌었다. ‘화이트데이’와는 아무 사관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지휘관: 과연 그렇구나.


 

자세히 살펴보면 미니 게임을 내세운 부스도 적지 않고, 참여 인원을 2인까지 동시에 받으므로 커플이든 아이들이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리: 당신도 그런 것에 관심이 있습니까?


지휘관: 크흠, 우리 먼저 각자의 부스로 가자. 


 

나는 전시관의 특정 위치를 가리킨다. 분필로 네 개의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원들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리브: 지휘관도 부스 준비하시나요?


지휘관: 준비되어 있긴 한데…….


 

이쯤 되니 연습할 여유도, 에너지도 별로 없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리브: 괜찮을 거예요. 지휘관이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루시아: 일이 늦어서는 안 되니, 저희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부스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루시아는 칼춤 공연을 한다. 배경음악은 없으며, 전시관 내부의 떠들썩한 소리만이 그녀를 위해 ‘반주’한다. 힘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동작은 조용히 지나가는 까마귀가 무심코 떨어뜨린 깃털 같다. 그녀의 검술 실력은 예전과 같이 시원시원하고 미려하다. 게다가 코팅의 옷소매는 펄럭이며 생동감을 더해 그녀의 늠름한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몇 명의 아이들이 루시아의 칼날을 잘 보려고 애쓰며 앞으로 모인다. 루시아도 그 여세를 몰아 그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걸음걸이에 맞추어 칼날과 아이들의 안전거리를 조심스레 벌린다. 

 


...

 


 


리브 쪽은…….

 


리브: ‘청년은 황금 사과나무가 있는 도시에 와서, 뿌리를 갉아먹는 쥐만 쫓아내면 황금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시민들은 그에게 많은 보물을 선물로 주었답니다……. 그러자 청년은 다시 분수가 고갈된 도시로 돌아갔어요. 위병은 그에게 답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는 돌 밑에 있는 두꺼비를 쫓아내야 물이 나온다고 말했답니다. 위병은 그에게 매우 감격하여 금을 가득 실은 당나귀 두 마리를 주었는데……. 마침내 이 행운아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그를 보고, 또 그가 모든 일을 다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어요……. 그들은 함께 풍족하고 원만한 생활을 오래오래 했답니다…….’

 


따뜻한 동화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리브의 말에 의해 천천히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그녀의 주위에 둘러앉아, 둥지로 돌아가는 어린 새처럼 얌전히 리브의 다리 위에 엎드린다. 리브는 그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고요함은 떠들썩한 전시관과 다르게 특이하다. 그러나 제일 인기가 많은 쪽은…….

 


 


아이 A: 오빠,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이 B: 맞아 맞아. 소매 속에 뭐 숨긴 것도 없잖아.


아이 C: 그리고 그리고, 그 비둘기는 어디로 갔어?


아이 D: 그거 한 번만 더 보여줄 수 있어? 그, 그 색깔 테이프가 한꺼번에 많이 날아오는 거!


리: 잘 봐…….


 

리는 텅 빈 모자를 보여주더니, 손바닥을 집어넣은 다음 밖으로 잡아당긴다―― 알록달록한 리본이 카드 한 장과 함께 모자에서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을 튕기니, 손끝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포커 카드는 연기를 뚫고 사탕 알이 되어 땅에 떨어진다. 아이들이 사탕을 줍는 틈을 타, 리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지휘관: (눈빛을 보낸다)


 

...

 


다들 좋은 성과를 거뒀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누군가가 옷자락을 당기는 걸 느낀다. 

 


 


어린 소녀: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부스에 계속 서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부스가 기대치를 높인 것인지, 앞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소녀의 눈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지휘관: 움직일 때가 왔구나.


 

...

 


내 공연이 끝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스 체험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린 소녀: 어……이거 줄게. 너무 슬퍼하지 마…….


 

어린 소녀는 격려하듯 별표 세 개를 내 손에 쥐어 줬다. 이때 루시아와 나머지 둘 역시 나에게 다가온다. 

 


 


리브: 다들 별표 몇 개 받으셨나요? 저는……. 17장 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좀 적은 것 같네요.


루시아: 난 22장……. 괜찮아, 리브. 우리는 하나의 팀이니까 마지막에 합산된 표만 보면 돼.


리: 45.


 

리의 마술 공연은 정말 멋졌다. 그렇게 많은 표를 얻는 건 당연한 일이다. 


 

루시아: 지휘관은요?


지휘관: 난…….


 

손바닥을 열어 방금 받은 별표를 보여준다. 

 


지휘관: 세, 세 장…….


루시아: 네?

 


루시아는 너무 뜻밖인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리브: 지, 지휘관의 춤이 너무 전위(前衛)적이어서 어린아이들에게 매력이 덜했나 봐요.


지휘관: ……


루시아: 하지만 저는 지휘관의 춤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힘과 실전성을 겸비했고, 마지막에 뛰어난 포복과 빠른 전진도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리: 그건 춤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리브: 이……이 얘기는 그만하도록 해요. 여러분은 다음에 어디로 갈지 생각하셨나요?


루시아: 리브는?


리브: 아, 저요? 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리: 효율을 따지자면 각자 행동하는 게 별표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야.


지휘관: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니까……. 순수하게 축제를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리브: 지휘관 말씀이 맞아요. 여러분 모두 그냥 단순하게 쉬는 게 어떨까요?


지휘관: 우리 집합 시간 정하자. 그전에 축제를 마음껏 즐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