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의역 O


 

왜냐하면, 살아 나간다는 것은――지구에 사는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잿빛 방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기어가는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다. 돌과 철근을 간단히 쌓아 만든 ‘울타리’에는 몇몇 동물이나 식물을 닮은 여러 이합 생물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몸을 쭉 뻗으며 서로 접근하는 이합 생물들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싸우지 않고 함께 ‘울타리’의 바깥쪽 원을 향해 움직인다. ‘울타리’에서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에너지를 다 써버린 가정용 청소기 한 대가 놓여있다. 이합 생물들은 휴면 중인 그 기계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흔든다. 그러나 방해물이 있어 계속해서 우리 경계에만 부딪힐 뿐이다. 

 

점점 의도치 않은 충돌이 느리게 진행된다. 식물 형태의 이합 생물 두 마리가 자신의 대가리 위에 있는 ‘화관’을 펼치고, ‘울타리’ 가장자리에 있는 쇠막대를 연달아 움켜쥐며 깨문다. 그리고 파충류와 같은 나머지 세 마리의 이합 생물은 천천히 ‘동료’의 팔다리를 기어오르려고 시도한다. 노력 끝에, 그들은 식물 형태의 이합 생물 표면에 부착된 점액 때문에 ‘동료’의 몸이 다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제일 앞에 있는 이합 생물은 발에 수축해놓은 날카로운 날을 쭉 뻗어 ‘동료’의 몸 깊숙이 찔러 넣는다. 이 포식 과정이 마침내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파충류와 비슷한 마지막 이합 생물이 ‘화관’ 근처의 ‘가지’로 올라선다. 가늘고 단단한 ‘가지’는 끝내 발 가시의 반복적인 절단을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끊어진다. 불운한 등반가와 식물 형태의 두 이합 생물이 무겁게 땅으로 떨어진다. 두 개의 ‘화관’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른 채이다. 다리를 무사히 통과한 두 마리의 이합 생물은 마침내 먹잇감 앞에 도착한다. 그것들은 잠자코 있던 가정용 기계를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한다. 

 


하이디: 선생님, 혹사의 연락입니다.


혹사: 그레이 레이븐……그들은 떠났어요, 선생님. 하지만 그들은 ‘눈’을 남겼어요. 저는 괴물 씨에게 뜯어버리라고 부탁했어요. 다른 건……모두 선생님의 예상대로예요. 당신의 ‘화물’은 이미 종이학 안에 준비되어 있어요.


본ㆍ네거트: 그것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사: 네. 027번 도시에서도 집단행동이 나타났어요.


본ㆍ네거트: 이러한 현상이 관찰되었으니, 다음으로 크틸라 계획과 관련된 걸 우선적으로 실행하도록 하죠.


혹사: ……네.


본ㆍ네거트: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그 괴물 씨도 이 계획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어요.


 

혹사가 옆으로 시선을 던지지만, 상대는 고개를 숙인 채 깊은 겨울의 긴 밤처럼 조용하다. 


 

혹사: 어쩌면……애초에 그를 만났다는 우연이 이 미래를 향한 전환점이기도 하겠죠. 크틸라와 관련된 계획은 저와 하이디에게 큰 위로가 되었지만……선생님께 있어서는 결코 최선의 선택은 아니겠죠. 정말 이 예비 계획을 실행하실 건가요?


본ㆍ네거트: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니 예비 계획으로 세워둘 수 있던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혹사: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 그녀가 정말로 선생님께서 필요로 하는 ‘열쇠’를 낳았으면 좋겠어요.


하이디: 선생님께서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관찰하셔야 하나요?


 

하이디는 여전히 먹이를 향해 공격하는 이합 생물을 가리킨다. 


 

본ㆍ네거트: 처리하세요.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이디: 현재는 일부 샘플에서만 ‘협력’ 행위가 일어났어요.


본ㆍ네거트: 그 가능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가서 그들이 지구의 생물과 더 닮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면 승격자나 인류가 이합 생물을 더 쉽게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을 거예요. 크틸라와 관련된 것도 당신 쪽에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답니다.

하이디: 네…….


 

본ㆍ네거트는 아직도 의문이 있는지 묻는 듯 날개를 가진 소녀를 본다.


 

하이디: ……저는 단지, 혹사가 방금 말한 것처럼 크틸라 계획이 선생님께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본ㆍ네거트: 그건 크틸라 계획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제 모습’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통제 불능의 위험이 더 커질 거예요.


하이디: ……


본ㆍ네거트: 그 탑의 상태를 본다면, 인류는 우리보다 먼저 ‘열쇠’를 찾고도 후속 통제를 하지 못했어요. 간섭하지 않으면, 퍼니싱 바이러스의 비정상적인 응집은 무질서한 이합 생물의 탄생을 더 많이 촉진할 뿐입니다. 혹사가 코퍼필드 해양 박물관에 남겨둔 실험품인 ‘숙체’처럼, 적조의 자연 조합으로 만들어진 생물은 예측과 통제가 어려워요. 통제 불능이 되기 전에 지구의 기존 생물학적 규칙에 맞추는 게 우리와 인류 모두에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갑시다, 당신의 소원도 드디어 실현될 수 있어요.


하이디: 네, 선생님.

 


...

 


녹티스: 야야야! 여기, 여기! 모두 저리 비켜 서!


 

쾅――

 


지휘관: 콜록, 콜록!


 

험상궂은 외모의 남성 뒤에 네다섯 마리의 이합 생물이 따라온다. 그는 그것들을 정해진 장소로 유인한 뒤 맹렬한 스트레이트로 몇 미터 밀쳐낸다. 이합 생물은 자세를 가다듬지도 못한 채 미리 설정된 폭발의 불길에 휩싸인다. 

 


리브: 녹티스 씨! 너무 가까워요!


녹티스: 뭐――


리브: 폭탄이요! 지휘관과 너무 가까워요!


녹티스: 앙? 이 정도면 삼칠이가 베라를 태우고 세 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 아니냐?!


리: 구조체의 내구도로 판단하지 마. 폭발의 부산물은 인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녹티스: 그치만 저 녀석은 동력 아머 입고 있잖아?


리브: 저, 적어도! 녹티스 씨는 폭발하기 전에 3초 세셔서 지휘관이 조금이라도 준비하실 수 있도록 하셔야 해요!


녹티스: 아! 그래. 다음에는 내가 일일이――어? 하나!


 

콰광――

 


리: 쳇, 3에서 1까지 세라는 거지, 좋아하는 숫자 고르라는 게 아니잖아!


녹티스: 하하하 바보 아냐! 그게 왜 내가 좋아하는 숫자인데!


리: ……


녹티스: 아까 그 한 발은 이미 묻어놨어. 아니다, 다음에는 꼭!


리브: 지휘관, 괜찮으신가요?



지휘관: 하아, 문……문제없어!


 

화약 냄새로 가득 찬 공기는 거친 호흡과 함께 폐로 들어온다. 이것이 이미 동력 아머에서 여과된 후의 냄새라는 생각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두 방울 정도 흐른다. 케르베로스의 행동 스타일은 원래 집행부대 사이에서도 유명했지만, 그의 전투 방식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다. 다행히도 그의 지원에 힘입어, 우리 소대는 027번 도시를 떠난 지 30분 만에 많은 적을 따돌릴 수 있었다. 케르베로스가 있는 보육 구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흩어진 적들이 있었지만, 세 구조체의 화력 아래 이합 생물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녹티스: 설마 내가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나? 왜 이 썩은 물고기와 새우가 평소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 같지?


리: 네 착각이 아니야. 그들의 전투력은 확실히 향상됐어. 


리브: 케르베로스 소대의 임무에서 만난 적들도 마찬가지인가요?


녹티스: 아니! 그래서 내가 어제 잠을 못 잔 것 때문에 제 실력이 안 나온 건가? 어쩐지 오늘 폭발이 유난히 매가리가 없더라!


리: ……


지휘관: 케르베로스의 임무는 이합 생물과 관련 있어?


녹티스: 그런 것 같아. 근데 싸우기도 전에 베라는 이미 보육 구역 사람들 때문에 야마돌았어.


지휘관: 보육 구역 쪽 사람들은 오가는 게 어렵나?


녹티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도 베라가 누굴 패라고는 안 했으니 그럭저럭 괜찮겠지. *, 잠깐! 외부인한테 이걸 말해도 되나? 됐다……. 말한 사람은 바보 삼칠이라고 해야지.


지휘관: ……그건 아마도 자원 배치 문제일 거야. 여길 지난 다음 필요하면 우리도 도와줄게. 


녹티스: 정말? 너 꽤 괜찮은 놈이구나!


리브: 우리의 전진 좌표는 응답 중인 수송기에 다시 전송했어요. 그들에게 수송을 연기하라고 할까요?


지휘관: 응. 난 아직 분명하지는 않은 추측이 있어. 보육 구역에서 몇 가지 검증할 수 있을지도 몰라. 


 

폭발과 총기 난사 소리가 점차 잦아진다. 뒤따라오는 적들은 이미 한 마리도 남지 않고 깨끗이 치워진 걸 확인한다. 

 


녹티스: ‘꼬리’는 다 꺾었으니 캠프로 돌아가서 일하면 되겠네. 너네 여기서 기다려. 내가 비밀의 지름길을 알고 있으니까 먼저 방향 좀 보고 올게.


 

건장한 구조체는 길을 벗어나 무릎까지 오는 덤불 속으로 질주한다.


 

리: 지휘관, 무엇을 찾으셨나요?


지휘관: 그 계단 기억나? 일부 이합 생물은 등반의 디딤돌로 ‘자살’했어. 만약……


리: 1번 좌표점과 2번 좌표점의 이질적인 시체 더미가……집단 자살의 결과라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지휘관: 응.


리브: 아직 적의 대규모 자살 행위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한 걸까요?


지휘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정말로 자발적인 행동이라면, 아마 다음 전황은 크게 바뀌겠지. 


 

왜냐하면, 살아 나간다는 것은――지구에 사는 생물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기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을 그물로 연결하는 감정의 실을 낳고, 모든 생명이 ‘살아있다’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굴릴 수 있는 눈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숨 쉴 수 있는 코는 음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휘두를 수 있는 팔은 다른 손이 주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살아남는 것’으로 생명이 주는 감각을 경험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에, 생물은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자들을 영웅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행적을 기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명예로운 기념비로 추앙받는 이 모습들은 죽음과 모든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짊어지고, 자신의 천성을 거스르며, 또 다른 가치와 맞바꿨다. 이합 생물은――순수하게 공격할 뿐인 욕망의 운반체는 개인의 가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는다. 집단적이고 전략적인 목표의 필요성을 전제로, 자신의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리가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 의미는……무질서하고 분산된 적이 규율이 뚜렷하고 결단을 집행하는 부대로 변했다는 뜻이다. 인류는 그동안 인간성과 지능으로 휘몰아치는 재난 속에서 계속 해답을 찾아왔다. 그러나, 바로 전에 이 생존 싸움에서 반격의 나팔을 불었던 우리는 또다시 더 길고 추운 밤 속으로 돌아가는 걸까?

 


지휘관: 하지만 당분간은 승격자의 계획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야.


리: 그나저나……카메라 로봇이 손상됐네요.


지휘관: 무슨 단서라도 찍혔을까?


리: 그 부근의 이합 생물이 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로봇의 자료가 끊겼습니다. 이합 생물 중 하나가 이를 알아차리고 즉시 카메라 로봇을 파괴했다고 하기에는 행동 판단이 지나치게 깔끔해요.


지휘관: 직접 영상 자료를 보내줄래? 프레임별로 분석해보자.


녹티스: 야, 그레이 레이븐! 이쪽이다!


 

녹티스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울창한 식물을 밟아 무너뜨린다.


 

리브: 녹티스 씨, 우리는 이 초원을 지나가야 하나요?


녹티스: 응. 길이 전혀 안 보이지! 비밀의 지름길이라서 그래. 어쨌든 날 따라오면 완벽해.


 

말을 마치자, 그는 녹색의 천연 장모 카펫 위를 당당하게 걷기 시작한다. 


 

리: ……갑시다. 지휘관, 리브 뒤를 따라가세요. 제가 제일 뒤로 가겠습니다.


 

리는 마지못해 한숨을 내쉰다. 초원의 다른 쪽 끝에는 무기를 든 인간과 구조체가 식물을 잽싸게 헤집으며 수색의 길을 열어준다. 머지않아 풀밭을 걷는 사람들은 여기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