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있을 수 있음/의역 다수

*지휘관 대답은 간혹 선택지가 여럿 나오는데 일직선으로 선택한 것만 번역했으니 양해 바람

*고후위등 스포일러를 포함함.






<어떻게 구원하는가>
보세요, 시몬......당신의 소대원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눈 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어요.

 









팔루마: 그러니까......네가 지금 그 XX놈들이랑 크게 싸우고, 그들이 보는 와중에 청정구역을 떠나는 바람에, 나를 정화부대에서 나가게 만든 전 동료가 나한테 끊임없이 안부인사를 하게 만든 거야?

수없이 많은 추적 끝에 청정구역을 벗어나, 두 사람은 3km 떨어진 곳에서 노안이 언제 준비했는지 알 수 없는 오토바이를 찾아 목표 지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노안: 이 작전엔 참여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 지금 허둥거리면서 행동하면 시몬 지휘관의 신변에 위협이 되기 쉬워.
팔루마: 진짜 구식 납치법인데다가 구식 협박까지 곁들이는구나.
노안: ...나는 분명 그에게 최근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 주의를 줬었고, 그도 충분히 주의하려고 하는 걸 봤는데...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상해.
노안: 주변 사람이 손을 쓴 건지도 몰라. 그는 방심한 적이 없어.
팔루마: 하, 릴리안의 단말기에 반응이 없어. 만약 얘가 함께 잡혀간 게 아니라면, 얘한테 문제가 있는 거거나, 아님 둘 다일 가능성이 커.

- 처음부터 같은 소대 동료를 의심하는 거야?

팔루마: 사람의 마음은 절대 헤아릴 수 없어. 당연히 가장 주변에 있는 사람부터 먼저 의심해야 하지.
팔루마: 게다가 걔가 저번달에 나한테 이상한 질문을 했어.









릴리안: 팔루마 대장, 시몬 지휘관과 노안이 동시에 호수에 빠지면 누굴 구할 거야?
팔루마: 네가 말한 호수가 내 집 앞에 있어?
릴리안: 어, 아마도?
팔루마: 이사갈래.

- 이상한 농담같네...

팔루마: 릴리안은 말할 것도 없고, 나까지 정화부대로부터 너를 추적하라는 임무를 받았어.
팔루마: 게다가 그레이레이븐 지휘관까지 데리고 나가다니, 그레이레이븐 소대원들이 널 가만 냅둘 것 같아?
노안: 네가 나를 잡으러 올 때 지휘관을 데리고 가줘.
팔루마: 또 귀찮은 일을 나한테 떠넘기는 거야?

- 잠깐만, 내가 연락해뒀어
- 여기에 긴급 임무가 있다고

팔루마: 하?

- 비앙카는 아직 임무 수행 중이라서 통신연결이 되지 않아.

팔루마: 그녀한테 말한들 모든 게 용서되는 게 아니야.

- 최소한 돌아가서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얻을 수 있을 거야.

노안: 일단 종이에 적힌 곳으로 가겠지만, 릴리안의 행적이라거나, 아직 확인해봐야 할 게 많아.
노안: 만약 그들이 다른 행동을 취하면, 나도 시몬 지휘관을 무사히 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방법이 없어.
노안: 네가 임무를 받은 김에, 차라리 이 기회에 이쪽으로 와서 나를 도와주지 않을래?
노안: (그레이레이븐 지휘관도 데리고 돌아가고)

그는 소리를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대략적으로 유추가 되었다.

- (이 녀석......)

팔루마: 질려 죽겠네.
팔루마: 난 이미 시몬한테 우리는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었고, 그에게 소대를 해산할 것을 권유했었는데 만약 그가 일찍 해산에 동의했다면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을 거야.
팔루마: 늙다리 윗대가리들이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그 녀석들이 정말로 한양소대를 빠르게 정돈하고 싶었다면 더욱 강경한 지휘관을 파견해야만 했어.

-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겉으로만 굴복할 뿐이니까 조금은 더 믿어야만 해.

팔루마: 위험하다고 미리 언질을 받았는데도 속아 넘어가는 인간이 타인을 설득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 너희들이 처음 소대로 모였을 때보다 지금 많이 변한 건 사실이잖아.

팔루마: 한양소대의 현재 상황을 생각해보면 구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 그래도 넌 나왔잖아.

팔루마: 쳇.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설마 시몬이 이런 위험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까?

-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어쩌면 그는 자신의 안전보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했던 걸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오랫동안 노력해온 것이 결국 예전과 같이 어그러지고, 다시 한 번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소대가 재편성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면, 그는......

노안: 네가 불편하다면 나 혼자 가도 괜찮아, 이번 일은 애초에 나 때문에 생긴 일이고
팔루마: 이번엔......
팔루마: 내가 나갈 방법을 찾을 거야. 전제조건은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인질을 잡고 승격자에 합류할 생각이 없다는 것.
팔루마: 잊지 마. "너"가 그레이레이븐 지휘관이 실종되었던 그 강가에 나타났던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하면서 단말기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나갈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팔루마: 방금 전에 "안부인사"를 받고나서야 정화부대에서 네가 승격자와 함께 걷는 모습을 여러 번 포착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어.
팔루마: 승격자를 도와서 탈주자들을 이송하는 거점에서 생활하도록 도왔다더라.

- 불법적으로 의식의 바다를 복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팔루마: 그저 "가능성"일 뿐이야. 증거를 찾기 전에는 누구나 복제품이 아니라 본인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닌지 의심해야만 해.
팔루마: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 만약 누가 그의 결백을 증언하려고 해도 벌 받는 걸 면치 못할 거고, 한양소대의 휴식 기간은 또 연장되겠지.

팔루마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팔루마: 도대체 한양소대는 얼마나 더 대기해야 임무를 수행하러 나갈 수 있는 거야?
노안: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번 평가 때 가상작전 팀플레이 테스트에서는 네가 기준미달이었는걸.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깊은 겨울바람이 마구 휘몰아치는 가운데 노안의 뒤에 달린 망토가 펄럭거리며 뒷좌석에 앉은 인간의 얼굴을 마구 쳐댔다.

- (그냥 내버려두자)

팔루마: 쳇, 그건 내가 연습하면 해결될 문제이지만 네 몸에 얽힌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
팔루마: 윗대가리들의 의도는 이미 확실해졌어! 네가 가진 "특화기체 적응성"은 연구자들을 쥐새끼들로 만들고, 도벽이 있는 도둑놈들을 불러들인다고.
팔루마: 네가 전혀 쓸모없는 새로운 기체를 받아서 이런 규제와 제한에서 벗어나길 기다릴 바엔 차라리 그 승격자를 죽이는 편이 빠르겠어.
노안: 나도 그렇게 생각해.
팔루마: 이제 나가도 돼?

그녀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팔루마: 낚아야 할 물고기가 한 마리 더 있나?
노안: 아니, 이번엔 시몬 지휘관을 찾는 것 뿐이야.
노안: 그 승격자를 상대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적어도 그의 복제된 의식의 바다와 그 본체가 각각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만 해.
팔루마: 네가 뭘 원하든간에, 죽기 전에 시몬한테 심리상담 좀 제대로 잘 받고 그가 웃으면서 널 배웅하게 하는 걸 잊지 말라고.

팔루마는 아예 통신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노안: ......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노안을 바라보자,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다만 그가 다시 백미러를 통해 인간의 목에 난 상처를 확인할 뿐이었다.

노안: ...상처는 괜찮아?

- 아주 얕은 상처일 뿐이잖아, 게다가 네가 잘 치료해줬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이 놓인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 노안, 혼자서 혹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야?

노안: 이번엔 시몬 지휘관을 구출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야.

- 말 돌리지 마.

노안: 만약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 네 현재 상태로는 혹사에게 접촉하는 건 너무 위험해.
- 더 이상 청정구역을 떠나선 안돼.

노안: 계속 기다린다고 해서 문제가 될 만한 사람들이 저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야.
노안: 공중정원에 온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 한양소대와 나의 처지가 증명해주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어.
노안: "양의 우리" 안에 남아있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거지.
노안: 혹사 뿐만이 아니라 그를 도와 "안정된 의식의 바다"를 찾아서 갖다 준 자들도 마찬가지야.

 






노안: 솔직히......조금 짜증나네.

그는 침묵하며 주행속도를 높였다.

- (앞사람을 끌어안는다)

노안: ...지휘관?

- 아무것도 아니야.

먹구름이 오후의 햇빛을 조금씩 삼키고 찬바람이 더욱 매섭게 불어왔다.

노안: 너는 나와 함께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 네가 혼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안: 왜?

- 너에 대해 잘 아니까.

노안: ......
노안: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팔루마 대장이 지금 출발한다면 우리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을 거야.

- 좋아.

노안: ......시몬 지휘관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네.






혼미한 의식 속에 시몬은 감방에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노안이 걱정했던 것처럼, 베테는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손톱을 뽑기 전에 그는 줄곧 감방에서 아이스픽으로 혹사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분노를 풀고 있었다.

만약 그가 시몬과 같은 젊은 군인에게 관심을 가졌더라면, 노안의 그 피투성이 예감은 딱 들어맞았을 것이다.

시몬: ......

이런 날이 찾아오기 전부터 시몬은 노안에게 경고를 받았고, 많은 위기상황을 상정하여 근처의 사람들을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유독 같은 소대의 동료들을 의심하지 못했다. 특히나 이 경고를 전달한 노안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노안이 가지고 온 약을 먹은 후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런 처지에 놓여있었다.

시몬: ......어째서?

약은 제대로 밀봉되어 있었고, 노안한테도 어떤 이상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시몬: 누가...몰래 바꿔치기를......

어쩌면, 그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이 있는 걸수도 있다. 감방 문 너머로 노안의 뒷모습을 본 순간, 시몬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감방 구석에서 흘리는 몇 마디 대화들은 모두 조금씩 시몬의 믿음을 흔들고 있었다.

이 모든 건 그들이 꾸민 일인가? 아니면, 이것이 바로 노안의 진짜 모습이었단 말인가? 기억에 남는 후회가 항상 후자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몬: ...에티르.

그는 이미 멀리 떠나가버린 그 이름을 생각하며 손끝의 뼈를 파고드는 고통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구 한양소대가 다시 해체되고 재편성이 준비되는 동안, 에티르와 시몬은 임시소대에 배치되었다. 두 사람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고, 보통소대보다 훨씬 빠르게 합을 맞출 수 있었다.

에티르가 있었더라면, 한양소대는 분명 다시 해산하지 않았겠지?
그들의 북극항로연합 임무가 끝나면, 에티르가 정식으로 한양소대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에티르: 좋아요, 저는 당신과 잘 맞잖아요.

그녀는 웃으면서 구토하는 시몬의 등을 손으로 쓸어주며 말했다.






에티르: 저한테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요? 누구한테나 있잖아요.
에티르: 그렇게 궁금하면......임무가 끝난 뒤에 알려줄게요. 어때요?

그러나 눈앞에서 처리해야 할 임무가 끝났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녀가 배신한 뒤 죽었다는 소식 뿐이었다.







로제타: 에티르는 북극항로연합 출신이었고, 복수를 위해 이번 임무에 참여했습니다.
시몬: 복수를 위해서? ......에티르가?

시몬은 에티르의 밝은 미소를 떠올렸다. 어린아이와 함께 웃고 떠드는 그녀의 모습에선 전혀 그늘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일찍이 에티르와 친한 동료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결코 그녀에 대해 알 권리를 부여받을 수 없었고, 심지어 어떤 이상한 징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알 겨를도 없이, 온전히 작별을 고하지도 못했던 그 겨울은 모든 것을 끝내고 말았다.

시몬: 어째서야......






어째서 그는 항상 알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는가?

 



에티르: 우리 친구죠?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에, 시몬은 겨울에 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에티르는 마침내 그녀의 속마음을 말하려 했다.

두 사람은 새하얀 설원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모든 말을 다 털어놨을 때 눈을 감고 웃었다.

에티르: 어쩔 수 없었어요, 나는 그 일들을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까지 와야만 했어요.
에티르: 결국, 인간이란 이런 생물 아닌가요?
에티르: 보세요, 시몬......당신의 소대원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눈 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어요.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7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그들은 마침내 저녁 무렵에야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 도대체 어떻게 오토바이를 찾은 거지.

노안: 비밀이야. 어차피 규정위반인걸.

- 알았어......어차피 청정구역 내에 숨겼던 것도 아니고.

이 낡은 교통수단을 주차하고 나자, 팔루마한테서 다시 통신이 들어왔다.







팔루마: 릴리안을 찾았어. 그녀는 매우 심하게 다쳤어.
노안: ......
팔루마: 시몬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달려나갔다가 근처에서 붙잡혔다더라.
팔루마: 쳇, 지금 부상자를 심문할 시간은 없으니 그녀를 근처 거점에 보낼 거야. 자세한 건 나중에 물어볼 거고.
노안: 알았어.
팔루마: 네가 알려준 그 위치에 1시간은 더 있어야 해. 아니면 기름을 보충하고 그대로 그냥 돌진해. 내가 오늘중으로 네 인식표를 회수할 수는 있게 노력할테니까.
노안: 내일 죽을게.

팔루마는 "탁"소리가 나게 통신을 끊었다.

노안: 너무 무모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 한양소대 특유의 암호회화야?

청년은 손을 내젓더니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주겠다고 말했다.

노안: 하지만 이건 확실히 정상적인 임무는 아니야. 지휘관, 나는 여전히 네가 시몬 지휘관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 너도 나를 좀 믿어줬으면 해.

노안: ......
노안: 이렇게 된 이상, 우리 그냥 따로 행동하지 않을래? 사람을 더 데리고 가는 건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니까.

- 좋아, 하지만 넌 나와 계속 통신을 유지해야만 해.

단말기를 꺼내 노안에게 암호화된 채널로 초대를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

- 이 채널의 통신은 도청하기 매우 어려워.
- 신호도 좀 더 안정적이라 잘 끊기지도 않을 거야.

노안: ......

- 너 정말 혼자 가서 뭔가 큰일을 저지를 생각은 아니지?

노안: 그럴 리가.

- 아니면 무슨 큰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야?

노안: ...아니야.

청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단말기에서 암호화 된 채널의 초대요청을 수락했다.

- 네 말을 믿어도 될까?

노안: 약속할게...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주머니에서 낡은 반딧불이 장난감을 꺼내 인간의 손에 쥐어주었다.

- ...이건?

노안: 그건 내 인식표만큼이나 중요한 내 부적이야. 여기가 움푹 패여있는 건, 이게 나를 한 번 구해준 적이 있어서 그래.
노안: 꼭 안전하게 돌아온다고 약속할게. 그 때 다시 나한테 돌려줘.

- 좋아.

노안: 이건 교환조건인데, 너도 조사를 할 땐 신중해야만 하고, 위험이 닥치면 나나 그레이레이븐 소대를 불러서 도움을 받도록 해.

- 응, 약속할게.

 





어두운 석양이 구름 안쪽으로 숨어들며, 얼마 남지 않은 빛을 지표면으로부터 빼앗고 있었다. 기록된 주소를 향해 노안은 근처의 폐허로 잠입했다. 창밖을 통해 흘러나오는 불빛을 의지하며, 그는 다리의 갑주를 벗긴 뒤 인공적인 생체피부에 남겨진 이음새를 뜯어낸 뒤, 단말기를 다리의 기계 구조 사이에 숨겼다.

통각시스템이 이런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는 무시했다. 스며나오는 순환액을 닦아낸 뒤, 인공피부를 다시 붙이고 갑주를 착용했다.

석양이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내려앉았을 때, 가뜩이나 불빛이 적었던 폐허도 캄캄하게 변하고 말았다. 부서진 담벼락 뒤로 더 깊은 그림자 속에 숨어든 노안이 조용히 입구를 향했다.

???: 지금 몇시인데 그 놈은 여전히 안 오냐?
???: 좀만 더 기다려. 온다고 해도 수송기를 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달려서 오지 않으려나, 하하하

입구에는 구조체 2명과 인간 3명이 서 있었고, 뒷편에 버려진 건물에도 사람 그림자가 조금 보였다. 노안은 라이터가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빛을 놓치지 않았다.

노안: (여기서 손대면 안되겠네)

그는 다시 한 번 이 거점을 관찰했다. 인근의 생활 흔적과 이곳에 있는 인원들을 보면, 이곳은 환승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건물의 내부 시설은 전혀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그늘에 잠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예상했던대로 문 안쪽에서 한 명의 남성이 나와 폐허 뒤쪽 숲으로 향했다.

노안: ......후.

검을 두 자루 움켜쥐고 청년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남성은 숲을 지나 사방을 두번거리다가 큰 나무 방향에 멈춰섰다. 사방에 커다란 식물이 솟아있어 소리없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노안은 불가피하더라도 단말기 통신을 켜둔 상태에서 고양이같은 소리를 내며 위장공작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노안: 그렇다면...

그는 남성에게 자신이 늘 애용하는 단검을 내던졌다. 비록 예상했던 위치에서 약간 빗겨나가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굉장히 위협적인 곳에 박혔다.

그가 멍해진 그 순간을 틈 타 청년은 재빨리 후방에서 뛰어올라 손에 들고 있던 에너지 블레이드를 그의 목에 들이댔다.

 





노안: 소리내지 마, 손 들어.

어쩔 줄 모르던 남성이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을 몸 옆에서 위 아래로 흔들며 3초 정도 망설이다가 손을 올렸다.

남성: 내, 내 바지......
노안: 도와줄게.

그렇게 사뭇 인자한 듯한 말을 하면서, 그는 이 기회를 틈 타 자신의 단검을 나무에서 뽑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몸에 있던 모든 무기를 수색하여 빼앗았다.

남성: ......바지는요?
노안: 몇 가지 질문을 할 건데, 대답해.
남성: 설마, 저는 지금 볼일을 보려는 중이었다고요. 공중정원에서 온 당신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예의도덕을 중시하지 않는 건가요?
노안: 미안한데, 나는 아딜레 수송부대 출신이야.

협박당한 남성은 곧바로 예의도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포기했다.

남성: ......너 이XX, 뭘 묻고 싶은데?

- ......

이 모든 내용이 단말기의 암호화된 채널을 통해 그레이레이븐 지휘관의 귀에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 (수송부대......)

1년 내내 안전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 할아버지같은 자들──적어도 몇 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그런 낡은 운송수단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길을 지나 인간의 몸으로 침식체의 습격을 견디고 반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어떻게 아딜레의 심각한 내부 항쟁에 대처하고, 배고프고 절망적인 강도를 물리치며 많은 양의 물자를 목적지에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었을까?

──적어도 기존의 전투법과 전술로는 확실히 인간끼리의 투쟁에 대처할 수는 없었겠지만...

- (혹시 이런 일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까봐 통신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잠복 자세를 가다듬고 이 임시거점 부근을 계속 수색하고 있을 때, 문득 천천히 익숙하고도 차가운 빛이 어두운 모퉁이를 지나갔다.

 





- (...노안?)

몰래 따라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펴보니, 역시 짐작했던대로......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단말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 이곳이 아니다. 노안은 여기에 없다.

- (복제된 의식의 바다...)

노안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청년 구조체를 자세히 보니, 그의 동공은 암울한 붉은색이었으며,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가슴의 갈라진 상처에서 순환액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만약 고치지 못하면 속도가 느리더라도 그는 순환액이 전부 빠져나가 죽고 말 터였다. 승격자는 분명 여전히 노안을 이용하고 있을 것인데, 어째서 그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걸까?

아니면...활용해야만 하기에, "도구"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같은 시각, 노안은 검으로 남성을 위협하며 여러 사람 앞에 다가갔다. 양측은 이 간단하고도 비우호적인 인사를 통해 서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바로 깨달았다.

 






???: 형씨, 당신 지휘관은 우리가 돌려보내줄 수 있는데, 당신은 여기 남아있어야만 해.
???: 베테 어르신이 우리한테 은혜를 베풀어줬거든. 그가 당신을 보고 싶어해서, 우리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어.
노안: 그가 나를 보고 싶어한다고? 정화부대 사람들도 모두 나를 보고 싶어하던데. 아마 당신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모두들 혹사를 통해 만났을 거야.
???: 그게 뭐 어때서?
노안: 그들도 혹사와 거래를 했고, 나한테서 의식을 복제해가려고 했어.
노안: 만약 그들이 내 몸에 달린 위치추적기를 쫓아 이곳에 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 ......쯧.

제일 앞에 서있는 인간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대답을 삼켰다.

노안: (여기엔 승격자가 없는 것 같군. 만약 있었다면 이런 간단한 거짓말에 겁을 먹지는 않았을 거야)
노안: 내 요구는 여전해. 시몬 지휘관을 안전하게 이곳에서 내보내줘. 도중에 속임수를 쓰면 안돼.
노안: 그를 넘겨주면 내 위치추적기를 당신들한테 넘겨줄게. 만약 여기서 허튼 짓하면...

그가 그의 앞에 있는 남성의 바지를 꽉 움켜쥐자 그는 깜짝 놀라 벌벌 떨었다.

남성: 보스! 진짜예요! 이 자가 다른 사람이랑 통신을 나누는 걸 봤는데, 몇 분 뒤에 그 사람들이 여기에 찾아올 거예요!
???: ......

이 어설픈 거짓말은 그들의 보스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가 결코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며, 정화부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좋아, 그 지휘관을 데리고 가.






청정구역에서 탈출한지 9시간 만에 노안은 마침내 시몬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그의 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노안은 남성의 끊어진 허리띠에 매듭을 지어준 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인질을 교환했다.

시몬: ......
노안: 방금 팔루마 대장의 신호를 받았어. 곧 그녀가 여기에 올 거야.

노안은 시몬의 몸에 난 상처를 한 번 확인하고, 아무 말 없이 시몬의 찔린 손에 연고를 바르고 간단히 붕대를 감아주었다.

시몬: ...너는 항상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니네.
노안: 음, 릴리안은 구조체를 치료하는 것을 더 잘하고, 소대에 인간에 대한 기초 의료 지식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시몬: 약에도 의료지식이 필요할까?
노안: ...뭐?
시몬: 그 약이 대체 뭐였는지 설명해줘.

그가 막 설명하려고 할 때 멀리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팔루마가 두 구조체의 머리를 든 채 달빛을 등지고 이곳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이 자식이 약속을 어긴 건가!
노안: 잠깐, 그녀는 그냥 시몬 지휘관을 데리러 온 것 뿐이야. 나는 너희들이랑 함께 갈 거야.

노안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무기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시몬: 어디 가려고?
노안: ......
노안: 너는 일단 팔루마 대장과 함께 청정구역에 돌아가.
시몬: 이곳의 상황을 보면, 너희들 둘만으로도 충분히 정리가 될 거야!

노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 배신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시몬은 결코 안전하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베테가 살아있는 한, 혹사는 또 다시 오늘 일어난 것과 같은 혼란스러운 일을 또 다시 일으킬 것이었다.

노안: 이대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일단 돌아가.

그는 방금 전에 얻었던 권총과 단검을 시몬에게 던져주고, 또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팔루마의 평화로운 접근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시몬: 한양소대가 이런 문제에 처했던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탈주자가 되어 떠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

그는 노안에게 "알 권리"를 요구했지만, 청년은 에티르와 똑닮은 말을 건넸다.

노안: 돌아가면, 제대로 설명할게...약속할게.

그 후, 그는 에티르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







시몬: ......
팔루마: 저 자식, 내 저렇게 갈 줄 알았지.
시몬: 너...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팔루마: 노안이 그레이레이븐 지휘관을 납치해서 빠져나왔는데, 너를 구하러 왔다면서 지금은 따라오려고 하질 않네.

손에 들려있던 머리를 내던지며 팔루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추측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이런 일을 적지 않게 겪어왔었다.

팔루마: 방금 주변을 찾아봤는데 그레이레이븐의 지휘관도 근처에 없더라.
팔루마: 어쩌면 쟤는 복수하기 위해 모든 걸 저버리는 걸지도.
시몬: 노안이......복수...

 

 


시몬: 복수를 위해서? 에티르를 말하는 거야?

지난날의 기억이, 찬바람에 귀청을 찢듯 울음을 터뜨렸다.

팔루마: 어쩔까? 지금 최우선 임무는 너를 구하는 거지만, 겸사겸사 저 자식을 해치우고 한양소대의 인식표를 회수해올 수도 있어.
시몬: 수석님도...사라졌다고?
시몬: 수석님이...

그는 이제야 반응이 온 듯 비틀거리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시몬: 대체...어떻게 해야 하지?







에티르: 당신 바보예요?
에티르: 반역자를 죽이기만 하면 간단하잖아요.

──한순간 공허한 생각이 흘러들었다.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시몬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총의 총구가 살짝 뜨거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달빛 아래 낯익은 얼굴에 핏자국이 한 줄 남았고, 그의 앞을 나아가던 악당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노안이 마침내 고개를 돌리더니 시몬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노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