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 있을 수 있음/의역 다수

*지휘관 대답은 간혹 선택지가 여럿 나오는데 일직선으로 선택한 것만 번역했으니 양해 바람

*고후위등 스포일러를 포함함.






<진통제>
형벌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위안 중의 하나를 찾았다.

 








가득 찬 한기가 곧 눈이 내릴 것 같다는 예감을 가져오고 있었다. 방금 전 노안을 강제로 등대 꼭대기로 끌어당긴 인간은, 안색이 약간 창백해진 채로 숨을 헐떡였다.







- 노안.

노안: 응.

이름이 불린 청년이 다가와 인간의 팔다리에서 상처가 나기 쉬운 곳을 확인하고 있었다.

노안: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노안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 아니, 괜찮아.
- 너는?

노안: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두 손은 붉은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조금씩 바닥에 떨어지며 끈적거리는 꽃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줄이 끊어진 현악기처럼, 간신히 그의 파란만장한 곡조를 연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줄이 몇 개 남아있는 걸까?)

노안: 왜 그래?

-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말해줄 수 있어?
- 왜 그렇게 자살에 가까운 행동을 하려고 했어?
- 정말 그를 대신해서 혹사를 만날 생각이야?

노안: ......
노안: 한양소대의 현재 상황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지를 해결해야만 호전될 수 있을 거야.

- 그래서......?

노안: 이건 기회야.
노안: 혹사는 "복제할 수 있는 원본"을 만나는 걸 더 기뻐하겠지.

-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

노안: ......아니, 하지만......
노안: 이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이렇게 해도 크게 비난할 수는 없겠지?
노안: 클론의 일부를 없애고, 정보를 일부만 찾아가며...이렇게 계속 기다리는 것보단 낫잖아.

- 글쎄, 그렇게 하면 확실히 혹사에 의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거야.
- 그런데 그러면 너는 또 어떻게 되는 건데? 제대로 돌아올 수 있어?







노안: ......
노안: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노안의 차분했던 표정에 마침내 균열이 생겼다.

노안: 나와 관련되어 깔끔하게 처리되지 못한 저들과 이런 일들이 우리 소대에도, 너한테도 영향을 미쳤어.

- 살아있는 한 그런 일들은 계속 일어날 거고, 나도 마찬가지야.

노안: ......

- 내가 아는 노안은 단지 그런 사실만으로 이렇게 충동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야.
- 그 밖에 달리 무슨 일이 있었어?

그는 마치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이미 눈앞에 놓여있다는 듯,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노안: ...너는 이전에 이미 베테한테 한 번 끌려간 적이 있었어.
노안: 내가 저번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
노안: 나는 그 자의 신분이 어떤지만 말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진 말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겠어?

- ......제대로 알려주진 않았지.

노안: 그에게 잡혀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의 은신처까지 쫓아갔을 때의 일이야.
노안: 나는 3개의 문을 열고나서야 그의 거점 가장 깊은 곳 문 전부에 가느다란 낚싯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어.
노안: 문을 열 때 낚싯줄이 끊어지면......거기에 매달린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초인종"역할을 했던 거야.
노안: ...그 문에 달려있던 줄들은 전부 한 사람한테 매달려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구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어.

- ......

노안: 네가 4월 1일에 실종됐을 때, 나는 한순간 오히려 혹사가 그를 막고 있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노안: 하...혹사가 막고 있었다고...

노안은 힘없이 두 눈을 감았고, 감춰진 감정들이 두 손에 묻은 핏자국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노안: 만약 이런 일들이 너나 시몬 지휘관한테도 일어난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해......

그는 뒷말을 삼켰다.

노안: 이게 바로 내가 규칙을 어기고 단독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야. 너의 도움을 "빌려"서는 안되었어.
노안: 청정구역을 떠날 땐 어쩔 수 없이 너를 데리고 나왔지만, 그 때에도 나는 네가 시몬 지휘관과 함께 돌아가줄 거라고 생각했어.
노안: 네가 싫어해도 따로 행동하고 있으면 팔루마 대장이 널 데려가줬을 거야.
노안: 널 발견하면, 그녀는 반드시 강제로 널 데려갔을 거니까. 왜냐면,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반드시 보호하니까.
노안: 그녀가 너를 찾지 못했더라도,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땐 나나 그레이레이븐 소대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우리 약속했잖아.
노안: 내가 너한테 갈 수 없는 상황이어도, 날 믿을 수 없는 상황이어도, 무적의 그레이레이븐 소대는 언제나 널 위해 달려올 거잖아?

노안: ......그랬는데 베테가, 네가 "또 다른 나"한테 끌려갔다는 소식을 보내왔어.
노안: 난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지휘관.
노안: 내 미래가 밝아질 거라는 기분이 들 때마다, 결국엔 더 나빠지고 말아.
노안: 아무리 자제하고, 겸손하려 하고 마음의 평정심을 지키라고 스스로를 타일러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야.
노안: 나도 가끔은 궁금해져......이런 마음의 평정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노안: ......
노안: "이렇게 충동적으로 변하진 않는다"라고?

그는 자조적으로 냉소를 지어보였다.

- (노안을 끌어안는다)

노안의 몸은 마치 지휘관이 이렇게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가볍게 떨렸다. 그는 피 묻은 손을 들어 마주안으려다가, 손에 묻은 핏자국이 지휘관의 겉옷을 더럽힐까봐 망설였다. 무려 3초 동안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듯 앞에 있는 사람을 꼭 껴안았다.

- 조금만 더 나를 믿어줘.
- 아무 준비 없이 혼자서만 모험을 할 수는 없어.

노안: ......내가 미리 말해줄게.

- 엇, 그렇게 갑자기.
- 그런데, 그 사람도 "노안"이 맞지?

노안: 그는 방금 나를 정말로 죽이려고 했어.
노안: 완전히 기억을 되찾기 전까진 그를 적으로 판단하는 게 나을 거야.

- 기억을 되찾으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노안: ...조만간 유통기한이 지날 빵이 되겠지.

- 뭐?

노안: 너는 곧 유통기한이 지날 것 같은 빵을 받으면 어떻게 할래?

- 얼른 먹어야지.






노안: 맞아, "나"도 분명 그렇게 할 거야.
노안: 기억을 되찾게 되면, 그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 ......

노안: 아니, 지금 걱정해야 할 부분은, 혹사가 "그"에게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야.
노안: 혹사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아직 가능성이 있어.

그는 걱정스럽게 등대 아래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노안: ......제대로 살아남았겠지.

- 너 설마 계속 그를 쫓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

노안: 별로 오랫동안 쫓아갈 순 없을 것 같아.

- 포기하지 않은 거냐!
- 어쨌든 돌아간 다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노안: 돌아간다고?

- 왜?

노안: ......

노안은 시몬을 데리러 갔을 때 일어났던 일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이 그를 의심한 것, 미처 살피지 못했던 약. 그 후, 팔루마가 시몬에게 작은 목소리로 뭐라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러자 시몬이 노안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노안: 아직 돌아갈 수 있을까?

- 해명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 잘 안될 수도 있지만, 방법은 있을 거야.

노안: ......

- 그리고, 그건 에티르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해.

노안: 에티르?

- 음, 그건 시몬한테 직접 물어봐.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 ......어쩔 수 없지.
- 돌아가면 우리 같이 시몬이랑 싸우자고.

노안: 응.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완전히 찬성한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노안: 팔루마 대장이 한 말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직접 느끼게 해야지.
노안: 그녀는 자신도 여기에 연루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이해한 다음에야 제대로 이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 맞아.

노안: 그런데...너는 이렇게 별로 좋지 않은 계획에 대해 잘도 말하는구나, 우정과 화합에 대한 전문가인데.

- 그럼 비밀로 해주라.
- 시몬한텐 미리 귀띔해주고.
- 이 기회를 빌어 그 때 날아온 총알에 대한 복수를 하자고.

노안이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은 서서히 사라졌고, 원래 있던 슬픔이 그의 허락을 받아 그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 돌아가자, 아직 할 일이 많아......엣취!

인간은 매서운 찬바람 탓에 재채기를 두 번 했다.

노안: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옷을 하나도 안 챙겨왔는데, 그레이레이븐에 알려서 너를 데려가라고 할까?

- 아냐, 이틀 동안 임무가 전혀 없었는걸.
- 긴급상황도 아니고.
- 7km 떨어진 곳에 거점이 있으니 수송차량을 타고 돌아가면 돼.
- 같이 돌아가자.







등대를 벗어나 눈이 녹지 않은 폐허의 거리를 따라 거점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으며, 가는 내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새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자, 노안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노안: 눈이 내리네......
노안: ......또 눈이 내리네.

- (노안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 곧 거점에 도착할 거야...

노안: 응.

- 아직도 "그 노안"이 걱정돼?

노안: 글쎄......
노안: 그가 언제까지 이용당해야만 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지 모르겠어서.
노안: 혹사는 그의 눈을 보면 의심할 거고, 과거를 속인 것에 대해서도 대가를 치러야만 할 거야.
노안: 게다가 내가 복제됐다는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어.

- 내가 확보했어.

인간은 노안에게 손에 든 단말기를 흔들어보였다.

노안: 언제?

- 일단 말해두지만, 나도 지휘관인걸.
- 어떻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너한테 납치됐겠어?

노안: 이런 증거를 얻으려고 그런 거야?

- 그 뿐만이 아니야.
- 원래는 "또 다른 너"도 공중정원에 오라고 권하고 싶었어.

그의 표정이 순간 묘하게 변했다.

- ......괜한 짓이었나?

노안: 아니, 이 문제 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너한테 폐를 끼치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해.
노안: 나 또한 이기적일 때가 있고, 교환하거나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한테도 양보하지 않을 거야.

- 알았어.
- 아 맞다,
- (반딧불이 장난감을 노안에게 돌려준다)
- 그는 원래 베테를 도우러 가려고 했었어.

노안: ......이 반딧불이가 그의 관심을 끌었어?

- 응.
- 그 후에 너와 베테의 대화를 듣게 되었어.
- 이건......우연의 일치일까?

노안: ......

- 그가 나한테 단말기를 돌려줄 때......

 






노안?: 어쩐지, 예전에 실종된 내 친구가 나한테 "기다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노안?: ...그래서 돌아봤더니, 내가 오랫동안 찾던 물건이 네 손에 있는 걸 봤어.
노안?: ......

 




- 그의 본질은 너와 크게 다르지 않아.
- 조만간 기억을 모두 되찾을 거야.
-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어.

노안은 침묵속에서 대답했다.

- (노안에게 손을 내민다)

노안도 손을 내밀어 마주잡으려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멈춰섰다.

노안: ......잠깐만.

그는 사방을 한 번 둘러봤다가, 빠른 걸음으로 길가에 가서 쌓여있는 눈을 한 웅큼 집어 손에 묻은 핏자국과 상처에서 넘쳐나고 있는 순환액을 닦아냈다. 그렇게 자신의 두 손을 보며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손에 난 상처를 붕대로 황급히 감은 후 제자리에 돌아와 지휘관을 움켜쥐었다.

그제야, 형틀에 갇혀있던 영혼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 눈 싫어해?

노안: ......

- 노안?

 







노안: ...괜찮아, 지금은 괜찮아.
노안: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