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자는 중에 발생하는 질병 중 하나인 '몽유병'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영화.

귀신이니 악령이니 하는 근본적으로 초자연적인 소재가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정신은 잠 든 채 신체만 깨어있는 상태인 수면 장애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귀신이든 몽유병이든 사람이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적인 면모가 있어서 공포감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한 동시에 좀 신선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밤만 되면 "타인", "외부인"이 되어 집안에 존재한다는 공포. 가까운 사람이 나의 보호자가 되지 못하고 가해자가 되는 공포.


전체적으로 스토리 라인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고 연출이나 편집도 점프 스케어도 없고 혐오스러운 피사체도 전혀 노출하지 않으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매우 잘 조성한다. 사운드 역시도 종종 불쾌할 정도로 과장될 법한 장르임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하지만 장르적으로 뾰족한 공포 영화인 건 아님. 좀 더 미스터리, 스릴러에 방점이 큰 '심리적 공포'를 조성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혹여 공포, 호러를 기대하면 많이 실망할 수 있음.


몽유병 환자인 남편보다는 역시 그걸 옆에서 감내해야하는 아내의 비중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데, 배우 '정유미'는 압도적인 스크린 장악력을 내뿜는다. 배우 '이선균'의 연기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지만 역할상, 분량상, '정유미'의 '신 들린' 연기력에는 보는 내내 짓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이나 중반부 '정유미'의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쇼트도 대단하지만 엔딩 직전에는 그 눈빛으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3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준수하게 서스펜스를 잘 고조시키며 진행된다. 마지막에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들이 비교적 있기는 한데, 오히려 나는 이 마지막을 정말 좋게 바라봤음. 캐릭터들의 설정이나 심리를 여실히 잘 드러내는 장치들과 행동, 사물, 사건들. 너무나도 깔끔하고 확실하게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음.


눈을 뜨고 있으면 눈을 뜨고 있는 것인가.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부부의 계율은 강박일까, 치료일까.

어찌보면 결혼 생활을 몽유병으로 국한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 


이 영화가 조금 스포를 곁들이지 않으면 할 얘기가 너무 적어져서 더 뭘 말하기가 좀 그럼. 그럼에도 꽤 준수하고 완성도 있는 영화라고 보임.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영화. 혹시나 '정유미' 배우에 대해 <82년생 김지영>의 주연을 맡은 것으로 인한 거부감만 없다면 영화 관람 스펙트럼에 따라서 추천해줄 수 있는 영화.








<한 남자>. 죽은 남편 '다이스케'의 장례식 중 그의 형이 찾아오고, 형은 사진을 보자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누구인가? 대체 누구였길래 다른 사람이 되려 했던 것일까? 아내인 '리에'는 인권 변호사 '키도'에게 신원조사 의뢰를 맡긴다. '키도'는 진실에 다가갈 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사실 일본 영화의 느슨하고 서늘하고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근데 극장에 볼 게 없어서 평이 괜찮아 보여서 봤음. 극장에 나 빼고 아무도 없어서 개꿀잼으로 봤다.


근데 이 영화도 스포하지 않고서는 깊이 있는 담론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듦. 내가 좀 빡통이라서 에둘러서라도 얘기를 못하겠거니 하지만 아무튼 제법 좋은 영화였음.


소재 자체는 <화차>와도 겹쳐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의, 다른 내용의 작품이라서 사실상 유사점은 그래서 그게 누군데? 하는 정도. 이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식과 그 개인의 삶의 문제고, 이를 정치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소 노골적이기는 해도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인생 차원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상당히 그, 일본식으로 차분한 영화이기 때문에 볼만한 가치는 있지만 대뜸 권하기는 어려운 영화. 주제 자체도 그렇고. 하지만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