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18세 이상이 된 이후, 주요 범죄 기록이 없는 한 자발적으로 게슈탈트 시스템을 통해 다른 사람과 매칭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다.


트릴드

앞으로 개인 간의 관계보다 교류를 통해 유대를 이어갈 이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소통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다리를 놓아주고, 나만의 울타리를 깨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슈탈트의 부분적 기능의 민수용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한 트릴드의 말이었다.



와타나베

시스템 매칭 말인가요?...


와타나베는 원래 이 권리를 거부하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모든 사람이 나만의 울타리를 깨고 생면부지의 사람과 교류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정체성을 확립한 뒤 교류하는 원시사회에서 내려온 이 고유한 관습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새로운 친구도 사귀면 좋지 않겠니?

결국 너희 학교에서 일렉트로닉 힙합을 하는 친구들이든, 폭주 레이싱을 하는 클럽 친구들이든, 군대의 길을 선택한 건 아니잖니?


와타나베

어떻게 알았어요?!


발라드 씨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네가 이런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와타나베

절 조사했어요?!



와타나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발라드를 바라보았다.


발라드

직업병이다. 그리고 너도 그다지 숨기지 않았던데.


처음에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단다. 결국 나한테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야.

결국 너는 머리를 양옆으로 밀어버리고 눈가에 검은 반점을 칠하고 물감을 뿌린 듯한 옷을 입은 사람이 되지 않아서 참으로 좋구나.


와타나베

그건 여러 시대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뒤섞인 결과라구요...


하지만 네가 자신의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매우 필요해.

그러니 게슈탈트의 매칭 시스템을 한번 시험해 보자꾸나.



와타나베

아무튼 일단 해보자고.


단말기를 통해 와타나베는 손쉽게 매칭 시스템에 접속했다.


게슈탈트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게슈탈트 매칭 시스템을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의 약관을 읽어보시고, 확인 후 다음 단계를 진행해주세요.


와타나베는 직접 그 수많은 프라이버시 항목과 사용 규칙을 맨 아래까지 단숨에 스크롤한 뒤 확인을 클릭했다.


게슈탈트

시민 정보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신상정보가 맞는지 확인해주세요...…매칭 중...


AI가 다시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전에 와타나베가 먼저 확인버튼으로 말을 끊었다.


게슈탈트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 모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와타나베

그래...낮선 사람인데 허심탄회하게 다 풀어놓을 필요는 없잖아?


게슈탈트

알겠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 모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게슈탈트 매칭 시스템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교류 되세요.


시스템음이 잠시 내려간 뒤 스피커에서 맞은편의 인사음이 들렸다.


???

여보세요, 제 말 들려요?



생일이 지난 지 닷새 만에 와타나베가 오아시스 신병 훈련소로 떠날 시각이 됐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은 일련의 현대식 훈련소였고, 와타나베는 그 중 2분대로 향했다.



태워다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와타나베

괜찮아요 아버지. 유치원 가는 게 아니에요.


가족이 군대에 가면 직접 배웅해야 한다-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네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걱정하지 않지만, 여전히 하늘 위에서 너를 축복할 거야.


와타나베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는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우주에서 얼마나 감상적인지는 알겠어요. 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세요.


그래.


위성통신을 끊은 와타나베는 들고 있던 캐리어를 짐칸에 올려놓으려 했다.

옆 사람이 그에게 한몫 거들었다.


와타나베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상대방은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낯이 익은 상대였지만 와타나베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은 늘 베일에 싸인 듯 선명하지 않았다.


와타나베

그쪽도 오아시스에 입대하러 가는 건가요? 


상대방은 비록 젊지만 오랫동안 단련한 것처럼 보인다. 발라드에게 훈련받은 와타나베는 상대의 행동에서 역시 비슷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셈이죠...】


【하지만, 저는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와타나베

왜 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차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와타나베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병영에 온 후의 전개는 오늘날에 심상치 않은 징표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교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순순히 시뮬레이션 룸에 들어가든가, 아니면 내가 널 묶어버리겠어.

기껏해야 나중에 시말서 쓰는 정도고, 어차피 아무도 보지 않을 그런 것 따위 부관한테 짬처리하면 그만이야.

발라드가 8년 동안 훈련시킨 애송이가 과연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직접 봐야겠다.



전투 개시




신병 주둔지

시뮬레이션 룸

4월 17일 17:00


병사

힘내라, 신병.



가상 공간 구축...완료

가상 전투 데이터 구축...…완료

의식의 바다 접속…완료

시스템 접속 완료



와타나베

신병 2기

시뮬레이션 전투 이미지



와타나베

이게 가상 훈련 공간이라서 그런가, 잘 안 보이네...…

뭐, 속전속결하자고.



Episode-03

시작


백하우스

느려터지기는, 길에서 자다 왔나?



백하우스

신병 교관

시뮬레이션 전투 이미지



와타나베

그 덕분에 교관님 몸 좀 풀으실 시간 가지시지 않았습니까?


백하우스

하하하하, 이 녀석, 건방지군!

그럼 이거나 받아라!



백하우스

오, 반응 좋네!

네 능력을 계속 보여달라고!


와타나베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백하우스

더 열심히 안 하면 나 진짜 지겠는데, 하하하.



정체불명의 소리

...동기화, 보정...…

응답 없음...


와타나베

이건?


백하우스

한눈팔지 마!


정체불명의 소리

…딥다이브…

와타나베! 와...

계속해...

반응 없음...



와타나베

도대체 뭐지...


백하우스

시원하군!



와타나베&백하우스

핫!



와타나베

음...

이건...무슨 상황이지?

이건 교관과 나인가?

도대체 언제의 일이지...?



와타나베

뭐지?

기습?!



와타나베

시스템 로그아웃!

소용없어?

빌어먹을!



와타나베

교대인가?!


와타나베

...(가냘픈 신음)


??

의식의 바다가 반응하고 있어!

계속, 링크 강화!

이봐요, ▇▆▃▂█▇▅▆, 버틸 수 있어요?

안되겠어. 그래도 너무 오래걸리니까 일단 끊자.



전투 종료




???

어이, 신병!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시야"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의식이 다시 현실의 가장자리로 떨어지면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뮬레이션에서 받은 상처라도 통각을 그대로 현실로 전달하는 것인가?

그런데 다친 건 얼굴뿐만이 아니었는데…


???

잠깐만, 교관님 뭐 하시려고요?


어디서 들은 듯한 목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말투였다.


???

생각해보니 아까 힘이 덜 들어간 거 같아서 다시 해보려고.


???

제가 바로 의사를 찾아갈 테니까, 괜히 오기 전까지 붓기 빼는 거 더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


붓기를 뺀다고?


와타나베

쓰읍...



교관

여어, 일어났나!


앞에는 교관의 커다란 얼굴, 근육이 뭉친 팔뚝, 그리고 이미 치켜든 손바닥이 있었다.


와타나베

교관님은 무엇을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교관

네가 계속 깨어나지 못하길래 다시 그 '촌스러운 방법'을 쓸 작정이었지.


와타나베

그래서 제 양쪽 얼굴에 통증이 있는 이유는요?


교관

적어도 효과는 뛰어난 것 같네.

그런데 네놈은 전투 기술은 좋은데 의지력은 별로야.

자네, 피를 못 보나?

그때 맞아서 다친 건 나였다, 이 녀석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 놈이 먼저 쓰러졌다니까.


와타나베

쓰러졌다니...분명 서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으음...


머리에 심한 망치를 맞은 듯, 가뜩이나 희미한 기억은 진짜 어둠으로 변해버렸고, 와타나베는 자신이 실제로 피를 보고 기절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교관

머리는 괜찮아?


교관은 다람쥐가 도토리에서 익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손가락 마디로 와타나베의 이마를 두드렸다.


와타나베

괜찮습니다. 그럼 이번 승부는 어떻게 합니까?


교관

음...내가 이겼다고 하기에도 영 내키지가 않네.

한 판 더 할래? 이번에는 내가 하모니 필터를 켜 놓을게.


와타나베

교관님이 이겼어요. 거절합니다.


와타나베는 단호히 말했다. 등록 첫날부터 엉뚱한 대결에 휘말리면서 그는 발라드가 말한 "기강 해이, 세상 말세"가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와타나베

드디어 도착했어.


몇 시간의 요동 끝에 와타나베는 신병 수송용 오프로드 차량에서 내렸었다.


와타나베

여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


자신의 결심, 아버지에게 한 약속, 그리고 찾고 싶은 신념이 떠올랐다.

와타나베의 심정은 주위의 모래바람처럼 들떠서 진정되지 않았었다.



교관

네가 와타나베 맞지?


그러나 이런 호연지기를 마저 다지기도 전에 등 뒤에서 팔짱을 낀 그의 한쪽 팔이 가로막았다.


교관

가자~ 시뮬레이션 전투실로.


와타나베

놓으세요! 도대체 누구세요?


교관

이 훈련소는 내가 관리하니, 네 녀석 항명할 생각하지 마라.


와타나베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전투기술로 붙잡았고, 뒤처진 와타나베는 그대로 시뮬레이션 룸으로 끌려갔었다.



교관

벌써 패배를 인정하다니, 너 정말 발라드의 부하야? 그가 너를 이렇게 가르쳤어?


와타나베

첫째, 실력이 어떻든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저는 확실히 그의 병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교관님이 늘 그 사람 얘기만 하시고 있는데, 아시는 분입니까?


교관

물론이지, 난 말이야...



???

군의관을 데려왔습니다!


군의관

시뮬레이션 룸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 부기를 빼야 한다고 하는데...


군의관은 현장에 있던 교관과 와타나베를 둘러보고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군의관

백하우스 교관님. 적응 훈련을 거치기 전에 신병을 시뮬레이션 루메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텐데요?


백하우스

어… 요즘 젊은이들은 VR이니 AR 같은 걸 많이 하길래, 우리 아날로그 전투실이랑 비슷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

진작에 적응했어야 했는데….잘못했어요! 다음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군의관의 얼굴을 보고 근육질의 사내가 대뜸 말을 바꾸었다.


군의관

됐습니다...신병 이름이 뭐예요, 일단 등록해요.


와타나베

와타나베입니다.


???

와타나베?


옆에서 같은 신병인 사람이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와타나베는 그 낯익은 억양을 통해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와타나베

브루스?



???

여보세요, 제 말 들려요?


브루스

저는 아일레이 섬에서 온 브루스라고 해요.


와타나베

저는 베이루트에서 온 와타나베입니다.



백하우스

이런 우연이, 너희 서로 아는 사이야?


브루스

우연이라기 보다는 같은 캠프에 간다고 알고리즘이 판단해서 매칭을 한 것 같습니다.


백하우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다시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오아시스 캠프 2분대의 총교관 백하우스라고 한다. 평소에는 나를 교관님이라고 부르면 돼.


그는 눈길을 와타나베로 돌렸다.


백하우스

발라드가 나한테 미리 가져갔던 그 군복은 몸에 잘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