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공황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성간 영역으로 진입한 뒤 끊임없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구 통일 기념비 앞

2:00PM


북적거리던 광장에는 이제 발라드 혼자만이 남아있다.

와타나베의 부고와 발라드의 해방선언을 들은 현장 병사들은 그들이 지키던 자리로 돌아가 봉화를 기다렸다.

발라드는 빗물과 시간에 침식돼 흔적이 보이지 않는 기념비에 손을 대고 먼지를 닦아냈다.

아무리 튼튼한 재료를 쓰더라도 다듬지 못한 각인은 점점 흐려지고 모서리를 잃게 된다.

이 기념비에 적힌 이름처럼, 기억하는 자는 얼마나 될까?

그들은 이미 재난과 망각에 따라 하찮은 모래가 되었다.



발라드

얼마 안 남았다...


발라드는 손가락이 비석의 자갈을 스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을 통해 지나간 자국을 보는 듯한 눈길로 속삭였다.

결국 그의 눈길은 기념비 바닥에 멈춰섰고, 거기에는 짧은 글귀가 있었으나 역시 녹슬어 흐트러져 있었다.



█████세계


발라드

머지않아, 그 당시 몰래 도망친 탈영병들은 그들에게 마땅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백하우스

지금 나더러 물러가라고?


발라드

결코 평범한 해킹이나 테러가 아니라서 더욱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폭동 기계는 너무 위험해. 군용 기갑은 이런 상황에서 너희들의 철제 관짝에 지나지 않아.

육체의 범태만으로 어찌 강철의 홍수에 대항할 수 있겠나. 내 후퇴 지시를 들어.

이미 2선으로 물러난 늙은이 같은 놈은 목숨을 걸 필요가 없어, 어쨌든 네 딸을 생각해 봐!


백하우스

난 그 쇠덩어리들이야말로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말해주지! 결국 가장 믿음직한 것은 인간 자신인데, 젊은이들은 아직 자신을 믿지 않아. 역시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런 거다!


통신 너머의 근육질의 사나이는 허벅지를 툭 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발라드

백하우스!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야!


백하우스

내가 말한 것도 매우 중요해. 몇 년 동안 그 신병들은 항상 나의 관념이 너무 낡아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기 때문이거든.


발라드

지금 너한테 훈련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백하우스

그러니 이제 막 기갑의 의존에서 벗어난 애송이들에게 어떻게 맡길 수 있겠어?


백하우스는 웃음을 거두고 한동안 관리하지 않아 막 튀어나온 하얀 턱수염을 만져 보았다.


백하우스

세계 정부는 아직 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분석하지 못했겠지?


발라드

과학이사회와 세계 엔지니어 노조가 24시간 번갈아 분석했으니 곧 결과가 나오리라 본다.


백하우스

과학의 일은 잘 모르지만, 내가 한 가지 이해한 것이 있다면, 통제 불능의 기계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거야.

흰 옷을 입고 안경을 쓴 사람들에게 분석 가능한 샘플을 제공하든, 민간인을 보호하든 모두 사람이 해야 하는 거지.


발라드

이것들은 정규군의 지상방위군으로 충분해.


백하우스

흥, 의료캡슐과 기능성 방어구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건 바로 그 젊은이들 아닌가?

내가 데리고 나온 병사들인데 내가 잘 모르겠나?


발라드

이건 네 책임이 아니야.


백하우스는 손을 흔들어 그의 다음 말을 끊었다.


백하우스

네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는 알지만, 우리 시대에 뒤떨어진 노병들이 좀 더 현실적인 일을 하게 해줘.


발라드

전선에 나서면 뭘 할 수 있는데?

시대는 이미 변했고, 넌 심지어 통제 불능의 군용 기계도 알아채지 못하잖아!


백하우스

우리 같은 노병들은 전쟁터에 나가 한 가지 일만 한 적이 없었지.

후배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벌어주는 거야.

네 말이 맞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기 일보직전이야,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해야 해.

미래는 젊은이들의 것이니 고참으로서 신병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줘야지.

게다가, 선임병이 어디 신병 뒤에 숨어 있어서야 되겠나?


발라드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새로운 통신이 그보다 한 발짝 앞서 다가갔다.


백하우스

가서 옛 전우들과 합류해야겠어, 먼저 간다.

맞다, 깜빡할 뻔했네.

네가 보내준 그 녀석, 확실히 훌륭한 인재야. 이번에는 내가 졌어.

하지만 너도 아마 내 시가 한 봉지 가로챌 기회는 없을 거라고, 하하하하!

아까워라, 영상을 켜야 네 그 답답한 얼굴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발라드

백하우스...백하우스! 쿨럭쿨럭...



발라드가 다시 백하우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이름은 수많은 최전선 전투 보고서에서 이미 눈에 띄지 않는 문장이 되어있었다.

전 통일영웅훈장 수상자인 오아시스 소대 제2분대 훈련소 교관 백하우스는 북쪽 방어선 저지전에서 전사했다.



발라드

...


전령병

교관님.


발라드

음...지금 상황은 어떤가?


전령병

새로운 선전물을 인쇄하여 각 구역 캠프에 보내고 있으니 일주일 내로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리더가 이렇게 죽은 걸 믿을 수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공중정원과 정면충돌하지 말자는 호소는 반년 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아직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리더를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원로들로, 이들의 호소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발라드

...와타나베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을 지켜 나가고, 그 밖의 것들을 고려하라.

이것은 망각자가 모두에게 한 약속이다. 만약 나와 와타나베가 같은 처지라면, 그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어.


전령병

그럼 이제 저희는...?


발라드

계획대로 계속된다면 지금이야말로 인심이 가장 요동치는 시기이며, 적들도 우리 여론의 침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각 부대에 전의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사람을 방비하라고 통지해.


전령병

네!

그럼...그 추종자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발라드

내가 직접 찾아가서 얘기하겠다.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 정상이고, 어떤 것은 직접 거론해도 무방하지.

그러나 하나의 군에는 한 가지 지휘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발라드가 계단을 내려왔다. 하늘의 먹구름이 짙어져 영원히 햇빛을 쬐지 못할 것 같았다.



와타나베

햇빛이 지독해...죽을 것 같아...…

공기를 뒤틀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중무장한 군인들이 70도의 모래사장을 밟고 걸어갔다.


앨버트

더워...숨이 막힐 지경이야...…


녹색 머리의 앨버트는 일행 중 가장 체력이 떨어져 줄 끝에 떨어져 가까스로 따라다녔다.


브루스

버텨, 내가 짐 좀 들어줄게.


아일레이 섬에서 온 브루스는 소대 내에서 좋은 사람이자 확신을 주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부담을 나누고 싶어한다.

본인의 옷도 땀에 흠뻑 젖어 하얀 소금 반점이 생겼지만.


코츠

브루스, 너무 무리하지 마. 사막에서 쓰러지는 건 농담이 아니야.

땅 위의 모래는 순식간에 너의 살갗이 갈라지게 할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아일레이 섬 출신인 코츠는 브루스와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이인 것 같았는데, 브루스에게 잘난 척하지 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가자

마지막 3km 남았어.


마지막으로 침울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과묵한 사람인 가자인데, 요즘 와타나베가 그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것은 상대방이 박하차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아마 고향의 특산품인 것 같았다.


앨버트

나 안 되겠어….


와타나베

앨버트!



와타나베

...쓰읍...

브루스, 좀 부드럽게 해줄 수 없어?!


체력이 떨어져 쓰러진 앨버트가 모래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와타나베는 곧바로 달려들어 쿠션 역할을 했었다.

코츠의 살갗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말이 사실인지 스스로 검증한 것이다.


브루스

이미 부드럽게 하고 있는걸.

운이 좋게도 내가 아직도 이 고대의 상처 치료 방법을 괴사조직 제거와 붕대로 감는 방법을 알고 있었어. 소대 규정상 의료캡슐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거든.


지난 11개월 동안 백하우스는 군용 기능성 방어구를 조작한다는 목표로 소대의 두뇌 수용능력을 단련한다면서도,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와타나베 등의 스케줄을 채운 것은 끝없는 야영과 격투, 사격훈련이었다.


와타나베

교관님도 진짜 너무...시대착오적이야. 훈련 조건을 원시화한 건 아무래도 좋아. 지금 이 시대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고, 다치면 의료캡슐도 못 쓰게 하고...이게 뭔ㅡㅡ


브루스

위급할 때 너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계도, 기적도 아닌ㅡㅡ


와타나베

ㅡㅡ오직 너 자신뿐이다!


이것은 나머지 세 명이 부상자 두 명을 태우고 야외 주둔지로 나와 의료캡슐 사용을 신청하자 백하우스가 한 첫 마디였다.


브루스

교관님이 이렇게 하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불평하면 안 돼.

ㅡㅡ자, 붕대 다 감았어. 그러고 보니 훈련기간도 거의 다 지났고 이제 부대배치네.


와타나베

그래...어떻게 할 거야? 여전히 예전에 말한대로 지상방위군에 입대하여 전선에 나가 죽을 작정이야?


거의 11개월 동안 함께 지내면서 몇 사람은 이미 상대방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앨버트, 가자, 와타나베는 고용제를 택했고, 브루스와 코츠는 지상방위군을 택했다.

브루스는 한때 공군에 지원했지만 균형 시험 때문에 번번이 탈락했다.

브루스도 그가 이렇게 버티는 이유를 좀처럼 알려주지 않았고, 그와 함께 아일레이 섬 출신인 코츠도 뭔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와타나베도 남들이 꺼리는 것을 물어볼 만큼 눈치없진 않았다.


브루스

전선에 나간 것은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야...나는 그렇다치고, 너는?


와타나베

훈련 기간이 끝나면 고용제로 갈 건데 아마 목숨을 아끼는 부자들의 경호원이 되겠지.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자조가 섞여 있다.


브루스

돈을 위해 일을 하면 편안하려나?


와타나베

...맞는 말이야! 사람은 평생 돈과 삶을 위해서 사는 거 아니야?


브루스

설마…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다치는 장면을 못 봐서 그런 건 아니겠지?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우니까?


와타나베

...


브루스가 밝히고 싶지 않은 끈기가 있듯이 와타나베도 비밀을 지켰다.


브루스

넌 너무 착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너무 소심하다고 해야 할까?


와타나베

...나는 단지 적응이 좀 안 될 뿐이야!진짜 전쟁터에 나가면...…잘 될 거야!


이 잔잔한 시간 속에서 와타나베는 당연히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브루스

그렇다면, 기대하고 있을게.



부관

지휘관님, 이 우주선에 영점 에너지를 추가하는 개조 방안에 대해 한 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극비사항이라 단말기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은 손에 두툼한 종이 뭉치를 건네주었다.


네.


신은 상대방의 안건을 받아 들이며 물었다.


영점 원자로 1호기가 다음 달에 첫 점화를 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이 방안을 지금 제출하기엔 너무 급하지 않나요?


부관

엔지니어 부서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듯합니다. 우주공항에 술을 반입할 수 없다는 규정만 아니었으면 지난달 원자로 완공 때부터 샴페인을 터트렸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휘관님, 보드카를 전함에 몰래 반입한 항로 연합 선원을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이미 처분하지 않았나요?


부관

또 적발했습니다. 이번엔 증류주더군요!


...이 일은 나중에 처리하겠습니다. 엔지니어 부에서 이렇게 일찍 작업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관

그들에 따르면 영점 에너지 엔진의 출력 포트를 추가하는 것은 큰 작업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쨌든 에덴 II의 청사진이 바로 앞에 있으니, 모든 것은 그 식민함을 본떠서 만들면 된다는군요.

심지어 호위 목적의 우주선은 개척 목적의 식민함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단순하기 때문에 이 개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에덴 II에 너무 많이 뒤처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의 눈에는 자신이야말로 우주 항해의 선구자로 보일 테니까요.

그들은 에덴 II의 디자인에 승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나 봅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이 제안을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부관

그럼 기각입니까?


하지만 앞으로 성함전단이 에덴Ⅱ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될 것을 감안해서, 이 개조안은 다음 전체회의에 상정할 예정입니다.


부관

그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되면 반드시 기뻐할 겁니다.


우선 서둘러 축하하지 말라고 하세요. 개조가 이루어진다고 한들, 전단 단위로 함께 개조될 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이 방금 언급한 새로운 처분 통지서입니다. 가지고 가서 상습범들은 구금하도록 하세요.


부관

네.


부관이 떠난 후 신은 현창 밖을 내다보았다.



눈앞에는 인류가 구축한 우주 만리장성, 궤도를 돌며 세운 1만8750km 길이의 우주공항이 떠 있었다.

더 낮은 궤도에는 다목적 위성이 있고 240개의 궤도 위성은 인간의 눈, 귀, 입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중계되어 우주와 지상을 연결한다.

위성과 공항, 그리고 우주선은 모성을 인간의 손아귀에 가두는 테와 같다.

한때 모성은 인류에게 요람이자 우리였고, 모두가 중력과 생태권에 의해 지상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인류는 곧 정복할 것이고, 지금의 성취는 영점을 위한 포석의 전반부에 불과하다.



국제 우주 정거장



가이더

"키다리" 뭐 보고 있어요?



덩치가 크고 중무장한 병사는 갑작스런 소리에 깜짝 놀랐다.

헬멧에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붙어 있는 드론은 상대의 반응을 충실히 보여줬다.


가이더

미안미안, 놀라게 했나요?


우주정거장 연구원들도 상대방이 입을 열지 않고 드론으로 대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몇 년을 지내다 보니 표정 하나로 긴 문장을 생략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무인기

╮(╯▽╰)╭


가이더

다음부터는 방심하지 마세요, 만약 안전 책임자가 온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없는 거예요.


무인기

(⊙﹏⊙)


필립

아이고, "키다리" 오늘 또 당신 차례예요?


무인기

(≧∀≦)ゞ


지나가던 연구원이 친근하게 '키다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이론적으로 보안요원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전체 보안부서도 3명밖에 안 된다.

이들은 보안 외에도 위생, 운반 등 잡일을 병행했다.

할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워낙 친근한 성격 탓에 '키다리'는 연구원들과 금방 친해져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됐다.


필립

우주공항이 보이기 때문에 이 창가 쪽 자리가 마음에 드시는 것 같네요.

왜, 우주정거장이 너무 지루해서 우주선의 선원이 되려고요?


무인기

(°Д°*)ノ


가이더

됐어. 너도 더 이상 놀리지 마.

"키다리", 저희 먼저 실험실에 가야 돼요. 점심때 같이 먹어요.


무인기

( ´・・)ノ


두 사람이 떠난 뒤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사는 다시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바라본 것은 사실 우주선이나 우주공항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였다.

한때 우주 산책을 묘사했던 소녀가 그에게 말했었다.

물에 뜨는 듯하면서도, 몸과 내장을 짓누르는 수압도 없다.

근심 걱정도, 구속도 없다.

도대체 어떤 체험일까. 자신에게 또 기회가 있을까?





과학이사회 지하 700m


게슈탈트의 푸른 빛이 니트의 얼굴을 비춘다. 번쩍일 때마다 1억 번의 연산이 수행됐음을 의미한다.


니트

이렇게만 하면 완성이야.


마지막 문자가 입력됨에 따라 게슈탈트는 새로운 자체 테스트를 완료했다.


니트

시간은...아직 30분 남았으니까 여기서 좀 쉬어도 되겠지...…


한쪽 케이블선에 기대앉은 니트는 "황금시대의 두뇌"를 올려다보았다.

이 거대한 크기의 양자 컴퓨터는 거의 모든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통합했다.

우주선의 설계도부터 닭과 토끼를 같은 우리에 넣는 해법까지, 인류 문명의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

황금시대의 사회적 작동은 그 막강한 연산력에 힘입어 일사불란해졌다.

영점 에너지 원자로 건설부터 시민의 생일 축하까지, 게슈탈트는 모든 사회적 작동 메커니즘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그렇기에, 인류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이제부터, 강력한 연산력의 도움으로 영점 에너지 프로젝트는 종이 위에서 현실로 도약할 것이다.

타이틀도 곧 "인류제일의 기적"으로 바뀐다.

연구원들도 이 타이틀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가 공황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성간 영역에 진입한 뒤, 끊임없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니트

그래도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지.


니트는 원래 설정해 놓은 알람을 끄고 다시 일어섰다.

검푸른 섬광이 다시 피어올라 깊은 우물을 환하게 비추었다.




퍼니싱 사태로부터

D-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