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와 달 사이에 38만km의 전략 종심을 구축할 것이며, 이는 퍼니싱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천혜의 요새가 될 것입니다.



???

직각 펜치...유압 주의하세요.


와타나베

...


눈을 뜨고 싶었지만, 아주 작은 틈새만이 벌려질 뿐이었고, 그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시야를 가득 메우는 하얀 빛뿐이었다.


몸이 절단되고 교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전혀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이따금씩 귀에 들리는 말만이 이것이 꿈이 아님을 자신에게 알려준다.


???

뼈톱...의식의 바다 신호는 어떤가요?


???

안정 범위 안...


와타나베

의식의 바다...



이 명사를 들었을 때 그의 눈앞에 정말 바다가 나타난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바다는 마치 고인 물처럼 기복도, 흐름도 없었다.


와타나베

바다...


갑자기 쥐 죽은 듯 고요해진 시야에 한 줄기 빛이 비치고 바다 위에 등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다 한가운데를 굳건히 지키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배를 안내한다.

길을 잃은 배가 서서히 다가왔고, 물속에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의식의 바다에 또 파동이 나타났어요!

계속 링크를 강화하세요! 반드시 그를 다시 깨울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와타나베는 제대로 듣지 못했고, 그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썼지만, 기억의 소용돌이는 점점 더 가열차게 찢겨나갔다.

그의 의식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와타나베

윽...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그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흔한 종합의료기기나 링거튜브가 아니었다.

대신, 와타나베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이상한 기계가 여러 개 있었다.

아직도 약간의 어지러움이 머리에 남아 있었고, 습관적으로 머리를 두드려 보았으나 금속성 충돌음이 들렸다.



와타나베

?


그는 의심스럽게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고, "일반적"이라는 글자를 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지시가 내려지면서 구형 관절의 기계구조도 그의 뜻에 따라 움직였다.


???

거의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낯익은 목소리가 구석에서 들려왔다.


와타나베

발라드...정말 당신입니까?


발라드

그럼 가짜겠나?


와타나베

하지만 당신은 지금...


온통 금속과 피부로 이루어진 인간의 모습은 병원 침대 벽에 기대어 있었고,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더욱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발라드

먼저 거울 좀 봐봐.


와타나베가 고개를 들자 벽에 걸린 거울에 지금 그의 모습이 비쳤다.

기계적으로 구성된 몸체와 이마에 새겨진 바코드, 이색의 눈동자.


발라드

상황이 급박해서 기체를 만들 때 실수가 좀 있었다.

네가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천천히 설명하마.

네 부하들이 보급품을 캠프에 돌려보낸 후, 너희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휘소에 너희의 실종 사실을 보고했다.

이에 앞서 175번 도시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는데, 참모부는 폭동의 침식체로 인해 갇혀 있을 것으로 분석했었지.

나는 마침 본부로 돌아오는 길에 175번 도시 주변을 지나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구조 임무가 나에게 맡겨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그 아이는 이미 후방 안전 구역으로 이송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유해도 모두 찾아내서 며칠 전에 화장을 집행했다.


와타나베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발라드는 미리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발라드

그 다음이 요점인데, 당시 부상이 너무 심해서 응급처치를 하더라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널 대신하여 생존 확률이 보다 더 높은 또 다른 방안....구조체 개조를 선택했다.


와타나베

구조체? 새로운 의체 개조입니까?


발라드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지.


그는 와타나베와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손바닥을 흔들었다.


발라드

가장 극단적인 의체 변형조차 적어도 뇌와 일부 뉴런과 같은 중요한 생명자원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지.

하지만 구조체 개조는 달라. 우리 몸 전체를 금속 소자로 교체하는 거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전기 신호지만, 신호를 보내는 부분은 뇌에서 의식의 바다라는 복잡한 구조로 바뀌었다.

대략 이런 식이다.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결국 난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이지.


와타나베

저는 여전히 저입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테세우스의 배'라는 고전적인 문제를 떠올렸다.

한 척의 배를 구성하는 목재가 모두 교체되었을 때, 그 배는 여전히 원래의 배일까?


발라드

쓸데없는 걱정이군.

네가 하려는 일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게 있나? 그래서 네가 구한 사람이 너에게 감사하지 않고 분해된 살점을 추모라도 할까?


발라드는 와타나베의 어깨를 누르고 눈을 바라보도록 강요했다.


발라드

우리가 과거에 했던 일들이 개조에 의해 부정되지 않고, 추구하는 미래도 개조에 의해 바뀌지 않아.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경험이고,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시간 속에 남긴 발자취이며, 개조도 그 일환에 불과해.

누군가 너의 미래를 방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도 너의 과거를 진정으로 빼앗을 수 없어.


와타나베

...

당신이 언제 철학을 공부했는지 모르겠군요.


발라드

그 정도까진 아니야. 너보다 적응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을 뿐이지.

내 몸에서 이미 검증에 성공한 뒤라서 개조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았을 거다.

좀 나아진 것 같나?


와타나베

네.


발라드

그럼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지.


그는 와타나베의 어깨를 누르는 손을 내려놓고 병상가의 의자에 앉았다.


발라드

전 구성원이 모두 구조체인 정보 부서를 만들고 있는데, 네가 합류하길 바라고 있다.


와타나베

제가 기억하기로 당신은 이미 안전정보국의 국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발라드

안전정보국은 재난 초기에 너무 많은 인력을 잃어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게다가 인력 충원 계획도 없지.


와타나베

적임자를 찾지 못했군요.


발라드

다만 약간의 시대 변화를 예감했을 뿐이다.

구조체의 각 기능 수준이 인간을 훨씬 능가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해.

물론 능력 향상만 본 것은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이 천재지변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지 않는 한 구조체는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잠재적인 적들이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침투당하는 쪽만이 될 뿐이다.


와타나베

적...


와타나베의 미묘한 뉘앙스를 감지한 발라드는 별로 불쾌해 하지 않았다.


발라드

내가 의심스럽나?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라드

와타나베, 어긋남이 존재하면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변하지 않아.

그리고 내부에 숨어 있는 적들이 칼을 뽑을 때 외부의 적보다 더 치명적인 경우가 많지.

특별한 적에게는 당연히 특별한 대응 수단이 필요해. 이것이 바로 내가 조직의 모든 구성원으로 정보 부서를 구성하고 싶은 이유다.

나는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와타나베

...


와타나베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기억의 끝자락에서 공허했던 자리는 이제 기계의 심장으로 대체되었다.

그 심장은 강하고 힘차게 뛰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심장으로 바뀌었는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와타나베

그럼 난 절대 어머니처럼 텅 빈 비석만 남기지 않을 거야.



와타나베

발라드, 저는 어머니가 진정으로 남기신 것을 이미 찾은 것 같습니다.


항상 재로 가득 차 있던 구덩이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고, 떠나지 않던 지옥의 환각도 깨졌다.

그는 그 그림자를 벗어나 다시 어머니의 묘 앞에 섰고, 이번에는 그 짧은 묘비명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전란과 함께 영면하며 평화를 세상에 선물했다.


와타나베

교관, 브루스, 가츠, 에버트, 가즈엘...그리고 그 밖의 많은 오아시스 소대원들은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고비를 넘겼고, 믿음으로 인해 그들은 저에게 미래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선이 저에게 있어 더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제게 남긴 선물, 아버지의 기대, 당신과 교관님이 내려주신 훈련, 그리고 전우들이 제게 맡긴 것들은……

최전선에서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재난을 묻어두고 평화를 되찾고 싶습니다.


발라드

...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이 일을 무슨 수로 네가 혼자 해결한다는 거지?


발라드는 상대방이 이미 자신의 신념을 찾았고, 더 이상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어섰다.


발라드

그리고 전선에 나가는 것보다 먼저 신체 적성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참에 잘못된 색상의 시각 센서의 교체 신청을 할 수도 있고.


와타나베

괜찮습니다. 시야에 지장 없습니다.


몸의 커다란 변화를 받아들인 이상, 눈동자 색의 변화라는 사소한 문제는 대수롭지 않다.


발라드

그리고 이거 잃어버리지 마.


발라드가 건넨 것은 와타나베가 열여덟 번째 생일에 받은 산탄총이었다.

와타나베가 손을 내밀어 총신을 움켜쥐었을 때, 그는 문득 발라드의 그 말을 떠올렸다.


와타나베

저는 아직 얼뜨기입니까?


발라드는 잠시 멍해 있다가 총을 쥔 손을 놓았다.


발라드

허, 합격했다고 치지.


그는 돌아서서 문밖으로 걸어가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발라드

병상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마. 지상과 우주 사이의 통신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거다. 곧 우리를 필요로 할 때가 온다는 뜻이지.



군부 지휘관

콘스타레예의 건설 인원을 G111선으로 대피시켜 이동시키면, 아딜레 상업 연맹의 차량 행렬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연락원

구룡상회 측은 남쪽으로 내려온 침식체의 공세를 막았다고 전했습니다.


참모

전술 지형도가 갱신되어 방어선을 다시 계획해야 합니다.

이 위치에 주둔하는 제2사단은 환대서양경제공동체가 기증한 피난처가 많은 169번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한때 세계 정부 총회의장이었던 곳이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통신 혼란에서 회복되어 이곳은 퍼니싱 작전의 지휘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어쨌든 이 뜻밖의 재난을 해결하기 전에는 논의할 수 있는 다른 의제가 아무것도 없다.



한스

...


한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홀 중앙 위에 있는 세계투영지도를 바라보니 붉은 역병은 이미 세계 육지의 1/4, 바다의 1/10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연결된 인류는 침식체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지만, 병사와 장비의 소모 속도는 생산 속도를 훨씬 웃돌았다.

최근에 투입된 구조체가 국지전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지금까지도 인류의 테크놀로지와 군사력의 최고 결정체인 우주전단이 불통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전히 통제하에 있는지 여부는 인류의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세계 정부는 지난주 북극항로에 공동 건설한 초고에너지 송신 안테나 세트가 완공된 이후, 멀리 떨어진 우주로 향하는 함대와의 접촉을 시도해왔다.

새 위성통신망이 만들어지기 이전, 이 안테나는 하늘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됐다.

그러나 이 신호들이 우주전단에게 수신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들에게 수신 기능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우주가 한발 먼저 함락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통신원

총사령관님, 여기는 고에너지 안테나 감청소입니다, 대기권 밖의 신호를 받았습니다.

신호 강도와 특징상 분석팀은 기함 '미라클호'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수신 및 응답 여부를 지시 바랍니다!


한스

바로 연결해!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전파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렸다.

상대가 어떤 자세로 나오느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이 좌우된다.

단 몇 초는 수세기만큼 길었다.



여기는 세계 정부 소속 우주전단의 기함 "미라클호"이며, 저는 지휘관 신입니다.

당신 측의 소속을 보고해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당신 측의 소속을 보고해 주십시오.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지휘센터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주는 여전히 인간의 수중에 달려있으며, 머리 위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검으로 바뀌지 않았다.


한스

나는 군부의 총지휘관 한스다. 지상의 구체적인 상황은 나중에 알려주겠다.

현재 우주의 상황을 먼저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현재 30척의 우주전함, 국제우주정거장, 에덴형 식민함, 월면 기지는 아직 저희 측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물자 비축량이 충분하고 각 부서가 반년 이상 사용하기에 충분합니다.

통신이 두절된 지 사흘 만에 저희는 국제우주정거장, 에덴, 월면 기지 주둔 요원들과 연락을 취해 무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무인기를 보내 정찰한 결과, 우주공항의 핵심 부품 생산라인을 보수할 수 없어 240기의 궤도 위성이 모두 자폭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인기는 대기권 내부로 진입한 뒤 방공망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였습니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저희는 방공망을 강제로 돌파하거나 격파할 수 없었습니다.

기술부서는 여러 세트의 임시 안테나를 서둘러 제작했고, 통신부서는 지상에서 나올 수 있는 어떤 정보도 놓치지 않기 위해 24시간 교대로 감청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결정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스

수고했다. 그럼 이제 지상의 상황을 알려주겠다.

3개월 전, 점화식에서 원자로 1호 노심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논리회로에 대한 놀라운 감염성과 인체에 대한 강한 부식성을 보여준다. 아직 그 원리를 모르니 더 자세한 보고는 추후 전달하도록 하지.

소규모 통신을 복원한 후, 게슈탈트가 있는 심층부도 바이러스가 발생한 같은 날 폐쇄된 것을 알게 되었다.

탈출한 과학이사회 회원들에 따르면 그곳의 방위시스템도 자네가 맞닥뜨린 방공망처럼 침식됐다.

지능형 무기는 침식 이전에 효과적인 타격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 이사회가 방화벽 개선을 완료할 때까지는 방어 전열과 관련해선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너희 우주군과 연락이 닿았으니, 상황은 바뀔 것이다.


지상에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것은 탄도미사일뿐이지만 탑재된 통제시스템도 탈취당하기 쉬울 것입니다….설마 에덴 II형에 탑재된 우주 무기를 사용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한스

처음에는 확실히 그런 생각이었지만, 방금 보고한 걸 듣고 보니, 더 저렴한 선택지가 있는 것 같다.


더 저렴하다는 것은...폐위성 말입니까?


한스

그렇다, 그 폐위성들은 "신의 지팡이"의 원료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지상군은 우주군의 작전에 총력을 기울여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침식된 방어 전열을 파괴할 것이다.


네.


한스

우주와 지상의 통로가 뚫린 후에야 인류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후 한 달 동안 우주군은 지상군의 안내에 따라 총 115개의 폐위성으로 만든 고밀도 금속 막대를 침식된 방어 전열에 투사하였다.

이 중 21발은 요격됐고, 7발은 예상 낙하지점을 벗어나 효과적인 살상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머지 87개는 표적에 직접 명중하여 침식된 방어 전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신의 지팡이"가 된 유성이 번번이 풍성한 전과를 올릴 때, 인류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주와 지상 사이의 마지막 장애물이 뚫리고 4차원 타격체계가 다시 세워졌다.

곳곳에 난무하던 종말론, 인신매매, 불법거래, 심지어 세계 정부 명의로 된 비인도적 실험 소굴마저 새로 창설된 정화부대에 의해 하나씩 뿌리뽑혔다.

세계 정부는 퍼니싱의 폭발로 잃었던 공신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제1차 대 퍼니싱 작전 총회


트릴드

여러분, 퍼니싱이 영점 에너지 원자로에서 처음 나온 이후로 우리는 통신이 두절되어 오랫동안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다행히 부단한 노력 끝에 우리는 마침내 다시 관계를 맺고 같은 깃발 아래 다시 뭉쳤습니다.

향후 퍼니싱 작전에 대한 전략 방향을 정하기 위한 회의이니, 기탄없이 논해봅시다.


의원A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하기 전에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의원은 회의장의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의원A

과학 이사회의 대표님, 당신들이 직접 시작한 재난에 대해 무슨 할 말 없습니까?


트릴드

의원님… 오늘 이 회의는 문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니트

...

어떤 말을 듣고 싶으세요?

죄송합니다? 유감입니다?

게다가, 저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트릴드

니트 연구원…


니트의 말은 주변의 속삭임으로 이어졌다. 과학이사회 존경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임 추궁도 무의미해 많은 이들이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화약통은 한번 불이 붙으면 다시 꺼지기 어렵다.


의원A

실험실에 계속 있는 당신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면 제가 알려드리죠!

퍼니싱 폭발 이후 지금까지 300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인류의 생활권역의 20%를 차지해 이전 통일전쟁의 두 배에 달하는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었어요!

이제 와서 과학 이사회가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니트

...


니트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니트

원시사회에서 최초의 원시인이 우연히 타오르는 불길을 손으로 들어 올렸을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손을 태울 줄 몰랐어요.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인류는 화염을 조종해 야수를 쫓아냈고, 점차 황야의 야만인에서 육지의 패자로 성장해 갔죠.

산업시대에는 환경오염이 반세기도 안 돼 야생종의 70%를 멸종시켰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농업에 복귀했어요.

상온핵융합 이론이 나오기 이전에, 핵분열로 인해 1년에 생산되는 핵오염 폐기물의 방사능을 제거하는 데만 수십만 년이 소요되는데, 우리가 원자력을 탐구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겁니까?


긴 발언이 어색한 듯 니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니트

우리는 탐구를 위해 도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퍼니싱은 또 한 번 극복해야 할 화상, 환경 악화, 온실 효과 또는 방사성 오염에 불과해요.

우리는 방향이 옳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어려움을 직시하지, 극복해야 할 어려움 때문에 방향이 옳은 것을 부정하지 않아요.


의원A

참 좋게 말하시는데, 1호기는 지금도 끊임없이 퍼니싱을 생산하고 있는데, 어떻게 극복할 겁니까?


니트

구조체의 1차 방어선인 역원장치를 개발하면 수석이 인원을 데리고 1호 원자로로 들어가 정지시킬 거예요.


트릴드

니트 연구원님, 인원에 대해서는 다시 상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트릴드는 분명히 이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니트

"설계자 본인만큼 영점 에너지 원자로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재앙이다."

이것이 수석이 한 말입니다. 혹시 전달해야 할 의견 있으신가요?


그는 말문이 막혔다.


트릴드

...과학이사회가 이미 입장을 밝혔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한스

그럼 제가 몇 마디 하겠습니다.


한스는 발언기를 눌렀다.


한스

제가 세운 계획은, 하나의 대이동입니다.

퍼니싱은 만연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것들은 어디에나 있고 차이점은 농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 정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지막 정토는...우주에 있습니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전술 표시로 구성된 프로젝션 하나가 뭇사람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번 밑그림은 더 이상 복잡한 등고선이 아니라 텅 빈 성도와 몇 개의 간단명료한 궤도선이었다.


한스

우주공항, 우주전단, 국제우주정거장, 에덴형 식민함, 월면 기지.


지표로 사용되는 빨간색 점은 표시 전체에 순차적으로 그려졌다.


한스

우리는 지구와 달 사이에 38만km의 전략 종심을 구축할 것이며, 이는 퍼니싱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천혜의 요새가 될 것입니다.

전투력이 없는 민간인을 일괄적으로 이동시켜 우주공항과 우주전함을 개조할 수 있는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후속 인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하여 다른 생산 기능을 늘림으로써 안정적인 후방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달과 태양계 내의 다른 행성들은 우리의 자원 풀로 사용될 것이고, 일부 개조된 우주전함들은 이곳을 왕래하며 우리의 우주 공장에 공업 원료를 수송할 것입니다.

무기와 장비는 끊임없이 공급되고 적들은 보충할 병력이 없을 때 우리는 언젠가는 지구상의 침식체를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어떠한 방해도 없이 퍼니싱을 완전히 해결할 방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다.


한스

역사는 돌고 돌아, 어떤 세대는 더 많은 은혜를 누리며, 어떤 세대는 더 많은 기대를 짊어집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차례입니다.

시간과 대가를 막론하고, 인류는 터전을 되찾을 것입니다.


발언은 끝났고,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한참 뒤, 한 의원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준비하던 건의서를 휴지통으로 옮겼다.


의원B

정말...예상치도 못한 일이야.


그가 앞장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박수 소리가 고요하고 텅 빈 홀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거의 모두가 박수를 쳤다.

결국 한스의 계획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차로 통과됐다.

공식 명칭은 아카디아 대이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