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치기고 자시고 할 생각은 없는데

퍼니싱은 생각보다 SF적 기반을 탄탄하게 잡은 게임 중 하나라고 본다

스토리를 인상깊게 읽은 다른 게임인 명일방주가 정치경제학적 기반을 튼튼하게 잡았고 리버스 1999가 역사적 사실들을 게임속에 잘 녹여냈다면

퍼니싱은 SF적 기반을 탄탄하게 잡아냈기 때문에 고전 SF 씹덕들이라면 이거 혹시? 할만한 요소들이 굉장히 많음


그래서 오늘은 하려고 한다 퍼니싱의 모티브적 분석



이 글은 없을지도 모른다 흥미

또한 이 글에 언급된 과학이론들은 일부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거나 가설들에 불과한 것이 많으며

SF소설은 읽어보면 그닥 생각보다 재밌지 않을수도 있음


그러니 알아서 이런게 있구나 정도로 걸러읽고

니가 재밌겠다 싶으면 찾아봐라 



1. 트랜스휴머니즘 픽션의 계보와 퍼니싱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와 '공각기동대' 를 중심으로 


트랜스 --즘이라는 단어만 보고 피씨충 강림했다고 식겁했을 퍼붕이들에게 

트랜스휴머니즘은 성 정체성이나 트랜스젠더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한 이유는 이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인류의 지성/육체/유전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개조/개량과 관련된 개념이기 때문에 성별을 자유롭게 바꾸거나 하는 것도 트랜스휴머니즘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관계가 없진 않으나 이 부분은 퍼니싱과 관계가 없으므로 크게 다루지는 않겠음 


트랜스휴머니즘은 상단 문단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인간의 계획적인 개조나 진화를 뜻함

단순히 기계 외골격이 상용화되거나 유전병을 치료하는것부터 인간이 인간 외의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것. 즉 기계에 인간의 의식을 삽입하여 영생을 살거나 사이버 세상에 인간을 업로드하는 것도 포함된다 

전자는 구조체. 후자는 만세명이 생각나는 구성이다. 


결론적으로 퍼니싱이라는 장르는 전반적으로 이 트랜스휴머니즘과 거기에 따르는 딜레마에 기반을 두는데 이런 SF소설은 수없이 있어왔고 그중 대표적으로 퍼붕이들이 들어봤을 법한 타이틀이


"공각기동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블레이드 러너)" 이다  



고도로 발달한 의체를 착용한 인간의 정체성은 어디 있는가? 

고도로 발달한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구별할 수 있나?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언제나 의체. 즉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자기 자신이 아닌 어린 시절 의사가 선물해준 여성용 손목시계를 정체성의 일부로 삼으며.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의 주인공은 안드로이드 사냥꾼이지만 결말에는 자기 자신도 안드로이드가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하게 된다. 


재밌는 건 퍼니싱에서도 해당 두 딜레마가 거의 그대로 등장한다는 것임. 

전자의 경우. 자신의 실제 겉모습과 확연하게 다른 의체-구조체-에 삽입된 의식들은 의식해가 불안정해지거나 더 나아가서는 의식해 붕괴를 겪고 침식체가 되기도 하며 대표적인 예시가 엠베리아와 로제타.

후자의 경우 로봇과 인간의 정체성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나나미가 있다. 

재밌는 게 나나미가 따르는 나나미의 3원칙(요성지좌 비밀 참고) 는 '로봇의' 3원칙 오마쥬라는 것임

이건 후반에 설명하겠다. 



하여튼 이만큼만 봐도 퍼니싱은 생각보다 잘 만든 웰메이드 트랜스휴머니즘 SF장르이다.

물론 신박하거나 화제성이 있는 새로운 쟁점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장르에서 가져오던 쟁점들은 그~대로 가져와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

당연히 문학계에서 화제가 되진 못하더라도 단순히 매체성으로 즐길때 그 배경이 굉장히 탄탄해보일 수밖에 없다. 



2. 거대 필터 이론(great filter theory)과 퍼니싱 바이러스


봐두면 이해하기 편한 영상

대필터 이론이란?


영상을 안 본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주에 외계인이 없는 이유는 우주가 어떠한 이유로든 생명체가 일정 이상으로 발달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이론임. 

정확히는 인간과 생물체. 문명의 발달과정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 이상 있기 때문에 우주에 일정 수준 이상 발달한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페르미 역설(우주는 넓은데 외계인이 없는 이유?)에 대한 훌륭한 반박책 중 하나기도 함.


 최근 명조와 블랙록슈터 콜라보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퍼니싱은 일종의 문명에 대한 시련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시련은 해당 문명에 맞는 형태로 문명에게 찾아온다는 것이 퍼니싱 세계관의 설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필터이론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설정이라 볼 수 있다. 


이 대 필터 이론에서 필터가 찾아올만한 타이밍은 큼직하게 잡으면 5가지가 있는데. 


1. 분자구조 생물이 무생물에서 최초로 생물로 진화하여 자가복제를 시작하는 시점

2. 단세포 생물이 세포내 공생을 이용하여 조금 더 복잡한 구조의 세포를 이루어내는 시점

3. 이 단세포생물들이 뭉쳐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는 시점

4. 다세포생물 중 일부. 혹은 다수의 종이 도구를 사용하며 문명을 만들고 후세대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시점

5. 이 문명이 행성간/성간문명으로 진출하여 다른 외계문명과의 접촉 및 무인행성의 식민지화를 이루어내는 시점 



비화주척에서 언급되기로는. 퍼니싱 세계관의 인류는 황금시대. 즉 성간문명을 눈 앞에 두고 퍼니싱 사태로 인해 우주 진출이 좌절되었으며 지구로도 못 돌아가는 처량한 신세가 된 걸로 보아

아마 퍼니싱 세계관의 대필터로서의 퍼니싱은 5번이 맞는 거 아닐까?

인간이 현재 거주하는 공중정원이 원래 성간 우주선이었다는 것과 비화주척 당시 감염된 게슈탈트에 의해 에덴 공중정원이 공격받을 뻔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추론에 대한 뒷받침이 꽤 탄탄해진다 

필터이론을 기반으로 조금 더 추론해보자면 퍼니싱은  우주 내 타 문명과의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닐까? 


혹은 또 다른 가설로는 이런 것이 있다.

대필터이론에 관하여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는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세계가 존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인간은 확장지향적이고 파괴적이며 배타적인 종족이다. 동족과의 유대가 끈끈하지만 동족으로 판단하지 않은 종에 대해서는 한없이 배타적이고 잔인해질수 있는 것 또한 인간임. 

과연 이러한 인간이 우주로 진출하여 발전할 가치가 있을까?

퍼니싱은 '인간으로 인한 우주의 오염' 을 방지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진실은 솔론만이 알고 있다고 하니 말은 이쯤 줄이겠음. 


3. 나나미와 양자역학 그리고 아이작아시모프의 로봇3원칙


Q. 나나미만 왜 두개임

A. 이 게임에서 SF적 모티브를 가장 많이 가져온 캐릭터 두 명 꼽으라면 한명이 하나가 나나미고 나머지 한명이 리임 아직까지는 그럼



나나미단 파이팅 


퍼니싱의 공돌이 아시모프는 실존하는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한 일종의 리스펙트임.

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표작중 하나가 "아이,로봇" 인데 여기서는 로봇의 3원칙이 등장한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또한, 부작위로써 인간이 해를 입게 두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나나미는 기계교회의 우두머리에 가까운 입장으로 나나미의 그림은 다른 로봇들을 계몽시키는 역할을 함. 

이런 나나미(요성지좌)의 비밀에는 나나미의 3대법칙이 나오는데

웃기게도 나나미의 3대법칙은 로봇 3대원칙을 의식한 듯한 내용임. 


나나미의 3대 법칙 제 1 -

'나나미는 인간이 너무 좋아! 그러니 인간에게 해를 끼쳐선 안 돼!'

 나나미의 3대 법칙 제 2 -

'나나미는 자유로워! 따라서 나나미가 내키지 않는 명령엔 복종하지 않아! 설령 그것이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나나미를 막진 못해!'

11.  나나미의 3대 법칙 제 3 -

'나나미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게슈탈트가 말한 [유일한 정답]을 찾고 말거야!

그래야 나나미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거의 완벽한 오마쥬. 



또. 나나미의 스토리에는 대놓고 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딜레마가 등장함. 


소녀의 눈에는 마치 빛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승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들이 바로 이 미래에 있다고 믿었고, 그들이 바로 그 살아있는 고양이 우주라고 믿었다.

>18-19 참고 


여기서 '살아있는 고양이' 란 슈뢰딩거의 고양이 딜레마의 다세계 해석을 뜻함.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란?

1시간마다 50퍼센트 확률로 붕괴하는 방사능물질과 가이거 계수기. 망치. 청산가리가 든 박스에 고양이를 넣었을 때 1시간 후 고양이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정답:고양이가 죽든 살든 고양이 주인은 동물학대로 잡혀갈 것이다)


라는 사고실험인데. 이 실험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중 슬릿 실험부터 이해해야 함.

대충 빛을 2중 슬릿에 투과시켰는데 보고있지 않을땐 빛이 파동성을 띠다가 관찰하는 순간 입자성으로 고정된다는 건데

결론적으로 우리의 관측이 미래를 결정되게 만든다는 거고

이런 관점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1시간 후가 아니라 우리가 박스를 열어보는 순간 생사가 결정된다는 것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딜레마

고양이가 죽었으면 시체썩은내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은 그냥 모른척하자



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는 우리의 관측이 미래를 확정짓는다는 것인데

이 말인 즉슨 우리가 미래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없게 된다는 소리고

그 이야기는 서성치의 21챕터에 그대로 언급됨




결국 그래서 나나미는 서성치의에서 모든 미래를 아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바꿔나가기로 결정하고

그 이후. 즉 서성치의 이후부터 오직 인간의 선택으로 바뀌어나가는 미래가 시작됨. 

인간의 멸망 위기가 바로 코앞까지 닥쳐왔던 인멸잔주부터 현재 진행되는 각명나선까지는 바로 이 내용이다. 



참고로 중섭에서는 몇몇 챕터씩 큰 묶음으로 묶여있는데


서성치의~각명나선까지의 테마는 "운명"

창회영상~낙구진까지의 테마는 "미래" 임. 


즉 서성치의부터 각명나선까지의 싸움은 운명을 거스르기 위한 싸움이며 정해진 미래를 관측하고 확정짓는 대신 다른 선택을 해나가는 기반을 마련하며

창회영상부터 낙구진까지는 그 운명 너머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임. 



이 외에도 소소하게 풀자면 정말 많은데 예를 들면 본네거트좌도 실존하는 SF소설가 폰 네거트 에 대한 리스펙트임


하여튼 긴 글 읽어줘서 감사하고

퍼니싱이 생각보다 웰메이드 SF라는 말을 하고싶었음

이 글이 스토리를 읽는데 약간의 재미를 더해주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