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할 승리일지라도, 승리를 쟁취하라.




공중정원

4:00PM


이곳은 함수(艦首)의 현창으로, 공중정원을 통틀어 유일하게 머나먼 모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느 자리이다.

번잡한 회의가 없을 때 하산은 늘 혼자 이곳에 있었다.

지구의 상공에는 이미 옛 빛을 잃은 금속 잔해가 조용히 떠돌고 있다.

그것들은 인류의 야망, 영광, 그리고 힘이었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패배가 있기 이전에, 이 문명의 이기들은 교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하산

또 새로운 10년이군.


하산은 아직도 그 10년 동안 창조한 찬란함을 기억하고 있다. 우주 탐사선, 냉각 핵융합 엔진, 자연 개조 계획, 성함 전투단.…

그러나 퍼니싱의 폭발 이후, 이 '10년'은 더 이상 없었다.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계획할 여력이 있을까?


세리카

의장님, 회의가 곧 시작됩니다.


하산

음...이번 회의 내용을 간략히 보여주겠나.


세리카

일부 상무 보고서 외에도...


세리카는 태블릿을 열고 두 개의 항목을 보여주었다.


세리카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 대한 수색 및 구조 범위 확대에 관한 내용과...경계지대에서 망각자와의 충돌이 있습니다.

이 두 건은 어떤 의미에서도 하나의 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망각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이제 저희에게 있어서 수색구조의 사각지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산

그래, 가자.


청정지역은 인간에게 숨을 트일 시간을 주었지만, 위기는 언제나 무심코 찾아온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의 실종, 와타나베의 연락 두절, 망각자의 이동…...아직 밝혀지지 않은 여러가지 일들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산은 마지막으로 멀리 있는 모성을 돌아보았다. 침묵의 잔해 사이에는 아직 발사하지 않은 탄도미사일이 숨어 있었다.

과거의 무기들은 고요 속에서도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그에게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병사A

재장전 중, 날 엄호해!


한 병사가 뒤로 물러서자 곧 다른 한 병사가 그의 자리를 메웠다.


병사B

예비탄이 고갈났어. 누구 있는 사람?


병사C

받아.


가득 찬 탄창이 던져졌다.


병사C

이게 마지막 여분이야.


총성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고, 12명이던 돌파소대는 이제 4명만이 남았다. 전방의 침식체들은 구석구석에서 기어나오는 검은 해충과도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몇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탄창이 비었음을 알리는 찰칵 소리가 났다.



와타나베

전원, 방어선을 좁혀 백병전을 준비해!


나머지 세 병사는 곧바로 조작대 근처로 물러났다.

이들은 아치 형태로 방호복을 입은 니트를 중앙에 두고 에워쌌다.


병사A

대장님, 그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와타나베

아주 안 좋지만, 살아는 있다.


니트는 어느새 혼수상태에 빠졌고, 방호복 사이로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단말기에 심장박동이 표시되지 않았다면 와타나베는 그녀가 이미 죽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병사C

평소에 이런 과학 연구자들을 봤을 땐 되게 연약해보였는데.…


병사는 들고 있던 전술칼을 IC칩에 꽂은 뒤, 니트를 덮치려던 또 다른 침식체를 발로 걷어찼다.


병사C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어.


병사B

맞아. 그러니까 이제 우리 차례니야. 구조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해.


병사A

낙관적이진 않아. 퇴로에도 침식체가 있을 테고, 구조대가 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병사B

이럴 땐 격려의 말을 해야지, 아직도 찬물을 끼얹을 셈이야?


병사A

말 좀 작작 하고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근처에 있던 침식체는 곡도에 의해 두 동강이 났고, 이어 군화 한 짝이 그것의 머리를 짓밟아 부쉈다.


와타나베

발라드, 증원군은 지금 어디까지 왔습니까?

저희 측 인원 손실이 심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에게 대답한 것은 통신 채널에서 쾅쾅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와타나베

제기랄, 통신에 또 문제가 생긴 건가?


병사C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병사B

땅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통신을 마친 와타나베는 그 거슬리는 소리가 헤드폰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병사A

다가온다! 대형 침식체일수도 있어!



한 줄기 불빛이 어둠 속의 번개처럼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을 파고들었다.


???

상향등 켜서 안에 있는 사람 눈 다 멀게 할 셈이냐!


어렴풋이 조종실 안에서 질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공사 차량이 포효하며 투우처럼 침식체를 향해 돌진했고, 골칫덩어리 기계들은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붉은 파도는 일직선으로 두 동강 났고, 파도를 헤친 항선은 와타나베 일동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고 중무장한 병사가 뛰어나와 남은 침식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발라드

오래 기다렸다. 이 덩치 녀석을 작동시키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너희들이 통로의 안전문을 열어준 덕분에 이걸 들여보낼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살아남은 몇 명의 대원들을 스친 뒤, 바닥에 쓰러진 니트에게 머물렀다.


발라드

의료진, 구조하도록.

너희들도 일단 뒷칸에 타고 상황을 보고해라.



발라드

잘못된 지령이 우주부대로 보내졌다고?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해줬나?


와타나베

그게 무엇인지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발라드

아무래도 그녀가 깨어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와타나베

...


발라드

아버지가 걱정되나?


망설임 없이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발라드

음...

백하우스에게 들었는데, 훈련 기간 동안 모의 비행 훈련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하지?


와타나베

확실히 그런 적은 있었습니다.


발라드

니트는 지금 상태가 매우 나빠서, 얼마나 빨리 깨어날 수 있을지 의사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어.


그는 와타나베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혹은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것처럼 천천히 말했다.


발라드

네 설명에 따르면 잘못된 명령을 보내는 것은 퓨즈를 끊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이 아니지.

일병 와타나베, 명령이다!

이 임무는 게슈탈트 구조 작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재 너는 다른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우주에서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작전 대장 자격으로 너에게 우주 겸용 수송기를 조종하여 상황을 확인하라고 명령한다.

그 발송된 잘못된 명령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한다.


와타나베

발라드, 이러시면...


망설이는 모습에 발라드는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렸다.


발라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겠나?


와타나베

네!


발라드

그럼 어서 가. 이곳은 내가 맡겠다.



우주공항

궤도 고도 10,000km



월간 회의 시작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회의실에는 각 우주함의 지휘관들이 자리 양쪽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교류회의였고 드물게는 함선을 떠날 때도 있었다.


"아일레이 섬의 매부리"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 정부의 에이스 파일럿에 대해 여러분도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러자 회의 테이블 양쪽에 있던 함선 지휘관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일레이 섬은 세계 정부가 조종사를 훈련시키는 곳이자 신식 전투기의 실험기지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에이스 파일럿이 배출되었지만 "아일레이 섬의 매부리"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키릴, 들어와.



키릴

그런 헛된 별명따위 쓸 필요 없다고 내가 말했잖나.

내가 여기에 온 것도 단지 여기에 내가 필요해서 온 것뿐이야.


상대방에게는 이미 오랜 전투가 남긴 피폐함이 역력해있었다. 신체기능의 쇠퇴로 인해 가장 먼저 얼굴의 노화를 불러왔으며, 신과 거의 비슷한 나이대임에도 얼굴에는 이미 주름이 가득했다.

이것은 그가 싸워온 흔적으로, 지워지지 않는 훈장이다.


지난 달에는 최신예 공중전투기 펜릴이 우주공항으로 이적되었습니다.

키릴은 앞으로 한동안 팀을 이끌며 신병들을 훈련시킬 것입니다.

훈련기간은...



거대한 진동이 회의실을 덮쳤고 굉음과 함께 사이렌이 울렸다.


관리인, 상황 보고하세요!


잠시 전기적 소음이 난 뒤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이때 방송이 들려왔다.


방송

공항 직원 여러분, 기함 "미라클"이 출발하였습니다. 항법사 인원들은 위치로 이동하십시오...


기함을 포함한 30척의 함선이 출항하고 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지휘관A

그럴리가, 엔진을 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는데!


지휘관B

통제 권한이 효력을 잃었어!


신은 아직 기함에 머물고 있는 부관 중 한 명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차가운 안내음이 통신 불가능임을 알렸다.



직원

여보세요, 들립니까?


저는 우주전단 지휘관 신입니다. 즉시 관리인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하세요!


직원

관리인은...이미 죽었습니다...함선의 냉융합 엔진이 가동되었을 때, 하필 마침 정박된 항구에 있어서...


상대방은 말을 잇지 않았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직원

다음은 제가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항구에 정박해 있던 기함을 포함해 30척의 함선이 갑자기 시동을 걸었습니다.

정박항에서 일상적인 유지보수를 하던 직원 320명이 현장에서 희생됐고, 강화 사슬이 크게 파손돼 중력장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저희는 함선에 체류 중인 인원을 호출하려고 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상과의 통신도 끊겨 지상본부로 직접 사람을 보내 연락을 취했습니다.


우주함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직원

...에덴II입니다. 함선들은 에덴II를 향해 비행중이고, 가속중이므로 10분 후에 충돌할 것입니다.


회의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 지휘관들은 우주공항 내 자위화력만으로는 함선에 위협을 가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키릴

내가 팀을 이끌고 요격하러 가지.


부족해.


키릴의 비행 편대는 오래전부터 고려되어 왔었지만, 펜릴은 우주함과 같은 거물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설계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출발해도 준비하는 시간 동안 이미 우주함이 완전 가속 상태에 돌입하고도 남는 시간이므로, 펜릴이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직원

잠깐만, '앰비션호'의 가속이 멈춘 것 같습니다...…'갤럭시호'도요!


지휘관B

확실한가?


지휘관A

틀림없이 함선에 타고 있는 사람이 뭔가 했을 거야!


그러나 더 묻기도 전에 단말기에서 들려오는 통신음이 그의 발언을 가로막았다.



이것을 막는 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휘관B

스티브...


희망을 바라보며 들뜨던 마음은 이내 다시 가라앉았고, 통신에서 직원이 보고하는 가속을 멈춘 우주함들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메시지에는 뒤를 부탁하는 유언이 하나씩 들려왔다.


멈춰주세요

이제 당신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갑니다

...


마지막으로 신의 단말기에도 통신음이 울렸고, 그는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통고임을 알았다.



...


탈출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제가 마지막 생존자였으니까...더 이상 걱정하지 마시길


아무도 그들의 전투를 알지 못하며, 아무도 그들에게 작별을 고할 수 없다.

우주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선택을 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신분이기 때문이다.

용감한 자들은 이미 앞서서 자신의 전력을 다했고, 이제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전원, 중앙홀 집합!



우주공항 중앙 홀


우주공항의 우주전단 지휘계통 소속 전 인원이 집결했다.


지상 통신은 아직 복구되지 않았습니까?


통신원

여전히 안 됩니다. 범용 주파수 대역과 암호화 주파수 대역 모두 출처를 알 수 없는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교신을 위해 주파수 대역을 조정하겠습니다만, 운에 맡겨야 하는 만큼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파견된 연락원은요?


임시관리자

1시간 더 소요될 예정입니다...구조체 조종사가 없어 극한의 속도로 항해할 수 없습니다.


함선은 어떻습니까?


관제실

30분 뒤면 에덴Ⅱ와 충돌하여 파편이 발생해 월면 기지가 파괴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연쇄반응으로 인해 달 질량의 30%에 해당하는 운석이 지구에 추락하게 되어 우리의 지상시설은 모두 파괴될 것이고, 지하벙커조차도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을 더 벌 수 없을까...


지상의 구조가 도착하기도 전에 한 발 먼저 함선이 인류 최후의 보루를 들이받을 것이 뻔한 일이다.


지휘관B

그 방법밖에 없겠군...…


네...우리 손으로 함선을 파괴해야 합니다.


임시관리자

그...그게...


공항 임시관리자가 경악한 것에 비해, 각 함선의 지휘관들은 이미 예상했다는 모습이었다.

구시대 군인이었던 이들은 이미 함선이 제멋대로 자리를 비울 때부터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무기는 재앙을 가져올 뿐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파괴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임시관리자

하지만 파괴하려고 해도 저희의 무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너무 강한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함선의 엔진은 모두 핵융합 반응로를 사용하죠.

반응로의 안전 장치를 파괴하는 데 충분한 에너지를 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수소 폭탄이 될 것입니다.

비록 현재 저출력으로 운항하고 있어 예상보다 위력은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부에서 발생한 폭발만으로도 함선의 허리를 날릴 수 있습니다.


임시관리자

하지만 저희가 엔진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휘관B

입구가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상대방은 후미에서 화염을 뿜어내는 분출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휘관B

지휘관, 저기에 폭탄을 날릴 생각인 거죠?


네.


지휘관A

우주공항의 비축량이야 충분하겠지만, 고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미사일 장갑이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우주공항의 탈출 포트는 설계 초기에 극한 환경을 상정했기 때문에 충분히 돌진할 수 있습니다.


임시관리자

잠깐만요, 당신들끼리 말하지 말고 토의를 해봅시다...아까 말한 대로라면...


우리는 누군가가 화약을 가득 실은 탈출 포트를 조종하여 함선 후미의 분출관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겠죠.


상대방은 또 한 번의 훈련이기라도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임시관리자

엔진이 아직 작동 중입니다!


지휘관A

만약 그것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겠지.


지휘관B

다행인 점은 폭탄이 터지는 시간은 단 한순간이라는 겁니다.


임시관리자

그럼...누가 갑니까?


이것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나 다름없어, 죽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임무다.



키릴

내가 팀을 이끌고 가지.


하지만 이내 곧 누군가가 편도행 티켓을 끊었다.


키릴

비행 경험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가장 적합하지 않곘나.



...

용감하게 나서줘서 고맙지만, 너희들의 하늘은 아직 오지 않았어.

이번 한 번만큼은 우리가 할게.


그러나 또 다른 이는 그들로부터 사신의 초대장을 거둬들였다.


지휘관A

우리야 반평생을 거의 함선과 씨름해왔으니 저것들의 약점을 우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지휘관B

이미 누군가가 앞서간 이상 우리도 뒤처질 수 없습니다.


키릴

당신들...


너도 다 들었겠지. 이건 우리가 이미 결정한 거야.

그들의 말이 맞아, 우리는 이미 반평생을 함선에 허비했고, 우리보다 그것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우주선의 파괴는 동시에 우리의 경험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는 위험에 맞서는 방어 무기에서 위험 그 자체로 변모한 거대한 물체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너희들은 달라, 설사 우주선이 사라지더라도 인류는 하늘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소수의 늙은이들의 호령이 아니라 눈여겨 볼 수 있는 희망과 미래니까.

미래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것이고, 키릴은 그들의 보호자야.

그래서…이쪽이 먼저 가야겠어.


그는 키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부하들 앞에 다시 섰다.


기함 '미라클호', 지휘팀원 앞으로!


ㅡㅡ그들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과 과거의 기적을 위해 마지막 길을 떠나려 한다.


지휘관A

호위함 '앰비션호', 지휘팀원 앞으로!


ㅡㅡ그들이 품고 있던 야망이 산산히 부서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들은 낙담하지 않는다.


지휘관B

'갤럭시호'...


ㅡㅡ기원의 별무리는 곧 추락하지만, 그들은 두렵지 않다.


지휘관C

'보야주호'...


ㅡㅡ그들은 끝까지 믿고 있기에……

ㅡㅡ별무리는 다시 뜨고, 야망은 다시 솟아날 것이며, 인류는 반드시 다시 항해를 시작하여 우주에 기적을 써 내려갈 것이다.

300명의 지휘팀원들은 새벽녘의 어둠을 밝힐 것이다.




고에너지 폭약을 가득 실은 포트가 우주공항에서 점차 분리되면서, 기존의 장관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임시관리자

지휘관님, 당신의 지시에 따라 EMP 방어벽을 개방하였고, 우주공항의 자위무력도 언제든지 대기하고 있으며, 지구로 날아오는 잔해를 요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안전해지면 후속 계획에 따라 형태를 조정하고 에덴Ⅱ와 도킹하세요.

식민함의 질량만으로도 중력장을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임시관리자

네!

그리고…행운을 빕니다.


헤드폰 속 통신이 사라지자 조종실 내 단조로운 소음만 남았다.


지휘관A

미리 준비했군요?


네, 그들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지휘관A

당신의 마지막 메시지는 누구에게 남겼습니까?


아들입니다.


삶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와중에, 그들은 그동안 마음에 두고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일들을 다시 이야기한다.


당신은요?


지휘관A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단지 그들과 함께 가야 할 뿐입니다.

그들은 항상 제가 자기들과 함께 할 시간이 적다고 계속 불평해왔어요. 다시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죠.


당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지휘관A

모르죠, 너무 일찍 온 거 아니냐고 불평할지도...

곧 도착합니다.




거대한 함선이 눈앞에 나타났고, 그 앞에 있는 300척의 탈출 포트는 나방처럼 보잘 것 없어보였다.


지휘관C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좀 무서운데.


지휘관B

하필 이럴 때 그런 얘기를...당신 때문이야. 내 손도 덜덜거리기 시작했다고!


지휘관C

우리 300명이 정말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까? 제 쪽에서는 함선의 방어 전열이 아직 가동중이라고 나옵니다.


집중하세요. 그게 바로 우리가 각 함선마다 10명씩 배정한 이유입니다.

공격 범위로 진입한 후 즉시 산개해 한 번에 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휘관A

한 명이라도 뛰어들 수 있으면 충분하니까.


지휘관C

지원이 없는 이런 느낌...…너무 외롭군……


???

화력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쉰 목소리가 갑자기 통신 채널에 뛰어들었다.


키릴?


젊은 목소리

교관님만 온 게 아닙니다.


텅 빈 레이더에 갑자기 아군 단위의 표식인 녹색 점들이 떠올랐다.


키릴, 공항 안에 머무르라고 했잖아!


키릴

신, 애송이들의 각성과 고집을 얕보지 마.

너는 줄곧 그들을 비호하려고 했지만, 그들 스스로도 하늘을 지탱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나?


...


키릴

누구도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아이버

제1항공편대, 아이버, 보고합니다.


켄리

아일레이섬 3기 훈련생, 켄리입니다. 저희가 방어 드론들을 저지할 것입니다.


소피아

제3항모전단 조종사, 소피아입니다. 안심하고 당신들의 임무를 완성하십시오.


윌리엄

제2특수작전여단, 윌리엄...…


보고가 통신채널을 가득 채웠고, 소리 없는 외로운 우주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키릴

인류가 처음 화염을 발견했을 때부터 우리는 지혜와 용기로 우리의 여정을 이어왔다.

25만 년 전, 우리는 야수를 정복하고 먹이사슬의 정점에 이르렀다.

수천 년 전, 우리는 대지를 정복하고 문명이 온 행성에 뿌리내리게 했다.

불과 200년 만에, 우리는 바다와 하늘을 차례로 정복했다.

그리고 지금, 과거의 창조물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막으려고 한다고?

펜릴 프로젝트의 수석 교관으로서 명령한다...

발포하라, 전력을 다해 결사대를 엄호하여 임무를 완수하라!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 그들에게 화력으로 알려주도록!


수많은 에너지 빔과 실탄 무기들이 전투기의 발사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무언의 환경 속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전이 시작되었다.


전원, 전속력으로!



나방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불을 꺼트릴 용기를 지니고 있다.

참혹할 승리일지라도, 승리를 쟁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