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 주의 !!!!

 : 신해이도~각명나선 사이 시점.


2편 : https://arca.live/b/punigray/96845036

3편 : https://arca.live/b/punigray/10055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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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돼.]

 

 귓가를 맴도는 목소리는 물안개 같았다. 눈을 뜨는 순간 덧없이 흩어지는 것마저.

 ――사라져가는 잔상에, 애가 끓었던 건 왜였을까.

 

 “리!”

 

 “다행이에요, 정말……! 혹시라도 리씨가 잘못됐을까봐, 정말 너무 걱정돼서…….”

 

 복원된 시야 가득히 저를 향한 염려가 쏟아진다. 야단스럽지만 싫지 않다. 자신에 대한 호의로 이루어졌기에 그럴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과거의 마지막 순간들이 밀려왔다.

 

 *

 

 근래 그는 지상에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재앙―퍼니싱에 맞설 새로운 히든카드로 낙점되었으므로.

 다만 인류는 지금 두 차례의 큰 고비를 막 넘어선 참이었다. 그 참상을 수습할 인력조차 모자란 판에, 기껏 쓸 수 있는 손을 놀려두는 것은 좋지 않다. 그의 소속이 영웅이란 칭호를 짊어진 그레이 레이븐 소대였기에 더욱이.

 원했던 일도 아니고, 그 이름을 얻게 된 과정 자체도 불쾌하기 그지없어 달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가 드리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희망을 품는다. 그게 ‘선전용’이라는 명목으로 안전한 임무만 할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는 건, 과연 다행일지 불행일지.

 오래간만에 주어진 지상 임무도 윗선에서 엄선하여 준 일이었다. 명목상으로만 임무일 뿐,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일정뿐인. 그러니 그와 소대를 기다리는 건 나들이나 다름없는 평화로운 하루여야 했다.

 

 […… 처음 뵙는 얼굴이 있군요. 듣자하니 당신이 인류의 희망을 담을 새로운 그릇이라지요.]

 

 설마 거기서, 최악의 상대와 마주칠 줄이야.

 혈혈단신으로 나타난 새로운 ‘대행자’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포식자와 같은 여유를 담아서.

 

 [특화기체였던가요. 그 원리에 대해 들었더니 문득 호기심이 일더군요.

 그러니 한번 시험해보겠습니다.]

 

 리브와 함께였다면, 탐지 능력으로 미연에 피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공중정원을 자주 나올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무의미한 가정을 곱씹으며 어떻게든 승산이 없을지 고뇌했다. 하다못해 다른 둘만이라도 무사할 방도를 찾아보려던 그 순간, 상대가 손을 뻗었고.

 

 [인류의 희망이 될 자격이란 과연, 우리가 찾는 ‘우수한 종자’와 같은 것일지.]

 

 검붉은 격랑이 의식의 바다를 덮쳤다. 미처 저항할 새도 없었다.

 정신이 순식간에 찢겨나갔다.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모호했다. 고통과 일체화되어가던 찰나에도, 익숙한 음성의 비명과 절규는 왜 그리도 또렷이 들렸는지 모를 일이다만.

 

 *

 

 끊어졌던 기억을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당연한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림자는 셋이었다. 그 중 유일한 남성이자 인간이기도 한 사람이 물었다.

 

 “리, 좀 어때? 아직도 어디 안 좋아?”

 

 어색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훑었다. 상대를 잘 알게 된 지금도, 저 사서 걱정하는 성격은 도통 익숙해지질 않았다.

 

 “괜찮습니다.”

 

 몸을 일으키며 한 대답에 세 가지 음색의 한숨이 들려왔다. 외부 손상이 있는지를 살피며 면구스러움을 감춰본다. 매번 말썽인 발열기능이 지금만큼은 좀 얌전하면 좋으련만.

 

 “오메가 무기가 개발돼서 정말 다행이야. 아시모프가 연구실에 있던 실험용 장비로 정화해주지 않았으면, 지금쯤…….”

 

 남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말이었다. 덕분에 자신이 어떻게 무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무려 대행자씩이나 되는 상대에게 당한 거였지 않나. 관심들이 과할 만했다.

 

 “…… 지휘관님 덕에 산 셈이네요. 감사합니다.”

 

 남자――지휘관의 입가에 한 박자 늦은 쓴웃음이 걸렸다.

 

 “내가 뭘 했다고, 아시모프랑 과학이사회에서 수고해준 거지.”

 

 “그 수고도 지휘관님께서 가져오신 자료가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물론 그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예상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반응에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오메가 무기의 자료를, 일신의 위협까지 무릅써가며 회수해온 건데. 하여간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탈이다.

 

 “그런데, 아까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정비대에서 내려오던 찰나, 갑작스레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서 제 부름에 이끌린 시선을 향해 물었다.

 

 “아까? 무슨 말?”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던 거요.”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휘관은 얼떨떨하게 굳은 채 눈만 깜빡거렸다. 나머지 둘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꼭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가늠을 못 하는 사람들처럼.

 

 “어…… 나 그런 말 안 했는데?”

 

 그 답변을 듣고 나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걸 지휘관이라 생각한 거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니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지금 제게 대답한 음성은, 깨어나기 전 맴돌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걸 헷갈렸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을 만큼.

 

 “죄송합니다. 퍼니싱 때문에 환청이라도 들었나봅니다.”

 

 고민 끝에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로 결론지었다. 애초에 맥락도 없이 뚝 떨어진 말이고, 침식된 티파에게 당했을 적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역시 한 번 더 검사해달라고 하는 게…….”

 

 “됐습니다, 오메가 무기까지 사용해서 처리한 건데 설마 문제가 있으려구요.”

 

 하여간 호들갑은. 침식도는 진작 다 떨어졌는데 뭘 또 검사한다고. 허둥대는 것을 제지하며 한숨을 삼켰다. 자신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해서 일을 성가시게 만들었을까, 멍청하게.

 내용 때문이었나? 생각해보면, 그런 묘한 말을 할 만한 사람은 지휘관밖에 없긴 했다. ‘리’로서 만났던 이들 중에는 특히나.
 또한 저는 일종의 가면으로써 사용할 뿐이었던 그 이름을, 매우 귀한 것을 다루듯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울림을 담아 불러주는 것도.

 그 신기루 같은 음색이, 지휘관보다 좀 더 섬세하고 톤이 높았던 게 문제였다만. 마치――

 

 《기체 상태 양호하면 슬슬 나와서들 얘기하지? 전달할 사항도 몇 개 있는데.》

 

 “아시모프.”

 

 무심한 목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잡생각으로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모양이다. 지체 없이 다른 셋을 재촉해 폐쇄 실험실을 나섰다.

 

 * *

 

 [일단 퍼니싱은 제거됐지만……. 당분간은 가벼운 이탈 증상이 발생하거나, 기억에 다소 혼선이 있을지도 몰라.]

 

 의외로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말에 입을 여는 것이 조금 늦어졌다.

 

 [지휘관님과 심층 연결이 필요합니까?]

 

 [아니. 지금 시점에선 필요 자체가 없거니와, 상황도 백야 때와는 정반대야.]

 

 질문의 속뜻을 읽은 아시모프가 부연했다.

 

 [백야 기체는 의식의 바다가 표층부터 오염돼서, 심층부의 침식은 상대적으로 더뎠어. 그러니 심층의 핵심부를 회수해서 그걸 기점으로 복원하는 게 가능했지.

 하지만 네 경우엔 퍼니싱이 퍼진 시작점이 심층부야. 이미 침식된 부분을 회수해봤자 의미가 없을뿐더러, 그런 짓을 시켰다간 도리어 네 지휘관까지 위험해졌을걸.]

 

 어떻게 외부에서 그런 짓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사족이 덧붙었다. 대행자라는 건 얼마나 엄청난 존재이기에 원리를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조차 가능한 걸까. 새삼 간담이 서늘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침식이 시작된 위치가 위치다보니, 퍼니싱을 제거하기 전에 확산을 막기 위한 사전 조치가 필요했어.

 그 과정에서 인근의 데이터 일부가 손상된 게 확인됐고.]

 

 순간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은 자신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데이터들이 유실됐단 뜻 아닌가. 하지만, 막상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닐 거야. 의식의 바다 안정도가 이전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수치 자체는 여전히 평균보다 높으니까. 심층의 다른 부분은 멀쩡하니 그걸 기반으로 자가 복구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그래도 불안요소가 있는 이상, 신기체 개발에 계속 참여하는 건 어불성설이지. 일단 추이를 지켜보다가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해지고 나서 재개하는 것이 맞다고 봐.]

 

 아시모프는 무감한 손짓으로 그래프까지 던져줬다. 실감이 안 난다면 데이터로 증명해주겠다는 듯이.

 낭떠러지처럼 아래로 깎아지른 침식 시점. 그 전후의 기울기 자체는 모두 평탄했다. 다만 침식 후의 수치가, 침식 전보다 현저히 낮은 지점에 머물고 있는 것이 어찌할 바 없이 눈에 밟혔다.

 

 [상황에 대한 설명은 아시모프에게 충분히 들었네. 니콜라와도 이미 논의된 사안이니, 당분간은 임무 걱정 말고 안정을 취하는 데 전념하도록.]

 

 더불어 언제부터 합류해있었는지 모를 하산 의장과 총사령관 니콜라가 거들기까지. 그러니 어쩔 도리가 있나. 졸지에 소대 전체가 떠밀리듯 강제 대기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놈의 안정이란 걸 도통 취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 리? 그걸로 벌써 29번째야.”

 

 또다시 움직이려던 손을 가까스로 멈춘다. 재차 분해될 뻔한 무기의 무게감이 잠시 증발했던 현실감을 되새겼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리가 초조해보여.”

 

 루시아의 옅은 웃음에서 난처함이 묻어났다. 무어라 답하면 좋을지 헤매는 사이, 등 뒤에서 리브도 말을 보탰다.

 

 “리씨는 좀처럼 쉬질 않았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물론 리브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 중 가장 휴식이 필요한 건 그녀 아닌가. 백야 기체의 후유증 때문에 여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으면서.

 그런데도 이왕 드나드는 김에, 라며 생명의 별에 일손을 보태질 않나. 그간 우선순위가 밀려있던 물품들을 보급 받으러 다니질 않나. 지금도 휴게실 한쪽에 여분의 사무용품을 차곡차곡 채워 넣고 있는 중이고.

 그걸 지적한다고 꺾일 고집이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괜찮다는 말만 돌아올 게 눈에 선해서, 화살을 그냥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건 나보다 지휘관님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앗.”

 

 “음…….”

 

 동의의 뜻을 담은 감탄사와 함께, 시선이 일제히 한 군데로 모였다.

 오늘도 지휘관의 사무실 문은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는 요 며칠간 서류의 산을 처리한답시고 거의 그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드물게 얼굴을 비출 때면 사람이 눈에 띄게 핼쑥해져갔고.

 정말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리브야 구조체라 체력적인 부분에선 문제없다 쳐도, 지휘관은 인간이지 않나. 심지어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재활을 했다지만, 풀리아 산림 공원에서의 작전 이후 장기간 혼수상태였던 여파가 그리 빨리 가실 리 없었다. 그런 몸으로 또 대규모 사건에 휘말려, 며칠씩 이어진 사투를 치르고 오기까지 했다. 솔직히 서류 작업이 얼마나 밀려있든 강제로라도 쉬게 하고 싶을 지경이다.

 

 [괜찮으니까 쉬고 있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모처럼이니 너희도 오랜만에 푹 쉬어야지.]

 

 그런데 남의 속도 모르고 또 그딴 소리를 하고 앉았으니. 사람 좋은 것도 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했으면. 구조체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슬슬 한번 나오실 때인데, 오늘은 좀 늦으시네.”

 

 “그러게요. 지휘관님도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되는데…….”

 

 리브가 인쇄용지를 정리하다 말고 울상을 지었다. 이런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하니 불안감이 가실 리가 있나. 이토록 마음 한 구석이 술렁이는 건, 갑작스레 한가해진 게 어색할 뿐인 걸론 설명되지 않았다.

 역시 지금이라도 끌어내서 눕혀놓는 게 낫겠어. 손이 비면 어김없이 치미는 생각을 또 한 번 억눌렀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인간의 몸이 구조체처럼 일하는 걸 버틸 리 없는데. 자신들과 같이 지낸 탓에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감이 사라지기라도 한 건가.

 아무튼, 제 상태에 별 차도가 없다면 전부 지휘관 때문이다. 뭘 해도 신경이 쓰여 뒤숭숭한 마당에, 휴식이고 뭐고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진심으로 저희를 쉬게 하고 싶은 거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자꾸 안 보이는 곳에서 과로해서 걱정시키기보다는.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미동도 없던 문이 움직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열린 틈 사이로 죽을상을 한 지휘관의 모습이 비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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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네거트가 특화기체 정보를 얻은 루트는

 쿠로노새끼들의 뽀찌+승격자에 붙은 공중정원 탈영병들이 흘린 찌라시.


※※ 왜 거기서 본 네거트가 튀어나온 건지는 나도 몰?루

 우수한 종자 탐색이라도 한 듯.




 오늘도 시키칸 때문에 혼자 복장 터지는

 리의 1인칭 시점으로 쓰는 글임,

 좀 길긴 한데 완성되는 대로 후속편도 계속 올리게슴.


 쓰는 스타일상 가독성에 문제가 좀 있어서

 캐릭터들 대사는 트레이드 컬러를 입혀봤는데

 괜찮은가 몰?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