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동안 열심히 달려서 드디어 인멸잔주까지 도착했다.

퍼니싱 스토리는 타이틀 일러스트를 보면 큰거온다는 느낌을 미리 받을 수 있는데, 나에겐 구룡순환도시와 인멸잔주였다.


▲내가 퍼니싱에서 처음 제대로 맛보기 시작한 뽕맛


사실 백야를 리세계로 데려와서 스토리도 모른채 쓰고 있었을 땐 식암, 유광이랑 생김새도 너무 달라서 처음엔 얘가 리브인지도 모르고 썼었다. 로비에 이뻐서 뒀을 때 아련한 얘기들을 해도 별 생각 없었는데 스토리 다 보고나니까 성녀가 따로없더라.

솔직히 퍼니싱에 액션하나만 기대하고 들어왔다가 스토리 뽕으로 이렇게 무발기사정할줄 몰랐다. 그래서 뽕이 빠지기 전에 주저리주저리 써보려고 한다.



1. 무력감


앞의 스토리를 보다보면 리브는 그레이 레이븐의 동료들을 보며 꾸준히 자신의 무력감을 내비쳤었다. 이번 인멸잔주에서도 인간형 침식체에 의해 무너져가는 지상과 인간들, 끊긴 지원, 혼수상태인 그녀의 정신적 지주 지휘관, 이 모든걸로 하여금 그 무력감이 그녀에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희망의 끊을 놓지 않는다


인멸잔주의 초반 스토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무력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퍼니싱과의 전쟁으로 계속해서 늘어만가는 난민, 그로 인해 부족해지는 물자와 피폐해져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벼로 죽을 만들어먹으며 조그마한 계기로도 웃으며 나아갈 수 있다는 조그만 희망을


요즘 암울함 속에서 희망찬 게임들을 해와서 그런가 나는 리브와 똑같은 생각이였다. 지금은 힘들지만 그래도 잘 풀리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감상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던 노부부가 먼저 죽었을 때도 샌디가 건물 높은곳 가장자리로 향했을 때도 말이다.


하지만 스토리는 계속해서 쉴틈없이 주인공들과 인간들을 옥죄어왔고 희망을 품기도 전에 잃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상실과 무력감에서 리브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것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라 할 지라도



2. 월하미인


월하미인은 저녁 8시에 피기 시작하여 아침에 시들어버리는 아주 잠깐 피어났다가 순식간에 시들어버리는 꽃이다. 리브가 백야의 기체로 떠나기 전 지휘관의 병상에 종이로 만들어 두고간 꽃의 이름이자 리브가 맞이하게 될 운명의 비유기도 했다.


그녀가 떠나기전 혼수상태의 지휘관에게 말할 때 앞의 스토리에서 그가 했던 말들은 여러 씹덕겜에서 주인공이 할 법한 뻔한 말이었지만 그 말들이 리브에게 얼마나 큰 버팀몫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외전까지 꼭꼭 씹어먹어서 그런지 과몰입충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인멸잔주 통틀어 여기가 제일 절절했다.


그렇게 지상에 내려온 리브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강림을 방불케했다. 저녁에 화려하게 피었다 아침에 지는 월하미인처럼 리브는 전장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저녁에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꽃



3. 그래도 다시 나아간다


전황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었지만 월하미인처럼 백야라는 꽃도 흡수한 퍼니싱에 의해 순식간에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정된 수순이였기에 리브는 더욱더 퍼니싱을 받아들였고 침식되어 죽어간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가며 그녀의 의식의 바다는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사장님 너무 매워요


만약 리브를 퍼니싱 침식에서 구한다 해도 평생을 끔직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했다. 만약 내가 지휘관이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여기서 지휘관은 그녀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일단 구한다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렇게 침식한 퍼니싱을 다시 모인 리브, 루시아, 지휘관과 함께 몰아내는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지휘관은 리브에게 물어본다.


"네 미래가 가시덤불로 덮여 있는 것을 알아... 그래도 미래를 향하는 길을 선택할거야?"


"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은 백야가 된 순간 이미 정해져있었다


퍼니싱 스토리 시작의 저점이 너무 낮아서였을까 고점에서 뽕을 제대로 맞아버렸다. 인멸잔주가 특히 내용이 고봉일만큼 많았는데 진짜 술술 읽은 것 같음. 후발주자인만큼 기체들의 스토리에 대해 모르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백야가 이정도의 스토리로 등장한 기체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게임 연출도 좋았고 중간중간 애니메이션들도 내 기준 짜치지 않게 잘 들어갔다고 생각함. 마지막 보스에서 스킬볼 침식연출도 너무 좋았고 스토리적으로도 주변인물들이 입체적이여서 더욱 만족스러웠음(앞에서 등장했던 슈렉이나 히포크라테스). 예전엔 게임을 플레이적으로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캐릭터들의 서사나 스토리적으로 만족까지 시켜줘야 애정을 갖고 길게하게 되더라. 그 갈망을 인멸잔주에서 많이 채워준거 같음.


스토리도 나나미나 분홍머리, 자비로운 자, 쿠로노같은 큼직한 떡밥들 많이 남아있는데 너무 기대됨. 스킬볼도 적응되니 재밌고 이정도 재미 채워주는 ARPG 모바겜에서 느끼기 힘든데 취향 잘 맞는듯. 가독성 구린 글 읽어줘서 감사

퍼니싱 더 흥하자



근데 제가요?는 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