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 주의 !!!!

 : 신해이도~각명나선 사이 시점.

 그 이전 스토리+이벤트 스토리 스포도 살짝 있음.


1편 : https://arca.live/b/punigray/95456693

3편 : https://arca.live/b/punigray/10055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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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어어, 왜 끝이 안 보이냐고…….”

 

 비척거리며 걸어 나오는 꼴이 전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지, 몰골은 어제보다 더 심할지도. 대체 서류 쪼가리를 붙잡고 뭘 하면 사람이 순식간에 5년은 늙어 보이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역시 저희가 거들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냐, 그냥 불평해본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다들 뭐하고 있었어?”

 

 또 한 번 루시아의 권유를 거절한 그가 휴게실을 쭉 둘러보았다. 스트레칭인 듯한 어설픈 동작이 곁들여지는 걸 지켜보다가 홧김에 내뱉었다.

 

 “지휘관님을 생명의 별에 강제 입원시킬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억.”

 

 호쾌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난 것 같다. 착각이 아닌지 지휘관이 대번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한동안 앓는 소리를 낸 그가 이내 허허롭게 웃었다.

 

 “아니, 농담이라도 무서워, 리…….”

 

 “다음에도 그렇게 기 빨린 얼굴로 나오시면 농담으로 안 끝날 겁니다. 좀 쉬어가면서 하세요. 공중정원에 몸을 축내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는 새로운 규격의 서류라도 생겼답니까?”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만 돌아왔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말뿐이라도 쉬엄쉬엄 하겠다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어떻게든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갔다.

 

 “리씨 말대로 쉬는 시간도 잘 챙겨주세요, 지휘관님. 문서작업뿐이라 해도 장시간 업무는 건강에…….”

 

 수심 가득한 리브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끊겼다. 동시에 지휘관의 표정도 경직됐다.

 

 “리브?”

 

 후두둑, 뭔가 바닥에 쏟아졌다. 직후 가벼운 무게감이 맥없이 내려앉는 기척까지. 돌아보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종이들이 흩어진 사이로 리브가 주저앉아있었다.

 

 “리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곁에 모였다. 가장 먼저 다가간 루시아가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부축했다.

 

 “리브, 괜찮아?! 리브!”

 

 “…… 아…….”

 

 리브는 대답하지 못했다. 표정을 아릿하게 찡그린 채 가늘게 떨 뿐. 마치 그 이상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 듯이.

 설마 이게 예의 후유증인가. 간신히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 즈음, 지휘관이 도로 사무실을 향해 뛰어갔다.

 

 “잠시만, 나 단말기 좀!”

 

 지휘관은 황급히 뛰어간 사람치고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리브의 상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루시아의 표정이 위험도 높은 임무를 수행할 때처럼 굳어졌다.

 

 “주치의 선생님께 가봐야겠어. 지금 자리에 계실까?”

 

 “어차피 우리만으론 방법이 없잖아, 일단 가보는 수밖에.”

 

 루시아가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리브를 안아들려 하기 무섭게, 사무실에서 한참 뭉개고 있던 지휘관이 튀어나왔다.

 

 “선생님한테 답장이 왔어, 지금 바로 생명의 별로 오면 된대!”

 

 전에 없이 요란하게 등장한 그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 여파로 흔들리는 단말기의 화상에서 「발신인 : 주치의 선생님」이라는 글자가 얼핏 보였다. 신속히 제자리로 돌아온 지휘관은 리브에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리, 루시아. 리브 업는 것 좀 도와줄래?”

 

 “저희도 같이 갈게요, 지휘관님.”

 

 “아냐, 응급 환자 중에 침식도가 높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접촉하면 리한테 안 좋을 수도 있어.”

 

 생각지도 못한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자신이 일시적 벙어리가 된 사이, 리브를 단단히 업은 지휘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아도 혹시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같이 있어줘, 치료 끝나는 대로 연락할게.”

 

 “하지만…….”

 

 “리브 일은 선생님이 잘 해결해주실 테니 너무 걱정 말고! 금방 다녀올게!”

 

 그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문 밖으로 사라졌다. 둘만 덩그러니 남겨진 휴게실에 암담한 침묵이 머물렀다.

 

 “이거라도 마저 정리하자.”

 

 덤덤한 얼굴로 돌아온 루시아가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 보니 발밑이 온통 종이투성이였다. 경황이 없어서 밟고 지나다닌 것도 몰랐다.

 굼뜬 동작으로 손을 보탰다. 딱히 의욕은 없지만, 그대로 두면 결국 리브의 일이 될 테니. 이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기도 했고.

 

 “그래도 대부분 이면지라 다행이야. 새 종이였으면 리브가 보급을 다시 받으러 갈 뻔했어.”

 

 발자국이 남거나 구겨지거나 찢어진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던 루시아가 문득 웃었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고자 한 배려였을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이 무색하게도 제 기분은 한없이 침잠하기만 했다.

 백야 기체의 후유증.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근래엔 각자 일정 때문에 따로 움직일 때가 많았으니까.

 그레이 레이븐의 모두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평소의 리브라면, 아까 같은 상황에서 괜찮다며 웃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는…… 괜찮다는 말은커녕, 얼버무리기 위한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고작 몇 마디 말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건 자신도 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리브가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줄도 모르는 주제에.

 만약에, 자신이 먼저 신형 기체 개발에 지원했었다면. 당장의 평온함에 안주하느라 특화기체와 관련된 사안들을 모른 척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리브가, 모두를 구하기 위해 저런 끔찍한 대가를 치를 필요가 있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들을 되짚어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특히나 더. 자신이 신기체 적용 후보로서 순위가 높았던 이유인 안정도에 문제가 생긴 시점에서, 스스로의 조급함을 부추기는 것은 무의미했다.

 

 “소실된 기억을 되돌리려면…… 어떡해야 하지.”

 

 아시모프는 말했다. 제 의식의 바다 심층에 있던 데이터가 일부 훼손됐다고. 그게 안정도가 떨어진 것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입에 담은 것일 터. 그렇다면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파손된 정보를 어떻게 되살려야 되나. 그것도 의식의 바다라는, 아직 많은 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복잡한 매체 속에 존재했던 기록을. 제가 아무리 기술 방면으로 자부심이 있다 한들, 이것만큼은 함부로 손댈 게 아니었다.

 

 “예전에 지휘관님께 들은 얘기가 있어, 기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막막해서 흘린 혼잣말이었는데,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특화기체를 쓰게 된 이후 자주 보이게 된 온화한 미소와 함께.

 

 “보통 기억이라 하면, 생각의 형태로 떠올릴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잖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 남는 기억도 있대. 습관 같은, 특정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고정된 행동 같은 게 그런 거라고 하셨어. 예전에 내가 겪은 비슷한 상황의 기억이 몸에 남은 흔적이라고.”

 

 어느새 다 모은 종이가 그녀의 손 안에서 가지런히 정돈됐다. 망가진 종이들은 휴게실 한쪽에 비치된 수거함으로 들어갔다. 일부 멀쩡했던 것들은 리브가 정리하던 수납장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왜 이런 습관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잊고 있던 일이 기억날 수도 있다고 하셨어. 습관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했던 행동들도 그렇대. 같은 상황을 반복한 걸 계기로 예전에 그 행동을 했던 순간의 일들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는 모양이야. 리도 평소에 했던 일들을 하다보면, 다시 떠오르는 게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지휘관이 할 법한 이야기였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이 딱 그 사람답다. 게다가, 애초에.

 

 “그건 인간일 경우의 얘기잖아.”

 

 인간의 망각은 보통 존재하는 기억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 안 보이는 곳에 고이 모셔둔 탓에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게 된 물건처럼. 즉 그 자체가 소실된 게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구조체고, 되찾아야 할 데이터는 아예 유실된 상태다. 인간이 기억상실을 해결하는 방법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리가.

 

 “응, 그렇지. 하지만 지휘관님은――

 인간과 구조체를 구별하지 않으시니까.”

 

 그래, 그랬었지. 이어진 말이 새삼 가슴속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건 예상 이상으로 혹독한 일이었다. 항상 버려지는 상황을 전제해두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으므로. 대놓고 죽으라고 보내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임무도 종종 있었다.

 물론 이건 제 소속이 하필 쿠로노였던 탓도 컸다. 사람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그 미친놈들이, 사람도 아닌 게 죽든 말든 신경을 쓸 리가. 생존을 위해서는, 스스로가 단순 전술자원쯤으로 여겨지는 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1

 

 그래서 그때도 저를 버리고 갈 줄 알았다. 당연하지 않나. 소대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것보단, 한 명을 포기하고 나머지 전력을 온존하는 것이 누가 봐도 합리적이다.

 그게 인간이 포함된 네 명 대 구조체 단 한 명을 저울질하는 거라면 더 그랬다. 세상 어떤 지휘관이 자기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구조체를 구하려고 들까. 미치지 않았고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할 리가.

 

 [남에게 의지해야 할 때도 있어.]*1

 

 ――라고 여긴 그 미친 짓을, 실제로 저지르는 사람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처음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그때껏 자신이 겪었던 호의는 대체로 선의를 가장한 함정이었다. 거리낌 없이 남을 이용해 먹는 게 쿠로노의 평균이었고, 그 이전부터도 줄곧 그랬었다. 세상은 보호자를 잃은 아이에게 그리 따뜻한 곳이 아니니까.

 타인의 순수한 호의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그림책 내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개념,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동생 머레이뿐이다.

 고로 절대 남을 믿어선 안 된다. 살기 위해선 모든 걸 의심해야만 한다. 당시의 자신에게 이 두 가지는 절대불변의 진리였다.

 

 [내가 말했었잖아. 리,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해.]*1

 

 지휘관은 늘 냉소적인 저를 나무라지 않았다. 매사에 부정적인 네 태도가 잘못된 거라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런 지휘관이 이상하다고 말해도, 그냥 그리 여기도록 내버려뒀다.

 아니지, 좀 억울해하기는 했던가? 그러면서도 기어이 정정하려 들진 않았다만. 물론 그러는 게 더 이상하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자신의 심리적 허들은 도리어 낮아졌다. 만약 지휘관이 다짜고짜 이상적 동료관을 설파했다면 저는 코웃음만 쳤을 거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 특이한 거라 받아들이니, 쿠로노의 생태에 한껏 물든 제 사고방식조차 유연해졌다.

 상대가 인간인지 구조체인지 따지지 않는다. 도통 이해는 안 가지만, 지휘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타인에게 진심어린 선의를 베풀 수 있다.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지휘관은 별나니까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번쯤은, 믿어 봐도 되지 않을까. 구조체 하나를 구하기 위해, 눈앞의 위험조차 아랑곳 않는 이 사람 정도는. 저를 업고 시커먼 구렁텅이를 묵묵히 거슬러 올라가는 작은 등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자신의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온전히 머레이만을 위해 존재하던 마음의 울타리 안에 어느 틈엔가, 그레이 레이븐의 모두를 위한 자리가 생겼다. 언제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동료’들도 생겼다. 그러다 시끄러운 바보들까지 덤으로 알게 된 건, 좋은 일인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더러운 일에 발을 담그고 있던 그 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한 일은 맞으니까.

 정작 자신이 한 건 지휘관을 믿어보기로 한 것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많은 것이 변했다. 제 앞가림 외엔 관심도 없었던 놈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를 사람 하나를 기다리며, 승산 없는 싸움에도 기꺼이 몸을 던질 만큼.

 

 [하지만 지금도 강력한 과학기술과 계산능력이 있음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2


 [예를 들면?]*2

 

 예를 들면, 당신이라던가. 이 모든 변화가 왜 지휘관으로부터 시작됐는지, 자신은 지금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새로이 구축된 세계의 중심에서, 항상 같은 모습으로 저를 이끌어주고 있다.

 그래서 제 목숨을 판돈으로 요구하는 도박에 선뜻 나섰다. 그런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지켜야 할 이에게 도리어 지켜져서, 깨어나지 않는 파리한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하기만 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힘이 필요했다. 그 어떤 적에게도 맞설 수 있는 힘이.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박에서 이길 것이다. 지휘관에게, 그레이 레이븐에 더 이상의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 당장 넘어서야 할 벽은 여전히 까마득하게 높다만. 그래도, 당신은 여태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 그래, 참고해볼게.”

 

 이번에도 지휘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루시아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휴게실이 다시 적막에 잠겼다. 그 고요함이 느닷없이 버거워져, 시시각각 짙어지는 농도에 숨이 막히는 착각이 들 즈음. 루시아의 단말기가 울렸다.

 

 《루시아! 리도 옆에 있어?》

 

 공개 상태로 전환된 통신에서 지휘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상은 없었으나 루시아는 그 얼굴을 마주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휘관님. 리브는요?”

 

 《치료는 막 끝났고, 선생님이 10분 정도 쉬다 가라고 하셔서 돌아가는 건 조금 늦어질 거 같아.》

 

 루시아에게서 경직된 기척이 느껴졌다. 되묻는 말에서 그녀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걸 알 수 있었다.

 

 “많이 안 좋은가요?”

 

 《그런 건 아니고, ‘빨리 돌려보내봤자 또 일하고 있을 거잖아!’라고 하셨거든.》

 

 그러고 보니 주치의가 리브의 은사시라고 했던가. 리브가 내버려두면 곧잘 무리하는 건 이미 잘 아는 모양이었다. 지휘관의 형편없는 모사에서도 웃음기가 묻어나는 걸 보면, 걱정했던 상황도 아닌 듯했고.

 

 《어째 둘이 같이 잔소리를 들을 낌새라 좀 무섭긴 한데…… 아무튼 별말 않으셨으니 괜찮을 거야. 그럼 이따 봐!》

 

 “예, 기다리고 있을게요.”

 

 지휘관은 곧장 통신을 종료했다. 루시아는 조용해진 단말기를 쥔 채 긴 숨을 토했다.

 머지않아 두 사람이 돌아왔다. 대강 예상했던 시간에 맞게 온 것으로 보아 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좀 전에는 업혀서 나갔던 리브가 스스로 걸어서 휴게실로 들어선 게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기존의 발작 증세였고,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대. 그냥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 탓이 아닐까 하시더라.”

 

 유일한 불안은 지휘관의 첨언이 영 엉성했다는 것 정도일까. 들은 그대로를 옮긴 것뿐인 그에게 뭐라 할 순 없는 노릇이다만.

 

 “리브, 정말 괜찮은 거야?”

 

 “네, 다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루시아의 염려에 리브가 면목 없이 웃어보였다. 엉뚱한 걸 사과하는 것까지 영락없이 평소의 그녀다. 안심이 되는 한편, 한결같이 남부터 생각하는 모습에 속이 쓰렸다.

 

 “그런 사과는 하지 않아도 돼. 우선 네 몸부터 챙겨.”

 

 “그럴게요. 고마워요, 리씨.”

 

 특화기체가. 아니, 그냥 그 연구라도 계속할 수 있었다면. 그럼 리브의 상태를 호전시킬 방도를 찾을지도 모르는데.

 역시 한시라도 빨리 안정도 문제를 해결해야해. 선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다시금 스스로를 재촉하던 찰나. 리브가 묘한 소리를 덧붙였다.

 

 “참, 생명의 별에서 지휘관님의 동기분을 만났는데요. 루시아랑 리씨에게도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건 정말 이상한 말이었다.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

 한양 소대나 도요새 소대의 지휘관들이면 그냥 이름을 대면 될 텐데. 설마 그 백로 소대의 지휘관이 안부 타령을 했을 리도 없고. 아직 대면한 적이 없는 지휘관의 동기라 쳐도, 굳이 이런 식으로 언급할 만한 인물이 있었나?

 

 “그래, 고마워. 좀 쉬어, 리브.”

 

 루시아는 아무런 의구심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평온했다. 자신이 쓸데없이 심각한 걸까. 고민하는 동안, 순순히 개인실로 들어가던 리브가 지휘관에게 한마디 했다.

 

 “지휘관님도 일은 잠깐 쉬었다가 하세요, 마침 점심도 드셔야 하니까요.”

 

 “엇, 진짜네?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대?!”

 

 지휘관은 간단하게 먹을 만한 걸 사와야겠다며 도로 휴게실을 나섰다. 오늘도 서류 작업을 하면서 먹을 생각인가. 굶겠다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만, 식사시간만큼은 좀 쉬어주면 좋을 텐데. 리브도 다시 뛰쳐나가는 뒷모습에 대고 먹으면서 일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어쨌든 상황은 일단락된 거 같으니, 슬슬 시급한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신이 평상시 하던 일이 뭐가 있었을까. 그 중에 뭘 하면 기억을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될까.


 * *


 물론 일이 생각처럼 잘 풀리진 않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생긴 문제로 그럴 줄은 몰랐다만.

 요약하자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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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 4 영탄회성 히든 3) '함정에 빠지다'

*2. 기념일 이벤트 칠월 칠석 2) '달의 밤' 리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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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착각이 아닐 것?임


※※ 아카 글쓰기에 각주 기능이 없는 거 같아서

 인용 대사는 *(넘버링)으로 처리함.



 너무 간만에 글 잡아서 겁나 오래 걸리는 중ㅋㅋㅋㅋ

 나름 장편인데 이거 언제 완결내지...


 여튼 혼자 오만 걱정은 다 하면서

 한 마디씩 틱틱거리지 않으면 못 배기는 리의 츤데레력을 즐겨주세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