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


힘없는 목소리가, 쇳물을 들이킨 듯이 거친 곡조로 귀를 파고든다.

눈을 돌린 곳에는 어린 아이가 시체들 사이에서 곧 꺼질듯한 빛을 눈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팔이 있어야할 부위는 기계로된 단면만을 드러내며, 묽은 핏방울이 기름냄새 같은 것을 풍기며 차디찬 돌바닥에 스며들었다.


이미 정신은 없을 터였다.

나는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개를 돌렸고, 뒤에서는 이제는 기계음을 닮아가는 아이의 목소리가 뚝뚝 끊겨서 들려왔다.


애처롭게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비명은 전장을 뒤덮은 검은 연기 사이로 흩어지고, 곧 완전히 고개를 떨어뜨린 아이의 곁에는 시체의 침묵만이 남았다.



"젠장... 젠장...."


복부에 꽂힌 검날에서부터 내장이 꿰이는 고통이 신경을 타고 흐른다.

이럴 때만큼은 통각 시스템이라는게 원망스럽다. 기왕 사람의 몸을 버린다면, 고통 같은 불필요한 기능도 함께 버렸으면 좋았을텐데.


지휘관의 생사도 모르겠고, 이 통각 시스템은 어떻게 끄는건지도 모르겠고, 시야는 붉고 머리는 아프고.


아아 참 빌어먹은 세상이다.


그리 외쳐도 돌아오는 말은 없다.

지랄맞게 인간에게 가혹한 세상이란 매일을 불러도 답이 없는 어머니의 이름 같았다.


터벅터벅, 걷던 중에 침식체 몇 마리가 거리를 어슬렁거리는게 보였다.

고통 탓에 꽉 쥐던 검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틱, 티딕-


침식체들이 고개를 돌렸다.

붉게 물든 시야로, 팔에서는 피부가 벗겨진 틈으로 붉은 스파크가 튀어올랐다.


"젠장... 젠장....."


욕짓거리를 뱉을 때마다 검이 꽂힌 배가 아파왔지만, 그럼에도 한탄하기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침식체들이 이쪽을 보고는 크게 손을 들었다.

고장이라도 나버린건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속도가 느려터졌다.


끊임없이 두개골을 쪼아오던 고통이 그 때만큼은 살짝 개운하게 느껴졌다.

속에서 끓듯이 오르던 분노를 날이 다 무뎌진 칼날에 담았다.


씨발, 따지고보면 다 침식체 탓이었다. 그 빌어먹을 퍼니싱만 아니었으면, 그랬다면 내가 이딴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당장 뛰어올라 가장 앞에서 다가오던 침식체의 칼로 쪼갰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전투태세를 갖추는 침식체. 전장을 떠도는 매캐한 탄내가 몹시도 거슬렸다.


대충 마구잡이로, 분풀이 하듯이 검을 휘둘렀다.

픽픽 쓰러져나가는 침식체들의 모습은 꽤나 후련했다.

전투용기종이 침식당한 것은 아닌건지, 지친 몸으로도 침식체 무리를 쉽게 도륙낼 수 있었다.


"하, 하하... 평소에도, 이렇...게 쉬우면, 얼마나 좋냐....?"


입가를 뻐끔거리며, 침식체들의 시체 위에 그런 한탄을 뱉었다.

골통을 뒤흔드는 고통이 다시금 나를 괴롭혔다.


"시발, 지휘관은... 지휘관은....."


머리를 뒤흔드는 고통 속에서 어렴풋이 지휘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맞다. 지휘관은 옛저녁에 찢겨죽은지 오래였다.


바보같이 착한 여자였는데, 몇 번 같이 작전하면서 참 이런 전장에 어울리자 않는 사람이다 싶었다.

동생을 찾고싶다며 떼쓴 나를 위해 직접 작전안을 통과시켜준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보이던 헤실헤실한 웃음은 작전지역에 투입되자마자 후방에서 기습한 침식체 한 마리가 갈기갈기 찢어 핏빛으로 물들였다.


"존, 레이...."


옆에는 존이랑 레이도 있었다.

레이는 약간 어렸고, 존은 나보다도 나이가 있어보였다.


레이 그 녀석은 엄마가 버린 자식이랬나.

기구하게 살아서 구조체가 된 이후로도 인생 다산 애늙은이마냥 죽상인채로 돌아다니는게 꼴뵈기 싫었다.

존은 전쟁통에 죽은 아들이 생각나는지 그런 레이를 알뜰하게도 챙겨주는 아저씨였는데, 옆에서 보면 사춘기온 아들과 아빠 같아서 한 편의 시트콤이라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파직-


"아아악!!"


머리를 창으로 꿰뚫어버리는 듯한 고통이 뇌를 울린다.

고통에 대한 반사로 벌떡 일어나서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보니, 동생을 찾아왔었다.

빌어먹을 동생놈.


젠장 공중정원에 떼를 써가며 허가받은 수색작전인데 이 인생에 도움안되는 새끼는 도대체가 꼬리도 보이지가 않는다.

형이 직접 발을 걸었으면 마중이라도, 나와야지. 씨발새끼....



억지로 배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아귀는 인간을 뛰어넘는 힘으로 단단하게 그 검을 쥐고 있었다.


도저히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푹!


"아아악!!! 씨발 진짜!!!"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가 청각센서를 통해 의식으로 전달된다.

구조체란게 숨을 쉴 필요도 없는데 도대체 이딴 기능은 왜 넣어놓는지 모르겠다!


원래도 붉은시야가 한층 더 붉게 물든다.

이마를 손등으로 쓸어넘기자 이제는 진득해진 순환액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조금만 웃고다니지 그래요? 그러면 그 까칠한 성격도 좀 봐줄만 한 것 같은데."



하, 왜 갑자기 이런 기억이나 나는지 모르겠네.

고통어린 머릿속에는, 그런 끔찍한 아픔을 중화시키려고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런 기억이나 내보내보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면 그냥 주마등일지도.


지휘관. 이미 죽어버린 그녀는 자주도 내 뺨을 잡고 미소를 그려봤다.

이미 망해버린 세상 해피하게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랬나? 별 해괴한 논리를 들먹여 맨날 제 멍청한 웃음을 남한테 전파하려하던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니 이딴 작전을 진지하게 받아준거겠지.


레이도, 그 특유의 나라잃은 표정을 그녀 앞에서는 누그러뜨리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씨발."


속이 안좋아졌다.

말그대로 찢어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그대로 기억에 덧씌워졌다.


그대로 길을 나섰다. 이런 개같은 기분을 한시라도 빨리 떨치고 싶었다.

지휘관을 지키지 못했다. 나란 놈은 구조체가 되어서도 덜떨어진 놈이었나보다.



목은 아프고, 몸도 아프고, 안아픈 곳이 없는 전장.

동생은 코빼기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존은 나와 레이가 빠져나갈 길을 막다가.... 죽었겠고.

레이는, 레이는. 레이는?


레이는.... 아아 머리아파.



지금은 그냥 동생이 찾고 싶었다.

형을 더럽게 고생시킨 동생의 낯짝을 보고, 다시 머리를 꾹꾹 눌러주고 싶었다.


엄마ㅡㅡ 


어린아이의 노랫소리가 천천히 울린다.

어릴적의 동생은 가수가 되고 싶다 했었지.

도저히 못들어줄 정도로 음치라 고통스러웠지만.


그리고 나는 그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끝까지 들은 후에 냉정한 평가를 내려줬었다.



"그럼 엄마는 다시 못보는거야?"


"엄마, 자주 노래 들었잖아. 엄마는 음악이 좋다고 했어. 악기는 돈이 없어서 못하니까. 노래를 아주 잘 부르면, 엄마가 어느날 다시 우리를 보러오지 않을까?"


나는 말없이 동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눈이 내리는 추운 길바닥 위에서, 나는 어린 동생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다.


주린 배는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은지가 사흘이나 지났다 고했고, 그 탓에 나는 평소 좋아하던 락보다는 잔잔한 노래를 불렀어야 했다.


아무도 남지 않은 문명의 잔해 속에서 나는 고향이 그리운 동생에게 자장가를 들려줬다.

생각해보면, 아는 잔잔한 노래가 그것밖에 없었다. 밤이 되면 자기싫다고 칭얼대는 형제에게 머리맡에서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


불길이 올라오지 않았던 고향집에는 밤이면 밤마다 자장가가 곁에서 울려퍼졌다.

목이 매이고 텁텁했던 탓에 노래는 내장을 쥐어짜듯이 불렀어야했고, 그래서인지 원래보다 훨씬 구슬픈 곡이 되어버렸다.


동생은 노래가 끝나고, 내 무릎쯤에서 졸린지 반쯤 감긴 눈을 끔뻑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역시, 노래는 형이 해야겠네..."


새근새근 잠든 동생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짐했다.

좋은 아들은 되지 못했어도, 좋은 형은 되고 싶다고.

나는 몰라도, 동생만큼은 편하게 살게해주겠다고.


혹여나 깰까 다 쉰 목으로도 계속해서 동생의 귓가에 자장가를 불렀다.

눈폭풍에 파묻힌 채로, 계속해서 노래부르며... 동생만큼은 신이 앗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더 품 속에 끌어안았다.





"레이....."


"어딨니.....?"



돌아와줘 동생아.

밤중에 몰래 내 과자 빼먹은 것도, 말도없이 멋대로 구조체 시술을 받아버린 것도, 엄마가 보고싶다며 칭얼대던 것도 다 괜찮아.

다친 곳 없이 무사히만 돌아와주렴. 그냥 형에게만 돌아와주렴.



엄마가 보고싶다던 너에게 짜증을 내서 미안해.

나도 사실은 엄마가 보고싶어. 엄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지만, 어린 너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어.

엄마가 보고싶어. 엄마가 해준 아침이 먹고싶어. 자랑스레 네가 받아온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기뻐하는 엄마가 보고싶어. 방을 어지럽힌 우릴 혼내는 엄마가 보고싶어.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에 들고 싶어.


엄마. 엄마는 어디로 가버린거에요?

왜, 우리를 두고 떠난거에요? 레이를 엄마가 데려간거에요?


그러면 다행이에요. 레이는 항상 엄마가 보고싶다고 그랬잖아요.

동생도, 엄마를 보면 좋아할거에요.



삐그덕, 삐그덕ㅡ 치직....


"지....휘....관.......?"


지휘관이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동생이, 널 참 좋아했는데.


존도 레이도, 너도 내게는 과분한 사람들이었어.

짜증밖에 내지 않던 내게, 항상 웃어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이제서야 말하는건데 말이야.


사실, 나는....


웃는, 네가.........







푹!



"지휘관. 침식체를 한 기, 처치했습니다."


"이건... 공중정원의 식별번호네요. 결국, 이런 결말이라니."



"잠시, 명복을 빌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