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병원에서는 비명소리와 애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는 곁에서 눈물흘리는 가족의 슬픔으로 뒤덮였고, 원래도 좁은 병원은 낡은 벽에 기대앉은 쇠약한 환자들과 울고있는 가족으로 가득했다.


의사는 어둑한 조명들 사이로 이동식 침대를 밀며 뛰어갔는데 침대에서부터는 붉은 피가 잔에 넘치는 와인처럼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작동하는 생명유지장치와 심박측정기가 한데모여 차가운 합주곡을 연주했고, 소리로 가득찬 병원은 상장을 달 어린 상주들의 눈물로 가득 찼다.

낡고 축축한 벽, 슬픔이 스민 숨결로 가득찬 불쾌한 공기, 꺼질듯 깜빡거리는 조명과 창문 밖으로는 들어오는 맑은 햇살.

나는 일부러 누렇게 변색된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고, 병실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병원에는 투명한 벽이 있었다.

열악한 병실에 꾸역꾸역 몰려들어간 모든 이들의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마음에 가득한 슬픔에는 타인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염없이 울고, 흐느끼며 병실의 모든 인원은 참혹한 현실과 목도한 죽음을 억지로 삼켜내야만 했다.


나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병실이 조용했다. 수많은 울음소리들은 귀로는 들어와도 의식까지 닿을 수는 없었다.

눈 앞에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초첨없는 시선으로 병실의 천장을 더듬고 있었다.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은 이따금 작게 열렸다 닫히며 어떠한 말을 뱉으려는 듯 희미한 신음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나는 구조체로 개조한 내 손이 그에게는 차갑게 느껴질까 걱정되었다.

그가 혹여나 부드러운 인조 피부 아래의 강철의 차가움을 느낄까 불안했다.


하나 남은 가족은 어느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추억에 묻어둔 채, 황금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끝내 마지막 숨을 꺼트리려고 하고 있었다.

가늘어진 팔뚝은 그가 겪었을 고통의 기간을 나타내고 있었고, 초점없는 눈은 영혼을 공격하는 잔혹한 바이러스가 남긴 전쟁의 상흔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주름진 손을 쥐었는데 혹여나 그것이 그에게 충격이 갈까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런 동작이 의미없게도, 그는 이미 자신의 손을 붙잡는 손자의 감촉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가늘게 떨리는 숨소리와 얕게 뛰는 맥박만이 그의 생명을 증명할 뿐, 곧 끊어질 실처럼 그의 생명도 이미 불꽃을 다한 상태였다.


눈물이 차올랐다.

기계로 된 몸은 인간의 의식과 감응해 구조체에게는 쓸모없는 눈물의 용도를 증명하려 했다.

막막한 가슴이 그윽한 슬픔으로 가득하고, 흐느끼고 우는 소리가 안개의 저편에서 넘어오듯 흐릿하게 들려왔다.


영광의 시대에 끝자락에서,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근대 인류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아들과 아내를 잃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구조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슬픔을 쏟아냈다.


고난을 지나며 강인해진 그의 정신도 질병 앞에서는 무력했다.

뇌를 갉아먹는 바이러스가 그의 영혼을 더럽혔고,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추억은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잿더미처럼 죽어가며 흩어졌고, 정신은 태어났을 때로 태엽을 되감듯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마지막 남은 손자의 얼굴을 잊어버린 후에야, 나는 억눌러왔던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병실을 나오며 터져나온 울음, 달빛을 받아 반짝이던 눈물들이 전부 그가 볼 수 없는 곳으로 흘러내려갔다.

아이와 같았던 강인한 할아버지께, 낫지 않는 병을 나을 수 있다며 거짓말하는 것은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법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흐느낌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부쩍 수척해진 손을 내 이마에 대자, 기계보다도 차가운 손이 죽음의 전조를 나타내고 있었다.

텅 빈 눈으로 누운 할아버지의 심정을 상상하며, 애써 괴로운 죽음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심박수를 측정하는 기계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단음의 기계음을 흘렸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처럼 되돌아간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일종의 여행처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가만히 한 생명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흐느끼던 소리가 멈추고 누군가가 나가면, 다시 금방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병실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새하얗게 질린 눈이 수많은 중상자들 가운데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면 금세 맑은 눈물이 투명한 동공에서부터 흘러나왔다.


기계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텅 빈 눈은 이미 옛저녁에 생기를 잃어버렸다.

막막하던 가슴에서는 마음을 가득 채운 슬픔이 일순간에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나도 병실에서 곡하는 다른 이들처럼 슬픔을 논했다.

그 사이를 오가는 의사는 눈밑에 내린 그늘을 비벼 지워내려 해보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커튼을 이루는 섬유들의 틈새로 서늘한 달빛이 어머니의 손길처럼 등을 감싸안았다.


이제는 사자를 덮은 수의가 기계의 눈물로 물들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야 터트린 울음은 그날 하룻밤을 꼬박새고도 시체를 끌어안은 채 이어졌다.


밝아오는 여명이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렸고, 영원히 어제에 머무르게 된 영혼의 껍데기에도 한줌 햇살이 내려앉았다.







사막을 달리던 구조체는 문득 드는 의문에 걸음을 멈췄다.

그의 몸을 움직인 것은 생물이라면 있을 가장 아래의 본능이었다.

그는 모두가 그렇듯이 살고싶었고, 그러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그는 자신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봤다.

황량한 황무지는 매초 휘몰아치는 바람이 모래알갱이들을 쓸어냈다.

참을 수 없는 고독감과 자기혐오가 죄책감을 타고 올라왔다.


가쁜 숨을 내쉬던 구조체는 자신의 손을 보며 한 가지 생각했다.


이런 삶은 의미가 있을까?


그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을 관통한 질문은 비겁자의 자기성찰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천천히 옭아매기 시작한 죄의식이란 가시덤불이 따끔하게 피부를 파고들고 있었다.


그는 어젯밤에 죽은 구조체가 침식체가 되어돌아온 사실을 보았다.

황금시대에 만든 B급 좀비영화에서처럼, 이지를 잃은 괴물이 친구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손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깔깔대던 친구는 눈과 상처에서 피대신 붉은 빛을 흘리며 다가왔다.


밤에 벌어진 사투는 그에게있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이었다.

흐린 달이 일렁거리던 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의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떨리는 검끝에서 피를 닮은 순환액이 배어나오고, 초점없는 눈을 한 친구는 그토록 사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죽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젯밤의 대규모 습격으로 기지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고, 생존자는 사망자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살아남은 것은 행운일까? 어제 죽은 이들이야말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테니 진정 축복받은 것이 아닌가.


구조체로 살아온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갔다.

지상에서의 분투는 어떤 자그마한 성과조차 올리지 못했다.

퍼니싱의 군세는 여전히 강맹했고, 전선을 유지하는데도 하루에 몇 백명씩 죽어가는 날이 허다했다.


어제 죽은 구조체가 침식체가 되어 돌아오는 장면, 이제는 붉은 빛은 지긋지긋했다.

빨간색만 보면 이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고통은 길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해, 응급처치기술을 배웠다.

그 기술로 살린 사람은 고통 속에서 나를 원망하다 죽어갔다. 그들에게 삶이란 영원한 고통이었다.


난 이제 막 입대하던 당시의 내가 기억난다.

사명감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 아프다던 구조체 수술을 군말없이 자진신청한 용기있던 내가 기억이 났다.

그 파릇파릇한 신병의 신념은 지상의 흙바닥을 굴러다니며 마모되고 빛바래졌다.


이제는 탈영병인 내가 과거의 나를 본다.

걸어온 길은 황무지, 매일 눈 앞에서 죽어간 사람의 환영이 꿈에 떠오른다.

구조체도 꿈을 꿨다. 그들의 의식은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꿈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되찾고 싶다던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드넓은 초원에 풀잎을 배게삼아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과 다를까?


그의 불꽃같던 열정은 침식체의 파도 속에서 사그라들었고, 사명감은 그저 살고싶다는 원초적인 일념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사명감에 불타던 신병이 아니었다.


이제는 반파된 기지에서 빠져나오기 전, 퀭한 얼굴의 지휘관이 휘하 구조체에게 전달하는 말이 기억난다.

침식체의 제 2파가 몰려온다. 기지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담담하게 기지의 모두에게 죽음을 선고하던 그 지휘관은 피로에 절여저있어 말에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도망친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는 살고싶었을까. 다 식어버린 그의 마음에도 이런 비루한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까.

도망가도 공중정원의 추격이 올 가능성은 낮다.


어차피 기지는 침식체가 생존자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지원요청을 보내도, 구원 부대가 오기 전에 기지의 모두는 몰살당할 것이다.

침식체의 파도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덮어, 죽음으로 그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 군복을 입고 복무신조를 읊던 신병이 아른거렸다.

언뜻 보면, 자신과는 닮지 않았다. 그 당시의 찬란했던 마음은 이미 짓밟혔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돌아가고 있을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는 그들과 묻힐 것이다.

구조체 하나만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


피로한 다리를 끌어 돌아가려함은 왜일까.

그의 성찰은 끊임없는 질문이 되어 그를 괴롭혔다.

죄악감은 피로와 체념 속에 희석되었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관성이었다.


내가 도망친다면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구조체는 먹거나 마실 필요도 없고, 개조하지 않은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힘을 가졌다.


침식체를 피해 도망다닌다면, 난민들의 무리에 합류한다면.

그가 살아남을 미래는 기지로 발을 돌리지 않는다면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의 의미가 있을까.

그의 질문은 이제 죽음 대신 삶을 향했다.


떠오르는 해를 피해 밤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던 자는, 햇살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전조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보는 해일 것이다.

그에게 더 이상 내일을 누리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인이 되고부터, 그에게 행복은 없었다.

끝없는 전투가 그를 망가뜨렸고, 파릇한 신병은 이가 빠진 노병이 되었을 뿐이다.


침식체를 피해 도망다니는 삶에 무엇이 있을까.

그는 처음에 침식체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맞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가 살아남는 미래는 모두 침식체에게 굴복한다는 뜻이었다.

지상을 휩쓰는 붉은 파도를 자연재해 삼아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이어가는 연명일 뿐이다.


그는 인간이었다.

나는 인간이었고, 그건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묘가 세워질 곳을 깨달았고, 발걸음에 깃든 잡념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는 죽음을 향해 달렸다.

그가 처음에 군대에 입대했을 때처럼, 찬란히 빛나는 용맹한 군인처럼.


그는 그 순간 처음 사명감을 품고 마신 청량한 공기가 기억났다.

희망이라는 여과기는 황무지의 먼지섞인 공기도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 도망친다면 영원히 도망칠 뿐이다.

그렇게 연명한 세월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삶을 사랑했다.

부식된 신념 속에서도, 그는 지구를 되찾고 싶었고 삶을 사랑했다.

고통 뿐인 삶일지라도 그에게는 어떤 형태의 죽음보다도 사랑했다.


죽기 위해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째서 이다지도 가벼울까.

체념이 아닌, 그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방랑자의 마음을 가졌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다시 한 번 그 때의 신병이 되어있었다.


오랜 세월이 단절한 과거와 이어졌다.



해가 뜨는 동쪽, 새벽녘 떨어지는 이슬보다도 빨리 붉은 군세가 기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구조체의 우월한 눈에는 그 죽음이 보였다. 동시에, 자신과 그 군세 사이에 꺼질듯한 불씨처럼 위태로운 기지가 보인다.

전우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눈이 피로에 찌들지언정 무기를 든 손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벅찬 마음에 힘껏 기지를 향해 달렸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군인으로서 죽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무기를 쥐었다.

그것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이기도 했으며, 전우의 곁에 묻힐 각오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체념이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도 그는 희망에 차있었다.

그는 잿더미로 변해버린 차가운 신념에 불을 지폈다.

마지막 불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죽음은 의미없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의미없을지언정, 자신의 죽음만큼은 그 삶보다 의미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전우를 위해, 인류를 위해.

추모비에 새겨질 자신의 이름을 상상하며, 나는 붉은 파도가 들이닥치는 기지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