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록 역사에서, 기적을 담은 기록은 매우 드물었다. 비록 고증은 어렵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존재를 믿고 기적의 발현을 갈망한다.

기적은 인류에게 미래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희망, 즉 일종의 위안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은총을 바라는 한, 언젠가는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그리고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

가지고 돌아가.


세상은 고요하고 난초는 만개했다.



지상

반이중합타워


공병부대원

모든 기기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과학이사회 구성원A

알겠습니다, 각 소대는 과학 이사회 구성원과 함께 매개변수를 기록합시다.


과학이사회 구성원B

알겠습니다.


과학이사회 구성원C

알겠습니다.


...

통신 채널에서는 탐사 소대원들 간 소통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얼마 전, 대행자의 전투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미치고 있다.

반이중합탑과 청정구역에서도 이전 전투의 이상 변화가 발생했다.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청정구역도 더 이상 청정하지 않다고 일침을 받은 듯했다. 인간에게는 한때 아발론이 있었던 것 같지만 순식간에 다시 신기루가 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동안 거주하던 주민들은 대피해 큰 피해는 없었다는 점이다.

공중정원은 반이중합탑 탐사 연구에도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해 인류가 자력으로 '청정지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탐사 임무를 보조하기 위해 동행했다.



하루 전.



하산

이론적으로는 자네에게 며칠의 휴가를 준 후에 임무를 부여해야 하네만...


니콜라

내가 설명하지. 쉽게 말해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승격자 루나 일행과 잠시 협조를 했지만, 이를 빌미로 삐딱한 마음을 품으려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나와 하산은 근래 네가 이들을 멀리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산

맞네. 하지만 이런 건 사소한 문제지. 이번 임무는 이전보다 비교적 수월하네. 마음 편히 먹게.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뒤돌아 회의실을 나서기 전 니콜라 사령관은 소리쳤다.


니콜라

잠깐, 【지휘관 이름】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꼿꼿이 앉아 있는 그의 얼굴은 각도 때문에 그늘에 가려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니콜라

예전에 루나와의 협력은 특수한 상황에서의 특별한 수단이었을 뿐인데,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겠지?


그의 말투는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 묻는 듯 덤덤했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공병부대원

【지휘관 이름】, 【지휘관 이름】...


공병부대원의 말은 생각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미안합니다, 잠시 멍때리고 있었네요】


공병부대원

괜찮습니다. 오늘 일 거의 끝나가는데 일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길래 지금 뭐 먹을지 얘기하고 있었지요.


청정구역이 더 이상 청정구역이 아니어도 전투가 끝난 뒤 이곳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도는 것에 이미 싫증이 났다.


과학이사회 구성원B

그야 만두죠. 여기 만두 맛있게 만드는 집이 있는 걸로 아는데 사장님 계신지 모르겠네요.


과학이사회 구성원A

저녁에 만두 먹는 법이 어딨어요. 면이나 먹읍시다.


머나먼 태양이 점차 서쪽으로 지고, 머지않아 금빛 석양이 하늘의 장막을 드리울 것이다. 탐사대원들의 잡담을 들으며 짧지만 평범한 평화를 느낀다. 비록 이 평화가 허망함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진실이다.

불현듯 하얀색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갈 조각에 뿌리를 박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흰색 페인트 한 방울을 칠한 유화와 같았다. 아무래도 마치...


공병부대원

【지휘관 이름】, 뭐 먹을까요?


【난초?】


공병부대원

예? 난초도 먹을 수 있습니까?


【아니, 저기에...】


【난초가 있는 것 같은데요】


빠른 걸음으로 흰색으로 칠해진 근처에 오니 확실히 난초였다.

생명의 강인함은 언제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폐허와 잔해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몸 전체가 순백색이고, 5개의 꽃잎이 있으며, 가까이 있으면 은은한 향이 난다.


공병부대원

이런 곳에 난초가 있을 줄이야, 음......이 품종은 매우 희귀한 품종인 것 같은데, 이름이 뭐더라?

아, 설영난입니다!


【설영난?】



??

...약...속....


어떤 장면이 휙 지나간 듯했다.


공병부대원

참, 우리 아이가 이런거 좋아하는데 저번에 마침 봤었습니다.

이것은 인공적으로 재배된 난초로 보통 5개의 꽃잎이 있고 개화기는 1~3월 정도이며 오엽설이라고도 합니다. 관상가치는 높은데 희귀해서 지금은 보기 드물다고 하죠.

하지만 이건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죽을 것 같나요?】


공병부대원

네. 이런 종류의 꽃은 키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여기에 한 송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이라...


【미안합니다. 이따가 회식은 여러분 먼저 가세요】



귀신에게 홀린 마냥, 이 난초가 여기서 묵묵히 죽게 두고 싶지 않아 근처에서 수소문 한 끝에 겨우 식물 이식 상자를 빌려왔다. 난초를 상자로 옮긴 뒤 주둔지로 돌아왔다.

투명 유리덮개를 씌운 난초를 보며 그제야 그간의 행동을 떠올리자,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단지 이 꽃이 이렇게 죽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그걸 보면 무언가 떠올라...…

머릿속에서 현기증이 일었다.


【안 돼!】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눈가는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일을 마쳐서 피곤한 줄 알았는데, 이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쿵.



호수 바닥에 있는 듯 몸이 눌려 변형되고 수많은 화면이 사방에 나타났다가 물빛이 되어 스쳐 지나갔고, 귓가에선 부슬부슬한 소리가 들릴듯 말듯,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비명, 총소리, 달리는 소리.

여자 아이의 울부짖음, 먼 곳의 폭발, 산발적인 빗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속삭임.


"안녕"



바람소리와 함께 갑자기 눈을 떴는데, 먼저 누렇게 말라버린 하늘 먼 곳을 바라보니 공기 중에 모래가 흩날려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고, 끝까지 바라볼 수 없어 옆을 바라보니 바위에 풍화된 흔적이 뚜렷했다. 자신이 지금 황야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너 드디어 깨어났구나.



뒤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더니 재빨리 몸을 돌렸다. 뜻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루나?!】


재빨리 양손으로 무기를 확인했다. 총과 비수는 사라져있었고, 단말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자신은 비무장 상태다.

반이중합탑 인근 야영지에 있어야 할 자신이 영문도 모른 채 의식을 잃었고, 다시 깨어나니 이름 모를 황야에 버려졌는데, 그 곁에는 목적도 알 수 없는 대행자가 있으니 이런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내가 여기 나타났지?】


【너...날 납치했어?】


루나

널 납치한 건 아니고, 네가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길에서 누워있는 널 만날 줄 몰랐지.


루나는 손에 든 작은 상자를 들어 보이며 신호를 보냈다. 그녀가 말한 '내가 해야 할 일'이 그 상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그녀의 말이 진실일까? 만약 그녀가 나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잠재적인 적이 있다는 뜻인가?


【그래서…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줄곧 내 옆에 있었어?】



루나

응.


대행자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웃음은 결코 놀리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미소이다. 심지어 약간은…...온화함이 느껴지는?


【...?】


무언가가 잘못되었고, 묘한 위화감이 가시질 않는다.

루나의 말이 진실인지는 차치하고라도, 눈앞의 루나는 자신에게 악의가 없어야 하며 그렇지 않았다면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워】


루나

오랫동안...아니, 오래전부터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지.


【그럼… 우리 여기서 헤어지는 거야?】


눈앞의 대행자는 말 대신 알 수 없는 웃음만 짓고 있었다.

몸이 느릿느릿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루나

폭풍이 곧 다가올 거야.


【무슨 폭풍?】


루나

말 그대로.

최근 이 황야의 기후는 매우 불안정하지.

조금 있으면 폭풍이 올 텐데, 빠져나오지 못하면 너무 위험해.

나를 따라와. 내가 널 데리고 나갈게.


쌩쌩 부는 바람은 루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헤어진다면...들이닥치는 폭풍과 미지의 납치범을 마주하게 될까.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는 루나에게 저항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절하는 것도 가능할까?】



루나

넌 어때?


역시 거절할 수 없다...실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쓴소리 먼저 할게】


【공중정원은 분명 이미 나의 실종을 알아챘을 거야】


【나중에 어디를 가게 되든,】


【조만간 수색구조 부대를 만나게 될 거라고】


루나

그치만...구하러 온 사람들은 나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데.


루나는 재미난 표정을 지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렇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