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는지 루나의 입에서 나오는 폭풍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 시간쯤 걸어 들어가자 겨우 폐촌이라 할 만한 곳이 나타났다.

촌락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암벽에 의지한 몇 개의 천막으로 둘러싸인 공터. 이곳은 일종의 집결 캠프에 불과하다.

캠프 안에 사람이 살았다면 인간의 생명력에 감탄했을 법도 하지만, 무너진 집, 공기에서 스며든 녹과 곰팡이 냄새, 공터에서 이따금 피어오르는 잡초 몇 송이가 잊혀진 세월을 알리고 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와야 하지?】



루나

지금 너의 속도로는 폭풍이 오기 전에 폭풍지역을 벗어나기 어려워.

여기에 교통수단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서 왔어.


루나의 말대로, 이 캠프에는 확실히 차가 한 대 있었다.

그러나 차체에 쌓인 먼지와 엄청난 변형으로 인해 이 물체가 인류 과학기술 역사상 중요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땅에 묻혀야 할 산업폐기물이 된 것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어느 영화 세트장에서 차를 빌려온 것처럼 보이는데...】


【진짜 쓸 수 있는 거야?】


루나 

음...


루나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루나

아니면 내가 밧줄을 찾아 널 묶고 목적지까지 날라다 줄까?


【뭐?!】

【절대 안 돼!】


루나

그럼 이 차가 아직 쓸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근처에 다른 차는 없어.


이 '오래된 차'를 검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제서야 이 차량이 엄청난 스타일로의 개조를 거쳐 공중정원에서 생산된 표준 오프로드 차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모델과는 좀 다르지만 확실히 공중정원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인다.


【구형 모델인가...】


루나

상관없어. 아직 쓸 수 있어?


【조금 고치면 되긴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야】


배선에 문제가 있지만 간단히 정비하면 사용할 수 있고, 전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차량 수납함에 있는 태양광 충전판을 통해 최대한 많이 충전할 수 있는데...


루나

즉, 해가 진 뒤에야 출발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


루나

그럼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자.



【그나저나...】


인간은 이때 몸의 절반을 보닛에 파묻은 채 차량 내부의 배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대행자는 근처의 돌에 앉아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어?】


루나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손에는 항상 상자가 들려 있었다.


루나

궁금해?


【당연하지】


【네가 하려는 일은 그 상자와 관련 있어?】


루나

맞아.


루나는 웃었다.


【안에 설마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슈퍼 무기가 있는 건 아니겠지?】


루나

상상력이 이렇게 풍부한 줄은 몰랐네.


【...】


루나

지금의 나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런 슈퍼 무기는 필요 없어.

그리고 내 관심을 돌리려고 할 필요 없어, 네가 아무리 구조 신호를 보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루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걸렸네】

루나

훗.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루나

숨기려고 할 필요 없어. 줄곧 너를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루나

차는 벌써 다 고쳤지?

아까부터 계속 차에 있는 통신 장치를 이용해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잖아.


【아무튼 해 봐야지】


루나

걱정 마,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그럼 고맙다고 말해야 되나?】


루나는 웃으며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구조신호를 보낸 것이 발각됐으니 수리하는 척할 필요도 없다. 이제 밤에 출발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보닛을 닫고 차에서 눈을 떼려던 찰나……


【!!】


한 줄기 한기가 척추를 타고 뒤통수로 기어올랐다. 눈에 띈 것은 일련의 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그것은 공중정원에서 일부 물건을 생산할 때 인쇄하는 정보로, 출하일과 차수를 나타낸다.


【(어떻게 이럴 수가...)】


...

바람소리가 나더니 지평선이 석양을 삼키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자】


운전석에 도착해 출발을 준비하던 차에 조수석에도 뜻밖의 모습이 앉아있었다.


【나는 네가 앞에서 날아서 길을 안내할 줄 알았어】



루나

오랫동안 비행하는 것도 피곤해.

그리고, 인류 문명으로부터 동떨어진 이 황야에서, 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울 거야……너는 차 안에서 나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


【인류 문명과 동떨어져있다라...】


차량 부품에 그 번호가 때때로 머릿속에 나타난다.


【참,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어】


【너 여기 잘 알아?】


루나

...


루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이상한 위화감은 이때 실낱같은 해답을 얻었지만 확신하기 어렵다.

지프차는 시동을 걸고 버려진 야영지를 천천히 떠나 황야를 향해 달렸다.

어둠이 뒤덮은 세상에서, 차량이 움직이는 소리와 울부짖는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ㅡㅡ한참 뒤에야 인간이 뭔가를 떠올린 것 같다.


【(차량 내 전조등을 킨다)】


연황색의 불빛이 차 안의 좁은 공간을 밝게 비추었다.


루나

사실 불 킬 필요 없어.


소녀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루나

난 이미...


【알아】


【"두려움" 같은 이유는 필요 없고】


【밝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야】


루나는 가볍게 웃었다.


루나

지금 혹시 수석의 수업 시간이야?


【듣고 싶다면야】


루나

그래도 됐어, 하지만…고마워.


【"오래전부터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지."】


루나

예의는 지켜. 그리고, 내 말 따라하면 안 돼.


루나는 조수석에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인간에게 향했다.


루나

나는 대행자야. 정말로 이렇게 나한테 다가올 거야?


【너는 날 해치지 않겠다고 말했어】


루나

그렇게 쉽게 날 믿는 거야?


【직감이지】


【네가 전에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루나

넌 정말이지...


루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몸이 꼿꼿이 세웠다.


【왜?】


루나

폭풍이야, 너무 빨라. 전속력으로 가자.


잠시 동안 자기 앞의 세상은 바람과 모래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았고, 자갈과 자갈은 랩소디를 연주하며 미친 듯이 차에 부딪쳤다.

차량을 다루기 너무 어려워졌다. 더 나쁜 것은 뇌가 약간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감각은 마치...전에 캠프에서 쓰러졌을 때랑 똑같다.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루나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것이었다.


루나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