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다시 온몸을 감싸고, 흐릿한 장면과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허상과 현실이 뒤엉켜 기억을 어지럽힌다.

뒤죽박죽인 소리가 지난번보다 훨씬 분명해진 것 같다.


??

지...휘관...


▆▄▇▆▃▄▁▆█    

너희 먼저 가있어. 내가 뒤따라 갈게.


???

기존 검사...이상 없음...


▆▄▇▆▃▄▁▆█    

잘 보살펴야▆▄▇▆▃▄▁▆█


???

...공중정...한 걸음 더...제안...


▆▄▇▆▃▄▁▆█    

언니!


...


루나?

【지휘관 이름】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야, 너도 알잖아, 네 힘을 내게 좀 더 빌려줘……


...


【으...】



루나

깨어났어?


눈을 떴지만 낯선 천장이나 죄수를 태운 마차는 보이지 않았다. 루나는 바로 옆에 앉아서 담담하게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정신 잃고 있었지?】


루나

두 시간 정도.


주위의 밝기에 점차 눈이 적응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는 전에 약간의 비가 내린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공기는 풀 냄새와 흙 냄새, 녹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멀리서 바라보니 관람차의 윤곽이 보였다. 이곳은 버려진 놀이공원이었다.

자신은 낡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소파 앞에 낡은 철제 양동이 하나가 놓여져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불을 피워 따뜻하게 유지해 준 것 같았다. 루나는 근처 계단에 앉아 눈살을 찌푸린 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방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니?】


루나

...

여기는 우리 둘뿐인데, 잘못 들었어.


루나의 어조는 말할 때 대부분 동일하게 밋밋했지만, 이 문장에서는 경직된 느낌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


지금은 아직 이런 비밀을 캐낼 때가 아니다.


【폭풍은?】


루나

이미 그 지역을 떠났어. 여기는 폭풍이 없으니 안심해도 돼.


그동안 어색했던 태도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이번에는 루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우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루나

날아서.



【설마 밧줄로...】

루나

응?


붉은 눈동자가 이 말을 끊었다.


루나

실례를 범했지만, 이번에는 널 용서해줄게.


【고마워】


이유 없이 의식을 잃었던 탓인지, 차가 전복될 때의 충격 때문인지 아직 몸에 힘이 없다.

폭풍에 쫓길 걱정 없이 낡은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별하늘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루나

뭐가?


백발 소녀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달 말이야. 참 예뻐】


도시의 광공해가 사라진 밤하늘은 놀라운 매력을 뿜어내며 140억 년의 시간을 이렇게 별을 통해 드러냈다.

그리고 그 지구의 위성은 조용히 하늘에 매달려 지면을 향해 빛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루나는 하늘은 보지 않고 옆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루나

...물속의 달도 아름답지 않아?


그녀의 말투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다.


【...】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 난초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루나

난초?


백발 소녀의 눈동자에 경악이 일었다.


【응, 설영란 말이야】


자신은 난초를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실종돼서 다들 날 찾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 난초는 잊혀질지도 몰라】


루나

...

바로 이번이었나...

운명이란 참으로 기묘해.


【?】


루나

왜 너는 그 난초를 공중정원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거야?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냥...】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생명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어】


【그리고 너무 외로워 보였거든】


루나

외롭다...


루나는 상자를 꺼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지 않았어?


가스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천천히 열리더니 그 안에는 난초가 들어 있었다.


루나

사실 이 여정은 바로 이 난초를 위해서야. 나는 이 난초를 집으로 가져가야 해.


【집?】


루나

응, 같이 갈래? 그 대가로 일이 끝나면 내가 널 돌아가게 도와줄게.


【그래】


【...거절할 수 있어?】

루나

...이번에는 그래도 돼.


그녀는 어둠 속에 표정을 잃은 채 다시 고개를 돌려 물 속의 달을 바라보았다.


【...】


【그럼 너와 함께 있는 걸 택할게】



루나는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꽃잎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네가 아직도 꽃을 기르고 있는지 몰랐어】


루나

지금의 넌 아직 모르는 게 많아.


【왜 하필 난초야?】



루나

전에 약속을 한 적이 있어...

...나는 어딘가에 설영란을 많이 심어뒀지.

며칠 전에 폭풍이 지나갔는데, 내가 갔을 때 이 한 송이만 살아 있었어.

이곳에서는 극한기후가 발생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어. 가끔 나는 이 행성이 점점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역시나...)】


비 온 뒤 늦은 밤의 야외는 아직도 한기가 남아 있어 잠깐 누워만 있어도 추워 몸이 움츠러든다.

루나가 손을 흔들자 붉은 안개가 담요로 뭉쳤다.


루나

받아.


【대행자는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다니?!】


루나

내가 말했잖아, 네가 모르는 게 아직 많다고.

담요처럼 보일 뿐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원리가 비슷해.


눈앞의 소녀를 자세히 보니, 음, 확실히 빨갛다. 무슨 황금색 뿔을 달고 녹색 로브를 입은 캐릭터가 아니다.


【진짜 맞는 거야?】


루나

퍼니싱에 관한 건 그렇게 분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


"담요"를 받아 덮으니 확실히 따뜻해졌다.

왠지 모르게 난초에 대해 알게 된 루나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이 손으로 마술을 부리면 틀림없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루나

또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하하...】


인류 문명의 경계 밖에서 인간과 대행자는 이 고통 속에서 즐거움을 누린다.

  

【왠지 너랑 놀이공원 온 것 같아】


루나

?


【너와 처음 의식 링크를 했을 때 말이야】


루나

너,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그냥 이상한 관람차를 같이 탔었지】


루나

?


루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보이는 관람차를 보았다.


루나

이상한 관람차?...


【관람차 한번 타볼래?】


기억하기로는 루나는 관람차를 미처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던 것 같다.

비록 그 링크에서 회전목마와 관람차의 이상한 결합체를 함께 타봤지만, 실제로 한 번쯤 경험해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루나

이곳은 이미 폐기된 지 오래야.


【한번 해보자】


【복구 가능한지 알아볼게】


어차피 놀 땐 놀아야지, 동화 속 괴물을 조종하는 마법사들의 갑작스런 공격은 없을 것이다.